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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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나는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인도 라다크를 갔다왔다. 막상 그 당시는 이 책이 워낙 유명하기에 제목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라다크에 대한 책인줄은 몰랐다. 라다크 레의 서점에서 이 책의 영문판을 봤을때는 정말 유명한 책인가보다 그 정도로 생각했는데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포스터에도 이 책의 표지그림이 있고, 가이드북에서 이 책의 저자가 몸담고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운동을 하는 센터의 위치, 그곳에서 하루에 한번 오래된 미래 비디오를 상영한다는 정도가 써 있는 걸 봤다. 그때 나는 그곳의 수없이 많은 관광객들과 게스트하우스를 보면서 여기는 관광으로 먹고사는 곳인가보다 생각했다. 관광산업이 지나치게 발달했다-호객꾼이 아주 많아서 길을 마음편하게 걸어다닐 수 없었다-정도로 느꼈고, 그곳의 자연환경이나 보통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친절한 모습은 정말 큰 인상을 남겼다. 아직까지는.

이 책은 글쓴이가 오랫동안 그곳에 살면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지금은 지속가능한 생태운동을 벌이는 지은이가 쓴 솔직한 라다크에 대한 보고서이자, 전 지구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문제들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 무지하고, 미개하게 여겼던 라다크 사람들의 지혜가 지금 현대 사회의 비인간성, 환경파괴에 대해 말해주는 중요한 매세지가 있다.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조화를 이룬다는 불교의 가르침, 땅의 소중함이 그것이다. 내가 레에 있을때 서점에 이 책의 영문판을 봤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에 번역이 되어 나와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하는 라다크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느긋한 자세는 내가 그곳에서 가장 감명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서구식 사고와 서구식 인도영화의 유입이 이곳 젊은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열등감, 폭력성- 을 심어주고 있지만, 지은이와 같은 현지 사람들의 노력으로 '오래된 지혜'가 승리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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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정금희 지음 / 재원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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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삶을 살다간 세명의 굵직한 예술가들에 대한 내용이다. 그들은 모두 여자였고,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났고, 남성중심사회에서 상처를 받았다. 또한 이들 세명은 사후에 여성주의에 의해 새로운 조명을 받았고,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평생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려야했던 프리다 칼로. 그러나 자아의 상처를 미술을 통해 극복했다. 나혜석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반대하는 최초의 신여성이자, 최초 여성서양미술화가였다. 마지막으로 카미유역시 조각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승인 로댕 못지 않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들은 똑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 속에 내던져졌다. 결국 나혜석과 카미유 클로델은 상처입은 자아를 극복하지 못하고, 점점 쇠악해져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내다 죽고 말았다. 하지마 그들의 작품 하나하나에서 숨을 쉬는 생명력, 삶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새롭게 조명받는 세 미술가들의 삶이 신선하고, 가슴아리게 다가온다. 그러나 굵직한 화가 세명을 얇은 책에 다루려다 보니 이 책은 좀 더 심도있고, 깊게 그들에 대해 알고싶어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또한 미술을 전공하는 교수에 의해 씌여졌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설명이 중점을 이룬다. 이들의 방대한 작품 역시 하나 하나 소개되는데 지면상의 한계가 있어보인다. 설명은 있고, 작품 도판이 없어서 직접 찾아야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관심가는 인물에 대한 책들을 더 떠들어본다면 리뷰로써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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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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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리디 어린' 대학생이다. 아직까지 읽어본 책도 많지 않고, 지식이나 인생의 깊이도 낮다. 하지만 데미안은 나에게 특별한 느낌이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이 책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데미안과 나와의 만남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흥미로운 책 제목과 함께 항상 학급 도서의 문고판으로 자리를 꿰차고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데미안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책을 워낙 안 읽는 나였지만, 한 번 떠들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데미안을 안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첫 장을 읽으려는 순간, 같은 반은 유식한(?) 남자아이가 '데미안은 내 꺼야' 하고 보던 걸 뺏어가 버리는게 아닌가.... 이상한 자식 다 보겠네 하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이후로 중학교에 올라와서 도서관에서 본 데미안은 나를 다시 유혹하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진지하게 읽어주자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의외로 재미있다는 생각과 함께 고전도 읽을 만 한게(?) 있군 하는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고전이라면 진지하게 어쩌구저쩌구 떠드는 머리 아픈 책들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데미안의 쏙쏙 들어오는 문장은 나에게 그 책의 의미를 떠나서 큰 기쁨을 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 대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난 최근에 나는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수필집에서 데미안에 대한 전혜린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데미안이 그렇게 위대한 책인지 그 때까지 잘 몰랐다. 독일의 전몰학도들의 배낭에서 발견되었다는 데미안. 전혜린의 친구가 죽기 직전까지 읽고 있었다는 데미안.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정신적 지주 전혜린이 빨간줄까지 찍찍 그어가면서 책종이가 닳아지도록 읽었다는 데미안이 자기를 다시 찾아주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당장 대학도서관에서 데미안을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가서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데미안을 차근차근 의미를 새기며 읽어나갔다.

