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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마르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23년 9월
평점 :

기간 : 2023/10/13 ~ 2023/10/14
표지의 '장 르노'와 소개글만 보고 꽂힌 책이였다.
이 작가가 유명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책들은 본적이 없다.
뒷표지에 소개된 문구들이 뭔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대체 위의 두 남녀와 장 르노와의 관계는? 아래의 두 남녀는 누구인가? 위아래 인물들이 약간 비슷하게도 보이는데?
궁금증을 잔뜩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디자이너 줄리아는 결혼식 며칠 전, 아버지 안토니가 심장 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결혼식 당일날 결혼식을 취소하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다.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은 부녀 관계였던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당연하게도 상심에 빠진채 집에 들어온 줄리아는 엄청나게 큰 택배 박스를 받게 되고....
초반 부분은 당연하게도 부녀 관계에 대해 이야기가 전개 되었고, 향후로도 당연하게도 부녀 관계 중심으로만 이야기가 흘러 갈 것으로 예상을 하였으나,

갑자기 소설의 무대가 바뀌고 인칭이 바뀌면서 방향성이 틀어졌다.
3인칭으로 소설이 전개되다가 저렇게 갑자기 1인칭 주인공으로 된다고?
작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절대로 저걸 실수했을리는 없고, 그럼 번역이 잘못 된건가? 싶었다.
약간 글자가 희미하게 보여서 인쇄중 무언가가 잘못됐을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위 사진에서는 자세히 구분할순 없지만, 이 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잉크가 좀 덜 묻은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은 모두 줄리아의 독백이다.
작은 따옴표를 쓰든지 하지, 왜 이렇게 헷갈리게 만들어놨는지는 모르겠다.
딱히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을것 같진 않은데.
아무튼, 초반에는 없던 줄리아의 독백이 시작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변환된다.
아버지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인만의 길을 찾기로 한 18세의 줄리아.
파리로 대학 갔다가, 우연히 친구들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에 베를린 장벽에 가게 된다.
거기에서 운명처럼 만나게 된 토마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동독의 흔적이 남아 있는 베를린에서 둘은 꿈만 같은 달콤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은 어디 멀쩡하겠는가.
아버지에 의하 둘은 강제로 이별하게 되고, 그 이후로는 편지로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토마스는 결국 죽게 되고 씻을수 없는 상처를 떠안은채 홀로 남겨진 줄리아는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며 살게 된다.
그러던중, 그 원망하던 아버지가 하필이면 자기 결혼식때 돌아가셨다하니.
줄리아의 마음이 어떠할까?

줄리아의 어린 시절이 처참하기'만' 했는데 왜 그 시절을 그리워할까? 그것도 이제 와서.
아니, 그전에 과연 줄리아의 어린 시절이 처참하기'만' 했을까?
어쩌면 줄리아는 어린 시절을 그저 처참하기'만' 했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는것 아닐까?
아버지에 대한 원망, 반항심으로 계속 그러했다고 스스로 다짐해버리고 마음의 문을 잠궈버리는것 아닐까?

눈물을 참느라 참으로 힘들었던 부분이다.
부모에 대한 감사와 원망이라는, 어쩌면 양립하기 힘들것 같지만 의외로 또 서로간의 구역을 모호하게 나눠 갖으며 존재하는 감정.
반면, 내 아이에 대해서는 그저 무한한 사랑이라는 감정.
이러한 부모와 아이에 대한 감정은 나만 그러한게 아니였나보다.
안토니와 줄리아, 이 두 부녀의 감정을 느끼며 내심 약간의 안도함까지도 들었다.
내가 비정상이 아니였구나 싶은 안도.
내 부모는 나를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희생하며 보냈을까.
난 지금 내 아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희생하며 살고 있을까.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말은 절대적 진리이다.
난 절대 내 부모에게 빚을 갚을수 없으며, 대신 그 빚을 내 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만 대신 갚을수 있을것 같다.
내 아이 또한 마찬가지로 나에게 그 빚을 갚지 않고, 손자손녀에게 대신 갚겠지.
안토니의 감정은 그래서 미안한 감정이다.
그 누군가가 그랬었지.
자식을 키우는건, 평생 이룰수 없는 짝사랑을 하는것과 같다고.
부모 자식간의 사이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며 감동을 쥐어짜내는 그저 그런 스토리로 흘러갈거란 예상이였던 이 소설은, 뉴욕과 파리와 베를린을 배경으로 '안드로이드'라는 기발한 발상을 통해 줄리아와 아담의 사랑과 줄리아와 토마스의 사랑을 섞어 풀어감으로서 약간 미스테리한 느낌도 풍미를 더해 아주 재밌는 소설이 되었다.
마지막에 리모컨을 차창밖으로 내던지는 안토니의 모습에 진실이 무엇인지 다소 혼동스럽긴 하다.
영화판을 보면 그 궁금증이 없어질까 싶어 검색해봤으나 현재는 SK브로드밴드에서만 볼 수 있는것 같아 볼 방법이 없어 아쉽다.
넷플릭스에도 해주면 좋을텐데.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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