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따뜻한 기억들
박정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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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박정은 일러스트가 1년여 동안 정성스레 그린 아름다운 그림들과 카페라테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에세이들~

 

책이 소박하고 아름답다. 글도 소박하고 아름답다. 일러스트로서 또 다른 한편으로서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한 연약한 여자로서~ 박정은의 눈을 통해 보여 지는 소박한 일상,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에 대한 사랑과 시간에 따라 흘러가던 생활의 관성을 멈추게 하는 각성의 시간을 잠시나마 느껴보게 되는 순간을 맞보게 해 준 책이었다.

 

책의 누런 속지가 맘에 들었다. 순백색 위에 쓰여진 검은 글자들이 살아 움직이며 눈을 피로하게 만들었다면 누런 속지들의 글자들은 또 다른 매력으로 소박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가끔 tv에서 북촌 한옥마을의 낡은 집들과 고풍스러움을 자아내는 카페들을 본적이 있지만 사실 서울에 12년 동안 살면서 계동은 한 번도 가보지 못 했는데 일러스트로 본 계동의 밤하늘은 눈을 감으면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아직 미혼이지만 가끔 상상을 하곤 한다. 나도 책을 좋아하기에 나랑 인생을 같이 할 사람도 책을 좋아 했으면 좋겠다. 같이 읽고 서로 토론하고 책이 주는 순간의 감동을 같이 공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박정은 일러스트의 남편이 참 부럽기까지~~헉

 

 

쇼펜하우어가 말했다고 한다.

 

“좋은 책을 사는 것은 그 것을 읽기 위한 시간도 같이 사는 셈이다.”라고, 책에 담겨진 소박하고 아름다운 글귀들과 가끔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코믹스러운 그림들! 그런데 그런 그림들이 탄생되기 까지는 독자들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그 노력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게 돼서 참으로 행복했다.

 

책속의 그림들을 보면 박정은의 감수성과 소박함 그리고 인생이라는 시간의 활시위 위에서 아슬 하게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이라는 평범함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그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살아간다면 인생은 행복해 질까? 시간의 축 위에 나의 존재를 잠시 올려두게 되면 잠시나마 존재의 무거움을 망각하게 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순간의 행복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책을 보면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 그리고 해보고 싶은 것들도 생기게 되었다.

계동의 아름다운 밤하늘의 그라데이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거나,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ECM)를 낸다는 유럽의 유명한 명반 레이블을 감상하고 싶다거나,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도로 옆에 우뚝 솟은 초록색의 네이버 빌딩 안에 아름다운 도서관에 가서 따뜻한 커피에 차 한잔의 여유로움을 느껴보고 싶기도 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 그냥 살다보면 살아지는 거야~~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같은 짓이라고 하잖아~

 

매 순간에 느끼는 작은 행복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다 보면 어떤 풍파에도 휘둘리지 않는 연약한 가운데 강인함을 가지게 되리라~

 

네잎클로버의 꽃 말은 행운이요, 세잎클로버의 꽃 말은 행복이란다.

 

우리는 행운만을 찾아 헤매느라 행복을 놓치며 살아가는 우는 범하지 말자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그리운 것은 멀리 있다고 우리 스스로가 착각이라는 그림자 뒤에 숨어 멀리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참 유익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리고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마 박정은 일러스트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글과 아름다운 그림들!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만은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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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 지금 우리에게 정의, 쿨함, 선악, 양심,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비에저 터커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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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럴 땐 소크라테스라면

 

소크라테스라의 정곡을 파헤치는 논리와 통찰력이라면 모든 난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이런 기대감으로 책을 펼치게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정의, 쿨함, 선악, 양심,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무겁고도 가벼운 철학적인 물음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사고하는 능력을 현대라는 장애물에 막혀 잊어버리고 살지도 모른다.

 

이 책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는 가공의 인물이었다. 첫 페이지를 열자 마자 현대적 분위기의 흔적들이 아!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절, 우리가 알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아닌 소크라테스의 철학적인 통찰력을 이어받아 환생한 소크라테스의 시대였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크게 5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군대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타고나서 쿨한 걸까, 배워서 쿨해지는 걸까?

하느님이 선악을 결정할까? 아닐까?

일자리냐, 양심이냐?

죽음을 기뻐해야하나, 슬퍼해야하나?

 

위의 테마들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친구들과 주변인들의 대화를 통해 철학적인 논증의 완성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와의 철학적인 논리에 대한 반박을 위해 논쟁이 시작되지만 막상 논쟁의 당사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의 흐름에 자연스레 동화되는 것처럼 소크라테스의 논쟁에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어 논쟁에 대한 반박은 강의 상류에 내버려둔 채 결론으로 치닫는 상황이 이루어진다. 몹시 당황할 겨를도 없이 말이다.

