문명과 야만 1
프레이저 지음, 이양구 옮김 / 강천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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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짜리로 이루어진 이 책의 원 제목은 "구약시대의 민속(Folklore in the Old Testament)" 이다. 성서에 적힌 이야기, 혹은 그 시대의 풍습에 관한 기록을 다른 민족의 풍습 및 신화와 비교함으로써 성서를 재해석하고 인류의 원초적 모습을 추적해 나간다. 비교로 언급되는 민속학적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요약되지 않고 지리하게 나열되며, 2권 후반부 부터의 내용은 성서 해석이라기 보다는 당대 이스라엘 인들의 습속에 관한 해설에 가까워 흥미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오늘날에도 정설로 인정받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2권 중반까지의 내용은 성경 상의 모순들에 대한 본인의 가설들을 대단히 유려한 문체로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하는 기억이 휘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적으로 남긴 메모들을 정리한 것들이다. 내용이 너무 인상적이기에 상당한 공을 기울였고, 해당 내용을 정리하는데 있어 10시간 이상을 소요했다


인간의 창조


창세기 1(P텍스트)에서는 제일 나중에 인간이 창조되었는데, 창세기 2(J텍스트)에서는 먼저 인간이 창조되고 그 다음에 짐승들이 창조된다. J텍스트에서는 인간이 흙으로 빚어지며, 이는 그리스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등에서 묘사되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 , 인류 근원의 신화 내용을 담고 있다. P텍스트는 바빌론 유수이후로 작성된 비교적 최신의 것이며 훨씬 체계적이고 신학적으로 다듬어져 있다. 이 서술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후기 편집물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


카인의 표지


카인의 표지는 하나님이 카인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고대에 살인 등을 저지른 중범죄자가 흘리는 피는 주변을 감염 및 오염시킬 수 있으므로, 주변인들에게 그가 범죄자임을 알려 피하도록 신체에 새겨넣은 일종의 경고판이다. 혹은 카인의 표지는 그가 살해한 아벨의 망령이 카인을 찾는 것을 방해하거나 해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부적이다.


대홍수


노아의 방주에 탑승할 짐승들에 관하여, 창세기 6장에서는 부정한 짐승과 정결한 동물을 구분하지 않으나 7장에서 정결한 동물은 7쌍 태우고 부정한 동물은 1쌍 싣는다는 내용은 모순된다. 창세기 6장은 원시적인 J텍스트로 소박한 설화의 성격을 지니지만 7장의 내용은 P텍스트에 기반한 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법정신을 담고 있다. , 성경은 단일한 저자에 의한 기록물이 아니라 여러 저자들에 의해 덧씌워지고 수정되어온 누적된 문서이다.


폭우는 40일간 지속되고, 방주 안에서 노아는 7일 단위로 총 3번 새를 내보내서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를 체크한다. 당대 근동사람들은 40일이라는 기간을 상당히 긴 시간으로 묘사하곤 했으며, 7이라는 숫자는 수메르 신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대 근동인들에게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숫자였기 때문에 이것이 히브리 신화에도 반영이 된 것이다. 새를 배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는 항해도구가 없던 고대의 항해 관습이 반영된 것이다.


노아는 방주에 1년하고 10일을 머무른다. 과거에는 태음력(354)을 사용하였으나 후대 성서 편집자들은 태양력(365)을 사용하였다. 후대 편집자는 10일을 더함으로서 나름대로 역법을 보정한 것이다. 후대인들은 완벽한 1주기(1)동안 노아가 방주에 머물렀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성경 속 노아와 유사한 경험을 한다. 또 수메르 신화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수메르의 신화가 성경에 영향을 미쳤고, 히브리인들의 신앙은 교류가 있었던 그리스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지리적으로 인접하지 않은 생소한 지역의 신화들도 언급하며, 교류가 없는 지역에서 많은 내용이 겹친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그는 홍수 설화가 언급되는 지역의 지질학적 유사성을 짚으며, 유사한 경험을 한 지역들이 유사한 신화를 창조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펼친다.


