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쓰다
매거진 t 편집부 엮음 / 씨네21북스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노희경, 인정옥, 황인뢰, 신정구.
전혀 다른 듯 닮아 있는, 지난 2-3년 사이 사람들의 눈과 귀에 가장 깊이 박힌 드라마를 빚어냈다는 공통점 외에 닮은 구석을 찾기 어려운 네 명의 작가들. 그들의 작품론과 인터뷰라? 많은 이들이 그러했겠지만, 나 역시 남다르게 주목하는 작가들이라 몹시 궁금했다, 그들의 속내가.

<궁> 이전의 작품들은 솔직히 너무 점잖게 다듬어진 냄새가 짙어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황인뢰 감독.
<궁> 역시 그다지 호감을 주기 어려운 배우들로 인해 몰입이 안 되어 열심히 보지는 않았지만, 지독하게 탐미적인 미장센 때문에 눈을 뗄 수 없었던 드라마였다. 꼼꼼하게 구석구석까지 잘 다듬어내는 감독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토록 절정을 파고든 탐미적 취향이라? 새로웠다.
사실 배우들의 연기보다는 화면 속 아름다움들을 발견하고 취하는 재미가 더 컸던 드라마였다. 그가 과거 자신의 무게를 덜어내고 ''안 하던 짓'' 많이 해가며 만든 <궁> 이야기는 소탈했다.
하지만, 제작 준비중이라는 <궁2>도 역시 썩 호감이 갈 것 같지는 않다. 민언옥 미술감독과 조명의 예술이 빚어내는 미장센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진화했을지가 궁금할 뿐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파고들어 가슴을 후벼파는 아름다운 고통을 맛보게 한 작가 노희경.
사실 그에게 한번에 푹 젖지 않으려고 그의 드라마들을 늘 한발 떨어져 살살(?) 봐왔다. 시쳇말로 ''지대~로 끈적한 그의 사람 사는 이야기에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도저히 헤어나올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이다. 그렇게 거리를 두다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작정하고 푹 빠진 드라마가 <굿바이 솔로>.
내가 알던 노희경은 회춘이라도 한 듯 한결 젊고 싱그러워졌다. 고름딱지가 덕지한 상처를 건드리고 다독이는 솜씨는 여전하지만.
인터뷰 중에 그는 <굿바이 솔로>를 끝내고 ''왜 나는 이렇게 무거운가''하는 고민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굿바이 솔로>도 충분히 가볍고 귀여워졌음에도). 이제는 가볍고 싶다는 그, 그 동안 고민 많이 했다는 그의 절박한 고민의 결과가 다음 작품을 어떻게 달라지게 할지 기대된다.

드라마 작가가 되려는 이들에게 전하는 노희경 작가의 당부. 매일 5분씩 쓰라...목숨 걸고 쓰라. 치열함과 끈기와 절실한 노력만이 결실을 준다는, 오로지 진정으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비결 아닌 비결이야말로 작가 노희경의 깊고 질척한 우물이 아니겠는지.

수년 전, <내 멋대로 해라>의 복수와 전경의 그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들을 빚어낸 그, 인정옥이란 작가가 몹시 궁금했고, 뒷조사(?)를 통해 알게 된 그의 어록이나 외양은 복수와 전경의 아우라를 벗어나 있는 듯한 배신감을 던져 주기도 했다.

