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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파랑 - 소울메이트를 찾아서, 제3회 No.1 마시멜로 픽션 대상작 마시멜로 픽션
차율이 지음, 샤토 그림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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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도 잠 못 드는 절박함이 있어 시간을 잠 재워 과거로 떠난다는 판타지에 동조하고,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정을 증명하므로 어느 새 미지를 응원하고야 만다. 물괴를 위한 땀 빼기 운동은 <팡타그뤼엘> 처럼 그로테스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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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실종 사건 - 제5회 살림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 살림어린이 숲 창작 동화 (살림 5.6학년 창작 동화) 17
정현정 지음, 신민재 그림 / 살림어린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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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의 모티브가 현대의 동화에 그대로 적용되면 흥미로울까?


항아리에 빠졌던 옹고집이 둘이 되는 바람에 진짜 옹고집이 쫓겨난다는 가짜분신 모티프가 <그림자 실종 사건>의 중심이다. 손톱을 밤에 깎지말라는 속담과 그 튄 조각을 (제대로 모아 버리지 못하면) 쥐가 먹고 손톱 주인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민담이랑 연결된다. 옹고집이 겪는 봉변의 원인이 개인의 성품이라 할 수 있는 욕심이라면 동화 속 아이들의 원인은 좀 다르다. 개인의 내면적 고민과 갈등이기보다는 사회적, 환경적 문제다. 옹고집 개인의 반성과 개과천선이 옛 이야기의 주제였다면 이 동화가 바라는 것은 역시 그와 다를 수밖에 없다. 현대의 동화에 적용된 민담의 모티프는 흥미롭다.



동화 속의 당사자들은 손톱을 물어 뜯는 아이들이다. 이들의 행위는 단순 욕구불만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읽지 않으면 모두 뭉그러질, 너무도 많이 거론되어 익숙해진, 이른바 한부모 가정의 '결손' 탓이다. (필자의 경우, 최근 경험한 실제의 한 교실에선 두서너 명이 해당될 뿐이라 학급에서 함께 읽기 할 경우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걱정스럽다. 자칫 해당 아이들을 주눅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환경적 요인과 아이의 문제를 자연스레 결부시키는 것은 작가와 독자 일반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게으름일 수 있다. 토속 신앙과 자연력이 지배적인, 동화의 공간, 즉 시골로 가기 위한 장치인데, 언뜻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사고로 인한 아빠의 부재와 엄마의 불안한 건강 등이 주인공 연우의 배경이다. 도시에서 밀려나게 된 가난도 한몫한다.


시골에서의 첫날 밤, 연우는 도깨비불을 본다. 조력자로서, 도깨비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간과 도깨비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인 송미는 고양이 친친의 도움을 받는다. 그의 정체도 흥미롭다. 솥뚜껑 골짜기에서 변신쥐들과 벌이는 전투가 절정을 이룬다. 할 일없던 잠 도깨비(기괴하고 코믹한 말과 행동 때문에 매우 그로테스크하다.)가 신나서 자기 존재가치를 발휘한다. 이러한 괴물들이 피해 어린이들을 돕는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톱 물어 뜯는 불안한 아이들이지만 자신의 애정과 관심은 잃지 않았다. 처지가 곤란하다 하여 진흙탕 속에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동병상련으로, 무시당하여 외로운 주변의 존재들에게 무심하지 않는다. 그런 관심과 돌봄이 자신을 도운 것이다. 사랑은 돌고 돌아 커다랗게 제자리로 온다.



아이들이 건강을 되찾는 결말. 그것은 실종되었던 그림자의 제자리로의 복귀이다. 그림자는 모든 존재에게 존재한다. 모두는 자신만큼의 그늘이 진다. 나의 존재함이 내 탓이 아니듯 모든 그늘은 탓할 일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그늘도 애매해 보이지만 마찬가지다. 아비도 어미도 모두 제 그늘이 있는 것이다. 그들도 때로 버겁다. (초반의 억지스러움을 만회하는, 태환의 부모가 돌아오는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기에 그 수용은 더욱 힘들다. '너도 그렇다' 라고 연우와 송미에게 말해주는 동화다. 다만 그 그늘의 크기를 과장하진 말아야 한다고, 먼 시선으로 늘리진 말아야 한다고, 따가운 시선으로 그늘을 짙게 할 일은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사랑으로 사랑해야 사람 속에 살아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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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저택의 상속자 북멘토 가치동화 36
서은혜 지음, 정경아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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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 #카니발니즘 #★★★
#도깨비 #고양이


 비밀이라는 말 속에는 숨겨진 진실과 감춰진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호기심의 충동과 자극이 있다. 탐정(추리)소설이 인기있는 이유와 같다. 제목에 '비밀'을 달고 있는 이야기는 많다. 이렇게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방법은 흔하고도 중요하다. 그러나 제목은 어떤 이야기의 가장 짧은 요약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간단하므로 가장 쉬운 길을 택하자는 것이다. 제목에 '비밀'이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다.



