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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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들은 살아 있는 동안의 모든 시시콜콜한 사실들을 모두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우리도 어렸을 적에 매일 일기를 써야만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보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나이가 꽤 든 작금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역사 의식'이 있었다.

선비라면 반드시 후손에게 남겨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기록하고 연구하였던 것이다.

이황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에게 보내는 그 수많은 편지 속에서 역사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아들에게 필요한 것과 해 줄 말을 그때그때 빠트리지 않고 해 준다는 것은, 일종의 역사의식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말이 없다.

우리는 이황을 철학자로, 때로는 정치가로 분류해서 말하지만 그는 실은 철학자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다. 그는 단지 '선비정신'을 아들에게 심어주고 후손에게 물려줄 선비로서의 명예를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생활인으로서의 소박한 그를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그에 대해 너무 비대하게 주어진 평가 또한 수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온전히 퇴계의 진면목이 나타날 것이다.

 

일기는 참으로 그 사람의 참된 생활상이 그대로 보인다는 점에서 좋다.

이 책 또한 그 점을 결코 놓지 않고 있다.

때론 150명에 달하는 노비 이름을 놓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를 앞둔 아들에게 참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도 한다.

그는 수많은 정계 진출의 기회를 고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쇠약한 탓이었지 그의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은 아니었으며,

또한 그는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그 이유를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에게 과거를 극구 권장하고 있다.

이는 그가 관직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또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아들이 공부를 할 때 절에서 했다는 사실이다.

유교 공부를 절에서 한다는 아이러니가 요즘 시각으로 볼 때는

쉽게 납득이 안 가지만 그때는 그랬나 보다.

 

끝으로 가장 감동적인 점은 퇴계 선생은 늘 학문을 권장하고 있으며,

역시 '절차탁마'의 자세를 강조하는 학자로서의 면모가 대단했다는 점이다.

아직도 퇴계 선생의 호흡이 느껴지는 듯하다.

왜 공부를 하는가?

그 답은 퇴계 선생의 편지 글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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