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역시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전에 당한 재난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그의 편집광적인 마음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늪에서 가장 맹독을 가진 독사도 숲에서 감미로운 노래를 지저귀는 새들처럼 제 종족을 번식시키듯, 불행한 사건도 모든 행복과 마찬가지로 자손을 낳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 분명히 깨달은 것 같았다.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하겠지‘ 하고 에이해브는 생각했다.
‘슬픔‘의 조상과 자손은 ‘기쁨‘의 조상과 자손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어떤 경전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승에서의 자연적인 향락은 저승에서 자손을 낳지 못하고, 지옥 같은 절망에서 나오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자포자기만 있을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죄 많은 인간의 불행은 내세에서도 영속하는 슬픔의 자손을 낳아서 번성한다고 한다.
문제를 더 깊이 분석해보면, 불행과 행복 사이에는 불평등이 존재하는 듯하다. 지상 최고의 행복도 그속에 무의미한 찌꺼기를 감추고 있지만, 반대로 모든 슬픔의 밑바닥에는 신비로운 의미가 숨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대천사 같은 장대함이 깃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ㅡ고 에이해브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추적해보아도 이 명확한 추론을 뒤엎을 수는 없다. 이런 숭고한 인간 비극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마침내 우리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신들의 계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태양이 아무리 즐겁게 건초를 말리고 한가위 보름달이 조용히 심벌즈를 울려도 신들이 항상 즐거워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 P624
"이 높이에 에이해브의 그물침대가 흔들리고 있고, 머리는 이쪽에 있다. 이제 손가락을 움직이기만 하면 스타벅은 살아남아서 아내와 아들을다시 안을 수 있겠지. 오오, 메리! 메리! 오오, 내 아들아. 아들아! 아들아! 하지만 내가 노인네를 죽이지 않고 깨운다면, 이 몸은 일주일 뒤에는 다른 선원들과 함께 끝없이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거야. 신이여! 어디 계십니까? 쏠까? 말까? -아, 선장님, 바람이 잔잔해지고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앞돛대와 주돛대의 중간활대는 줄여서 달아놓았습니다. 배는 예정된 항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후진하라! 오오, 모비 딕, 드디어 내가 네놈의 심장을 잡는구나!" 마치 스타벅의 목소리 때문에 말 못 하는 기나긴 꿈이 말을 하게 된 것처럼, 노인의 고통스러운 잠 속에서 이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직 겨눈 채로 있는 머스킷총이 주정꾼의 팔처럼 떨면서 문에 부딪혔다. 스타벅은 천사와 씨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문에서 돌아서서 죽음의 대롱을 선반에 돌려놓고 그곳을 떠났다. - P685
"미치광이 둘이 가는군." 맨섬 출신 늙은이가 중얼거렸다. "하나는 강해서 미쳤고, 또 하나는 약해서 미쳤어. 썩은 밧줄 끝이 이제 겨우 올라왔군. 흠뻑 젖었는걸. 이걸 고치라고? 아예 새 줄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스티브 씨와 의논해봐야지." - P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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