노희경과 인정옥을 살리에르 모짜르트에 비유하는 시선들이 있다.
내 눈엔 오히려 노희경이 모짜르트에 가깝고, 인정옥은 겉보기에 그리 보일지 몰라도 절대 모짜르트과는 아니라는 쪽이다. 인정옥.
참 재미있는 작가다. 드라마를 통해 그려내는 인물들, 영혼을 슥슥 긁어모아 날것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한 대사들을 보면 응당 작가에게서 어느 정도의 치열함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인터뷰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지극히 가볍고 낯설다.
인정옥 작가는 스스로 ''되게 웃긴다''고 평한다. 노희경 작가처럼 치열하게 매일매일 절박한 글쓰기가 아니라 그에게 대본은 쓰고 싶을 때 즐거이 푹 빠져들었다 나오는 유희이기도 하다니! 양아치 같은 남자들을 많이 사귀어 봐서 현실은 드라마처럼 멋지기만 하지는 않다는 걸 솔직하게 말하는 그는 팽팽해 보이는 피부처럼 젊고 싱그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조금은 ''전경''스럽고 ''복수''스러운 모습을 기대한 내게 여전히 그는 드라마로만 알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드라마 역시 컬트 취향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 준 <안녕, 프란체스카>의 괴짜 소통자 신정구 작가. 앞선 두 작가 이야기에 몰입해 뻣뻣해질 대로 뻣뻣해진 경추와 눈꺼풀의 긴장감을 풀고 가벼이 마무리할 작가로 절묘하게 배치된 구성이란!

지난 연말 시상식 화면 속의 그가 기억난다.상 받으며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춤을 추던 그."엥?? 뭬야? 저 사람이 작가야?" 했던 그 황당하던 순간.
프란스카들에게서 보여진 초특급엽기발랄코믹휴머니티한 캐릭터들이 가짜가 아니구나, 저 사람, 자신도 정말 즐겼구나 싶어 작가 이력과 기사를 일부러 찾아 보기도 했었다.
비둘기를 비둘기라 부르지 못하게 했던 엉뚱함, 오랜 세월 나의 교주이기도 한 신해철 옹의 10cm 통굽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내가 다 머쓱해지게 만들기도 했던 대담한 그는 좋은 파트너(감독)를 만나 더 빛이 나 보인다.
하긴, 인정받는 작가들치고 속속들이 이해하고 맞장구 쳐줄 단짝 감독이 없다는 게 이상한 일이지만.

인터뷰 중 인상적인 이야기. 프란체스카 외 현실감없는 그 캐릭터들이 실제 주변인물들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냈다는 점. 특히 프란체스카의 주옥 같은 무감정 대사와 고스톱에 얽힌 일화들 상당부분이 작가의 모친에게서 의지했다니,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자가 아닌가.

밤새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의례히 다음 날 아침이 무겁고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분량이 적은 편도 아닌데 한 권 뚝딱 읽고 나도 가볍다. 하지만 여운이 그리 길고 짙지는 않다. 몇 번 곱씹어 읽었던 노희경 작가의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그래도 책장을 덮고 나서 다른 드라마 이론, 작가론을 다룬 책들을 찾아 읽고 싶게 만들고, 리스트에 넣게 만들 만큼, 조용히 잠자던 내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드라마 속의 그들과 진하게 소통했던 독자들이라면 그들의 심부름꾼인 작가들을 통해 다시 한번 가벼이 소통하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작가, 그들의 은밀한 발설을 통해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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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책쓰기 - 컨셉의 명수에게 배우는 책쓰기 전략
탁정언.전미옥 지음 / 살림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책쓰기는 ''현재의 나''를 뛰어넘기 위해 꼭 한번 도전해 봐야 할 ''인생숙제''다!

책의 뒤표지에 붉은 글씨로 강조하고 있는 선정적인 글귀 아니, 표어에 가까운 문구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책을 내는 이 시대의 트렌드에 뒤쳐짐 없이 자신의 경쟁력 혹은 상품가치를 높이고, 나아가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론으로 책쓰기 욕망을 적극 불지르고 있는 책이다.

자신의 책 한 권쯤 가져라?!
블로그가 일반화되고, 일반인 저자들이 넘쳐나는 시대,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책 한 권쯤 만드는 일이 더 이상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의 특권이 아닌 이 시대에, 과연 자신의 존재&상품 가치를 확인하는 도구로서 책쓰기는 가장 효율적인 시도인가?

