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
야스미나 레자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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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럭저럭 벌어는 먹고 사는 식자계층의 중산층 세르주는 어느 날 거의 백지에 가까운 추상화를 거액을 주고 구매한다. 고전주의자 마크는 이를 터무니 없는 낭비라고 생각하며 세르주를 힐난한다. 둘 사이에 유우부단한 이반이라는 친구가 있다. 내용은 이 셋이 벌이는 촌극이다.


 도입 부분은 매우 좋았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냐고 이반이 묻는 장면, 갤러리가 바로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한 번 거치고 판매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답변 등은 어떻게 보면 리얼리즘이고 어떻게 보면 풍자로도 보일 수 있다. 초반부에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이 작품에 잘 녹아들어 과연 현대 미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독자에게 품게 했다.


 그러나 예술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수준 높은 지적 유희는 어디로 가고 중반부 부터 우정이란 무엇인가로 내용이 변한다. 여기에도 서사극 기법이 쓰이지만 그 수준이 인간 관계를 철저하게 해부한 정도는 아니어서 앞 부분 만큼의 감흥이 없었다. 다만 중반부는 탁월하다고는 생각되진 않지만 아트가 세계적인 히트작이 되도록 할 수 있도록 한 부분으로, 상당히 코믹하고 우정의 편린 정도는 성공적으로 담아냈다고 생각이 된다.


 여기까진 좋았으나 작품의 말미가 너무나도 아쉬웠다. 소재(예술)와 주제(우정)가 결국 성공적으로 조화되지 못하였고, 예술과 우정에 대해 작가는 제법 괜찮은 질문들을 던졌지만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이라는 최악의 답변을 제시하였다.


p.s. 책을 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이 비어서 아트 공연을 봤다. 막이 내린 뒤 현대예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고 중반부 부분이 너무 웃기다는 이야기만이 들려왔다. 과연 브레히트의 소격화 기법은 과연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관람객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는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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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연대기 1 - 마법사 멀린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북스피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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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시절 비룡소에서 나온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어딘가 내용이 불완전하다고 느껴졌다. 초반 아서왕이 엑스칼리버를 뽑을 때만 해도 내용이 흥미진진했는데, 갑자기 기사들이 모험을 하다가 왕국이 분열하는 것이다. 아쉬움을 대략 20년이 지난 오늘날 8권에 달하는 시리즈물을 읽음으로서 풀 수 있었다. 비록 경험이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1권은 국내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할, 아서왕이 무대에 등장하기 이전 그의 조상과 멀린, 음유시인 탈리에신의 이야기이다. 켈트 신화의 원형과 드루이드교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어 북유럽신화, 성경, 그리스로마신화를 읽는 마냥 대단히 즐겁게 읽었다. 2권은  가장 유명한, 아서왕이 엑스칼리버를 뽑은뒤 원탁의 기사들이 그를 중심으로 뭉치며 브리튼 외부 세력들을 무찌르는 내용이다. 아주 쓰여진 건국신화를 읽는 느낌이었으며 이때까지만 해도 독서가 즐거웠다.


 3권부터 갑자기 내용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았음에도 브리튼의 영웅 아서는 사라지고 뒷방에서 다른 기사들의 모험하는 것이나 지켜보는 뒷방 늙은이로 대체된. 기사들은 브리튼을 구원하는 숭고한 목적을 상실하고 한량 건달새끼들마냥 모험이라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잉여인간들이다. 가웨인, 란슬롯, 이베인 기사들의 이름을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죄다 똑같은 모험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쓸데없이 사랑을 하고 불륜을 한다. 수준은 오늘날 엠생들이 자기위로용으로 보는 남성향 하렘 웹툰 만도 못한 정도로, 괜히 돈키호테 쓰여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7권에서 성배를 찾는 모험 파트부터 다시 독서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켈트 신화의 면모는 진작에 사라졌지만 대신 고대 중세 기독교의 여러 아름다운 상징들이 등장해 신비로운 우화를 읽는 듯한 경험을 했다. 허나 모험이 끝난 뒤 8 왕국이 파멸하는 부분은 3~6권의 수준 낮은 기사도 문학하고 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원래 존재하던 아서왕 스토리에 유럽 작가들이 살을 여럿 덧붙였기 때문이다. 아서왕 이야기는 단일 저자에 의해 쓰여진 책이 아니며, 여러 세대에 걸쳐 다양한 저자가 존재한다. 위대한 신화와 훌륭한 영웅왕의 이야기를 기사들과 귀부인들간의 삼류 로맨스로 격하 시킨 작가들이 밉기도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과연 아서왕 전설이 오늘날까지 전승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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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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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페이지 가량 읽고 책을 덮었다. 얄팍한 지식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정제 없이 씨부린 개똥철학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사고관을 예술의 형태로 승화 시킨 문학을 읽거나, 나름의 학문적 엄밀함을 갖춘 인류학 저서를 읽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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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희곡 1
폰비진 외 / 열린책들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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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열린책들은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이너한 작품들도 많이 번역되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로, 한국에는 덜 알려졌지만 수준 높은 희곡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다.


