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루돌프 K. 골트슈미트 옌트너 지음 / 달과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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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천재들의 이야기다. 모두 여덟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아주 지적이고 또한 강렬하다. 생생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전달해 주는 저자는 19세기에 태어난 독일 사람이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역사적인 인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혜안을 지녀서,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빨려들어가게 하는 포스를 지녔다.

 

우리가 세계사를 배우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천재의 깊이와 사고, 그의 행동 양식과 특이점 등에 대해서 이렇게도 적절하게 표현해 낸다는 것이 참으로 짜릿할 정도였다. 저자가 마치 살아 숨쉬는 현대인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카이사르와 브루투스 얘기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타는 듯한 두 사람의 같은 생각과 다른 생각 사이에서의 긴장감을 이다지 콕 집어서 보여주는 글은 못 보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교황 그레고리우스와 황제 하인리히 사이의 갈등과 권력을 향한 암투를 그렸다. 어느 소설보다도, 어느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고 긴박감이 넘쳐 나는 문체 속에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개념에 대해 소상하고 풀어나가고 있다. 교권과 정권의 힘겨루에서 어떻게 두 사람이 경쟁하고 화합하고 상처를 주고 입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풀어나갔는가를 얘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나폴레옹과 메테르니히의 대립을 풀어나간다. 오스트리아의 공사에 불과한 메테르니히가 어떻게 나폴레옹과 맞설 수 있었고, 어떠한 외교 전술을 써서 나폴레옹을 곤궁에 빠지게 하는지를 세세한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엮어 나가고 있다.

 

메테르니히는 정치를 연극으로, 반 나폴레옹 투쟁을 체스로 보았다. 그는 나폴레옹의 몰락에 크게 관여했다. 그러나 메테르니히에 대한 역사적 판단을 내릴 때, 나폴레옹의 몰락이 그의 정책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의도였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메테르니히의 반 나폴레옹 정책은 위대함이라는 것이 그 정책이 갖는 의의와 반드시 합치하지 않는다는 것, 인류 역사의 위대한 사건에 관여하고, 그 인물의 직업과 운명 덕분에 주어진 권력이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시대정신을 가져온 위대함을 이 인물에겍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172쪽)

 

네 번째 이야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대립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의 두 천재 거장의 이야기다. 예술 앞에서, 혹은 뒤에서 그들이 챙겨야만 했던 고뇌와 회피, 그리고 경쟁의식과 자존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대를 앞서갔던 두 사람의 다른 점을 간파해 내고 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일군 업적만큼이나 생동감 넘치게 다가온다.

 

미켈란젤로는 영혼의 인간이었다. 그에게는 내적 직관이 우선적인 것이었다. 그는 창작을 이념과 정신으로 보았다. 전투적으로 발현되고 실현되고자 하는 내적 정신을 중시하였다. 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현실의 사물과 자연, 그리고 자연 속에서 생동하고 있는 외적인 형상에서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주 시골에 머물렀던 반면, 미켈란젤로가 평생 동안 한 달도 시골에서 보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전원생활을 보내면서도 결코 감상에 젖지 않으며 자연을 추구하고 탐구하였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소박한 태도로 관찰하고 표현하였다.(206쪽)

 

이 외에도 괴테와 클라이스트의 대립, 실러와 휠덜린의 대립,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의 대립, 니체와 바그너, 예수와 유다의 대립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들의 천재성을 말하고 있으면서 ‘천재’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념 정리를 확실히 해 두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자료를 준비하고 글을 써 내려간 저자의 고뇌와 열정에 감동이 밀려왔다. 집에서 편하게 책을 읽으면서 어느 살아 있는 생명체의 역동적인 현장을 보는 것보다도 더 생생한 이야기에 마냥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천재’에 대한 규명이며, ‘천재성’에 대한 혜안이 돋보이는 몇 안 되는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본질에 대한 조용한 자부를 갖고 있는 인물들은, 처음에는 고독이 쓰라리게 느껴지더라도 이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 들어갈 입구를 찾는다. 자신으로 가는 그 길이 바로 그들에게는 구원이다. 그들은 이러한 방랑을 통하여 창조적이 된다. 그들은 자신을 폐쇄시킨 후 그 속에서 심오한 업적을 만들어 낸다.(230쪽)