책 한 권을 정말 숨가쁘게 읽어 내려간 뒤 내린 결론은,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것이다.
여는 글만 읽어도 이 한 권의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강력한 격려, 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향한 불지르기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이 더이상 무모한 동경이나 노동이 아닌, 철저한 계획과 분석을 통해 실전 가능한 도전과제로 만들어 버릴 만큼 논조가 설득적이고 실제적이라는 거다.
필자는 책쓰기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부추김을 시작으로, 노련한 트레이닝에 이력이 난 코치처럼 실전 책쓰기의 전략들을 공개한다.

흔히 ''주제''가 중요하고,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컨셉''이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
허를 찌르는 대목이다.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오류 중 하나로,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사실은 ''어떤 컨셉으로 책을 쓸 것인가''가 먼저이고, 핵심이라고 정확히 꼬집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목차 만드는 법, 책쓰는 실전의 과정, 실천방법, 컨셉에 따라 책을 쓰는 테크니션, 지금 유행하고 화제가 되고 있는 출판경향까지 친절히 짚어 주고 있어 책을 쭉 따라가며 메모하다 보면 어느새 잘 짜여진 컨셉북 한 권이 만들어질 듯한 기분좋은 상상도 해본다. 물론, 잡힐 듯 말 듯 빛 좋은 이론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는 존재한다.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늘 채워넣어야 할 화수분의 뿌리이지만 쉽게 놓치기 마련인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전략적 책쓰기의 밑바닥엔 전략적인 책읽기라는 탄탄한 기초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반성하는 대목이다. 내게 주어진 일상이 바빠 잠시도 어디에 내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으로서 채우지 않는 우물은 언제고 고갈되고 만다는 진리를 다시금 환기하게 만든다.

도끼날 갈 시간이 없다고 날이 잔뜩 무뎌져 낡고 쓸모없어진 도끼로 나무만 연방 찍어대는 나무꾼은 한치 앞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산적이지 못한 일에 시간을 허비한다.
백 번 찍어도 티도 안 나는 도끼로 나무와 씨름할 시간에 차라리 도끼날을 갈아 열 번만에 나무를 베면 오히려 더 많은 나무를 벨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면서도 감히 실천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시간만 주워담기에 급급한 좁은 시야 때문이다.

필자의 지적대로 이 시대의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 속에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글쓰기에 묻혀 살고 있다. 생산적이고, 비전있는, 미래지향적인 족적이 될 만한 글쓰기에 대한 목마름을 한 번쯤은 가져 봤음직한 1인 미디어 시대의 수혜자들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가 치료, 자기 위안으로서의 글쓰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대중과 공유하고, 가치를 높이는 글쓰기로 경계를 넘어서는 일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다소 선정적이기까지 한 격려와 부추김은 그래서 설득력있게 들린다.
실제로, 너무나 평범한 일반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책 한 권으로 일약 미디어 스타로 떠오른 인물들의 실례 또한 꽤나 유혹적이다.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그럼에도 이런 성공은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반화된 청사진은 아니라는 것, 현실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평소 간과해오던 혹은 알면서도 애써 회피하려 하고,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나 자신의 욕망의 실체와 당당히 맞서라고 나 자신에게 과감하게 삿대질하고 있는 이 책의 직설화법, 단순명쾌하고 긍정적인 길찾기가 제법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명쾌한 직설화법이 바로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과연 많은 이들에게 잠재된, 글쓰기에 대한 은밀한 욕망을 실천하기 위해선 과연 이 책대로 쓰는 길밖에 없을까? 그러기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숙제로 남는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드러내놓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보여 준다.
작가 자신의 고뇌가 농밀하게 녹아든, 한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 빛을 발하는 책이 아닌, 그야말로 고객(=독자)를 위한 상품가치로서의 책쓰기, 좀더 좁혀서는 ''디지털 글쓰기''(문학적 글쓰기가 아닌 실용적 글쓰기)의 노하우를 말하고 있노라고 말이다.
책을 쓰기 위한 최상의 자양분으로 ''컨셉''과 ''니즈''와 ''전략''을 내세우는 책이 갖는 미덕이 아닐런지. 오죽하면 제목조차 ''작가로서 글쓰기''가 아니라 ''일하면서 책쓰기''일까. 맥락만큼이나 단순명쾌한 제목이요, 컨셉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문학적 글쓰기 요령과 실전 노하우를 기대한 이라면 과감히 장바구니를 비우시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문학적 글쓰기에 요령이나 지름길이란 게 있나. 전력을 다해, 즐기는 와중이라도 절박하게 매달리며, 진심을 실어 목숨 걸듯 쓰는 수밖에.

