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루나
이사벨 아옌데 지음, 황병하 옮김 / 한길사 / 1991년 6월
평점 :
품절


반신반의하며 읽었던 소설. 중남미 문화를 체게바라 평전 이후 두번째로 접하게 했던 소설. 무엇보다도 소위 진보적 남성들이 행한다는(?) 사회운동 내에서의 나의 불만, 나의 의문을 말끔히 해소시켜준 소설. 에바루나는 책을 덮는 순간,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기게 됐다는 만족감에 충만하도록 해준다.

특히 내가 인상깊게 봐둔 부분.

이제는 그는 자신을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건장한 남자로 자처하고 있었지만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이고, 그래서 다른 여러가지 보호와 제약을 받아야 한다고 그는 믿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결코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었다. 우베르토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갖게 된 이래 항상 그런 식으로 생각해왔고, 혁명조차도 그러한 그의 태도를 바꾸어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우리들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게릴라들이 제기하는 사회악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그가 그의 꿈을 꾼다하더라도 내게는 평등이 주어지지 않을 거 같았다. 나랑호와 그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민중이란 단지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들도 투쟁에 공헌 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우리들은 결정권과 힘으로부터 제외되어 있었다. 그의 혁명은 내 운명의 본질을 바꾸어 놓을 수가 없고, 어떤 경우에서든 나는 내가 살아있는 마지막 날까지 내 스스로의 길을 나 혼자서 개척해야 될 것이리라. -P.290~291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한 남자선배가 여자들의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모습을 강요하면서, 노동자 권익 수호를 외쳐대는 모습이 모순으로 느껴지고, 그 선배가 가식적이고 혐오스럽게 보였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이제는 제대로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들이 말하는 노동자를 위한 민중을 위한 사회혁명에 여자는 없다고, 당신들 머리 속에서 노동자와 민중은 남자만을 지칭한다고.......'

한편 이 소설에는 이사벨 아옌데의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를 여주인공 에바루나의 입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예요. 현실은 하나의 혼란이고,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측정하거나 판독 할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당신 등 뒤에서는 크리스토발 콜론이 아베리카를 발견하고 있고, 그를 맞아들이고 있는 색유리창 속의 인디언들은 당신의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정글에서 여전히 발가벗고 살고 있고, 앞으로 백년은 더 거기서 그렇게 살고 있게 되겠지요. 저는 바로 그 미로 속에 하나의 길을 열고, 그 혼돈 속에 약간의 질서를 부여하고, 인간상황을 좀 더 참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보려는 거예요 제가 글을 쓸때는 그렇게 바라는 것을 쓰는 거지요.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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