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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한국사 - 동아시아의 참역사를 바로 잡아주는
박선식 지음 / 베이직북스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위풍당당 한국사
박선식 지음/베이직북스/2008.9.30
역사를 바로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슈펭글러의 실증사학이나 랑케의 역사관에서부터 식민사관, 민족사관까지 우리는 같은 역사를 놓고도 언제나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아 왔다. 더군다나 그 역사가 오래 된 것일수록, 남겨진 흔적이 희미할수록 올바른 시각을 가지기는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상고시대의 역사는 그래서 늘 어렵다. 왜 뚜렷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일까? 참 아쉽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오랜 옛날일수록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이 오늘날과 달라서 매우 상징적이고 우회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Glocalization'이란 개념을 생각해 낸다. 사고와 전략은 세계적으로, 행동과 운영은 지역적으로 해야 한다는 기업 논리를 역사에 대입해 볼 때, 작금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일본은 교과서를 왜곡하고 있는 실태고,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미명하에 역시 우리의 옛 영토를 자기네 땅이었다고 우기고 있다. 홍산문화, 용산문화, 그리고 1만 4000년 전의 흑피옥 발견,
신지문자 등 중국에 산재해 있는 미해독의 역사 미스터리들이 하나둘 밝혀지는 그 날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독도는 우리 땅이 당연한데 일본은 가고시마라 하고, 파랑도(이어도)는 중국에서 무임승차하려고 쌩 난리를 치는데, 우리는 우리의 고조선 땅을 언제 회복할 것인가? 중국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고, 북한은 천지의 반을 중국에 넘겨버렸으니 이를 어떻게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인가!
비단 <한단고기>와 <규원사화>가 위서로 취급되는 점은 있지만, 내 생각에도 <천부경>과 함께 얼마 안 되는 우리 고대사에 대한 기록을 우리 스스로 자격 미달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그것도 우습지 않은가? 우리의 역사를 위서라는 이름으로 다 빼 버리면 남는 것이 없다. 특히 고대사는. 이런 연유로 나도 일단 저자의 생각에 동의를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치우와 헌원의 각축전. 중국에서도 신화시대로 치부하는 복희씨, 신농씨, 헌원씨의 삼황시대. 그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정말 천재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없는 단군에 대한 이야기. 실로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사실적 역사. 고조선의 경계에 대한 궁금증이 확 풀리면서 왜 우리 민족이 바이칼호에서부터 연원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황화문명 이전의 문화가 우리의 것일 가능성이 많다니 이 얼마나 통쾌하고 자부심 느껴지는 기대인가!
이 책은 이러한 궁금증을 마치 전술, 전략을 부하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처럼 하나씩 풀어서 보여준다. 공격과 방어, 연합전술, 교란술, 게릴라전, 침투, 위무, 선무, 심리전, 신무기 개발, 육전, 해전, 무기, 식량 보급과 종합전술을 한눈에 싹쓸이하게끔 유도한다. 국제 정세 속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준비가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평화전술과 외교력으로, 때로는 군 기강과 사기를 주축으로, 이동과 교두보 확보의 방법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자연을 잘 이용했고, 군사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되어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진법훈련을 위한 사냥이 곧 군사 훈련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군수품과 정찰, 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고, 참으로 많은 군사 정보를 얻게 되었다.
전쟁은 참으로 이기기 위해 실시하는 참혹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극히 인간적인 군사와 장졸이 있다. 마치 그들이 썼을 고뇌의 일기장을 넘기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게 적혀 있는 전쟁의 역사 속에서 당당했던 우리의 역사를 끄집어 내는 저자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치우와 단군의 역사에서부터 만주의 역사까지 되찾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여기에서 ‘만주’라고 하는 말도 어폐가 있긴 하다. 우리의 땅인만큼 부르는 용어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고토 정도로. 그 동안의 역사적 안목이 너무 한족(漢族) 위주로 보아온 건 아닌지 반성할 필요도 제기되었다.
이 외에도 풀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다. 여진과 거란, 몽고(원)과의 관계, 만주족과의 관계(그들은 우리의 형제라고 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봤을 때))가 그렇고, 최근에는 드디어 베링해를 건너간 우리의 조상들이 아메리카의 원주민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실정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자존심 회복은 실로 합당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이성계와 정도전 등의 급진개혁파들이 요동 정벌을 접어둔 것은 민족사의 또 다른 안타까움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펼친 대마도 정벌전은 위화도 회군만큼이나 민족사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282쪽)
우리는 그 동안 우리 민족이 외침만 받았지 한 번도 침략을 해본 적이 없다고 배워 왔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영토 확장을 꽤했던 장수도 있었고, 귀찮게 하는 적을 혼내준 적도 많았다. 물론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었기 때문에 그냥 침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세종 때도 야인과의 혈전이 거듭되었지만, 어쨌거나 소극적인 면도 있긴 했다. 이성계의 뿌리와 연관되었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기지만 그때 우리의 고토를 더욱 확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경제면이나 주민의 고충을 평화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군주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현명한 수준의 영토 확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북선도 이미 태종 때부터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직 정확하게 이순신의 거북선과 같은 맥락의 전투선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래도 센세이셔널한 사실 같다. 신기전의 개발이나 쌍화점과 관련된 공민왕의 고토 확장 정책 등도 흥미로웠다.
끝으로, 아직도 공자나 맹자가 우리 민족이었다는 가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더 멀게는 은나라 기자라는 사람이 오히려 우리 민족일 가능성, 복희씨가 우리 민족일 거라는 설, 그리고 황화문명보다 앞선 문화를 우리 민족이 일구었을 것이라는 설 등이 난무한다.
이러한 때에 그 역사의 껍질을 시원하게 벗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이 책이 던져준 메시지는 분명 오늘의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붉은 악마는 더 붉게 보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