전략적인 책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관리가 잘 돼있고, 생각을 손가락 끝에 옮길 아주 미미한 추진력이라도 잠재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충분한 자극제이자 도화선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니 이 책으로 장바구니를 채우시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생각만 많고 행동은 굼뜬 이 사람에게는, 한 장 건너 포스트잇이 붙어 있을 만큼 뽑아내고 싶은 화두, 문장, 단락들이 넘치는 책이다. 필자들의 경력만큼이나 현란한 선동문구들이 숨가쁜 100m 달리기 경주 같은 호흡을 지닌 책이다. 한 번 읽고 나면 기억의 창고 구석에 폐기처분되는 책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신랄한 자기반성과 자가발전의 계기, 잠자는 욕망의 분출을 위한 점화제가 필요했던 이라면 과감히 이 책을 펼치시라. 그리고, 일단...글쓰기의 열정에 군불부터 정말, 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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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공주 바니 빈
앰버 스튜어트 지음, 레인 말로우 그림 / 예림당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표지부터 참 예쁜 책이다.
제목과 표지 그림만 봐도 어떤 이야기일지 짐작 가능케 하는 내용.
애착대상인 보랏빛 이불을 끼고 살던 토끼 바니 빈이 애착으로부터 독립한다는 이야기이다.

어릴 적 나 역시 낡고 헤진 작은 이불에 대한 추억이 있다.
정말 낡은 이불이었고, 유아용이라 내겐 너무 작디 작은 것이었는데,
난 집안에서는 늘 그 이불만 끼고 잤었다.
그게 아마...중학생이 된 다음에도 계속되었던 것 같은데...내 경우엔
애착대상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그냥 그 이불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게
좋아서 잠자리용 액세서리처럼 좋아했었다.

바니 빈의 이불사랑 이야기를 네 살박이 내 아이에게 읽어 주며
어린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 괜시리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 기분으로, 바니 빈의 심경에 백번 공감하며.

확실히 아이들은 환상동화도 좋아하지만 생활동화나 사실동화처럼 자기 주변의 이야기,
자기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 친숙한 소재의 이야기에 더 공감하고 재밌어한다.
우리 아이도 남아임에도 불구하고, 이불공주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과연 이불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으며, 나중에 바니 빈이 왜 이불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는지 몹시 궁금해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만나면 늘 그렇듯...그 자리에서 몇 번을 계속 반복해 읽어달라고
할 만큼 바니 빈에 완전히 동화된 모습이다^^

제목에 ''공주''가 들어가서 혹 여아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금물.
어린 시절 무언가 강한 애착을 보이는 물건 하나쯤 만들어 보지 않은 어른, 아이가 없듯
네 살 남아인 우리 아이 역시 바니 빈의 이불애착에 크게 공감하며 재밌어 한다.

다만, 그 강한 애착의 대상이 귀여운 이불이 아니라 ''자동차''라는 크~~은 차이가 있어 그렇지^^;;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바니 빈이 이불을 숨겨 둔 곳을 잊어 버리고, 이불 없이 자야 하는 힘든 시간에 가족들은
책을 읽어 주고, 따뜻한 우유로 가슴을 데워 주고, 아끼는 곰인형까지 선뜻 양보하는 미덕을 보인다.
상실감에 힘들어할 바니 빈을 배려하는 가족들의 따뜻함이 느껴져 가장 가슴 찡했던 부분이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우선, 책가격(정가 기준 9천 원)에 비해 종이질이 너무 얇다.
내용적으로 4-6세가 적합한 연령일 텐데, 보통 다른 그림책에 비해 너무 얇은 종이가 불안해 보인다.
물고 빨거나 찢을 나이는 아니라도 한창 한글도 깨쳐 가고, 혼자 읽으려 할 수도 있을 나이인데,
고사리 손으로 자칫 잘못 다뤘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겠다.

