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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의 영화관 - 각자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는 시간
이은선 지음 / 클로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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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의 영화관

- 각자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는 시간


0. 기대감

영화 저널리스트 이은선님의 '깊은 밤의 영화관'. 책 제목만큼 부제가 매력적이다.

'각자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는 시간'

그래. 맞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각자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는 시간이다.

영화를 보는 장소나 매체도 다양해졌으니 더더욱 '상영관'이 극장을 지칭하는 수준을 넘어 각자의 상영관을 지칭하는 것이 틀림없다.

부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각자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는 시간]이라니.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불이 켜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마도 이 시간은 여러 행위가 이루어진다.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천천히 배경음악을 들으며 영화 내용을 음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후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불이 켜지는 시간동안 영화의 내용이 완전하게 반추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늘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남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반복 관람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그야말로 [깊은 밤], [각자의 상영관]에 앉아

영화 속 인물들, 연출자의 의도 등과 소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를 보는 것은 연출자의 의도를 그대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관객의 배경지식, 영화를 보는 '지금 현재'의 상황 등과 영화 내용이 종합적으로 교섭이 이루어지는, 또다른 대화행위임이 분명하다.

아마 이은선 저자의 의도도 이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도 독자들이 <깊은 밤의 영화관>의 책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만의 대화를 하듯,

독자들도 영화 개별작품을 매개로 하여 <깊은 밤의 영화관>의 내용과 대화하듯 읽기를 바라실 것 같다.

이 책을 속독하기보다, 한 영화 한 영화 에피소드마다 곱씹으며 읽어보고 싶다.

ps. 며칠 전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떠오른다.

나는 2차 관람이었기에 영화의 큰 줄기를 이미소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첫 관람이었음에도 내가 놓친 많은 부분들을 이야기해주어, 첫관람 때와 다른 의미를 안겨주었다.

한 편의 영화로 이리도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고,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다니.

<깊은 밤의 영화관>을 통해서 [깊은 밤] [나만의 상영관]에서 또 다른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다.

1. 펼쳐보다

기대대로 각자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영화라는 대상을 어떠한 마음으로 보게 되는지를

이은선 작가님만의 시선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2. 회복의 밤

늘 성장을 갈망한다.

그러다 에너지를 소진하기도 하지만,

회복의 시간이 있어 내일이라는 문을 또 열어낸다.

드라이브 마이 카, 나의 올드 오크, 더 퍼스트 슬램덩크

하나같이 명작이지만, 로봇드림에 대한 서술에 눈길이 간다.

Remember me.

로봇과 도그의 만남.

영화관에서 보면서도 눈시울을 붉혔지만

이은선 작가님의 감상을 보면서도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한 구절, 한 구절

한 문장, 한 문장이 영화관에서 봤을 때에 맞먹을 만한 촉감으로 다가왔다.

요즘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위안을 받은 적이 드물었나보다.

영화란 이렇게 어떠한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사유의 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최근에 봤던 작품 중 아내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작품이었다.

혼자 봤을 때 놓쳤던 장면, 놓쳤던 복선들을

나 이외에 다른 사람과 함께 봤을 때에 더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낙원과 지옥으로 나누어진 상황

아우슈비츠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이 다 그런 것 같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이은선 작가님이 써놓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 챕터를 세 번 이상 읽은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울컥했던 장면들을

작가님도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본 것 같다.

영화 감상이란 일종의 대화행위이다.

감독이나 등장인물과 관객, 관객과 또다른 관객과의 일종의 대화.

공상의 밤


요즘 한밤중에 혼자 눈이 떠져 멍해질 때가 많다.

공상일까.

듄, 가여운 것들, 보 이즈 어프레이드...

하나같이 많은 고민, 궁금증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단순히 궁금증 해소로 이 부분을 읽고 싶지는 않았다.

공상의 밤에 서술된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서술을 바탕으로

나만의 영화관에서 다시 불을 켜고 싶은 심정이었다.

스탠드 아래에서 단숨에 읽어갈 수 있는 책이 있는 반면,

깊은 밤의 영화관. 이 책은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은 책이다.