 

위의 테마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과연 우리는 군대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에 대한 테마였다.

 

 

소크라테스는 징병영장을 받고 국가의 부름에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친구들의 고민을 자신의 철학적인 논리를 앞세워 원점으로 회귀되는 듯한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요즘 국가의 존립에 필수적인 군대에 대해 본인의 가치관과 양심적인 이유로 거부하는 사태가 종종 일어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국가는 민주주의의 토대위에서 국민이 만들어낸 헌법에 의해 운영되어 지고 국민들 간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운영되는 하나의 집합체이다.

 

법률은 국가의 존재를 위협하는 난제들에 대해 하나의 방패막이 되어 준다. 그리고 그 방패막은 국민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기에 그 합의를 취사선택하여 무시해 버릴 수 없는 본질적인 양심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에 의해 만들어 진 법률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사회가 혼란스러워 질 것인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인 논증이 과연 이 난해한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여 3단 논법이라는 고전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뛰어넘는 우리가 모르는 문제해결의 혁신적인 논증 방식을 통해 과연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아주 흥미진진한 대화를 통해 원점으로 회귀되어 질 수 밖에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만 우리가 일상의 대화에 은유적으로라도 소크라테스의 논증의 논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을 테지만 철학적인 고뇌를 우리에게 안겨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철학적인 물음에 대해 그 해답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무거운 주제에 대해 별로 유쾌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과연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이며? 이럴 때 만약 소크라테스의 철학적인 논증을 통해 순간적인 선택에 의해 우리에게 떠밀려오는 무수한 책임과 의무에 대해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의 안을 조금이나마 우리의 피부에 그 아포리즘을 이식하는 것처럼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우리는 선택을 한번 밖에 하지 못한다.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본인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하고 그 책임에 따른 결과도 당연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즉, 정의롭게, 양심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아는지혜, 우리가 무엇인가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닌 선천적으로 우리가 타고난 그 지혜를 가지기 위해서는 철학이라는 무기를 장착했을 때 보다 양질의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전에 그 "선택"이 과연 어떤 본질적인 가치를 내재하고 있으며 "선택"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인 사고를 해본 적이 있냐고 우리에게 다시 물음을 던진다.

한 번 고민해 보라! 매일 매일 선택의 순간에 맞닥트리는 우리가 아닌가?

자! 정의롭게 나는~~ 이 "선택"을 할 수 있을 때가 언제일까? 그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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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 배영옥 여행 산문집
배영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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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제목이 참 독특하다. 배영옥이란 작가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지만 자료가 별로 없었다. 그리 많은 책을 집필한 것 같지는 않았다.

 

대구 출생으로 나랑 똑같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갔던가? 사진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글에서 연약함이 곳곳에 묻어나온다.

 

“쿠바” 여행지로서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우리는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푸르른 해변에서 튜브위에 누워 세상의 모든 짐을 다 버리고 책을 읽으며 마음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상상하지만 과연 쿠바라는 나라에서 우리는 관념적으로 인식되어져온 “여행”의 이미지를 은유해 낼 수 있을지 의문투성이였다.

 

여행은 설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시 평온으로 돌아오는 과정인 것 같다. 하지만 그 평온은 여행과정에서 이런 저런 우리가 체험하지 못했던 이국적인 문화와 관습들이 우리가 차마 인식하지 못하게 저절로 스며들어 한 층 더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는 “평온”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마치 정열적인 사랑을 한 후 그 후유증으로 인해 쿠바를 더 이상 떠올리기 싫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쿠바를 동경하고 그리워하고 있다고! 이것이 사랑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랑의 열병을 몇 달동안 알아야만 했을 것이다.

 

쿠바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체게바라의 혁명을 떠올릴 것이다.

체게바라의 혁명은 쿠바의 동쪽에서 시작해서 이글거리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쿠바인의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시켜놓았다.

 

쿠바의 여기저기에 세워진 체게바라의 동상들, 그리고 그 혁명의 흔적들이 이 전까지 책으로만 접해왔던 체게바라의 형이상학적인 이미지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작가는 이때까지 일상에 피폐해졌던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삶의 풍요로움을 찾아나서기 위해 낯선 두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쿠바로 향했을 것이다.

 

낯선 미지의 두려움은 우리를 긴장과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 환경에 당연히 적응하게 될 것이지만 말이다.