  말썽만 피우던 보름이가 보육원에서 탈출하던 날, 상속자로 지명되어 가는데, 그 곳은 도깨비 (독애비 篤愛備, 두터운 사랑을 갖춘) 저택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정체를 알아보는 능력이 보름이에게 있기 때문이다. 보육원장의 탐욕을 응징하고 도망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지능력은 그 자체로 불안하다. 나쁜 비밀을 알기만 하고 그에 대처할 힘이나 방법이 없을 때에는 절망하고  괴롭다. 나쁜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세력에겐 탄로가 절대 반가울 수 없기에, 위협하고 격리하며 존재의 제거까지 시도하게 된다.  보름이의 능력은 위험하다.



 정작 보름이에게 주어진 사명은 도깨비 사냥꾼 일당을 밝혀내고 그들로부터 도깨비를 보호하는 일이다. (도깨비들은 꿈 속에서부터 자신을 드러냈고,  첫 날 온갖 사정을 다 밝힌다. 적과 아군의 구별은 이제보면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이다. ) 그렇다, 그것은 보름동안 생각하고 결정할 일이지만 이미 주어졌다. 마치 외디푸스에게 내려진 저주의 예언 같다. 하필 그런 운명이 왜 보름이에게 주어졌을까? 



 보름이는 고아다. 부모의 존재도, 사랑도 결핍되었다. 애정이 없기에 다른 욕구(소속욕과 자아실현 욕구단계)는 필요없다. 거지라고 놀리는 학교 친구들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기본 욕구조차 늘 부족하기에 그는 새로운 공간과 부모처럼 관심을 주는 존재를 꿈꿨다. 실제하지 않는, 실재하지 않을 것, 즉 도깨비들을 그가 욕망한 것이다. (욕망은 이뤄지지 않는, 결여다.) 그의 결핍과 결여가 도깨비를 원했다. 그의 사명은 그의 운명이고, 그는 외디프스다. 


 외디프스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자기 운명대로 산다. 알아도 그렇게 살게 되지만 말이다. 아니, 오히려 예언을 아는 바람에 예언을 실행한다. 보름이는 자신도 모르게 도깨비 사냥꾼을 저택으로 끌어들였고 도깨비는 몰살 위기에 처한다. 모르고 한 일이 운명이 된다. 그는 도깨비를 구하고 상속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미 선택한 일을 나중에 결정했을 뿐이다. 이것은 승인이다. 우리는 우리 삶을 나중에 승인한다. 승인해야 삶을 긍정한다. 그것은 이미 주어진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생명의 상속자이고 자기 운명에 책임져야 할 유일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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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6-23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명의 상속자 운명의 책임져야 할 유일한 존재!!
밑줄 긋고 갑니다

후저어써 2021-06-23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해 주시고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퍼플캣 - 제16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송은혜 지음, 오승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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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학년 #생명 #모험 #★★★ #너무많은사건과인물과장소

아래 비평감상문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퍼플캣」을 올려다보며


마음이 약한 고양이 레옹. 마음이 약하다는 것은  무언가 걱정스럽고 염려되는 것이 있어서 자기 마음 먹은 대로, 하고픈 욕망대로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의지의 부족이거나 경험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때론 제 판단이 옳다고 확신할 수 없는 자신감의 부족이거나 무언가 놓친 것은 없을까 우려하는 섬세함 탓일 수도 있다. 한편으론, 자기 생각보다 남의 말과 결정이 더 그럴 듯하다고 흔들리는 마음이다. 어린 고양이는 의지도, 경험도, 판단력도 부족하다. 섬세함도 아직 섬세하지 않다. 그런데 벌써 삶이 끝났다. 더 성장하고 더 지혜로워지며 더 사랑할 시간이 없다. 정말, 그냥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억울하고 어처구니 없다. 이제 돌아보며 진짜 마음이 약한 이유를 밝혀야 할 시간이다. 

 먼저 죽음의 순간. 겁쟁이라, 무료 급식소를 눈앞에 두고도, 차와 오토바이가 붕붕대는 길 한 번 용기내어 건너지 않았던 레옹이 그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한 것은 영소 탓이다. 정확히 영소가 신발을 흘린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소가 레옹에게 도와달라는 듯이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신발 하나가 목숨 값이다. 신발 한 짝이 버려지듯 그는 그렇게 죽었다. 그렇게 죽어도 되는 삶인가? 그런 생명이라는 게, 파리 목숨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건가? 누구 목숨은 귀하고, 어느 목숨은 그렇게 하찮게, 개죽음을 당해도 되는, 그런 게 수없이 벌어지는 현실이 과연 이 세상인가?

