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 P10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P11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옛날 평대의 골짜기를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 P22
어느새 바다 저편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바야흐로 세상만물이 모두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장엄한 바다의 낙조를 바라보는 그녀에겐 어느덧 고향을 떠나올 때의 설렘도 어시장을 구경할 때의 신기함도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의 놀람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마음은 고요한 바다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 P55
걱정은 금복의 품안에서 고통에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곤 했다. 무쇠처럼 단단하던 그의 육체와 정신은 점점 더 잔약해져갔다. 금복의노력은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담으려는 것처럼 덧없어 보였다. - P87
사람들은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질러댔지만 금복은 왠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가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 P89
다시 번개가 치며 자신의 거대한 살덩어리를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그의 머릿속에 조금씩 지난 시간들이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금복을 처음 만났던 해변, 덕장의 생선들, 노을이 지던 바닷가, 그리고 금복과의 행복한 한때, 그를 향해 쏟아지던 거대한통나무들, 금복이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니며 기광을 부리던 일... - P118
이미 세상사에 어느 정도 체념한 듯한 어부의 말투에선 이전의 탐욕스럽고 거친 풍모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 P123
훗날 그 어부는 금복이 두고 간 목걸이를 어촌을 떠돌던 한 방물장수에게 팔아넘겼다.
세상에 다시없는 귀물을 방물장수에게 넘기고 그가 받은 금액은 겨우 북어 한 쾌 값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 계집이 밥값은 톡톡히 내고 갔다며 입이 찢어졌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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