바벨탑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인간이 하늘로 높이 올라가려다가 실패하고 언어의 혼란이 발생하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여러 민족들에게 높이 올라간다는 행위는 신에의 도전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신이 징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편 이는 사람들이 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원시적인 규명 시도이기도 하다.


히브리인들에게는 이것이 바벨탑설화로 구현되었다. 바빌론의 원래 이름은 아카드어로 바브-일루이며 이는 신의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해당 언어를 가져오다 보니 바벨이 되었다. 히브리어로 바벨과 유사한 단어 바랄은 혼란을 의미한다. 즉 지구라트를 보며 히브리인들은 위화감을 느끼고 이를 신에의 도전으로 생각했으며, 그로 인해 언어의 혼란이라는 천벌이 내려지고 히브리 민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이 그만 그곳을 떠나야 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계약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야훼와 언약을 맺고, 짐승들을 반으로 찢어놓은 다음 횃불을 들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는 고대의 계약관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고대인들은 이를 어길 경우 본인도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행위에는 정화의 기능도 있는데, 쪼개진 짐승들의 사체를 지나감으로써 본인의 부정함을 찢겨진 짐승들에게 다 이전하고 깨끗한 상태로 계약을 시작하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후자는 정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야곱의 상속권, 막내 아들의 상속권


이삭은 형 이스마엘 대신 아브라함의 축복과 재산을 물려받고, 창세기 21장에 따르면 이스마엘은 떡과 물 한가죽부대만 지니고 아브라함을 떠난다. 허나 창세기 25장에 따르면 이삭이 아닌 그의 다른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동쪽 땅으로 보냈다는 내용이 서술되며,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장례식에 참여한다. 그는 결코 축복 받지 못해 버림받은 자식이 아니다. 야곱은 눈이 침침한 이삭을 속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나, 역설적으로 야곱은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한다. 왜 야훼의 축복을 받은 이삭이 축복 받지 못한 에서를 두려워하는가? 에서가 야곱을 용서하는 장면에서, 야곱은 죽을 각오를 하고 형을 만나뵈며 에서는 여러 부하들을 거느린 것으로 묘사된다. 막내 요셉은 막내로서 색동저고리(육체노동에서 면제된 자의 징표)를 입고, 꿈 속에서 요셉의 곡식단에게 형제들의 묶은 곡식단들이 절을 하며 해와 달, 11개의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한다(나중에 베냐민이 추가되기는 하지만, 앞 부분에서는 요셉이 막내로 묘사된다). 다윗은 여러 형들을 제쳐두고 막내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어쩌면 이 징표들은 고대 근동의 말자 상속 제도에 대한 방증일지도 모른다.


프레이저는 영국의 사례를 우선적으로 든다. 고대 영국의 상속제에는 버로우 잉글리쉬버로우 프렌치가 공존했는데, ‘버로우 잉글리쉬에서는 막내아들이 부모를 끝까지 봉양하는 대신 가업과 토지를 물려받는다. 한편 버로우 프렌치에서는 장자가 모든 것을 상속한다. 프랑스에서는 메네타라는 말자상속 관습이 있었으며 독일에서는 마델스타라는 말자상속 관습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형들은 결혼과 함께 독립을 하지만 막내아들은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가업과 재산을 물려받는다. 대신 막내는 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지참금을 마련하고 그녀들을 보호해야만 했다. 프레이저는 아직 개간하지 않은 토지가 많은 원시 시대에는 장남들이 집을 떠나 본인의 영역을 개척하고 막내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토지가 부족하고 집약적 노동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하면 장자상속 문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야곱이 에서의 짐승털옷을 입는 것은, 에서의 몸에 걸쳐진 짐승가죽에 깃든 힘과 권능이 본인에게 이전되게 함으로서 본인을 보다 높은, 장자권을 지닌 고귀한 존재로 재탄생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 짐승의 가죽과 창자등을 몸에 휘감고 그 힘이 깃든 자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은 원시인들에 대한 여러 민속기록들이 존재한다. 야곱은 왼손과 오른손을 교차하는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에서와 야곱을 축복한다. 이는 인위적으로 장자 우선권을 해제하고 말자에게 상속을 하는 당대의 관습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


