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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 건축 너머의 세계를 향한 치열한 질문과 성찰 ㅣ 서가명강 시리즈 17
김광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335 주제: 독서
제목: [서평]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인간과 공간을 생각하는 건축을 요구하는 사회
1. 이 책의 줄거리와 구성
이 책은 ‘건축을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지으려면 근본적으로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라는 건축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평소 나 역시 건축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건축물은 내 땅에 내가 지은 건물이라 할지라도 그 건물을 짓는 순간부터 그 사회에 살고 있으면 그 건물은 오로지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건축물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건축물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건축물 주인은 땅과 건축비를 들여서 건물을 지은 것이지 그 건물이 놓여 있는 공간권까지 산 것은 아닌 것이다. 공간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따라서 그 공간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아주 시원하게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는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간은 소비되고 사유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이고 공유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간은 다분히 사회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건축은 불순한 학문이다’에서는 건축은 본래 이기적이며, 요구와 욕망을 담을 수밖에 없는 산물임과 동시에 정주와 유목의 경계에서 탄생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부 ‘건축 뒤에 숨은 사회를 발견하다’에서는 사회는 공간적이며, 공간은 사회적인 것이므로 한나 아렌트의 관점에서 건축 너머의 세계와 건축에 투영된 권력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3부 ‘건축을 소비한다는 것’에서는 공업화 사회의 건축이 가져온 균질과 격리, 그리고 상품이 된 주택과 주거 계급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현대사회의 획일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파트 단지, 업무용 빌딩, 다세대 주택 등 그 형태가 비슷한 균질공간은 사람들의 소비패턴까지 복제와 덮어쓰기의 형태로 만들어 버렸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바로 건축을 소비의 대상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주장한다.
4부 ‘건축이 모두의 기쁨이 되려면’에서는 영어에서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를 살펴보고 모두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미래를 만드는 건축이 필요하다고 말하다. 그러한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몇의 건축가에만 우리의 건축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건축에 관심을 갖고 우리의 건축을 만들고 요구할 수 있는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4부는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부분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와서 아주 반가웠다. 공간을 생각하는 건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런 건물을 요구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고, 그때 우리는 함께 공유하는 건축에서의 기쁨(delight)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건축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런 책이 많이 읽혀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이 책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에서 내가 생각했던 점을 전문가의 입장에서 쓰고 있는 내용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볼품없이 실용성만 강조하여 예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런 면에 대해서 저자는 전문가답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건축은 한번 지으면 오랜 시간 그곳에 남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발주자나 이용자, 지역 사회 주민보다 건축물의 수명은 훨씬 길다. 비록 사유물이라 할지라도 건축은 오랜 시간 지역 사회 안에 머물며 받아들여진다. 건축을 비롯한 많은 사물이 권리를 넘어 불특정 다수가 폭넓게 소유하고 이용하는 열린 공간・장소・정보가 된다. 건축은 공(公)과 사(私)에 대한 권리만으로 끝나지 않고 공(共)의 소유와 이용에 관계한다. 건축은 재화와 서비스에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소비를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공유자원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까 풍경이 되고 환경이 되어 사회에 관여하는 건축은 ’모든 이의 건축‘이다. 건축물 하나하나는 소유자의 것이지만, 건축물이 모인 마을이나 경관은 소유자의 손을 떠나 모두의 것이 된다.” (pp. 302~303)
“건축이 존재하는 원천은 ‘모든 이의 기쁨’에 있다. 건축을 통해 지역 사회 사람들이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지혜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도 값진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건축 뒤에 숨은 사회를 벗고 우리 사회의 근원적 희망을 드러내는 건축으로 ‘세계’라는 공간을 찾아나서야 한다.” (p. 331)
→ 그렇다!!! ‘모든 이의 기쁨’을 위해서 건축이 더 이상 자본의 소비대상으로만 머물게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권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공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인권의 차원으로서 ‘공간권’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이야 말로 포기할 수 없는 공공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이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주장할 수 있는 상식적인 차원의 지식이 되어야 한다.
3. 책 속의 문장에서 이런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어요.