미성년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비진 이전 러시아 희곡들은 서구 희곡을 흉내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미성년 러시아 고유의 언어와 구어체가 적극 활용된 희곡이라고 하며 아마 이유 에서인지 명작들을 모아놓은 선집에도 꼽힌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오늘날 읽을 가치가 1 없는 작품으로, 작가의 사고관은 교장님 훈화 말씀 마냥 최악의 방식으로 표출되며 등장인물들 또한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지혜의 슬픔


모스크바로 돌아온 주인공이 다양한 부정적인 인간군상들을 접하며 좌절하는 이야기이다. 위선, 모방, 속물근성, 거세된 수컷, 클럽 지식인, 남편을 휘어잡으려는 아내, 로맨스 중독자 등의 인간상들이 짧은 대사에 사실적으로 함축되어 표현되는 반면, 차즈끼의 절망으로 가득 독백은 낭만주의적인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있어 대조를 이룬다. 대단히 사회비판 희곡이며 고골의 죽은 ”,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보리스 고두노프


러시아의 동란 시대를 역사극으로 창조해냈다. 감상은, 푸슈킨은 역사극에 있어 쉴러와 셰익스피어에 비할 바가 된다는 것이다. 로맨스를 쓸데없이 추가해서 작품의 흐름이 깨지고, 전반적으로 구성이 다소 산만하다. 그는 서사시의 형식을 빌려 끊임없이 주절주절 거려야 하는 수다쟁이이지 언어를 응축해야만 하는 일류 비극 작가가 못된다.


가면무도회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를 뛰어넘는 낭만비극이다. 레르몬토프는 푸슈킨과 함께 언어적 재능을 타고난 작가로, 그는 비극에는 영 소질이 없는 푸슈킨과 달리 오직 불행한 이야기만을 쓰도록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사람이다. 셰익스피어 대비 다루는 언어의 무게가 약간 가볍다는 느낌도 들지만 엄청난 환멸로 그 이상을 충당한다. 희곡을 쓰면서 환멸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무대이며 거짓된 가면무도회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며 영혼을 담아 작가는 글을 적었다. 


검찰관


 직설적이고 적당히 코믹한 사회비판 희극 이랄까? 그의 걸작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와 죽은혼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주의의 대가와 표현에 제약이 있는 희곡이라는 장르는 애시당초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작품이 대부분의 희곡들보다 퀄리티가 높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단독 작품이라면 아마 별점 4점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싶은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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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 개정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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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성" 으로 처음 카프카를 접했으며, 그를 진정한 천재라고 생각했다. "소송" 은 "성" 만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대단히 훌륭한 소설이다. 그러나 그의 단편집은 실망스러웠고, "실종자" 또한 두 걸작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카프카는 다루는 주제가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성" 과 "소송" 의 내용이 상당 부분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실종자" 가 그나마 차별화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들 수 있다. 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은 주인공의 의도를 얼마든지 곡해할 수 있고, 역할만이 중요할 뿐 개개인의 개성은 점차 사라진다. 연고지와 보호자가 없는 주인공이 사회에서 얼마나 약자의 입장에 처해있는지 또한 어느 정도 담아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대단히 세련되지 못하다는게 문제이다. 주인공은 소년이니까 순진멍청하고, 그러니 건달 들라크루쉬와 로빈슨에게 휘둘린다는 것이다. 정박아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였으니 정상적인 지능을 지닌 독자가 어떻게 그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주인공을 받아들였던 외삼촌이 조금 비위에 안 맞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 만으로 집에서 주인공을 추방하는 것 또한 어처구니 없는 전개이다. 최악은 브루넬다라는 존재이다. 정녕 "성" 에서 열쇠구멍이라는 환상적인 알레고리를 고안해낸 작가가 맞는가...? 그녀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은 "성" 에서도 다루어지며, 브루넬다같은 폐급 돼지년이 아닌 클람과 바르나바스라는 걸출한 등장인물들로 멋지게 구현된다.


 그럼에도 작품을 끝까지 읽을 수 있던건 그의 문체 덕분이다. 아직 다소 투박하고 직설적인 감이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건조한 대화 사이사이 그의 천재성이 묻어 나온다. 다른 문호들보다 따라하기 쉬운지 많은 현대 작가들이 그의 문체를 흉내 내는데,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쓰레기 같은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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