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저널리스트 이은선님의 '깊은 밤의 영화관'. 책 제목만큼 부제가 매력적이다.
'각자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는 시간'
그래. 맞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각자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는 시간이다.
영화를 보는 장소나 매체도 다양해졌으니 더더욱 '상영관'이 극장을 지칭하는 수준을 넘어 각자의 상영관을 지칭하는 것이 틀림없다.
부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각자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는 시간]이라니.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불이 켜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마도 이 시간은 여러 행위가 이루어진다.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천천히 배경음악을 들으며 영화 내용을 음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후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불이 켜지는 시간동안 영화의 내용이 완전하게 반추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늘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남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반복 관람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그야말로 [깊은 밤], [각자의 상영관]에 앉아
영화 속 인물들, 연출자의 의도 등과 소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를 보는 것은 연출자의 의도를 그대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관객의 배경지식, 영화를 보는 '지금 현재'의 상황 등과 영화 내용이 종합적으로 교섭이 이루어지는, 또다른 대화행위임이 분명하다.
아마 이은선 저자의 의도도 이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도 독자들이 <깊은 밤의 영화관>의 책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만의 대화를 하듯,
독자들도 영화 개별작품을 매개로 하여 <깊은 밤의 영화관>의 내용과 대화하듯 읽기를 바라실 것 같다.
이 책을 속독하기보다, 한 영화 한 영화 에피소드마다 곱씹으며 읽어보고 싶다.
ps. 며칠 전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떠오른다.
나는 2차 관람이었기에 영화의 큰 줄기를 이미소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첫 관람이었음에도 내가 놓친 많은 부분들을 이야기해주어, 첫관람 때와 다른 의미를 안겨주었다.
한 편의 영화로 이리도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고,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다니.
<깊은 밤의 영화관>을 통해서 [깊은 밤] [나만의 상영관]에서 또 다른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