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낭비한 밤 시간에 대해 당신이 나를 동정해주면 좋겠다. 내가 풀칠을 하며 바친 시간들, 내 끈적거리는 손가락으로 그 섬세한 종이들을 서툴게 다루던 시간들에 대해 당신이 나를 존중해주면 좋겠다. 나는 현재의 나 자신(내가 가진 모든 것) 때문에 당신이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한다. 내가 나 자신을 풀칠해 붙여넣었고, 내 에너지의 일부에 고삐를 채웠고, 나 자신의 일부를 격자 속에 단단히 고정했음을 당신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무리 기괴해 보이더라도 부디 그렇게 해주시기를.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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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가 죽은 뒤에 죄책감 없이 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그야말로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어줘야 할 것이다. 이 얘기는 곧 우리가 살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감정적 자이나교 신도가 될 방도도 없으니 평생 그 죽음을 끼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 된다. 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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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차례로 용을 쓰러뜨리고, 관문과 관문을 차례로 지남에 따라, 영웅시 고도로 갈망하는 신의 모습은 점점 커져, 이윽고 우주 전체에 가득 차게 된다. 영웅의 마음은 마침내 우주의 벽을 깨뜨리고 모든 형상(모든 상징, 모든 신성)의 경험을 초월하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변의 공에 대한 자각이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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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작품세계에 등장하는 검은색은 다양하다. 그의 화폭을 뒤덮는, 짙은 어둠에서 검은색에 이르는 색채를 단 하나의 가치로 평가할 수 없다. 실제로 카라바조의 삶에서도 정반대 상황이 공존하는, 즉 양극단을 오가는 난폭한 동요를 그대로 목격할 수 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 인물처럼, 가장 큰 죄인인 동시에 고난의 길을 걷는 성인과도 같았다.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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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어가는 자들보다 죽은 자들을 대하는 게 더 편하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화제가 필연적인 부분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어색한 침묵과 대화도 없다. 시체들은 무섭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보낸 반시간이, 고통 속에 죽어가던 어머니와 보낸 수많은 시간보다 단연코 쉬웠다. 어머니가 죽기를 바랐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쉬웠다는 말이다. 시체들은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그것도 상당히 빨리 익숙해지곤 한다) 놀라우리만치 상대하기가 쉽다.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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