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읽었는데 참지 못하고 리뷰를 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 벽화 제작 과정을 다른 로스 킹의 글은 섬세하고 흥미롭다. 그러나 빈번하게 보이는 오타가 글의 흐름을 끊는다. ‘미켈란젤로‘를 ‘미켈란젤 로‘로 오기하고, ‘아들‘을 ‘야들‘이라 쓴다. 띄어쓰기와 가벼운 맞춤법의 오류가 빈번해, 참고 넘어가게 된다. 이런 오기/오류는 앞부분에도 더 많아서, 편집자와 출판사의 책임이 분명하다 생각된다. 이를 알고도 이따위로 출판을 진행한 것이라면 출판사 [도토리 하우스]가 의심스럽다. 좋은 글을 가져다 이런 식으로 출판해 완성도를 떨어뜨렸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피렌체의 르네상스는 흔히 역설되는 바와 같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화유산을 단순하고 배타적으로 ‘부활‘시켰던 것이 아니다. 피렌체의 화가들과 더불어 다양한 요소와 영향이 피렌체 시각 예술의 발전에 여러 방식으로 기여했으며, 특히 많은 화가에게 방대한 양을 의뢰했던 상인들은 결과적으로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창의적이고 솜씨 좋게 그려 내는 데 한몫을 했다. 10 - P10
<거울>의 ‘자전적인‘ 성격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행위에 비견될 수 있다. 작가의 거울에 비친 ‘상reflection‘은 과거와 주변 세계에 대한 정신적 ‘성찰reflection‘을 촉발한다. 성찰이란 당연히 ‘어떤 주제를 돌아보거나 생각을 가다듬는 행위, 명상, 심오하거나 진지한 찰을 의미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작가의 아득한 기억을 자극하는데, 이 기억은 과거에 목격했거나 살았던 다양한 공간들과 밀접히 연관된 다양한 시간의 파편을 통해 떠오른다. 159-160 - P159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와 조건에 좌우되지 않으며, 자신의 조형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한 어떠한 조건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역사라는 더 광대한 변천 속에서 예술가의 노력은 예술가 자신도 예견하지 못한 힘에 의해서 강해지거나 위축되고, 수용되거나 배척된다. 그 힘은 예술가 자신이 구현해낸 가치와는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예술가는 그 가치가 인류의 영원한 특질로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292 - P292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있다. 닐 영의 노래 가사를 인용해서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다는 한 번에 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말을 남기고 갑자기 떠난 사람. 서울대에서 3년간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종강 때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꼭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어떤 충고의 말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러면 그때마다 "녹스는 것보다는 닳아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대답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커트 코베인의 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369 - P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