얼죽아가 아무리 유행이라 할지라도

아아를 단숨에 들이키면 원두의 깊숙한 구수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나만의 영화관 불이 꺼진 후 천천히 음미하며 곱씹어가며 읽고 싶은 책이다.

이은선 작가님의 후속 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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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되어
김아직 지음 / 사계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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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먼지가 되는 상상을 가끔 해봤을까.

현생에서의 삶이 답답할 때, 눈앞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일 때 먼지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오죽하면 가객 김광석님도 먼지가 되어 그대 곁으로 날아가는 상상을 하셨을까.

먼지가 되는 것은 해결책답지 않은 해결책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평범한 청년들이다.

특히 강유어의 모습에 시선이 간다.


어사전을 찾으면 '유어'는 '물속에서 노니는 고기', '잉엇과의 민물고기', '황새칫과의 바닷물고기' 등 동음이어의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찌됐든 '강유어'라는 이름은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처럼 하루하루 파닥거리며 사는 사람을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강유어 이외에도 오하석 팀장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도 눈앞의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의 삶을 담고 있다. 역사에서 거대담론만큼 미시담론도 중요한 것처럼, 우리들의 인생이란 이와 같이 하루하루 치열함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인물들의 삶 앞에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바로 '타르디그'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면서 먼지와 인간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존재이다. 우리에게 '먼지'는 '없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타르디그'는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존재와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넘나드는 것이다. 그런데 군중들은 의외로 타르디그의 존재를 환영한다. 동감이다. 지금 우리 주위의 상황에서도 아마 타르디그의 행렬에 열광할 만한 사람들이 꽤 많으리라 생각한다. 타르디그이 '생명의 키스'를 기다릴 만한 그런 사람들.


유어는 이런 상황 앞에서도 끝까지 동생 유슬이를 찾으려 노력하면서 타르디그에 대항항 방법을 찾으려 한다. 유어는 계속되는 어려움 앞에서도 늘 자신만의 방법으로 주위에 대적해 나간다. 지금도 강유어이고, 마지막에도 강유어라는 외침을 전달하면서. 설사 강유어가 주위를 변화시키거나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레 박수를 치게 된다. 설사 당장 성공하거나 이기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한걸음씩 내딛는 것, 무기력해지지 않는 것이 우리네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강유어를 비롯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등장인물의 삶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삶이었다. 세상을 한 순간에 바꾸는 일이 아닐지라도,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오늘 하루가 바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강유어를 위해, 멀리 볼 필요도 없이 강유어인 나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네이버영화카페, 네영카, #네영카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흥미롭게 읽고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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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드림
사라 바론 지음 / 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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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음미하여 볼 수 있었습니다.
로봇과 도그와의 인연. 마음이 아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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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와 나
장태완 지음, 이원복 엮음 / 이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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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은 왔는가.

 

따스한 봄이 오려면 매서운 추위를 지나야 한다지만, 대한민국에 형식적 민주주의라도 자리잡기까지에는 정말 매서운 추위가 가득했다. 수많은 피가 흩뿌려진 다음에야 미완의 봄이라도 자리잡은 듯하다. 그 수많은 희생 중에 하나가 바로 12.12사태이며, 그 사건의 생생한 기록이 바로 장태완 장군의 ‘12.12 쿠데타와 나이다. 202413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서울의 봄을 보며 분노와 감동을 자아냈는데, 이는 영화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영화가 생생한 실상을 밑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서문은 불충자 유구무언으로 시작한다. 12.12 사태 당시 수경사령관이었던 장태완 장군은 스스로를 불충자로 인식한다. 전두환 일당의 군사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스스로를 국가와 시민에 대한 불충한 군인으로 인식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장태완 장군의 생생한 증언은 책 곳곳에서 독자들에게 절절하게 전해진다.