 

절도와 질서, 형식과 규율을 중시한 괴테의 천재성은, 자신의 존재 형식을 감성의 격동에서 찾고자 했던 클라이스트의 마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254쪽)

 

이 얼마나 깔끔하고 처절한 마무리인가! 비단 괴테를 규명하는 자리였지만 이는 통시적으로도 적용 가능한 말이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을 천재에 대한 아릿한 염원과 천재성에 대한 탐구는 있어왔겠지만 내 눈으로 본 루돌프 K 골트슈미트 옌트너야말로 바로 그 천재의 대열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엘리자베스 여왕과 메리 스튜어트 사이의 갈등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자매 사이의 대립이었던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 이다지 예쁘고 사랑스러운 역사도 없을 것이다.

니체와 바그너 사이는 또 얼마나 신성한 관계였던가. 떠나는 니체에게 바그너는 “그대는 내 아내를 제외하고 제 인생에 있어 유일한 소득입니다.” 그 둘의 나이 차이는 많았지만, 또 바그너를 떠나야만 했던 니체의 고뇌를 함께 느낄 수는 없지만, 그 얼마나 위대한 업보던가!

 

게다가 그 의심 많던 유다가 예수에 대한 믿음이 깊었다니? 어리둥절해지긴 했지만, 왜 유다는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지식의 깊이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다소 독일적인 사고에 치우쳐서 동양적 사유와는 멀게 느껴질 법도 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모처럼 잘 빚은 항아리를 보는 듯한 미학적 심연에 심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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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계 - 삶의 경계로 삼아야 할 83가지 이야기
자오유얼 지음, 조용숙 옮김 / 달과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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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자오유얼은 삶의 경계가 될 만한 83가지 이야기를 계절 별로 풀이해 놓고 있다.

봄엔 희망을,여름엔 활동을,가을엔 결실을, 그리고 겨울엔 마무리를 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은 처음부터 산뜻하게 이어나간다. 그리고 구구절절이 밑줄을 긋게 만든다. 나중엔 밑줄보다는 책을 언제나 곁에 두고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몇몇을 보면,

 

<005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은 오로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성립하는 명제이다.

진정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당신의 머리에서 우선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려라.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일도 불가능한 것은 없다.

 

<007 강행하지 마라>

주변의 지지 없이 독선적으로 일을 강행한다면 분명 사람들의 시기와 비난을 받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서로 원한을 쌓게 되고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009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마라>

성공을 행운에 맡기려는 것은 미련하고 게으른 생각이다. 다윈은 "행운은 용감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보살펴 주기를 원한다."고 했다. 한 영국 작가는 "나는 행운을 믿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열심히 일할수록 나의 운이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행운은 노력하는 사람을 따르며 행운과 근면은 떼어놓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물론 운이 좋아서 성공한 사람도 없지는 않다.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다시 떠나버리고 만다.

 

작가는 이렇게 풍부한 실례를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설득력을 던지고 있다. 또한 당나라 때의 이필 선생에 대한 예화랄지, '깨진 창문이론'이랄지, '파부침주'(跛釜沈舟:중국 속담으로 불퇴전의 각오로 일에 응함) 같은 말도 새롭게 알게 하며, 간간이 교양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들도 선사하기도 한다. 그야 말로 지식과 지혜의 복합서인 "명심보감"을 다시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011 맹목성을 버려라>

위기 대처에 능한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 능력을 부단히 강화하고 정확한 판단을 통해 일반적인 법칙을 깨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낼 수 있고, 사람들이 보기에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반복적인 판단 능력의 강화는 하나의 지적 유희이다. 이런 지적 유희는 매우 유익한 것으로 우리가 자신의 논리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금을 울리는 말도 있다.

