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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드림
사라 바론 지음 / 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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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음미하여 볼 수 있었습니다.
로봇과 도그와의 인연. 마음이 아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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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와 나
장태완 지음, 이원복 엮음 / 이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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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은 왔는가.

 

따스한 봄이 오려면 매서운 추위를 지나야 한다지만, 대한민국에 형식적 민주주의라도 자리잡기까지에는 정말 매서운 추위가 가득했다. 수많은 피가 흩뿌려진 다음에야 미완의 봄이라도 자리잡은 듯하다. 그 수많은 희생 중에 하나가 바로 12.12사태이며, 그 사건의 생생한 기록이 바로 장태완 장군의 ‘12.12 쿠데타와 나이다. 202413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서울의 봄을 보며 분노와 감동을 자아냈는데, 이는 영화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영화가 생생한 실상을 밑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서문은 불충자 유구무언으로 시작한다. 12.12 사태 당시 수경사령관이었던 장태완 장군은 스스로를 불충자로 인식한다. 전두환 일당의 군사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스스로를 국가와 시민에 대한 불충한 군인으로 인식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장태완 장군의 생생한 증언은 책 곳곳에서 독자들에게 절절하게 전해진다.

 

쿠데타라는 비극의 씨앗

 

전두환의 군사반란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우연의 사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의 성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하나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전두환이 오랜 시간동안 준비해온 사태였던 것이다. 나라와 시민들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할 군 장성들이 비극의 씨앗을 뿌려나갔다는 것이 참으로 통탄할 일이고, 장태완 장군이 느낀 애통한 심정은 책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10.26 이후 드러난 야욕의 발톱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그야말로 사회는 혼란에 빠졌지만, 전두환 일당에게는 정권을 찬탈할 절호의 찬스였을 것이다. 사회혼란을 예상한 정승화 참모총장은 군인의 정치 참여를 경계하였지만, 전두환 일당은 어둠 속에서 반란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장태완 장군은 얼떨결에 수경사령관 자리에 올랐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물론 군사반란 이후 체포를 당하기 직전까지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장 장군은 수경사령관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그야말로 참군인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쳐왔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책 속에 기록되어 있다.

 

비운의 12.12 군사반란

 

영화를 통해서나 책을 통해서나 당시의 대통령 및 국방부 장관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물론 하나회를 통해 군을 장악한 전두환 일당으로 인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수많은 우연 중에 몇몇이라도 빗나갔더라도 군사반란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수도 있음을 장 장군은 아쉬워한다. 서울의 봄 영화를 통해 그려졌던 1212일부터 13일까지의 시간은 책 3장과 4장에 걸쳐 생생하게 그려진다. 치밀하게 계획된 정승화 총장 납치작전부터, 전두환이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정승화 총장 연행 재가를 받는 과정, 행방이 묘연했던 국방부 장관, 전두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장 장군의 투쟁, 영화보다 더 영화같던 시간들이 참으로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다.

 

군사반란 이후 장태완 장군의 고통

 

장태완 장군의 인간적인 고통이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6.25 전쟁 시기부터 장군에 오르기까지 마음 조렸던 부모님, 국가에 대한 충성만을 생각하느라 희생해왔던 가족들, 믿었던 부하의 손에 의해 체포되었던 장태완 본인, 고통스러웠던 감방 생활 2개월, 참척의 고통이라고 하는 외아들의 죽음 등 장태완 장군이 겪어왔던 말년의 삶은 활자를 통해서도 그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나가며

 

영화든 책이든, 매체의 종류만 다를 뿐이지 12.12 사태의 생생함을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그러하기에 시민들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을 우리 후손들은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책무에 쿠데타와 나라는 책은 소중한 증언으로 기억되리라 확신한다.

 