 

“비엔베니토 쿠바”

쿠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쿠바 공항 입구 근처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환영의 인사말들! 그 설렘을 한 층 더 끓게 해주는 묘한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쿠바에 입국하면 거의 호세 마르티 공항을 거친다고 한다. 호세 마르티, 쿠바의 유명한 시인이다. 그에 대해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쿠바에서는 거의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그리고 쿠바인의 삶 그 자체였다. 한 나라의 시인이 쿠바 문화의 절대적인 위치에서 모든 문화의 지표가 된다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사고를 쿠바인의 머리에 이식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쿠바는 정치가 국민의 정신과 생활을 지배하고 규제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이것이 쿠바의 열정적인 살사댄스와 자유로움에 가려져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쿠바의 본질임을 여행의 마지막즘에 깨닫게 되지 않을까?

 

쿠바 사람들은 미적인 것에 대해 광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다. 가난이라는 삶에 찌들어 힘들고 어려움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할지라도 그 순간 순간 아름다움과 열정적인 삶의 희열을 추구하는 쿠바인들을 보면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헤밍웨이의 술집 라보떼기따 델 메이오에는 입구부터 안쪽까지 관광객들로 좁은 바가 꽉 차있다. 노래하는 사람들과 기타와 북을 연주하는 사람, 그리고 쿠바의 유명한 모히또를 즐기는 사람들 속에서 쿠바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영혼의 이면에 놀라 자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쿠바에는 새해 풍습이 물벼락을 내리는 것이라고 한다. 물세례 같은 축복을 듬뿍 받으라는 의미라는데 한국에서도 나의 어린 시절에 이와 비슷한 풍습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이들끼리의 장난이었을까?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다 보니 모든 것이 국가의 통제하에 감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들이 부족하다 보니 스스로 알아서 아껴쓸 수밖에 없다. 국가가 국민을 챙겨주지 않으니 스스로 자기 자신을 챙겨야 하지만 그렇다고 쿠바인들은 이기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웃간에 끈끈한 정으로 엮여 있다고 해야 하나?

 

쿠바의 민박은 까사라고 한다. 이 민박집도 국가의 허가를 얻어야만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불법으로 몰래 운영하기도 한다는데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쿠바는 이중화폐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세우세(태환화폐)와 내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페소(불태환화폐), 무조건 달러와의 환전 비율은 1대1이고 1세우세는 24페소로 환전하여 외국인들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도 끊임없이 복제되고 재창조되고 있는 체게바라의 이미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쿠바, 단맛을 좋아하고 달콤한 사랑의 돌쎄로 넘쳐나는 쿠바, 한번 쿠바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또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쿠바, 모든 욕망의 맨얼굴을 마주 칠 수 있는 쿠바, 말레꼰 너머로 출렁이는 파도가 바라보이는 호세 마르티 광장을 품고 있는 쿠바!

 

이 달콤한 쿠바의 형용 뒤에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이 자리잡고 있지만 오직 멋진 음악으로 그 이면을 치장한 쿠바인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쿠바의 공기를 코로 들이쉬게 되는 순간, 쿠바의 묘한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됨은 분명한 듯하다.

 

배영옥 작가의 쿠바 여행기!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너무 달콤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너무 쓰지도 않아! 그래서 당장 혀에 자극적인 충동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오히려 밋밋함에 익숙해진 우리의 입맛과도 비슷하다.

 

여행의 시작은 사랑의 시작이요 여행의 끝은 이별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리라!

 

마지막으로 배영옥 작가님의 그 연약함, 뭔가 보호본능을 느끼게 해주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내가 느꼈던 그 느낌과 흡사한!

 

쿠바 여행! 나도 꼭 가고싶다. 애인이 없지만 애인이 생기면 “한국에 애인을 홀로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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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너머의 연인 - 제126회 나오키상 수상작
유이카와 게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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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란다. 유키카와 케이​,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란다. 한국의 누구랑 비슷하다. 이름은 잠시 묻어두련다.

김난주씨가 번역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위에서 김난주씨가 번역했다고 하면 꼭 읽어봐야겠다고 하는데 남자인 나로서는 여자의 세밀한 심리묘사 때문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kbs드라마 스페셜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본 소설 특유의 느낌이 묻어나는 소설이다. 이 전에 다나베 세이코의 "감상여행"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루리코와 모에 그 둘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동시에 둘을 둘러싼 찌질한 남자들의 이야기들!

​둘은 우리 현대 여성의 삶의 거울인 듯하다.

세번이나 결혼하면서도 결혼과 행복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루리코,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에, 다른 가치관에 의해 티격태격 싸우게 되지만 결국에는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현실의 파도를 헤처나가게 된다.