 고양이 상조회사 직원이 24시간을 돌려준다. 마치 목욕하듯이, 이 세상에 남은 후회와 안타까움(기억)을 다 씻어버리라는 뜻이다. 마구 몸을 흔들며 춤을 추면, 누구나 가지게 마련인 미련과 걱정일랑 다 떨쳐버릴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가볍게 떨쳐버리고 안락한 레인보우랜드로, "신과 함께", 제 갈 길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레옹에겐 다른 게 하고픈 게 있다. 죽은 다음에야 제 맘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레옹.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즐거운 변신 놀이(변신탕?) 대신, 달콤한 순간을 떠올린다(솜사탕?)는 게 겨우 건방지고 철없는 타루를 기억했다. 잘해준 것 하나 없는 그와의 과거를 지우는 목욕을 거부하고 그에게 달려가는 게 레옹의 소원이다. 가서 고작 작별 인사를 하자는 것이다. 타루는 대단한 친구가 아니다.   일곱 번 주인에게 버려졌던 고양이일 뿐이다. 그래서다. 그래서 자신조차 버린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픈 마음이다. 레옹의 마음은 너무나 미약하다. 겨우 그것 뿐일까?

  돌려받아야할 <시간사용권>은 흑묘단에게 빼앗겼다. 시간 은행에(가는 길은 멀었다)가면 축적된 시간이 있단다. 「저승의 곳간」 처럼, 이승에서 자신의 시간을 내어 남에게 준 이에겐 그만큼의 시간이 은행에 쌓인다. 레옹의 저축된 시간은 많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그 이유를 알려주는 <레옹의 시간>이 상영된다. 

 그는 모른 척하거나 돌아서지 않았다. 자기 편한 대로 하기보단 편하지 않은 남을 도왔다. 타루를 향한 미약한 마음도 정말 그것 뿐이었다. "난 널 절대 버린 게 아냐, 알았지?" 타루는 다행히 씩씩하고, 제법 정의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새 친구도 생길 것 같다. 레옹은 그렇게 걱정하고 우려하는, 마음 약한 고양이다. 마음이 약하다는 것은, 불편한 제 마음을 외면하거나 겁내지 않는, 제 맘을 아끼지 않는 강한 행동이다. 레옹은 짧은 삶 속에서 언제나 제 맘대로 살아왔다. 작다고, 약하다고 하찮은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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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공주 - 제1회 교보문고 동화공모전 전래동화 최우수상 수상작 상상 고래 3
차율이 지음, 박병욱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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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 #생명 #여성 #여주인공
#★★★★★ #죽음 #귀신 #유교미신굴레



편견이 그득하여 쉬 손이 가지 않았다. 발견은 기뻤으나 너무 속이 보이는, 쉬워 보이는 제목이었다. '묘지'엔 귀신들이 수두룩할 테고,
거기에 '공주'란, 너무 성의없이, 고민없이 여자 주인공에게 붙여준 별명이잖은가! 게다가 대형 서점의 공모전이므로 너무 상업적으로 보였고,
말이 되지 않는 '전래동화 최우수상' 이라니 얕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구전된 이야기를 동화로 개작하는 전래동화는 창작동화와는 별개다.)
작가는 너무 어려보이는데다가 현대적 이미지(이름도 차율이, 본명이다)를 가졌으며, 출판사명(고래가 숨쉬는 도서관)도 낭만적인, 한마디로 너무
꾸며져 보였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와 평론가의 추천은 의심의 눈길만 짙어지게 한다. 나의 한계를 날카로운 사시로 만들었다. 너무 잘난 것에
대한 질시다. 나의 편향과 일종의 촌스러움은 곧 손을 들고 만다.


첫 장을 다 읽기까지에도 하루를 더 보냈다. 각 장의 머리를 장식하는 그림이 너무 만화적으로 단순하고 매끄러운 선으로 그려졌다. 순정
만화풍의 작위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취향에 걸린다. 더 흠을 보태면 인물의 얼굴이 없다. 겨우 입선만 살짝 올라가 자신만만하면서도 비웃는
듯하다. 티비 애니메이션 <이누야샤>를 흉내낸 배경의 인물도 남의 것을 벗어나지 못했네, 등등 불만이 늘어난다. 첫 줄은 또 어떠한가?