"엎어버린 우유를 위해 울지 마라. 현실을 받아들여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이 말은 곧바로 나에게 들어와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내 지금의 상황이 이 말과 너무나도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내 심정과 내 처지를 어루만져 주는 이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링컨의 이력서(78쪽)은 큰 감명을 일으켰다. '패기 있는 사람은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81쪽)는 말은 나에게 패기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 같았으며, '낮은 물에서는 수영을 배울 수가 없다. 입으로 물이 들어가고 좌절을 겪을지라도 깊은 물에서 배워야 더 빨리 잘 배울 수 있다.'(83쪽)는 말은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 책은 나에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일하는 방법을 일러주었고, 다른 사람을 질책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사소한 일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기도 했고, 융통성을 가지는 방법을 찾게 해 주었다.

 

책이 이렇게 다양한 생각 거리와 좋은 길을 안내해 준다는 건 참으로 오랜 만에 느껴보는 감정일 것이다. 고전의 묘미에 빠져 있다가도 이처럼 리얼한 현재의 예화를 통해 스며들게 해 주는 책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얻을 것이 참 많음을 깨닫는다.

 

서평이 늦어진 이유도 다분히 이유가 있었다. 읽고 감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느라고.....

다만 이 모든 메시지를 내가 담아 내지 못함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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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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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빠로서 ‘레아’를 향한 반 블리에트의 사랑과 내면의 갈등, 상처를 받고 치유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다.

 

천재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딸 레아를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 그 얼마나 속 깊고 안타까운지.

 

그리고 같은 동료 의사로서 딸을 위해 자신의 직업과 명예를 버리고 공금을 횡령해서 과르넬리 델 제수라는 바이올린을 사주는 아빠를 바라보는 아드리안 헤르초크.

 

이 작품은 먼저 시점의 이동이 참 멋지다. 딸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는 반 블리에트의 시점으로 갔다가, 다시 전체적인 관찰자 시점(아드리안 헤르초크의 시선)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 읽었을 때는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리 어려운 스토리는 아니지만 철학적 사유의 깊이에 함께 빠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궁을 헤매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바흐의 바이올린 연주곡 파르티타 3번 E장조의 연주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 즉석에서 연주를 하던 로욜라 드 콜론처럼 레아도 바이올린의 선율에 빨려들고 나도 빨려 들어가는 걸 알게 된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내가 “레아”를 통해 클래식의 세계로 귀를 열게 된 것만도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과 음악을 아우르고 예술과 인생의 깊이를 재 나가는 작가의 저력이 무게 있게 다가온 독서 시간이었다.

 

나는 주로 소설의 뒷부분이 가슴에 와 닿았다. 딸을 위해 과리넬리 델 제수를 사 주고 싶은 아빠의 내면 심리가 정말 황홀할 정도로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다시 그녀와 함께 부엌 식탁에 앉고 싶었어요. 그녀는 눈을 감고 있어야 하고, 나는 여기 이 바이올린을 그녀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녀는 눈을 떠도 됩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우리의 아파트는 성스러운 과르네리의 음들로 가득 찬 대성당으로 변합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에서 모든 우울과 공허가 사라지며, 과거에 있었던 나쁜 일들은 단숨에 잊혀집니다.

 

이 얼마나 숭고하고 종교적인 부성애란 말인가! 과리넬리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바이올린의 노인과의 체스 게임에서 이기면 된다. 나는 그 장면이 특히 재미있었다.

 

어쨌거나 그건 미친 짓이었습니다. 맙소사, 너무나 미친 짓이어서, 나는 몇 분마다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어요. 소변이 더 이상 나오지도 않는데도요. 그에 반해 노인은 거의 꼼짝도 않고, 눈을 반쯤 감고서 체스 판 앞에 앉아 있었어요.

 

심각한 상황인데 왜 웃음이 나오는지, 모처럼 해학적인 분위기에 몰입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구입한 바이올린을 레아는 망가뜨린다. 너무나 무참해서 아쉽기도 했지만 그 분노와 깊은 상처를 이해할 만하다.

 

딸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친 아빠를 보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딸을 위해 무엇을 했던가. 이제라도 딸을 위해 그 깊은 상처와 아쉬움을 어루만져 주고 쓰다듬어 주고 싶다.