여성으로의 삶과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남자에 얽매인 행복한 결혼 생활일까? 솔직이 남자인 나로서는 읽지 말아야 할 소설이었다. 루리코의 허세, 모에의 답답함. 처음 만난 여자에게서 느낄 수 없는 아니 감추어져 있는 본연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루리코는 당당하다. 자기 주장이 뚜렸하고 당당하다. 하지만 모에는 답답하다. 두 그녀의 모습들이 결국에는 하나다. "여성"의 "성"이 아니겠는가?

그래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행복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 행복을 손에 잡으려고 하지도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타인에 휘둘려저 자기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는 우리의 모습말이다.

루리코는 말한다. 그러면 "불행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이고, 행복을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란 말인가?"

그래 아무 색깔 없는 삶보다 그 색을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자신만의 색깔을 흰 도화지에 솔직히 그려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행복 그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자아찾기!, 여자만의 문제가 아닌 일상에 찌들어 돈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한 남자에게도 꼭 필요한 단어가 아니겠는가?, 술집에서만 자아를 찾지 말고 나의 내면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어깨너머의 연인" 요즘 한창 막장드라마가 쏟아지는 시대에 별로 놀랍지 않은 소설이다.

루리코의 향수냄세가 키보드 앞까지 전해져 내 머리를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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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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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책은 서점 가판대에 많이 진열되어 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우선 딱딱하고 소설의 유희적인 요소가 없기에 지루하다.

 

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유명한(?) 마광수 교수가 집필했다기에 꼭 읽고 싶었다. 그는 우리 시대의 반항아적인 기질의 아웃사이더 아닌가? 열사로 감옥에 투옥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책 제목 그대로 비틀긴 비틀었는데 너무 비틀어 버려 글자기 뒤틀려 버릴 정도였다

 

중국과 서양의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사상가의 특징이 그들 이름 앞에 서술되어 있다. 그게 마광수 교수의 개인적인 의견인지 아니면 역사의 흔적에 의해 고착화된 그들 본연의 모습인지는 나도 모른다.

 

철저한 정치 만능주의자인 공자, 원시에 대한 낭만적 향수를 지녔던 장자, 허망한 공리공론을 펼쳤던 주자, 육체적 쾌락을 중시한 양주, 통쾌한 무신론을 펼친 순자, 정신적 쾌락을 중시한 에피쿠로스, 기독교적인 설교를 중시했던 이중인격자 톨스토이, 무의식을 중요시 했던 프로이트, 정력 콤플렉스를 지닌 D.H 로렌스, 관념적 이데아를 중시했던 플라톤, 초인이 되기를 꿈꿨던 니체, 프랑스 혁명의 기폭제가 된 ‘사회계약론’을 집필한 루소, 세계를 이데올로기의 피바다로 만들었던 예수, 자기의 나라가 망할 때 고이 앉아 명상에 잠긴 석가, 자유로운 연애를 예찬한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 도교적인 몽환적 소설 ‘요재지이’를 집필한 포송령, 사디즘의 표본 사드, 낭만적 휴머니즘을 추구한 빅토르 위고, 이 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철학적 이념에 있어 ‘신’의 경지에서 인생을 살아온 ‘신’이 아니었을까?

 

저마다 그 시대에 국가의 통치이념이 되기도 했으며 인간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학문적 과제를 제시했던 사상가들!, 그들이 있었기에 인문학의 홍수에서 아직도 우리는 헤어 나오지 못하며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길이 없기에~ 아니 길이 있다고 하더라도 길을 찾을 수 없기에 말이다.

 

마광수 교수의 특징은 “성”적인 자유, 육체적 쾌락의 중시, 자유로운 연애, 살아 있을 때의 행복 추구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고대 사상가들의 이념에 빗대어 꼬집고 비판하고 있다. 읽다 보면 조금 까칠한 시멘 바닥을 맨발로 걸어가는 불쾌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독자들은 없겠지만 우리의 정형화된 사고에 약간의 전기적인 충격으로 다른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아량이 생기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손문의 유명한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행이(知難行易), ‘알기는 어렵고 행동하기는 쉽다’. 오히려 행동하는 것은 쉽고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정말 더 어렵다는 말! 우리는 요즘 너무나 쉽게 실천적인 행동으로 뛰어 들게 된다. 어떤 행동이라도 좋으니 남들에게 자신이 어느 정도 ‘실천적 행동’을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여줘야지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지기에 우리는 행동에 실수로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행동이란 모든 것을 관조하고 사색하는 과정과 긴 고뇌 끝에 얻어지는 값진 결단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평생 배우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연약한 존재이지 않을까?, 마광수 교수도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선구자적인 사상가들, 그들만의 사상과 이념들로 인해 좋든 싫든 우리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홍수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은 그들의 이념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일 것이다.

 

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밋밋한 후라이드 치킨에 약간의 양념을 묻힌 느낌?

너무 비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마광수 교수님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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