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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땅의 야수들]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대한민국의 독립 투쟁과 그 격동의 세월 속에서 살아나가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빼앗긴 땅에서 살아가는 설움을 감히, 짐작조차 못하는 내게 한 장 한장 당시의 상황들이 어찌나 세세하게 묘사되는지 피부에 박히는 감정들이 날카롭게 아려오게 만드는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이 누굴까 생각했었다. 옥희, 정호, 한철, 연화, 월향, 단이..등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왔고 질기게 얽히고 얽혀 이 작은 땅에서 평범하지도 순탄하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속 사랑과 공감, 연민을모두 품고 있는 그런 이야기.
600페이지가 가까운 책에 이토록 많은 감정을 담기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속으로 나를 기꺼이 데려가, 파노라마처럼 당시의 수많은 감정을 느끼게하고 있어 실로 놀라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참 많이 생각이 났었다. 이름없는 그저 의병으로 살았을사람들과 당시의 설움에 대해서 담으면서도 이 책에선 한 걸은 더 나아가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차마 담지 못하는 그런 장면에 대해서까지도 문장으로 생생하게 엮어내려가, 얼마나 지금의 삶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야하는지 절실히 깨닫게한다.
한가지 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이런 장르의 소설로서 놀라운 점은 묘사력이다.
p76. 가장 놀라운 사건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이 작은 바늘 하나가 툭 떨어지듯 시작하여 꼬리를 물고 연쇄한다. 길 잃은 개 한 마리의 출현만큼이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저 세월 속에 묻혀 흘려가는 여느 일탈로말이다.
p102.서울의 여름 새벽은 짜릿함을 안겨주었지만 거의 감지하지 못할 만큼 찰나에 지나갔다. 타오르는 태양이 지평선 위로 냅다 뛰어오르자 축축하던 밤이슬은 몇 초 만에 말라버리고, 도시는 태양의 명령에 복종하듯이 잠에서 깨어났다.
p420. 날씨는 쾌청했다. 햇살은 따갑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날이었다. 옥희는 상점 매대의 그림자가드리워 빛과 어둠이 서로 얼룩지듯 영롱한 길 위를 한가롭게 걸었다.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작은 땅의 야수들] 중 정호의 대사에서.
이런 생생한 묘사들로 이 작은 땅에서 일어났던 아름답고서 서글픈 이야기를 가득 수놓은 그런 대서사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