 

 



                                                                                        새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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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 이야기 1 -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 피맛골 맛있는 역사 1
권영택 글, 김건 그림 / 책먹는아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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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이야기

 

글 권영택/그림 김건, 책먹는아이(2009.1.10)

 

이 책은 초,중학생 대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으면서 서울의 구석구석의 역사를 되새겨 준다. 무심코 지나쳤던 도심지의 뒷골목이 피맛골이라니! 높은 양반들의 행차를 피해서 뒷골목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나도 그곳에서 술도 마시고 해장국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종로의 뒷골목이다. 아주 낭만적인 골목이다.

 

‘내외술집’이라는 것도 참 재미있다. 몰락한 양반 집안 출신이지만 생활고 때문에 어쩔수없이 술집을 해야 하는 처지. 그러나 체통을 지켜야 했기에 얼굴은 내비치지 않고 문을 살짝 열고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놓는 방식. 오늘 날에도 이런 집이 있다면 한번 가 보련만. 그냥 이벤트 형식으로라도 이런 술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양탕국’이 커피였구나! 조선 후기 때 서울 장안에 장작을 팔기 위해서 경쟁을 하다가 생겨난 것이 양탕국이었던 것이다. 결국 최고의 장작 상인은 브라이상이 아니고 최순영이 되었다는 얘기도 흥미 진진하다.

 

고대수와 광희문 이야기는 참 슬프다. 키가 212센티나 되어서인가? 그래서 더 슬프다. 남들은 따돌리고 피했지만 자기를 알아준 김옥균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쳐야 했던 진정한 의녀(義女)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돌을 맞으면서 예수처럼 서린옥터에서 광희문까지 갔던 것이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는 말인가. 광희문은 성 안에 발생한 시체가 주로 나갔던 문이라고 한다. 동대문운동장역 주변에 있다는데 시간 되면 한번 가 봐야겠다.

 

남이장군 이야기도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내려간 지은이의 배려가 돋보인다고 할까? 예나 지금이나 음모에 시달려야 했던 영웅들의 족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외에도 재동에 있는 흰 소나무 이야기, 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 등 흥민진진한 얘기가 많다. 그림도 정말 쏙쏙 머리에 들어오게끔 재미있게 잘 그렸다. 이 책은 시리즈로 계속될 것이다. 다음 책도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장난끼 많은 초등학생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그리고 방학 때 부모가 아이들 손을 잡고 한번씩 둘러보면 어떨까? 이 책을 들고 말이다. 더 나아가서 서울시에서는 이렇게 역사적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재현해 주는 이벤트를 한다면 관광 사업으로서도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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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한국사 - 동아시아의 참역사를 바로 잡아주는
박선식 지음 / 베이직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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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한국사

 

박선식 지음/베이직북스/2008.9.30

 

역사를 바로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슈펭글러의 실증사학이나 랑케의 역사관에서부터 식민사관, 민족사관까지 우리는 같은 역사를 놓고도 언제나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아 왔다. 더군다나 그 역사가 오래 된 것일수록, 남겨진 흔적이 희미할수록 올바른 시각을 가지기는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상고시대의 역사는 그래서 늘 어렵다. 왜 뚜렷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일까? 참 아쉽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오랜 옛날일수록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이 오늘날과 달라서 매우 상징적이고 우회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Glocalization'이란 개념을 생각해 낸다. 사고와 전략은 세계적으로, 행동과 운영은 지역적으로 해야 한다는 기업 논리를 역사에 대입해 볼 때, 작금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일본은 교과서를 왜곡하고 있는 실태고,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미명하에 역시 우리의 옛 영토를 자기네 땅이었다고 우기고 있다. 홍산문화, 용산문화, 그리고 1만 4000년 전의 흑피옥 발견,

신지문자 등 중국에 산재해 있는 미해독의 역사 미스터리들이 하나둘 밝혀지는 그 날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독도는 우리 땅이 당연한데 일본은 가고시마라 하고, 파랑도(이어도)는 중국에서 무임승차하려고 쌩 난리를 치는데, 우리는 우리의 고조선 땅을 언제 회복할 것인가? 중국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고, 북한은 천지의 반을 중국에 넘겨버렸으니 이를 어떻게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인가!

