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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유가 있어! (부모용 독서가이드 제공) - 장독대 그림책 5
캐롤라인 제인 처치 글.그림, 허은실 옮김 / 좋은책어린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아이와 책을 읽을 때면 늘 표지의 제목과 그림, 작가 등을 짚어 가며 읽고, 무슨 내용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눈다. <다 이유가 있어!> 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 무슨 이유가 있다는 걸까? 나 역시 아이에게 늘상 하는 말 중에..."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야!" 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하는데.
아항~ 이유가 있다는 건 아기 양이 하고픈 말이었구나!
밥을 먹으러 갈 때도, 털을 깎으러 갈 때도, 잠을 자러 갈 때도 항상 친구들보다 한 발 늦어 허둥대기 일쑤인 아기 양 보송이. 하지만 그저 행동이 느린 것만은 아니다, 다 이유가 있는 상황이다.
길가에 핀 꽃, 날아다니는 예쁜 나비를 보며 감탄도 하고, 얘기도 나눠야 하고,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지나치기 어려워 참견도 해야 하고...아기 양에겐 그럴 만한 사연이 있지만, 친구들에겐 그저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 <지각대장 존>의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그 아이가 봤으면 아기 양 보송이와 친구하자고 하지 않았을까?
학교 가는 길에 상상의 세계에 빠지기 일쑤에 이것저것 참견하기 좋아하는 지각대장 존 역시 이유를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선생님으로부터 늘 거짓말쟁이에 지각대장으로 찍혀 버렸으니 말이다.
늘 뒤쳐지고 한 박자 늦어 친구들의 비웃음만 사던 보송이가 엄마닭들의 품을 잃어 버린 달걀들을 기꺼이 밤새도록 품어 주는 장면에서 보여 준 용기에는 절로 박수를 보내게 된다. 어려운 친구를 돕는 일은 자신을 희생해야 가능한 용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아이와 나눈 이야기 중 대부분은...매사 한 박자 늦는 보송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느림의 미학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대가없이 기꺼이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도울 줄 아는 희생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보송이가 늦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전해 들은 다른 양들도 "아, 보송이가 그래서 늦었구나." 가 아니라 "보송이는 의리있고, 용기있는 친구야." 하고 보송이를 달리 보았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다른 부모들처럼 나 역시 매사 이유를 대느라 입이 바쁘고, 행동은 느린 아이를 닥달하던 내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반 발 뒤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 줄 줄 아는 엄마가 되고자 해도 막상 분초를 다투며 매사 목숨 걸듯 매달리는 성격 탓에 아이의 이유있는 느림을 답답해만 하는 게 현실.
엄마 눈에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은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말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며, 보송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애틋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