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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살다 - 12년 9개월
이은의 지음 / 사회평론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의 전반부를 읽으며 느낀 저자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개인주의자이다. 책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등장하는 부모님에 대한 언급도 한 번도 매를 들지 않았고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부모가 어린 아이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흘려듣지 않고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대 조직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싸우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가족의 관심과 지지와 사랑은 어둠을 밝게 비추며 길 잃은 배를 바른 길로 이끄는 등대와도 같다. 등대가 없어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난파하고 마는 배들을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뉴스의 사회 면에서 만난다.
인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가장 열악한 사각지대인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성 소수자들에게 미치기도 부족한 수준이다. 그래서 국내 최고 대기업의 정규직 신분인 저자가 자존감을 지키겠다고 싸우는 것이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개인이 부당하게 차별이나 폭력을 당하는 것은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논리로 두루뭉술하게 사건을 무마하거나 조직 혹은 대의를 위해 구성원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전통의 미덕이 아니라 냉정하게 인지하고 버려야 할 악습이다.
처음부터 투사인 사람은 없다. 부조리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투사가 되는 것이다. 투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냄과 동시에 평범한 시민을 투사로 만든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