 

비단 <한단고기>와 <규원사화>가 위서로 취급되는 점은 있지만, 내 생각에도 <천부경>과 함께 얼마 안 되는 우리 고대사에 대한 기록을 우리 스스로 자격 미달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그것도 우습지 않은가? 우리의 역사를 위서라는 이름으로 다 빼 버리면 남는 것이 없다. 특히 고대사는. 이런 연유로 나도 일단 저자의 생각에 동의를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치우와 헌원의 각축전. 중국에서도 신화시대로 치부하는 복희씨, 신농씨, 헌원씨의 삼황시대. 그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정말 천재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없는 단군에 대한 이야기. 실로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사실적 역사. 고조선의 경계에 대한 궁금증이 확 풀리면서 왜 우리 민족이 바이칼호에서부터 연원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황화문명 이전의 문화가 우리의 것일 가능성이 많다니 이 얼마나 통쾌하고 자부심 느껴지는 기대인가!

 

이 책은 이러한 궁금증을 마치 전술, 전략을 부하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처럼 하나씩 풀어서 보여준다. 공격과 방어, 연합전술, 교란술, 게릴라전, 침투, 위무, 선무, 심리전, 신무기 개발, 육전, 해전, 무기, 식량 보급과 종합전술을 한눈에 싹쓸이하게끔 유도한다. 국제 정세 속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준비가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평화전술과 외교력으로, 때로는 군 기강과 사기를 주축으로, 이동과 교두보 확보의 방법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자연을 잘 이용했고, 군사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되어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진법훈련을 위한 사냥이 곧 군사 훈련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군수품과 정찰, 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고, 참으로 많은 군사 정보를 얻게 되었다.

 

전쟁은 참으로 이기기 위해 실시하는 참혹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극히 인간적인 군사와 장졸이 있다. 마치 그들이 썼을 고뇌의 일기장을 넘기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게 적혀 있는 전쟁의 역사 속에서 당당했던 우리의 역사를 끄집어 내는 저자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치우와 단군의 역사에서부터 만주의 역사까지 되찾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여기에서 ‘만주’라고 하는 말도 어폐가 있긴 하다. 우리의 땅인만큼 부르는 용어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고토 정도로. 그 동안의 역사적 안목이 너무 한족(漢族) 위주로 보아온 건 아닌지 반성할 필요도 제기되었다.

 

이 외에도 풀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다. 여진과 거란, 몽고(원)과의 관계, 만주족과의 관계(그들은 우리의 형제라고 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봤을 때))가 그렇고, 최근에는 드디어 베링해를 건너간 우리의 조상들이 아메리카의 원주민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실정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자존심 회복은 실로 합당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이성계와 정도전 등의 급진개혁파들이 요동 정벌을 접어둔 것은 민족사의 또 다른 안타까움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펼친 대마도 정벌전은 위화도 회군만큼이나 민족사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282쪽)

 

우리는 그 동안 우리 민족이 외침만 받았지 한 번도 침략을 해본 적이 없다고 배워 왔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영토 확장을 꽤했던 장수도 있었고, 귀찮게 하는 적을 혼내준 적도 많았다. 물론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었기 때문에 그냥 침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세종 때도 야인과의 혈전이 거듭되었지만, 어쨌거나 소극적인 면도 있긴 했다. 이성계의 뿌리와 연관되었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기지만 그때 우리의 고토를 더욱 확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경제면이나 주민의 고충을 평화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군주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현명한 수준의 영토 확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북선도 이미 태종 때부터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직 정확하게 이순신의 거북선과 같은 맥락의 전투선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래도 센세이셔널한 사실 같다. 신기전의 개발이나 쌍화점과 관련된 공민왕의 고토 확장 정책 등도 흥미로웠다.

 

끝으로, 아직도 공자나 맹자가 우리 민족이었다는 가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더 멀게는 은나라 기자라는 사람이 오히려 우리 민족일 가능성, 복희씨가 우리 민족일 거라는 설, 그리고 황화문명보다 앞선 문화를 우리 민족이 일구었을 것이라는 설 등이 난무한다.

 

이러한 때에 그 역사의 껍질을 시원하게 벗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이 책이 던져준 메시지는 분명 오늘의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붉은 악마는 더 붉게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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