그리고, 지나친 직역으로 몇몇 곳의 문맥이 매끄럽지 않거나 아이들에게 적합치 않은 부분도 눈에 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극적인 반전과 동시에 이불을 잃어 버리고 나서 느꼈을 불안함이
완전히 해소되는 지점인데, 아기 여우가 이불을 가지고 있다는 장면을 설명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느낌이 부족하다.

차라리 <바니 빈이 잃어 버린 이불을 아기 여우가 갖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식의 문장이 반전과 해소를 동시에 느끼기에 더 익숙하지 않을까...아쉬움에 생각해 봤다.

마지막으로, 아이들 책을 보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 책이라고 가벼이 보아서야 물론 아니겠지만, 간혹 저자나 역자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는 경우를 본다.
다른 부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는 본 내용에 들어가기 전
워밍업 겸 책 전체를 소개하는 의미로표지 제목부터 글/그린 이/옮긴 이/출판사명 등
표지의 내용도 꼼꼼히 읽어 준다.

기왕이면 내지 판권 부분에 원작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까지 덧붙여 있으면
이 작가가 어떤 책을 썼으며,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하는 기본 정보들을 책을 읽어 주는 부모들도 알 수 있어 좋다.

그저 내용을 전달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 한 권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이랄까,
기본적인 예의랄까.

그런데, 일부 출판사는 원저자의 이름조차 풀네임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불공주 바니 빈> 역시 옮긴 이의 표시가 없어 못내 아쉬웠다.
양장과 인쇄와 내용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작은 부분까지도 배려하는 것이 옮긴이와 읽는 이에 대한 예의이며,
어린 독자들을 위한 배려라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덮고 나면 <이불공주 바니 빈>은 만나서 좋았던,
엄마인 내게도 참 사랑스러웠던, 아이에게 따뜻한 감성을 고스란히 전해 줄 만한 예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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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유가 있어! (부모용 독서가이드 제공) - 장독대 그림책 5
캐롤라인 제인 처치 글.그림, 허은실 옮김 / 좋은책어린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아이와 책을 읽을 때면 늘 표지의 제목과 그림, 작가 등을 짚어 가며 읽고, 무슨 내용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눈다. <다 이유가 있어!> 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 무슨 이유가 있다는 걸까? 나 역시 아이에게 늘상 하는 말 중에..."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야!" 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하는데.

아항~ 이유가 있다는 건 아기 양이 하고픈 말이었구나!
밥을 먹으러 갈 때도, 털을 깎으러 갈 때도, 잠을 자러 갈 때도 항상 친구들보다 한 발 늦어 허둥대기 일쑤인 아기 양 보송이. 하지만 그저 행동이 느린 것만은 아니다, 다 이유가 있는 상황이다.
길가에 핀 꽃, 날아다니는 예쁜 나비를 보며 감탄도 하고, 얘기도 나눠야 하고,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지나치기 어려워 참견도 해야 하고...아기 양에겐 그럴 만한 사연이 있지만, 친구들에겐 그저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 <지각대장 존>의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그 아이가 봤으면 아기 양 보송이와 친구하자고 하지 않았을까?
학교 가는 길에 상상의 세계에 빠지기 일쑤에 이것저것 참견하기 좋아하는 지각대장 존 역시 이유를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선생님으로부터 늘 거짓말쟁이에 지각대장으로 찍혀 버렸으니 말이다.

