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쥘리앙 그라크는 프랑스 중부 트롱세 지역의 숲길을걷다가 그런 경험을 한다. 

한참을 걸을 작정으로 길을 나선 그는 삼십여분 만에 어떤 압박감을 느끼고 길을 되돌아가기로 한다.

"그날 밤 나는 달도 없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숲을 가로지를 때 짓누르는 불안감의 원천을 어렴풋이 보았던 것 같다. 

높은 숲의 어둠 속에서는 시간도, 새벽을 향한 어스름 빛의 점진적인 단계도,
한 알씩 돌리는 염주와 닮아 
시간을 가늠하게 하는 것도 없이 그저 마지막인 듯 시간에 초연한 상태, 식물의 경직되고 뻣뻣한 상태뿐이어서 짙은 어둠이 모든 숲길을 불안하다 못해 음산하게 만들었다. 

숲은 질서와 무질서가, 어둠과 빛이 생기와 무기력이믿음과 두려움이 결합되어 뒤섞인 세계이다. 

그곳에서 감각은 흐려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시각은 거의 먼 곳은 보지 못하고 청각은 귀를 세우고 경계하는 상태여서 세상 사이의 분명한 경계가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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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시간에, 내가 말할 수 있는 그 장소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단번에 얻었다. 

아름다움 앞에서는 충만함의 감정과 세상 속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결핍감 사이에서 통렬한 갈등을 느낀다. - P125

장거리 보행자에게는 밤을 지낼 안식처를 찾는 일이 이만저만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배낭을 내려놓을 장소를 선택하는 일은 늘 어느 정도는 도박이어서 바닥에 누울 때 잠의 맛이 어떨지는 거의 알 길이 없다. 

랭보 Arthur Rimbaud는 사춘기 시절 방황하던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의 여인숙은 북두칠성이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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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의 흔적

글 또는 말은 경험을 연장시키거나 되살려서 찰나의 느낌마저도 잊지 않고 적어놓으려는 세심한 여행자라면 절대 소홀히 하지않는다. 

그런 걷기는 조만간 그 내용이 적힌 페이지로만 남게 된다. 

망각은 시간이 가면 어렴풋해지는 이미지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날려 보낸다. 

오래 전에 느꼈던 즐거움은 글이나 말 또는사진을 통해 되살아난다. 

걷기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하는 일은 그날 느꼈던 감정, 간직된 기억과 수집된 이미지들을 되살리는 일이다. 

말하자면, 장소의 정령에게 받은 것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일이다. 

글이나 말이 아무리 힘든 순간에 대해서라도 감사의 표현인 것은 이미 극복되어 추억으로 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행에 관한 모든 말은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을다시 탄생시키려는 의지이자 축하이다. 

"장거리 보행자에게 글이란 가장 강렬한 진정의 순간이다(…) 저녁마다 글을 쓰면서 여행자는 또 다른 표면으로 길을 계속 이어가고 페이지위에서 전진을 연장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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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무엇보다도 감각의 예술이다. 

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은 감각을 더욱 생생하게, 더욱 기억에 남게 만들어준다. 

길을 걷는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살아 있음을 열정적으로 느끼고 인간의 조건이 무엇보다도 신체 조건임을, 세상의 기쁨이 육신의 기쁨이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구태의연한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얻는 기쁨임을 절대 잊지 못한다. - P67

식사에서 최고는 음식의 맛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를 음미한다는 사실이다. 

버터를 바른 빵 조각 몇 개를 나누어 먹더라도 식탁을 함께 나누고 관계를 축하하며 들뜨면서도 평화로운 사회관계의 정점을 누린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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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날 어디로 데려가는지 과연 어딘가로 데려가기는 하는 건지 난 도통 모르겠다. 

반면에 날 어디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지는 확실히 안다. 

지혜의 형태와는 사뭇 다른 몽롱한 상태, 체념, 내면의 세계에 틀어박히는 일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리고 때로는 조금도 씁쓸하지 않은 고독이 따라온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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