  무덤 묘 (墓), 계집 희(姬). 묘희는 이름대로 무덤에 사는 계집아이다. (7쪽)

한자를 사용한 설명은 잘 들어오지 않고, 너무 짧은 것도 평소와 달리 불만이다. 기억나지 않는 시작 덕분에 다시 읽을 때에야 그 장점들이
제대로 눈에 띄었다. 간결하고 명쾌한 전개다. 그것은 마치 구미호의 변신 같기도 하고 백호의 날램 같아서 가볍고 속도감 있다.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독자의 습관이다. 맥없고 허투루 쓴 문장은 없다. 하나하나가 호랑이 발톱처럼 예리하고 그래서 따갑다. 긴장해야 한다.

대뜸 한 줄로 주인공 소개를 끝낸 뒤, 곧장 배경과 사건으로 들어간다. 때는 늦가을 한기가 스며드는 조선땅 한양 인근 천호골에, 구미호
구구의 변신장난으로 봇짐 장수의 짐을 턴다. 말은 짧고 공간도 시간도 빠르다.

봇짐장수들이 벌러덩 나자빠졌다. 낯빛은 흑색으로, 찡그린 주름마다 두려움이 서렸다. 역시, 묘희는 호랑이를 보고 당당한 사내를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호랑이라고 다 무서운 건 아닌데 말이다. 돌연 누군가 무어라 외쳤다.
 " 이두두지 저두두지,  그만두지 호만두지!"
호랑이를 쫓는 주문이라나 뭐라나. 씨알도 안 먹힐 잡설이었다.(8쪽)


잡설에 의지하는 나약한 심사와 호랑이에 대한 편협한 상식 등 세태 묘사를 화살처럼 꽂았다. 주문이랍시고 외는 소리 좀 보라. 호랑이를
쫓겠다면서 두더지인지 멧돼지를 부르는데, 만두 주문인지 호빵주문인지 헛소리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그 말장난은 실로 그로테스크하다.

또한 나중에 알게 되는 복선도 쫙 한 줄 그어져 있는데, 기대하시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호랑이를 보고 당당한 사내'를 마침내 보게
된다. 게다가 두창(천연두) 전염병이 마마귀신의 짓이기보다는 물질적 오염임을 확신하면서 그 치료법을 연구하는 '청원' 선생과의 인연도 첫
머리에 깔린다. 또 있다. 어쩜 가장 궁금한, 묘희가 묘희가 된 까닭 말이다. 12년 전, 천마리 호랑이가 나온다는 골짜기에 핏덩이로 버려진
아기는 삼칠일을 무사히 살아서 귀신들을 보게 되었다는 것과 그렇게 묘희를 살리고 키운 것이 다름아닌 백호였다는 사연. 이처럼 촘촘하고 신속하게
서두에 쏘아놓은 화살과 던져놓은 그물로 작가가 잡는 것은 무엇일까? 미처 다 밝히지 않은 사연들이 그 실마리가 될 것이다. 누가 버렸으며 왜
버렸는가? 부모는 누구이고 무슨 연유가 있는 것일까?


이를 아는 사람이나 귀신을 만나면 자초지종을 들을 것인데, 그런 이는 반드시 묘희와 관계가 깊을 터, 산 사람이라면 버린 이와 같은
편이요, 귀신이라면 벌써 묘희 앞에 나타났어야 했다. 요즘 눈으로 보면 혼외나 혼전의 자식일 텐데, 그게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고 어떤 미신이 작용했을까, 생각해 보라. 치정은 어린이에게 어울리지 않으니
개인적 문제이기보다는 사회적 모순에서 찾았다. 남존여비, 삼강오륜의 유교와 이를 지탱하는 사농공상 계급사회가 그것이다. 홍길동전과 춘향전,
심청과 흥부놀부를 아는 이 땅의 아이들에겐 어쩌면 너무 흔한 이야기와 주제다. 귀신의 원한이나 저주라 해도 그 진원은 결국 사회문제다. 그러니
진부하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우연보다는 끈질긴 인연과 그 인연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 보통의 사랑은 없다. 평범한 사랑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저승의 끄트머리에서 살던 아이가 새로이 이승의 한복판에서 삶을 꾸려가기에 충분하려면 그럴 수 없다. 옛 목숨과 새 목숨 사이에서,
이승과 저승을, 삶과 죽음을, 만남과 이별, 어쩔 수 없음과 어쩔 수 있음을 다 인정할 수 밖에 없어야 한다. 독자도 묘희와 함께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겠다.
그렇게 힘겨운 선택과 경험을 들려준다고 동화는 허둥대거나 지치지 않는다. 후다닥 글자를 좇은 맘 급한 독자에게 이 동화는, 당장은 감탄하고
기특한 대상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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