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루돌프 K. 골트슈미트 옌트너 지음 / 달과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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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천재들의 이야기다. 모두 여덟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아주 지적이고 또한 강렬하다. 생생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전달해 주는 저자는 19세기에 태어난 독일 사람이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역사적인 인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혜안을 지녀서,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빨려들어가게 하는 포스를 지녔다.

 

우리가 세계사를 배우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천재의 깊이와 사고, 그의 행동 양식과 특이점 등에 대해서 이렇게도 적절하게 표현해 낸다는 것이 참으로 짜릿할 정도였다. 저자가 마치 살아 숨쉬는 현대인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카이사르와 브루투스 얘기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타는 듯한 두 사람의 같은 생각과 다른 생각 사이에서의 긴장감을 이다지 콕 집어서 보여주는 글은 못 보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교황 그레고리우스와 황제 하인리히 사이의 갈등과 권력을 향한 암투를 그렸다. 어느 소설보다도, 어느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고 긴박감이 넘쳐 나는 문체 속에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개념에 대해 소상하고 풀어나가고 있다. 교권과 정권의 힘겨루에서 어떻게 두 사람이 경쟁하고 화합하고 상처를 주고 입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풀어나갔는가를 얘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나폴레옹과 메테르니히의 대립을 풀어나간다. 오스트리아의 공사에 불과한 메테르니히가 어떻게 나폴레옹과 맞설 수 있었고, 어떠한 외교 전술을 써서 나폴레옹을 곤궁에 빠지게 하는지를 세세한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엮어 나가고 있다.

 

메테르니히는 정치를 연극으로, 반 나폴레옹 투쟁을 체스로 보았다. 그는 나폴레옹의 몰락에 크게 관여했다. 그러나 메테르니히에 대한 역사적 판단을 내릴 때, 나폴레옹의 몰락이 그의 정책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의도였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메테르니히의 반 나폴레옹 정책은 위대함이라는 것이 그 정책이 갖는 의의와 반드시 합치하지 않는다는 것, 인류 역사의 위대한 사건에 관여하고, 그 인물의 직업과 운명 덕분에 주어진 권력이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시대정신을 가져온 위대함을 이 인물에겍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172쪽)

 

네 번째 이야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대립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의 두 천재 거장의 이야기다. 예술 앞에서, 혹은 뒤에서 그들이 챙겨야만 했던 고뇌와 회피, 그리고 경쟁의식과 자존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대를 앞서갔던 두 사람의 다른 점을 간파해 내고 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일군 업적만큼이나 생동감 넘치게 다가온다.

 

미켈란젤로는 영혼의 인간이었다. 그에게는 내적 직관이 우선적인 것이었다. 그는 창작을 이념과 정신으로 보았다. 전투적으로 발현되고 실현되고자 하는 내적 정신을 중시하였다. 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현실의 사물과 자연, 그리고 자연 속에서 생동하고 있는 외적인 형상에서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주 시골에 머물렀던 반면, 미켈란젤로가 평생 동안 한 달도 시골에서 보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전원생활을 보내면서도 결코 감상에 젖지 않으며 자연을 추구하고 탐구하였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소박한 태도로 관찰하고 표현하였다.(206쪽)

 

이 외에도 괴테와 클라이스트의 대립, 실러와 휠덜린의 대립,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의 대립, 니체와 바그너, 예수와 유다의 대립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들의 천재성을 말하고 있으면서 ‘천재’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념 정리를 확실히 해 두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자료를 준비하고 글을 써 내려간 저자의 고뇌와 열정에 감동이 밀려왔다. 집에서 편하게 책을 읽으면서 어느 살아 있는 생명체의 역동적인 현장을 보는 것보다도 더 생생한 이야기에 마냥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천재’에 대한 규명이며, ‘천재성’에 대한 혜안이 돋보이는 몇 안 되는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본질에 대한 조용한 자부를 갖고 있는 인물들은, 처음에는 고독이 쓰라리게 느껴지더라도 이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 들어갈 입구를 찾는다. 자신으로 가는 그 길이 바로 그들에게는 구원이다. 그들은 이러한 방랑을 통하여 창조적이 된다. 그들은 자신을 폐쇄시킨 후 그 속에서 심오한 업적을 만들어 낸다.(230쪽)

 

절도와 질서, 형식과 규율을 중시한 괴테의 천재성은, 자신의 존재 형식을 감성의 격동에서 찾고자 했던 클라이스트의 마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254쪽)

 

이 얼마나 깔끔하고 처절한 마무리인가! 비단 괴테를 규명하는 자리였지만 이는 통시적으로도 적용 가능한 말이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을 천재에 대한 아릿한 염원과 천재성에 대한 탐구는 있어왔겠지만 내 눈으로 본 루돌프 K 골트슈미트 옌트너야말로 바로 그 천재의 대열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엘리자베스 여왕과 메리 스튜어트 사이의 갈등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자매 사이의 대립이었던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 이다지 예쁘고 사랑스러운 역사도 없을 것이다.

니체와 바그너 사이는 또 얼마나 신성한 관계였던가. 떠나는 니체에게 바그너는 “그대는 내 아내를 제외하고 제 인생에 있어 유일한 소득입니다.” 그 둘의 나이 차이는 많았지만, 또 바그너를 떠나야만 했던 니체의 고뇌를 함께 느낄 수는 없지만, 그 얼마나 위대한 업보던가!

 

게다가 그 의심 많던 유다가 예수에 대한 믿음이 깊었다니? 어리둥절해지긴 했지만, 왜 유다는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지식의 깊이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다소 독일적인 사고에 치우쳐서 동양적 사유와는 멀게 느껴질 법도 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모처럼 잘 빚은 항아리를 보는 듯한 미학적 심연에 심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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