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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캣 - 제16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ㅣ 문지아이들
송은혜 지음, 오승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학년 #생명 #모험 #★★★ #너무많은사건과인물과장소
아래 비평감상문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퍼플캣」을 올려다보며
마음이 약한 고양이 레옹. 마음이 약하다는 것은 무언가 걱정스럽고 염려되는 것이 있어서 자기 마음 먹은 대로, 하고픈 욕망대로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의지의 부족이거나 경험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때론 제 판단이 옳다고 확신할 수 없는 자신감의 부족이거나 무언가 놓친 것은 없을까 우려하는 섬세함 탓일 수도 있다. 한편으론, 자기 생각보다 남의 말과 결정이 더 그럴 듯하다고 흔들리는 마음이다. 어린 고양이는 의지도, 경험도, 판단력도 부족하다. 섬세함도 아직 섬세하지 않다. 그런데 벌써 삶이 끝났다. 더 성장하고 더 지혜로워지며 더 사랑할 시간이 없다. 정말, 그냥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억울하고 어처구니 없다. 이제 돌아보며 진짜 마음이 약한 이유를 밝혀야 할 시간이다.
먼저 죽음의 순간. 겁쟁이라, 무료 급식소를 눈앞에 두고도, 차와 오토바이가 붕붕대는 길 한 번 용기내어 건너지 않았던 레옹이 그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한 것은 영소 탓이다. 정확히 영소가 신발을 흘린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소가 레옹에게 도와달라는 듯이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신발 하나가 목숨 값이다. 신발 한 짝이 버려지듯 그는 그렇게 죽었다. 그렇게 죽어도 되는 삶인가? 그런 생명이라는 게, 파리 목숨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건가? 누구 목숨은 귀하고, 어느 목숨은 그렇게 하찮게, 개죽음을 당해도 되는, 그런 게 수없이 벌어지는 현실이 과연 이 세상인가?
고양이 상조회사 직원이 24시간을 돌려준다. 마치 목욕하듯이, 이 세상에 남은 후회와 안타까움(기억)을 다 씻어버리라는 뜻이다. 마구 몸을 흔들며 춤을 추면, 누구나 가지게 마련인 미련과 걱정일랑 다 떨쳐버릴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가볍게 떨쳐버리고 안락한 레인보우랜드로, "신과 함께", 제 갈 길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레옹에겐 다른 게 하고픈 게 있다. 죽은 다음에야 제 맘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레옹.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즐거운 변신 놀이(변신탕?) 대신, 달콤한 순간을 떠올린다(솜사탕?)는 게 겨우 건방지고 철없는 타루를 기억했다. 잘해준 것 하나 없는 그와의 과거를 지우는 목욕을 거부하고 그에게 달려가는 게 레옹의 소원이다. 가서 고작 작별 인사를 하자는 것이다. 타루는 대단한 친구가 아니다. 일곱 번 주인에게 버려졌던 고양이일 뿐이다. 그래서다. 그래서 자신조차 버린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픈 마음이다. 레옹의 마음은 너무나 미약하다. 겨우 그것 뿐일까?
돌려받아야할 <시간사용권>은 흑묘단에게 빼앗겼다. 시간 은행에(가는 길은 멀었다)가면 축적된 시간이 있단다. 「저승의 곳간」 처럼, 이승에서 자신의 시간을 내어 남에게 준 이에겐 그만큼의 시간이 은행에 쌓인다. 레옹의 저축된 시간은 많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그 이유를 알려주는 <레옹의 시간>이 상영된다.
그는 모른 척하거나 돌아서지 않았다. 자기 편한 대로 하기보단 편하지 않은 남을 도왔다. 타루를 향한 미약한 마음도 정말 그것 뿐이었다. "난 널 절대 버린 게 아냐, 알았지?" 타루는 다행히 씩씩하고, 제법 정의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새 친구도 생길 것 같다. 레옹은 그렇게 걱정하고 우려하는, 마음 약한 고양이다. 마음이 약하다는 것은, 불편한 제 마음을 외면하거나 겁내지 않는, 제 맘을 아끼지 않는 강한 행동이다. 레옹은 짧은 삶 속에서 언제나 제 맘대로 살아왔다. 작다고, 약하다고 하찮은 삶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