 

쿠데타라는 비극의 씨앗

 

전두환의 군사반란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우연의 사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의 성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하나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전두환이 오랜 시간동안 준비해온 사태였던 것이다. 나라와 시민들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할 군 장성들이 비극의 씨앗을 뿌려나갔다는 것이 참으로 통탄할 일이고, 장태완 장군이 느낀 애통한 심정은 책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10.26 이후 드러난 야욕의 발톱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그야말로 사회는 혼란에 빠졌지만, 전두환 일당에게는 정권을 찬탈할 절호의 찬스였을 것이다. 사회혼란을 예상한 정승화 참모총장은 군인의 정치 참여를 경계하였지만, 전두환 일당은 어둠 속에서 반란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장태완 장군은 얼떨결에 수경사령관 자리에 올랐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물론 군사반란 이후 체포를 당하기 직전까지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장 장군은 수경사령관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그야말로 참군인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쳐왔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책 속에 기록되어 있다.

 

비운의 12.12 군사반란

 

영화를 통해서나 책을 통해서나 당시의 대통령 및 국방부 장관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물론 하나회를 통해 군을 장악한 전두환 일당으로 인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수많은 우연 중에 몇몇이라도 빗나갔더라도 군사반란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수도 있음을 장 장군은 아쉬워한다. 서울의 봄 영화를 통해 그려졌던 1212일부터 13일까지의 시간은 책 3장과 4장에 걸쳐 생생하게 그려진다. 치밀하게 계획된 정승화 총장 납치작전부터, 전두환이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정승화 총장 연행 재가를 받는 과정, 행방이 묘연했던 국방부 장관, 전두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장 장군의 투쟁, 영화보다 더 영화같던 시간들이 참으로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다.

 

군사반란 이후 장태완 장군의 고통

 

장태완 장군의 인간적인 고통이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6.25 전쟁 시기부터 장군에 오르기까지 마음 조렸던 부모님, 국가에 대한 충성만을 생각하느라 희생해왔던 가족들, 믿었던 부하의 손에 의해 체포되었던 장태완 본인, 고통스러웠던 감방 생활 2개월, 참척의 고통이라고 하는 외아들의 죽음 등 장태완 장군이 겪어왔던 말년의 삶은 활자를 통해서도 그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나가며

 

영화든 책이든, 매체의 종류만 다를 뿐이지 12.12 사태의 생생함을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그러하기에 시민들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을 우리 후손들은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책무에 쿠데타와 나라는 책은 소중한 증언으로 기억되리라 확신한다.

 

ps. 네영카 카페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으며, 359쪽에 걸친 내용을 절절한 마음으로 읽고 이 서평을 씁니다. #네영카, #쿠데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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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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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칼날은 현실을 그대로 정반대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회현상을 보여줌으로써 더욱더 정교하게 이갈리아의 사회를 그려낸다. 우리 사회에서 불결이라는 어휘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 순결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남성에게는 '순결하다'는 것이 '바보 같다'라는 말로 사용되지만, 여성에게는 '순결'은 생명과도 같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본 동화책에서, 여자는 '항아리와 같아서, 한번 깨어지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갈리아에서는 순결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행히(?) 무도회에 초대받게 된 페트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처음 보는 여성과 섹스를 할 수 있었다. 여성이 원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인 차이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있는 처녀막, 임신 가능성이 남성에게는 없기 때문에, 여성이 주도인 사회에서는 남성의 순결이라는 것이 절대 중요하지 않다. 비록 남성은 여성의 성적 노리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기는 하지만... 섹스의 방법도 많이 다르다. 여성이 고통받는 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성교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퍼는 아내 브람에게는 착한 남편이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하게 살았고 후에 리스를 만나서 행복하게 산다. 그는 어린 시절 수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공학도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리스를 만난 후에는 집안 일에만 충실한다. 우리사회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사회활동을 일체중단하고 집안 일에만 충실한 경우가 많은데 결혼 후에도 여성에게 혜택을 준다면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썩히지 않고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페트로는 자신이 통통하지 않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가지고 페니스도 작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갖는다. 그러나 페트로는 그를 사랑해주는 그로를 만난다. 노총각인 보솜비는 교장인 거드 보솜비와 옛 애인사이였다. 그들 사이에는 사프리안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보솜비는 사프리안에게 올모스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으나 닮아서 소문이 다 나 있었다. 학생들이 올모스에게 왜 결혼을 못했는지 물어보았다. 올모스는 자신이 힘이 너무 세서 결혼을 못했다고 대답한다. 이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힘이 약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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