베델의 야곱


야곱이 돌을 베고 잠에 들었더니 그는 꿈에서 하나님을 영접한다. 두려움에 떨던 그는 돌을 가져다가 돌기둥(마세바)을 세운 뒤 그 돌에 기름을 붓는다. 그리고 해당 지역을 베델(하느님의 집)이라고 명명한다. 그 뒤 야곱은 야훼에게 십일조를 바칠 것을 맹세한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베델은 원래부터 유명한 성소였다고 한다. 가나안 지방에서는 돌기둥을 세우고 이를 신의 현현으로 생각했는데, 후대 히브리인들이 이를 야곱의 세운 것으로 전용했다는 것이다. 베델은 애당초 유명한 성소로서, 여로보암 시기 황금 황소상이 설립되기도 하였고 아모스 시기에는 참배자들로 들끓던 장소이다. 고대인들은 신이 현현한 것으로 간주한 성스러운 돌에 기름을 부으며 숭배하곤 했다. 그러나 성서에서 원래부터 성물이었던 돌은 야곱의 기름부음에 의해 성스러움을 부여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야곱이 벧엘을 이름지은게 맞다면, 왜 아브라함은 벧엘 동쪽 산에 제단을 쌓고 여호화를 외쳤겠는가? (창세기 12)


돌무더기의 언약


가축과 딸을 데리고 몰래 떠난 야곱을 장인어른 라반은 뒤쫓는다. 야곱과 조우하기 전날, 라반의 꿈에 하느님이 등장하여 야곱에게 상해를 입히지 말라고 경고한다. 둘은 다음 날 화해의 돌무더기를 쌓는데, 여기에 당대 근동인들의 관습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


 돌무더기는 일종의 경계선이다(“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 해하지 아니할 것이고, 네가 이 무더기를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않을 것이라”). 라반은 돌무더기를 일컬어 미스바라고 하였는데, 이는 파수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옵소서”). 당대인들은 돌무더기에 깃든 신성이 언약을 어기는지 여부를 감시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압복 강가의 야곱


 야곱은 압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고 환도뼈를 다친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야곱과 씨름한 천사의 원형은 압복 강가의 지령(地靈)이다. 고대인들은 강이나 산의 경계에 그곳을 지키는 신령이 있다고 믿었으며, 외지인 야곱이 그 강을 건너려 하자 도하를 막으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의 지령은 밤이 오면 물러나야만 하는데, 이러한 제약은 다른 민족의 신화들에 서도 흔히 목격된다.


 그리하여 야곱의 후손 히브리인들은 짐승의 환도뼈 힘줄을 절대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터부는 성서가 편찬되기 전부터 히브리인들 사이에 존속했으며, 오히려 터부가 천사의 손질이라는 형태로 반영되었다. 여러 민족들에게서 힘줄을 먹지 않는 터부가 발견되는데, 프레이저는 이를 동물의 뒷다리 힘줄을 먹을 경우 나도 힘줄에 손상을 입어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리라는 공감주술의 원리를 주장한다. 그의 공감주술 이론은 오늘날 틀린 내용으로 판명이 났으나, 여러 민족에게서 힘줄을 먹지 않는 문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성서 편찬 이전 히브리인들이 힘줄을 먹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므로 여전히 이 텍스트는 가치를 지닌다. 


각대 상자 속의 모세


요셉 덕택에 성공적으로 애굽(이집트)에 정착한 히브리인들에 대해 파라오는 경계심을 갖는다. 이로 인해 히브리인의 자손 모세는 나일강에 던져 버려지나 애굽의 공주가 그를 발견하고 왕자로 교육시킨다.


