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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2비사
이수광 지음 / 일상이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 12비사
이수광 지음/일상이상(2011.3.25)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는 참 쏠쏠하다. 일종의 ‘핍핑’이랄까?
신정아 자전 출간도 그런 인간의 궁금증을 소화시켜 주는 효과가 있듯이
이수광 작가는 참 다양한 수집을 통해, 그 나름의 추리작가 다운 전개를 보여준다.
가장 흥미 있게 읽은 부분은 ‘화성연쇄살인’이다.
아직도 깨어지지 않는 그 신비의 영역에,
아직도 수많은 희생자와 그 부유물을 껴안은 채,
아직도 밝혀져야 할 의무감을 우리 모두에게 짊어주는 그 사건에 대해
작가는 정말 참담하리만치 자세하고 다양하게 풀이해 나가고 있다.
이는 마치 어려운 수리 문제를 푸는 것과도 같다.
나는 참으로 머리가 아파졌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살아왔다고 자부해 왔지만 그 아무도
완전범죄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백백교 사건도 그렇다.
몰랐던 사건을 알아나간다는 기쁨과 동시에 슬픔을 안겨주는 문체로 인해
나도 모르게 느껴야만 했던 어떤 답답함.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니!
그리고 또 한 가지, 인간이 이렇게 문제를 꼬아 놓을 수도 있구나!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노태우 정권 같은 ‘신무인시대’ 때 생겼던 갖가지 의혹들을 다룬 것도 나에게는 참 신선했다. 이미 지나간 역사 속에서 생긴 일들이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생생하게 살아 돌아온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신선한 것이다.
그만큼 작가의 관련 정보 수집에 쏟은 열정과 꼼꼼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수광 작가에 대해 새롭게 애착을 갖게 되었다.
잊혀져가는 시대극을 재현시켜 주는 그의 애정과 정의감에 다시 한 번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생생하게 그때의 그 충격을 기억하고 있는 ‘오대양 사건’을 다뤄준 것도 나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다. ‘미스터리’라는 것. 정말 꼬이고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듯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 나는 어느 새 추리작가가 되어 버렸다. 연극무대나 드라마에 빠져 버리면 나도 모르게 내가 주인공이 되어 버린 경험들, 있지 않았던가! 나는 어느 새 오대양 사건의 현장 속에, 화성연쇄살인의 현장 속에 들어가 있곤 했다. 참으로 몰입이 무엇인지 단단히 깨닫게 해 준 일독이었다.
앞으로는 미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줄어들까?
책을 읽는 내내 생긴 이 의문에 대해 나는 두 가지를 답할 수밖에 없다.
과학 수사의 힘을 빌어 이젠 예전처럼 그렇게 어수룩한 초동 수사의 미비로 인한 잘못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영구 미제 사건은 사라질 것이다. 라고 생각한 건 내 스스로도 참 다행스런 행보다.
하지만 투수의 실력이 늘어나면 그에 대비하여 타자의 수준도 높아지며, 룰이 투수와 타자의 적절한 경쟁 구도에 맞춰 짜여지게 마련인 것처럼, 범죄자와 수사관의 상관관계는 서로 맞물리면서 발전해 나갈 개연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엔 별 것 아닌(아니 요즘의 시각으로 봤을 때) 사건에 대해서도 무척 놀랐다. 그러나 어떤가, 요즘엔 웬만한 엽기적 살인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져 버린 건 아닐까?
이것이 인류 발전이라면 참으로 그 자체가 엽기적이다.
다행이 역사의 방향은 일방적이지 않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따라가는 카오스 세계일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카오스(무질서)와 코스모스(질서)가 한 통속인 것처럼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미시적 사건들을 보았을 뿐이다.
자, 이제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통해 스스로가 더욱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거시적 안목을 갖기 위해서, 아니면 우주적 원리(섭리 또는 죽살이의 영겁을 벗어난 영적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이 책을 덮으면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려보았다.
죄를 범한 인간의 영혼을 위해, 피해자를 위해,
관계자와 사건에 휘말렸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또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를 위해,
수사관을 위해, 앞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될 안타까운 인간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