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흙은 쓸 만하네요. 기왓장을 구워내도 좋고 하다못해 벽돌을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고...

순간, 금복은 머릿속에 뭔가 퍼뜩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잡히지 않았다. 

막 떠오르려다 만 생각을 애써 떠올리느라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금복이 곧 생각을 접고 짐짓 밝은 얼굴로 말했다. - P168

그리고 곧 머리가 하얗게 비워졌으며 그 비워진 머릿속엔 남발안에서 떠오르려다 만 어떤 생각이 불꽃처럼 선연하게 솟아올랐다. - P170

그러나 한번 들은 얘기를 무를 수는 없는 노릇, 한쪽 귀로 들어온 소리가 다른쪽 귀로 빠져나갈 리 없으니 마음 한구석에 슬그머니 자리잡은 의심은 암세포처럼 점점 자라나 어느덧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워버리고 말았다.

그는 언젠가부터 밤마다 괴로움에 잠 못 이루고 공장 마당을 서성거렸다. 그러나 금복이나 다른 인부들은 다들 정신없이 바빠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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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그녀는 한 거지 여자에 의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9 - P9

아흐레 전, 교도소 정문을 통과한 이후 그녀는 자신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남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15 - P15

그녀의 거대한 육체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꾸준히 남쪽을 향해 움직였다. -15 - P15

그것은 마치 커다란 고래가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막 솟아오른 것처럼 보였다.고래 모양을 본떠 지은 그 극장은 춘희의 엄마인 금복이 직접 설계한 것이었다.
...
불길은 이웃시장으로까지 옮겨붙었고 그날의 참사는 평대를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 P16

그녀에게 벽돌 굽는 방법을 가르쳐준 文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가운데 서서히 눈이 멀어갔으며 깊은 고독 속에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 P20

춘희는 문득 가슴이 먹먹해져 몸을 닦는 손을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목욕을 끝내고그녀는 옆에 벗어둔 수의를 짓이기듯 꼼꼼하게 빨아 풀 위에 널었다.

멀리 계곡 쪽에서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눈을감은 채 거대한 알몸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을 음미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뜻한 기분이었다. 

이제 그녀의 예민한 감각은 목욕을 통해 새롭게 되살아나 바람 속에 섞여 있는 계곡의 음습한 기운과 그계곡 아래 바위틈에 숨어 잠들어 있는 너구리의 누린내와 벌판을 지나오는 동안 묻혀온 온갖 풀들의 향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비로소 자신이 의당 돌아올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그녀는 오랜 긴장에서 서서히 풀려나고 있었다. - P20

반편이가 아랫마을에서 퉁퉁 불은 시체로 떠올랐던 그해 겨울, 노파는 남의 집 아궁이 열에서 혼자 딸을 출산했다. 다행히 반편이의 딸은 반편이가 아니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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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그 코끼리는 그들이 어렸을 때 서커스단에서 함께 공연을 하던 코끼리였는데, 그들이 코끼리를 기르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 P134

그날 아침, 쌍둥이자매 중 동생이 코끼리에게 삶은 콩을 주러 들어갔다가 뭔가 비릿한 냄새를 맡은 건 겨우내 기승을 부리던 동장군이 슬슬 떠날 채비를 하던 어느 해 늦겨울 아침이었다. 
- P125

그 계집아이의 남다른 오감은 처음으로 세상의 사물들과 마주쳤던그 순간을 뇌리 속에 깊게 새겨넣어 평생 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느낌, 피비린내, 어둠과 부패의 온기, 찝찔함, 거무튀튀하고 굵은 몇 개의 기둥들, 그리고 똑같이 생긴 두 개의 작고 하얀 원형, 그 원형 한가운데에서 울려나오던 호들갑스런 목소리... - P124

아이는 앞으로 기어가 코끼리가 먹고 있는 콩을 주워먹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놀란 언니가 달려가 아이를 안아올렸는데, 어찌나 무거웠던지 오래 전 코끼리에게 밟혀 가뜩이나 허리가 부실한 언니는 곧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동생에게 넘주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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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산 것이나 죽은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으며 죽음은 너무나 흔해서 귀하게 취급받지 못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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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 P10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P11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옛날 평대의 골짜기를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 P22

어느새 바다 저편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바야흐로 세상만물이 모두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장엄한 바다의 낙조를 바라보는 그녀에겐 어느덧 고향을 떠나올 때의 설렘도 어시장을 구경할 때의 신기함도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의 놀람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마음은 고요한 바다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 P55

걱정은 금복의 품안에서 고통에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곤 했다. 무쇠처럼 단단하던 그의 육체와 정신은 점점 더 잔약해져갔다. 금복의노력은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담으려는 것처럼 덧없어 보였다. - P87

사람들은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질러댔지만 금복은 왠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가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 P89

다시 번개가 치며 자신의 거대한 살덩어리를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그의 머릿속에 조금씩 지난 시간들이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금복을 처음 만났던 해변, 덕장의 생선들, 노을이 지던 바닷가, 그리고 금복과의 행복한 한때, 그를 향해 쏟아지던 거대한통나무들, 금복이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니며 기광을 부리던 일... - P118

이미 세상사에 어느 정도 체념한 듯한 어부의 말투에선 이전의 탐욕스럽고 거친 풍모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 P123

훗날 그 어부는 금복이 두고 간 목걸이를 어촌을 떠돌던 한 방물장수에게 팔아넘겼다. 

세상에 다시없는 귀물을 방물장수에게 넘기고 그가 받은 금액은 겨우 북어 한 쾌 값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 계집이 밥값은 톡톡히 내고 갔다며 입이 찢어졌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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