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먼 멜빌 지음, 박경서 옮김 / 새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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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비딕>의 작가인 허먼 멜빌의

최초의 단편소설로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다.

사실 <모비딕>은 익히 들어보긴 했으나

읽어보진 못했다.

허먼 멜빌은 1819년도에 태어나서

1891년까지 살다 간 작가다.

19세기 인물인 것이다.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한다.

필경사(Scrivener)라는 직업도

그 시대에 있던 생소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필경사란, 인쇄술이 발전하기 전 문서나 책등에

글씨를 쓰거나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복사기로 여러 부 무한정 복사할 수 있는 문서를

그 당시에는 직접 손으로 베껴 썼던 거 같다.

현재도 정부에서 실시하는 포상이나 임용장 등에

이름 등을 직접 붓글씨로 쓰는 업무가 필요해서

붓글씨에 조예가 깊고 글씨를 잘 쓰는

전문적인 사람을 채용하기도 한다.

이런 공무원을 굳이 필경사라 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경우가 아직도 있는 것이다.

주인공 이름이야 시대와 무관하겠지만

'바틀비'라는 이름도 마치 그 시대에나 어울릴만한 것만 같다.

이 책을 이끌어가는 화자는

두 명의 필경사와 한 명의 사환을 두고 있는 변호사다.

그들의 이름은 터키, 니퍼스, 진저넛이다.

특이한 이름들의 집합체라 할만하다.

한 명 더 필요하여 고용한 필경사가 '바틀비'다.

바틀비는 말수가 적고 얼굴이 창백하리만큼 말끔했으며,

동정이 갈 만큼 예의가 발랐다.

처음에는 자기가 맡은 베껴 쓰는 일을 열심히 했지만

그 외의 일(베낀 문서를 대조해 보는 일 등)은

어떤 것도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것도 그냥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후에는 심지어 사무실에서 기거하며

본업인 베껴 쓰기조차도 하지 않기에 이른다.

이후 변호사 뿐만 아니라 같이 근무하는 그 누구와도

바틀비는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여기로 오게 됐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변호사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도 하면서

그를 달래고 설득해 보기도 하지만

바틀비는 그 자세 그대로를 견지하며

뭐라도 묻거나 시키면 그 특유의 말인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만 반복한다.

변호사는 사무실을 이전하기에 이르지만

바틀비는 그 자리에 그대로 꼼짝하지 않다가

결국 뉴욕시 교도소에 수용되어 죽음에 이른다.

바틀비가 어떤 사람인지는

변호사 뿐만 아니라 작가도, 독자도

그 누구도 아무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책을 이끌어가는 '나'는

뉴욕 주에서 폐지되고 없는 형평 법원의

주사라는 괜찮은 자리에 임명된 변호사이고

※ 형평 법원이란, 회사와 관련된 소송, 특허분쟁 등을 관할하는 법원으로,1846년 주 헌법 개정에 따라 폐지.

변호사 사무실의 위치가 월스트리트 ○○번지 2층에 있고

주로 부자들의 채권, 저당 증서, 부동산 권리증 따위를 다루는 편안한 업무를 하고 있으며

함께 근무하는 두 명의 필경사인 터키와 니퍼스는 발작과 소화불량을 겪고 있으나

변호사에게는 꼭 필요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빠진 상황에서 바틀비라는 사람을

필경사로 추가 채용하게 됐다는 것 정도이다.


작자가 바틀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상업, 금융업, 부동산업이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는 월스트리트라는 곳에서

역시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라 할 수 있는 형평 법원이라는 곳에서

부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변호사를 내세워

그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자 했던 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나오는 변호사 사무실은

자본주의 체계의 축소판이며

변호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인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역자는 말한다.

바틀비는 그런 사무실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일종의 노동의 저항을 시작했다고 한다.

겨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말이디.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말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인 셈이다.

바틀비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루 종일 글씨만 베껴 쓰는 작업이

아마도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기계가 되어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함으로써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병적인 증세가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작가 주변에 바틀비 같은 사람이 있어서

모티브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특이한 인물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 19세기 월스트리트의 변호사 사무실에 다녀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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