 프레이저는 성경의 주장과 달리, 모세를 강가에 띄우는 행위는 고대 부족사회에서 행해진 물에 의한 시험이 일부 담겨있다. 아기가 물에 떠오르거나 살아남으면 적자로 인정을 받으나 가라앉거나 죽으면 사생아 혹은 신에게 버림받은 자로 여기는 사례(혹은 창작)가 다른 민족 전승에서도 목격된다. 히브리인들은 출애굽을 인도한 모세의 정통성 및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설화를 외부로부터 차용하고 편집했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 대왕설화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바구니에 담아 강에 띄우고 정원사가 아이를 발견하고 구출하는데, 이는 모세의 설화와 대단히 유사하다.


엔돌의 마녀


히브리인들은 사울을 왕으로 옹립하지만 여전히 사울과 다윗은 제사장 사무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그를 경외한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사울이 자신을 따르지 않자 사무엘은 그와 거리를 두고 다윗을 옹호하는데, 이는 사무엘이 본인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능숙한 노련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울은 즉위 후 신접한 자들을 박해하여 무당들은 은둔생활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막상 블레셋 인들에 의해 궁지에 몰리자 사울은 무당을 찾는데 중심부로부터 한참 떨어진 엔돌에서야 겨우 한 명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평민복을 입은 사울을 알아보지 못하고 함정 수사라고 짐작하며 찾아온 왕을 비난한다. 그러자 사울은 본인의 정체와 의도를 밝히고, 엔돌의 마녀(무당)는 사무엘의 혼령을 현현 시킨다. 이 설화는 당대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강령술이 얼마나 뿌리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며, 야훼 유일신교 하 민속신앙이 근절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사무엘의 영은 땅에서 올라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고대인들이 사후 세계를 발 밑의 지하세계로 보았음을 보여준다(ex)그리스 로마 신화의 하데스). 사울은 의복을 보고 불려나온 영이 사무엘임을 알아차리는데, 이는 살아 생전의 의복이 사후에도 영혼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당대의 사고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구조사의 죄


 다윗은 인구조사를 수행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여호와에게 죄의 사함을 구한다. 그 다음날 선지자가 다윗을 방문하여 세 가지 징벌 선택지를 보여주고, 다윗이 선택을 신에게 맡기자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돌고 이로 인해 7만명의 인구가 사망한다(사무엘하 24). 또한 출애굽기 30장에 의하면 인구 조사를 할 때 각 사람당 반 세겔의 Ransom(속전으로 번역되나, 단어의 의미는 포로의 몸값을 의미한다)을 납부하라고 기재되어 있다.


 숫자를 세는 행위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장악하는 마술적 수단으로, 신의 권한을 감히 피조물 다윗이 넘보아서 징계를 받은 것이다. 또한 프레이저는 여러 민족의 숫자 세기 금기를 예로 든다. 가령 동물의 숫자를 세는 행위가 동물의 성장을 멈추게 할까 두려워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가축의 숫자를 집계하지 않고, 영국의 일부 어부들은 다음 번 어획량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며 물고기를 배 위에서 세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는 숫자를 세는 순간 개별 주체를 악령들이 인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악령들에게 개체들이 노출된다고 고대인들이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


상수리나무와 테레빈나무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는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세명의 나그네를 영접하는데, 이들은 여호와와 그를 보좌하는 2명의 천사들이다(창세기 19).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그녀를 키워준 유모 드보라가 사망하자 벧엘의 상수리 나무 아래서 장사지내고 그 나무를 통곡의 상수리나무(알론바굿)이라고 이름짓는다.


 그러나 호세아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너희의 딸들이 음행하고 며느리들이 간음한다고 비난하며, 이사야는 상수리 나무 사이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벌인다고 비난하고, 에스겔은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행해진 우상숭배를 비판한다. 과거에는 다양한 신앙이 야훼 신앙과 결합해서 굳건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여러 신앙이 병존하였으나 유일신교가 보다 강세해진 후대에 올수록 이러한 민속 신앙은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문화는 오랫동안 살아남아 나무 숭배는 로마 시대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왜 이 챕터의 제목이 상수리 나무와 테레빈 나무인가? 원전에는 “Elon”, “Allon”, “Elah” 라는 단어를 히브리인들조차 구분 없이 마구 혼용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이들 중 하나 혹은 두 가지가 테레빈 나무와 상수리 나무를 의미할지언데, 한국 성경은 이를 전부 상수리 나무로 번역했기 때문에 해당 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개인적으로 애를 먹었다.


