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요슈타인 가이더는 '소피의 세계'에서 '정상인 듯한 인간 세계에 의문을 품고, 작은 자연현상 하나에도 호기심을 품는 사람'은 누구든지 철학자라고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러한 철학의 정신을 정확하게 구현해 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태어난 해는 1882년으로, 여성이 보통 선거권을 얻은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그녀는 '지극히 정상인 듯한 인간 사회'에 의문을 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로 '인간평등'이 실현되고, 계급이 타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여성들은 옥스포드 대학 도서관에 연구원을 동반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지, 캐임브리지 대학의 만찬에 비해, 뉴운엄 대학(여자대학)은 변변한 식단없이 재정난에 허덕이는지.. 이 모든 것들이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모순으로 비춰졌으나, 그 시대의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그 사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 졌다.

그렇다면 왜 여성은 가난하고, 사회적 약자로써 존재하는가? 그 이유는 여성이 남성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의 열등함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과 권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남성은 여성을 희생시킴으로써, 스스로 비인간화되었고, 이는 여러 약탈과 제국주의적 야욕의 기반이 되었다. 여성의 역사는 성적 억압의 역사였고, 끊임없이 자아실현의 기회에서 물러나도록 조장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적절한 예를 '세익스피어의 누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만들어 설명한다. 즉 세익스피어와 똑같은 재능을 가진 누이가 있었다면, 그녀의 누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장치에 의해 창조적 능력을 말살 당하고, 이단시 되거나 심지어 미치기조차 했을거라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울프는 100년후라면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될 거라 낙관했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고, 여성권익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사고는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자기만의 방'이 뜻하는 말은 여성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뜻한다. '방'이 의미하는 것은 '창조적인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즉 '자기만의 방'은 자아실현을 위해 여성 스스로 소극적이고, 의지하려는 마음을 과감히 버리라는 의미다.

결국 그녀는 남녀가 지극히 평범한 사회를 느껴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노력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몇 년전 '여성부'가 신설되어 '제도적'차원에서 여성의 보호(?)를 도모하고 있지만, 그 제도 아래에는 '여성은 약자'라는 전제만이 무섭게 존재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표면적인 면보다 전체적인 안목, 정신의 개혁이 필요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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