늘 뒤쳐지고 한 박자 늦어 친구들의 비웃음만 사던 보송이가 엄마닭들의 품을 잃어 버린 달걀들을 기꺼이 밤새도록 품어 주는 장면에서 보여 준 용기에는 절로 박수를 보내게 된다. 어려운 친구를 돕는 일은 자신을 희생해야 가능한 용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아이와 나눈 이야기 중 대부분은...매사 한 박자 늦는 보송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느림의 미학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대가없이 기꺼이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도울 줄 아는 희생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보송이가 늦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전해 들은 다른 양들도 "아, 보송이가 그래서 늦었구나." 가 아니라 "보송이는 의리있고, 용기있는 친구야." 하고 보송이를 달리 보았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다른 부모들처럼 나 역시 매사 이유를 대느라 입이 바쁘고, 행동은 느린 아이를 닥달하던 내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반 발 뒤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 줄 줄 아는 엄마가 되고자 해도 막상 분초를 다투며 매사 목숨 걸듯 매달리는 성격 탓에 아이의 이유있는 느림을 답답해만 하는 게 현실.
엄마 눈에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은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말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며, 보송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애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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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너에게 (부모용 독서가이드 제공) - 장독대 그림책 2
미카엘라 모건 지음, 이상희 옮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처럼 내용도 속지도 예쁜 책이다.
특히 디자인 벽지나 편선지를 연상케 하는 속면지의 예쁜 꽃문양은 따로 떼어 예쁘게 장식하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단어 하나하나도 어쩜 이렇게 귀엽고 예쁜 말들만 골라 놓았는지! 특히 순진무구 예쁜 두 토끼들의 풋풋하고 순수한 마음이 담긴 편지글은 가장 달콤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부드러운 토끼풀처럼 애틋하고 예쁘다.

다정한 친구 사이인 토끼 티노와 티니.
둘은 서로 애틋한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문제는 둘다 아주아주아주!!! 대단한 부끄럼쟁이라는 것! 오호라~ 이럴 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보다 글. 그리고 편지는 꼭 밤에 쓸 것. 아침엔 밤새 쓴 편지를 읽어 보지 않고 무작정 우편함에 넣어 버릴 것.


역시나 티노와 티니는 둘 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닭살스런 편지를 써서 우편 배달부 없는 빈 통나무를 우편함 삼아 서로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사랑이 순탄하기만 하면 극적이지 못하는 법!
예쁘게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편지는 산산조각나 생쥐 가족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특별히 더 좋은 말들만 다시 한번 추려져 시종일관 달콤한 고백으로 가득찬 연애편지로 거듭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짓궂은 사랑의 우편배달부가 된 생쥐 가족 덕에 용기내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 부끄럼쟁이 티노와 티니! 사랑스런 그 모습에 우리집 다섯 살난 사내녀석이 제가 다 쑥스러운지 닭살스럽다는 제스추어로 꺅꺅 거린다.

세 살적부터 결혼하겠다는 여자친구가 있어온 우리 아들! 인석도 부끄럼타기론 티노 저리 가랄 정도다. 아직 글씨를 쓰지 못하니 티노처럼 연서를 쓰지는 못하지만, 자기가 아끼는 물건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 전한다.
그런 애틋한 마음, 쑥스러운 사랑 고백...이 어린 녀석에게도 그 떨림이 전해지는 걸까! 닭살스런 토끼들의 애정행각을 그리 좋아할 수 없다^^

아쉬운 건...그냥 보고 넘기기 아깝게 예쁜 속표지의 무늬를 활용해 여자친구, 남자친구에게 짤막한 편지 한 장 건넬 수 있도록 편선지&봉투 한 세트를 부록으로 함께 구성해 줬더라면 책을 읽고 난 후의 독후활동 겸 주인공 토끼들과 동화돼 보는 특별한 경험을 이어갔을 텐데 하는 것.
따로 편지 쓰는 활동을 하는 건 어렵지 않으나 기왕이면 티니와 티노가 썼던 편지를 나도 여자친구에게 보낸다는 기분을 더 실감나게 느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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