이스라엘의 신당들


 이스라엘의 신당들은 각 마을이나 지역의 제의적 거점으로서, 시작은 야훼께 번제를 올리는 곳이더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역의 토속신앙과 결합되곤 하였다. 이러한 지역 중심의 제의는 자연스럽게 가나안의 바알, 아세라 신앙과 혼합되거나 사마리아의 야훼’, ‘베텔의 야훼등으로 파편화되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이러한 지방 산당들을 약화시키고 야훼신앙을 단일화하기 위한 조처였으며, 요시야 왕은 한발 더 나악 종교개혁을 통해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대 민중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던 산당을 중앙정부가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었다. 성스러운 나무를 베어넘기거나 돌기둥을 뿌리뽑는 행위는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야기하였고, 이로 인해 신목은 방치하고 주변의 숲을 정리한다는 방식으로 현상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유대교는 민속신앙을 근절할 수 없었을 경우 이를 야훼의 제단으로 이름을 바꾸는 식으로 점진적으로 야훼신앙에 편입시키는 방법을 채택했다.


율법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차지한 위치


요시아 왕은 종교개혁을 통해 야훼 신앙을 공고히 하고, 찬란했던 다윗왕과 솔로몬의 시대를 복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강력한 외부의 적들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성서에서 성군으로 묘사되는 요시아왕은 므깃도 전투에서 이집트 군에 의해 허무하게 전사하고 말고, 후대 왕들은 바빌론의 멍에를 메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모한 독자노선을 시도하다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후대 이스라엘인들은 멸망의 원인을 이스라엘 왕국의 미흡함으로 여기기 보단 야훼가 본인들을 내버린 이유를 천착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율법에 복종하지 않았음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율법을 보다 철저하게 준수하다면 과거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결국 기원전 444년 에스라는 레위기 율법을 선포한다. 이는 유대교가 국가가 아닌 율법을 매개로 한 제사장 중심의 종교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초기 교회의 성격을 많은 부분 지니고 있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


 널리 알려진 간통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와 같은 도덕적 개념의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출애굽기 34장의 십계명의 내용은 도덕적 개념 보다는 제의적인 절차에 보다 가깝다. 그 내용은 무교절을 지킬 것”, “처음 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 “칠칠절과 수막절을 지킬 것”,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 것”, “유월절 제물의 고기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 것”,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 것 등이다.


 프레이저는 출애굽기 34장의 십계명이 더 오래되었고, 고대 유대교의 면모를 많이 띄고 있음을 지적한다. 원시적인 제의와 주술적 금기를 중시함으로서 민족의 생존을 고대 유대인들은 도모했던 것이며, 후대 윤리와 도덕 등을 신경 씀으로써 고등종교로 발전해 나갔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34장의 십계명 중 새끼염소를 어미 젖에 삶지 말라고 한 이유는, 고대 유대인들이 젖을 끓이는 행위가 일족이 보유한 가축의 젖을 전부 말라버리게 할 것이라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유대인 외에도 많은 과거 유목민들은 절대 젖을 끓여먹지 않았으며, 새끼 염소를 어미 젖에 삶지 말라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의 코셔 식법의 일부로 이어져내려오고 있다(고기와 우유를 같은 식탁에서 먹거나 같은 조리 기구로 조리해서는 안된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내는 관습


 프레이저가 자신의 머리카락과 피를 바치는 행위를 조상숭배 및 네크로맨시로 본 것은 오늘날 정설로 인정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모스, 이사야, 에스겔 등의 위대한 예언자들은 머리를 밀어버리고 몸을 베는 것을 대단히 자연스럽게 행하는 반면, 신명기와 레위기에서 갑자기 죽은자를 위해 살을 베지 말고 눈썹 사이 털을 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느헤미야와 에스라 이래로 개편된 유대교는 과거의 토착민속과 관습 등을 억제하고 유일신 신앙을 공고히 하며 외부 세력의 제의가 유대교에 침습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반면, 이보다 앞선 시대에서는 야훼신앙과 민속은 자연스럽게 결부되어 있던 것이다.


