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마찬가지다. 조용하게 있을 때에는 안온하고 고즈넉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빗방울 모양처럼 나노초 단위로 변화하는 작은 움직임, 상호작용, 관계의 도가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온전한 존재라는 금세라도 무너질 환상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40
나는 영화가 영원히 계속되길 바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기분을 안은 채 어서 내 현실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어. 내가 살면서 통과한 일들을 환기시켰기 때문에 영화가 더 아름답다고 느꼈고 이 영화의 어떤 신들 때문에 앞으로 살면서 마주할 어떤 체험들이 더 풍요로워지리라는 걸 예감했어. 253
드웨인 퓨질리어 박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에릭이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자기가 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 반면,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도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280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관해, 시간 축으로는 13세기부터 18세기 초두까지 그리고 공간 축으로는 경원에서 조선과 일본을 거쳐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많은 사람과 만났으며, 지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물의 생생한 유전, 그리고 복잡한 인간 군상의 드라마도 보았다. 353
그리고 어쩌면 그토록 관대하고 자기 재생적인 기쁨이 우리로 하여금 신이 자신의 피조물을 내려다보고는 자신이 그것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잠시 잊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에 푹 빠졌을 때 느낀 기분을, 조금 떨어져서라도 경험하게 해주는지도 모른다.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