한장 한장 읽을 수록 느껴지는 헤세의 지적 향기, 젊은이들의 방황.. 날고 싶은 초인으로의 욕망. 그의 글들은 아름답기 그지 없으면서도 하나의 구도를 제시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고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고전은 나이가 들수록 읽을 때마다 의미가 새로워야 한다고 어떤 학자는 말했다. 나의 영원한 고전은 아마 데미안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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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루나
이사벨 아옌데 지음, 황병하 옮김 / 한길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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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반의하며 읽었던 소설. 중남미 문화를 체게바라 평전 이후 두번째로 접하게 했던 소설. 무엇보다도 소위 진보적 남성들이 행한다는(?) 사회운동 내에서의 나의 불만, 나의 의문을 말끔히 해소시켜준 소설. 에바루나는 책을 덮는 순간,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기게 됐다는 만족감에 충만하도록 해준다.

특히 내가 인상깊게 봐둔 부분.

이제는 그는 자신을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건장한 남자로 자처하고 있었지만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이고, 그래서 다른 여러가지 보호와 제약을 받아야 한다고 그는 믿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결코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었다. 우베르토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갖게 된 이래 항상 그런 식으로 생각해왔고, 혁명조차도 그러한 그의 태도를 바꾸어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우리들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게릴라들이 제기하는 사회악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그가 그의 꿈을 꾼다하더라도 내게는 평등이 주어지지 않을 거 같았다. 나랑호와 그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민중이란 단지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들도 투쟁에 공헌 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우리들은 결정권과 힘으로부터 제외되어 있었다. 그의 혁명은 내 운명의 본질을 바꾸어 놓을 수가 없고, 어떤 경우에서든 나는 내가 살아있는 마지막 날까지 내 스스로의 길을 나 혼자서 개척해야 될 것이리라. -P.290~291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한 남자선배가 여자들의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모습을 강요하면서, 노동자 권익 수호를 외쳐대는 모습이 모순으로 느껴지고, 그 선배가 가식적이고 혐오스럽게 보였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이제는 제대로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들이 말하는 노동자를 위한 민중을 위한 사회혁명에 여자는 없다고, 당신들 머리 속에서 노동자와 민중은 남자만을 지칭한다고.......'

한편 이 소설에는 이사벨 아옌데의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를 여주인공 에바루나의 입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예요. 현실은 하나의 혼란이고,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측정하거나 판독 할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당신 등 뒤에서는 크리스토발 콜론이 아베리카를 발견하고 있고, 그를 맞아들이고 있는 색유리창 속의 인디언들은 당신의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정글에서 여전히 발가벗고 살고 있고, 앞으로 백년은 더 거기서 그렇게 살고 있게 되겠지요. 저는 바로 그 미로 속에 하나의 길을 열고, 그 혼돈 속에 약간의 질서를 부여하고, 인간상황을 좀 더 참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보려는 거예요 제가 글을 쓸때는 그렇게 바라는 것을 쓰는 거지요.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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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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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슈타인 가이더는 '소피의 세계'에서 '정상인 듯한 인간 세계에 의문을 품고, 작은 자연현상 하나에도 호기심을 품는 사람'은 누구든지 철학자라고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러한 철학의 정신을 정확하게 구현해 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태어난 해는 1882년으로, 여성이 보통 선거권을 얻은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그녀는 '지극히 정상인 듯한 인간 사회'에 의문을 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로 '인간평등'이 실현되고, 계급이 타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여성들은 옥스포드 대학 도서관에 연구원을 동반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지, 캐임브리지 대학의 만찬에 비해, 뉴운엄 대학(여자대학)은 변변한 식단없이 재정난에 허덕이는지.. 이 모든 것들이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모순으로 비춰졌으나, 그 시대의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그 사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 졌다.

그렇다면 왜 여성은 가난하고, 사회적 약자로써 존재하는가? 그 이유는 여성이 남성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의 열등함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과 권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남성은 여성을 희생시킴으로써, 스스로 비인간화되었고, 이는 여러 약탈과 제국주의적 야욕의 기반이 되었다. 여성의 역사는 성적 억압의 역사였고, 끊임없이 자아실현의 기회에서 물러나도록 조장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적절한 예를 '세익스피어의 누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만들어 설명한다. 즉 세익스피어와 똑같은 재능을 가진 누이가 있었다면, 그녀의 누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장치에 의해 창조적 능력을 말살 당하고, 이단시 되거나 심지어 미치기조차 했을거라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울프는 100년후라면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될 거라 낙관했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고, 여성권익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사고는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자기만의 방'이 뜻하는 말은 여성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뜻한다. '방'이 의미하는 것은 '창조적인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즉 '자기만의 방'은 자아실현을 위해 여성 스스로 소극적이고, 의지하려는 마음을 과감히 버리라는 의미다.

결국 그녀는 남녀가 지극히 평범한 사회를 느껴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노력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몇 년전 '여성부'가 신설되어 '제도적'차원에서 여성의 보호(?)를 도모하고 있지만, 그 제도 아래에는 '여성은 약자'라는 전제만이 무섭게 존재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표면적인 면보다 전체적인 안목, 정신의 개혁이 필요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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