건축(architecture)와 건물(building)이란 말에는 시간이 개입되어 있다. ‘architecture’가 널리 쓰이지만 이것은 ‘변하지 않는 깊은 구조’를 뜻하므로 ‘건축’에는 영원이라는 시간이 들어 있다. 그러나 ‘building’에는 ‘짓는 행위’와 ‘지어진 것’이라는 두 현실이 포함되어 있다. ‘building’은 동사이자 명사이고, 행위이자 결과다. 용도가 바뀌며 계속 반복해서 세우는 시간은 ‘건축’이 아닌 ‘건물’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건축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건물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p. 257) |
→ ‘건축’과 ‘건물’은 분명 다른데, 그것을 저자는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풀고 있다.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는 건축을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건축을 근거로 한 지속가능한 건물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건축은 무엇인가’보다 ‘건축은 무엇을 위해, 또 누구를 위해 짓는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그 대상은 세 세대에 걸칠 정도로 폭이 넓다.“공통 세계(common world)는 우리가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할 뿐 아니라, 이전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 다음에 오는 사람들도 공유한다.” (p. 259) |
→ 건축물을 지을 때,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건축주는 물론이고, 설계를 담당하는 사람, 건물을 짓는 사람, 건물을 소비하는 사람,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 등 그 건물과 관계된 사람 모두가 이에 해당된다. 건물을 짓는 순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리라는 것은 시대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영어에는 기쁨을 나타내는 말이 여러 가지다. 불안이나 불만 없이 행복한 기쁨을 ‘happy’, 육체적 감각 등 나의 에고에서 오는 일시적인 만족감은 ‘pleasure’다. 감사하는 기쁨은 ‘glad’이고, 대상이 분명한 만족은 ‘pleased’이며, 이보다 큰 기쁨은 ‘joy’다. ‘delight’는 ‘joy’보다 큰 기쁨이다. ‘very delighted’라는 표현은 없다. 이것은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깨달아서, 바라던 것이 이뤄져서,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기쁨이다. 더욱이 ‘delight’는 영혼의 영역에서 나오는 기쁨인데, 시(詩)가 주는 기쁨 역시 ‘delight’이다. (p. 286) 집에 머물면서 저도 모르게 얻는 큰 기쁨이다. 그 안에 있다는 감각, 건축이 주는 ‘delight’다. 집이 몸을 에워싼다는 감각은 세상 모든 사람이 느끼는 감각이다. (p. 287) |
→ ‘기쁨’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이렇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말에도 기쁨을 나타내는 말에는 ‘신난다’ ‘즐겁다’ ‘행복하다’ ‘축복하다’ ‘기쁘다’ 등 다양한 기쁨의 형태가 있다. 또한 존재 자체에서 느끼는 순수한 기쁨이 있는가 하면, 행위 하면서 느끼는 기쁨도 있고, 예술작품이나 자연 경관을 보고 느끼는 기쁨도 있다. 건축을 보고 느끼는 기쁨, 그것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또 다른 차원의 기쁨 일 것이다. 이러한 기쁨을 소수의 사람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 모두 누릴 수 있도록 함께 생각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사회야 말로 수준 높은 사회가 아닐까?
철학자 존 듀이는 ‘건축은 어떤 예술보다도 인간의 공동 생활을 찬미하는 예술’이라고 했다. 건축이 주는 기쁨은 보편적이고 공동적이며 사회적이다. 건축은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예술이다. 그래서 ‘venustas’는 미와 기쁨을 다 담고 있다. 이 큰 기쁨이 건축과 사람을 잇는 접점이다. 건축이 사회와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통로는 다름 아닌 기쁨이다. 이것이 오늘날 건축물에서 반드시 구현해야 할 인간과 공간의 관계다. 건축가가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 289) |
→ 건축에서 느끼는 큰 기쁨을 위해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구현해야 한다고 저자의 주장이 그저 한 건축학과 교수의 외로운 외침으로만 끝나지 말고,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건축을 지을 때, 공간을 함께 생각하는 사회야말로 바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저자의 주장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한번 지어 놓은 건축물은 세대를 전승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건축을 만들어 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4. 추천사
이 책은 건축학도들은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교양서적으로 꼭 완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축과 공간 그리고 인간’에 대한 수준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과 공간을 생각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만은 아닌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