사람을 받아서 죽인 황소


 출애굽기 21장에서,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면 소는 반드시 돌로 쳐죽이되, 주인이 소가 사람을 받는 버릇이 있음을 주지하고 있음에도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연좌제를 적용하여 주인 또한 죽여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중세 유럽, 심지어 19세기 초반까지도 동물을 피고인으로 내세우는 동물 재판은 실제로 빈번히 행해졌다. 돼지가 아이를 물어죽이거나, 쥐떼가 곡식을 훔쳐먹으면 동물을 법정에 세우고, 변호임을 선임하며 판결을 내리곤 했다. 고대인들은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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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살구] 리옴빠 (표지 2종 중 랜덤) - 유리 올레샤 단편집
유리 올레샤 지음, 김성일 옮김 / 미행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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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페이지가량 읽고 덮었다. 논리적이진 않지만 순간의 장면을 나름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던 같은데, 그러면 소설이 아니라 시를 쓰면 아닌가? 시를 재능이 없으니 소설을 썼더니 지적 허영심에 가득찬 평론가들이 높은 평가를 내렸다. 천부적인 재능을 소유한 자였다면 로트레아몽, 마야꼽스키처럼 비논리적인 시를 쓰고 말지 괜히 소설로 도피할 이유가 하등 없다. 물론 로트레아몽과 마야꼽스키는 유리 올레샤와 달리 문장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철학 또한 가슴에 품은 위대한 작가들이다. 


 제랄드 드 네르발의 "실비" 또한 비논리적으로 내용이 서술되지만 그 소설은 사랑과 기억이라는 핵심 테마가 시종일관 유지되며 작가 본인의 삶에 대한 회한이 말미 문장 하나마다 묻어나온다. 비논리적이라도 소설이라는 형태를 택했으면 기초적인 뼈대는 유지해야 하는 것이며, 문장을 참신하게 쓰려고 고뇌한 흔적이 보이더라도 알맹이가 비어 있으면 독자는 그저 피로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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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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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짧은 잠언스러운 우화 모음집. 우화 하나당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다. 에세이, 동화, 소설 등이 발달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이솝우화가 지혜의 보고로 여겨질 수 있었겠으나 오늘날에는 그 상위호환이 넘쳐난다. 30p를 읽고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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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을유세계문학전집 3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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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지방 촌놈 라스티냐크는 법학 공부를 위해 파리로 상경한다. 집안의 희생을 바탕으로 상경할 있었음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파리 사교계의 사치스러움은 순진한 청년을 강렬하게 유혹하기 마련이다. 주인공은 귀족 인맥을 가지고 있어 사교계에 문을 두드릴 수는 있었지만 사교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재력과 매너를 갖추지 못하였다. 그런 그에게 보트랭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접근해오는데


  작품의 주제는 양심”, “성공”, “부성애정도로 요악할 있다. 양심 성공 탁월하되, “부성애 그렇지 못하다. 보트랭은 라스티냐크가 이대로 법학 공부를 마쳐봤자 성공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므로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성공을 쥐어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뷰 글로는 그냥 평범한 내용에 지나지 않으나 그의 장광설은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에 의하면 미덕을 지키는 자들은 신이 창조한 우둔한 피조물이며, 당신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항아리 속의 거미처럼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고, 도덕적으로 초라하게 바엔 차라리 해적이 되고 말겠다고 선언한다.


