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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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하는 책을 읽고 나니

화가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찰나에 리뷰어스클럽에서

《내가 사랑한 화가들》이라는 책의 서평단을

모집하길래 선뜻 신청했다.



우선 표지에 보이는 그림이 참 예쁘다.

이 책의 작가는 전시해설가로 활동하는 정우철님이다.

전시해설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화가들을 소개했을 것이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11명의 화가들을 소개한다.

부제에서 보여주듯 살면서 한번은 꼭 알아야 할

아주 특별한 화가들을 말이다.

세 파트로 구분해서 소개해 준다.

첫 번째가 '사랑, 오직 이 한 가지를 추구했던 화가들'이다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알폰스 무하를 담았다.

두 번째는 '자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모든 시련을 감수한 화가들'이다

프리다 칼로, 구스타프 클림트, 툴루즈 로트레크, 케테 콜비츠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배반, 세상의 냉대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화가들'이다

폴 고갱, 베르나르 뷔페, 에곤 실레가 그들이다.

익히 들어본 화가들도 있지만

생소한 화가들도 있다.

아주 잘 알려진 화가들보다는

그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알 만한

화가들을 주로 소개한 거 아닌가 싶다.

알만한 화가들은 자신이 소개해 주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화가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활동한 작가들이다.

화가들의 삶, 예술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돈을 번다.

둘째, 그러다 상류층 귀족의 초상화도 그리다 눈에 띈다.

셋째, 그들의 후원을 받는다.

넷째, 파리로 간다.

다섯째, 계속 그린다. 예술 속에 빠진다.

무하나 실레처럼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기도 하고

좀 느지막한 나이에 시작하기 하지만

특히 한 번 시작하면 죽는 날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는다.

<무하가 8세 때 처음으로 그린 그림>



<에곤 실레가 7세 때 그린 드로잉>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마티스처럼 붓을 놓고 가위를 들어

종이로라도 붙여서 창작하기도 한다.



<마티스가 종이로 붙여서 그린 그림>

오스트리아 출신인 실레는 같은 나라 출신인 클림트와 같이 많이 언급되고

비교되기도 한다.

클림트가 화려한 색채로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그린 반면

실레는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음울한 그림이 많다.

실레는 어린아이들의 누드를 그렸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후에 오히려 유명세를 치르기도 한 거 같다.

잊힌 존재보다

나쁜 소문이라도 대중에게 회자되는 게 나은 건지

요즘으로 치면 노이즈 마케팅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이후로 비평가들 사이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오히려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며 유명세를 치렀다고 한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평생 실레를 따라다닌 외침이라고 한다.

예술가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과연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있긴 한 건가?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다.

이러한 행위는 태어나는 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다.

<실레가 했던 말>

예술과 외설, 예술과 도덕성의 기준에 대해 고민해 보라는

숙제를 안겨준 거 같은 인물이다.





글에는 사조를 붙이듯이

화가들을 얘기할 때 화파를 붙인다.

인상파, 야수파, 빈분리파 등등으로 말이다.

화파의 탄생에 뭔가 대단한 것이 내포됐다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저 단순히 해당 그림들을 보고 나서

평론가들이 뱉어낸 말을 쓰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야수파의 경우다.

전시장 중앙에 소년의 형상을 한 조각상이 있었는데

그 모양이며 구조가 마치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작품들에 둘러싸인 것 같았다고 한다.

위의 그림처럼 선이 굵고 아주 강렬한 색채로 말이다.

이를 본 한 평론가가 조각상이 마치

야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고 한 데서

'야수파'가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인상파의 경우도

인상파라는 명칭은 모네의 <일출, 인상>을 본 평론가가

"이 그림은 정말 인상만 그렸군" 하며

비아냥거린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화가들 중

어머니 덕분에 화가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모딜리아니와 마티스다.

부친은 반대하는 길이었음에도

어머니의 관심으로 화가의 길을 걸은 것이다.

그리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화가들이 많은데

이들이 활동했던 유럽은 그 시기에

세계대전이라는 혼란 속에 있었다.

파리나 이탈리아에서 활동했기에

전쟁이라는 아픔을 비켜갈 수 없었는데

전쟁의 혼란을 피해서 갔던 곳 중의 하나가

프랑스의 '니스'라는 곳이었다.

니스는 프랑스 남쪽의 아름다운 바닷가에 위치한 곳인데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 등

그곳에서 창작활동을 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의 초상화와 자신의 자화상>

모딜리아니라는 화가의 생애를 들여다보니

화가 자신도 그렇지만

그의 뮤즈이자 동반자였던 잔 에뷔테른의 생애도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딜리아니는 28세라는 짧은 나이에 사망했는데

잔은 모딜리아니가 죽고 2일 뒤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이 둘은 잔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함께했는데

죽어서까지 잔의 부모님은

이 둘을 함께 묻지 못하게 했단다.

10년이 지난 후에야 모딜리아니의 어머니가

잔의 부모님을 설득해서 합장했고 한다.

이 둘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영광의 순간,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잔 에뷔테른-그의 동반자에게 헌신한 극한의 희생"

두 사람은 파리가 기억하는 불멸의 사랑으로 남게 된다.

사랑, 오직 이 한 가지를 추구했든

자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모든 시련을 감수했든

배반, 세상의 냉대에도 흔들리지 않았든지 간에

저자의 말처럼

그림이야말로 화가의 언어인 거 같다.

화가가 살면서 겪었던 인생이 내포돼 있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따라 그 언어는 달라질 것이다.

그들의 인생을 따라간다는 것은

그 화가의 인생을, 사랑을, 애환을

그림이라는 언어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가끔씩은 그림을 통해 화가들의 생애를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직접 볼 수 없을 때는 간략하게라도 지면을 통해

생애들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좋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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