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자살의 타살화
* 이번주는 유난히 바쁜 한주네요. 수업도 많고 행사도 많고, 술도 많이 마시고.... 잽싸게 글 하나 써서 올립니다. 30위 안에 드는 건 틀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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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시민운동가였던 장원 씨가 성추행을 했다. 팔베개만 해줬다느니 하는 변명은 시민운동가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안그래도 시민운동을 고깝게 바라보던 보수 언론은 일제히 장원을 비난했었다. 가정 한 가지. 그래서 장원이 자살을 했다고 치자. 그 죽음은 누구 책임일까? 사설로까지 장원을 공격한 조선일보일까? 그렇게 말할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문제는 성추행을 한 장원에게 있지, 그걸 비판한 조선일보가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나는야 통일 1세대>라는 책을 집필한 이장희 교수가 빨갱이로 몰린 적이 있었다. 통일부에서 우수 저서로 뽑히기도 했던 그 책이 월간조선에 의해 난데없이 용공으로 몰린 것.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무서워한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수년간의 지리한 재판 결과 이장희 교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다시 가정. 재판도 징그럽고, 빨갱이로 오인받는 것도 억울하고, 주위에서는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술도 같이 안마시려고 하고, 이런 것들에 분노가 솟구쳐 이장희가 확 자살을 해버렸다 치자. 이 경우 이장희의 죽음은 조선일보에 의한 타살일까? 그렇게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조선일보는 언론기관으로서 빨갱이 사냥을 할 권리가 있고, 그건 공익을 위한 일이라고-설마 그렇겠냐마는-믿기 때문이다.
대우 남상국 사장이 자살을 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TV에 나와서 남상국 욕을 한 것이 이유라고 한다. 기자회견은 안봤지만, 그때 대통령은 “좋은 대학 나온 분이 무식한 우리 형한테 왜 뇌물을 줬냐”고 남사장을 비난했단다. 이 경우 남상국은 노무현이 죽인 걸까? 노무현은 언론기관이 아니니까 그가 아무리 비리를 많이 저질렀든간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 안되는 걸까? 이것도 생각해 보자.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고 구라를 친 적이 있다. 이게 하도 화가 나서 이철우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면, 이건 주성영에 의한 타살일까. 아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그깟 일에 자살을 하냐고 하지 않을까?
여기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좋다. 노무현이 남상국을 죽였다고 치자. 그러면 정몽헌은 누가 죽인 걸까. 그런 논리라면 무리하게 대북송금 특검을 밀어붙인 한나라당이 살인자가 되어야 맞지 않을까. 하지만 노무현을 살인자라고 부르던 그 누구도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김대중이 죽였다”고 한다. 멀쩡히 잘 있는 기업인을 대북사업에 동참시켜 결국 죽게 했다고 주장한다. 같은 논리라면 남상국을 죽인 것도 로비를 하도록 만든 어떤 높은 분에게 돌려야 할텐데, 그저 이렇게 탄식할 뿐이다. “이 정권 하에서는 유능한 기업인이 왜 이렇게 죽어나가냐”
안상영 역시 이 정권 하에서 자살을 한 사람 중 하나다. 부산시장이던 그는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받던 도중 자살을 택했는데, 아까 그 사람들은 이거 역시 노무현의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열린우리당으로 오라고 회유를 했는데 안상영이 말을 안들어서 수사를 한 거고, 그게 분해서 자살을 했으니 그렇다는 거다. 정권보다 언론권력의 힘이 세진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런 음모론이 먹히는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두가지만 지적하자. 정 그게 분하고 억울하면 죽기 전에 유서라도 한 장 써놓을 것이지 왜 그냥 죽었을까. “노무현이 날 죽였다”고 한마디만 썼다면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했을 테고, 열린우리당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텐데. 두 번째,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안상영의 가족들은 왜 그걸 극구 부인하는 것일까. 오히려 그들은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에게 “근거없는 사실을 가지고 고인의 죽음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유족들은 자살이라는데 다른 집단이 타살이라며 음모설을 터뜨리는 진풍경이라니.
자살은 자살이지 타살이 아니다. 어떠한 이유가 있었건 간에 죽음은 결국 자기 책임이다. 그걸 자꾸 타살화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드는 것은 죽은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있다. 매번 자살의 배경을 탐구해 ‘살인자’를 찾기에 바쁜 그 집단들은 왜 노동자의 죽음에는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 사장이 협상에 응하지 않고 탄압만 한다고 두산중공업 노동자가 자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사장보고 ‘살인자’라고 비난하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