 라스티냐크는 성공과 미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물이다. 육체적으로는 보트랭의 논리에 끌리면서도 지켜야만 하는 선을 자각하고 갈등한다. 파리에 매력과 환멸을 동시에 느끼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파리와의 대결을 선포하는 장면은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장면 하나다.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가 매혹을 느낀 영애의 아버지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오직 딸들만을 끔찍하게 아끼는 노인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에서 모티프를 얻은 인물이 아닐까 추측되는데, 인물이 과하게 평면적이고 사용하는 언어 또한 전혀 시적이지가 못하다. 보트랭과 라스티냐크라는 인물은 셰익스피어 4 비극에 등장하는 거인들에 준할 만큼의 독자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으나, 고리오에게는 오직 우둔함과 지루함만이 느껴진다.


 또한 작가의 초창기 작품이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가 상당히 어색하며 가독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단점들로 인해 19세기 리얼리즘 문학을 창립했다고 함께 평가받는 스탕달의 적과 보다는 고리오 영감 아래라고 개인적으로 사료하는 바이다. 그러나 적과 에서는 보트랭의 연설파리와의 대결 선포에 준할만한 명장면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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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희곡선집 2 - 갈릴레이의 생애, 사천의 선인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대학고전총서 24
베어톨트 브레히트 지음, 임한순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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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생애


 이 극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1. 갈릴레이의 지동설과 이를 둘러싼 교회와의 갈등상황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 2. 브레히트는 사회주의자였고, 마르크스는 유물론자로서 과학을 인류 발전의 토대로 보았음, 3. 당대 과학자들은 귀납법적 연구방법론을 채택하지 않고 권위자의 텍스트를 진리로 가정하고 연역적으로 논리를 전개했음. 을 선행으로 알아야 한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셰익스피어의 역사극들도 브레히트의 이 작품에 비할바가 되지 못하며 오직 쉴러의 "발렌슈타인" 정도만이 역사극 분야에서 이 역작에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가 그리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브레히트가 묘사한 갈릴레이는 대단히 입체적인 인물로, 진리를 향해 본인을 불사르는 듯 하지만 목숨이 걸리자 순식간에 비굴해지는 한편, 타인이 발명한 망원경을 자신의 업적으로 속여 국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뜯어내고, 식도락을 즐기기도 하며, 주변인들을 챙기는 듯 하다 가도 타인의 안위보다 본인의 연구를 우선시하기도 한다. 


 저자의 유물론적 관점은 사회주의의 의미가 많은 부분 퇴색된 오늘날에는 호불호가 다소 갈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근신처에서 보이는 행태를 유물론적 관점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입체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볼 수도 있어 큰 문제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빼곡한 주석들을 보며 브레히트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연구하고 조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인간의 생애를 과하게 함축하지도 그렇다고 지리하게 나열하지도 않은, 대단히 밀도가 높으면서 중요 내용은 거의 다 담긴 브레히트의 최고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사천의 선인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인간의 도덕성을 시험하기 위해 거지로 분장하나, 다른 마을 주민들은 신들을 전부 외면하고 가난한 노부부만이 그들을 환대한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감명을 받아 이들에게 보상을 내린다...


 이 신화의 내용을 브레히트는 차용하여, 없는 살림에도 거지로 위장한 신들을 소박하게나마 접대한 삼류 창녀 셴테에게 신들은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셴테는 그 돈으로 담배가게를 사지만 그 물건은 하자가 있는 물건이었고, 그마저도 각종 빈민들이 셴테를 등쳐먹기 위해 혈안이다. 셴테는 가면을 쓰고 악역 사촌오빠 "슈이타" 를 가장해야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신은 선량한 이에게 돈은 줬으니 할 건 했다는 기색이다.


 사회주의가 의미하는 바가 컸고, 종교의 가치가 훨씬 높았던 당대에는 이 작품이 강한 시사점을 지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다. 가면을 쓰고 벗음으로 한 등장인물이 "슈이타"가 되었다가 "셴테"가 되었다가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못알아 본다는 어처구니 없는 설정은 작품이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컸을 때는 소외 효과를 야기해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제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대에는 그냥 어이가 없고 극에 몰입만 안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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