ps. 네영카 카페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으며, 359쪽에 걸친 내용을 절절한 마음으로 읽고 이 서평을 씁니다. #네영카, #쿠데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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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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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칼날은 현실을 그대로 정반대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회현상을 보여줌으로써 더욱더 정교하게 이갈리아의 사회를 그려낸다. 우리 사회에서 불결이라는 어휘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 순결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남성에게는 '순결하다'는 것이 '바보 같다'라는 말로 사용되지만, 여성에게는 '순결'은 생명과도 같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본 동화책에서, 여자는 '항아리와 같아서, 한번 깨어지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갈리아에서는 순결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행히(?) 무도회에 초대받게 된 페트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처음 보는 여성과 섹스를 할 수 있었다. 여성이 원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인 차이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있는 처녀막, 임신 가능성이 남성에게는 없기 때문에, 여성이 주도인 사회에서는 남성의 순결이라는 것이 절대 중요하지 않다. 비록 남성은 여성의 성적 노리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기는 하지만... 섹스의 방법도 많이 다르다. 여성이 고통받는 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성교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퍼는 아내 브람에게는 착한 남편이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하게 살았고 후에 리스를 만나서 행복하게 산다. 그는 어린 시절 수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공학도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리스를 만난 후에는 집안 일에만 충실한다. 우리사회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사회활동을 일체중단하고 집안 일에만 충실한 경우가 많은데 결혼 후에도 여성에게 혜택을 준다면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썩히지 않고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페트로는 자신이 통통하지 않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가지고 페니스도 작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갖는다. 그러나 페트로는 그를 사랑해주는 그로를 만난다. 노총각인 보솜비는 교장인 거드 보솜비와 옛 애인사이였다. 그들 사이에는 사프리안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보솜비는 사프리안에게 올모스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으나 닮아서 소문이 다 나 있었다. 학생들이 올모스에게 왜 결혼을 못했는지 물어보았다. 올모스는 자신이 힘이 너무 세서 결혼을 못했다고 대답한다. 이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힘이 약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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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유금호 지음 / 한림원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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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았던 18세기는 참으로 암울한 시대 였다. 영.정조 시대를 떠올리면 당쟁, 당파 싸움으로 얼룩진 역사가 생각나고, 임진.병자 양 난 이후 안팎이 시끄러웠던 시대였다. 하지만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자본'의 개념이 이미 뚜렷하고 '매점매석'과 같은 좀 더 구체적인 시장원리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현실과 결부시키려는 움직임이 이미 활발하게 교류되던 시기 였던 것 같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쓴 일종의 기행문이다. 청시대의 북중국과 남만주 일대를 둘러보고 그곳 문인과 명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눈 뒤 전 26권을 썼는데 범우사 版 <열하일기>는 그 중 도강록,성경잡지,태학유관록,환연도중록,산장잡기를 싣고 있다. 박지원은 따져보니 약 250여년 전 인물인 것 같은데 역사 속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뜻을 두고 실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그럴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 책을 보면서 일단은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사대부(士大夫)에 대한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선비' 하면 '방구들에 들어앉아 책만 보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행도중 중국인들의 실생활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을 끄집어 내는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예를 들면 집을 지을 때 기와 잇는 방법, 기와를 굽는 가마의 차이, 굴뚝 만드는 방식 등등. 어찌 박지원이 옷소매 걷어 부치고 직접 기와를 구워봤으랴마는 그 이상으로 상세하게 잘 알고 있었고, 우리나라 온돌의 단점 6가지를 집어내는데는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도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겨울이 되면 백,천이나 되는 형제들의 코 끝엔 항상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니, 이 구들 놓는 방법을 배워가서 삼동의 그 고생을 면했으면 좋겠구려.'

또 하나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지동설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지구가 둥글게 생겼다는 이야기는 이미 서양학문에서 검증된 바를 알고 있었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자면 달이 월식을 할 때 거무스름하게 먹혀 들어가는 가장자리가 활의 등처럼 둥글게 보이는 것을 예로 든다. 지동설에 대한 이야기는 친구인 홍대용의 주장을 대신 얘기하는데 같이 달구경을 하면서 농담 삼아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면서 소개한다.

하지만 사대부에 관한 그의 생각에서 나름대로의 한계는 있다. 그가 여행했던 코스는 강남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중국의 강북지방이었다. 그 일면만을 보고 상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발달상을 일방적으로 예찬한 반면, 이를 가능케 했던 보다 근원적인 요인인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농민층에 대한 상업자본의 착취, 수탈 관계 등 중국의 심각한 농민 문제와 농촌 실태 파악에 소홀한 점이 있다. 그리고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타개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개혁의 주체로서 각성된 사대부만 상정하고 있을 뿐, 실질적 능력을 갖춘 중인 계층이나 상인층의 참여를 과소 평가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는 연암의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제약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무튼 연암은 청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 현실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사회 개혁의 방도를 진지하게 모색한 그 시대의 선구적인 지식인이었다.

<열하일기>를 읽다보면 가끔은 갓을 쓴 선비가 나귀를 타고 중국을 여행하는 그림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본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적 입장에 투철하고, 빼어난 비유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가 당대의 문장가로 손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나는 어려서 담이 작고 겁이 많아서 낮에라도 빈방에 들어가거나 밤에 조그만 등불을 만나면 언제나 머리카락이 쭈뼛하고 심장이 뛰는 터인데, 금년 내 나이 44세 건만 그 무서워하는 것은 어릴 때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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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 하서명작선 52 하서명작선 100
박지원 지음, 김연호 옮김 / 하서출판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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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방대한 분량의 열하일기를 모두 읽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단 박지원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와 그의 문학관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다. 또한 고등학교 문학시간때 읽었던 <호질(虎叱)>과 <허생전>이 열하일기에 실린 작품이란걸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호질>과 <허생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서 열하일기의 내용을 미약하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 그래서 시대적 배경인 18세기 상황과 연암의 문학관을 먼저 알고나서 열하일기의 내용을 파악한 후 이것들을 종합해서 이글을 쓰기 시작한다.

『허생은 10년 계획으로 남산골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가난을 못 이겨 어느 날 공부를 중단하고 장안의 갑부인 변씨(卞氏)를 찾아가 10만 금을 빌려 지방으로 내려간다. 그는 이 돈을 밑천으로 장사를 벌여 크게 돈을 벌고 좋은 일을 많이 한 다음 20만 금을 변씨에게 갚는다. 놀란 변씨가 그뒤를 밟아 보니 남산 밑의 작은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후 두 사람은 깊이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변씨가 이완(李浣)이라는 정승을 허생에게 소개한다. 이정승은 시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오히려 허생에게 비웃음만 사고 돌아간다. 허생의 비범한 인품을 알게 된 이정승은 그를 기용하고자 다시 찾아갔지만, 이미 허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는 줄거리이다.

'허생전'이 쓰여진 18세기 후반의 조선 사회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해 가는 사회 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던 이른바 역사적 전환기였다. 정치적으로는 당쟁이 극심하였고, 경제적으로는 화폐의 유통, 수공업의 발달, 농업생산력의 향상 등에 의해 부의 축적과 집중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새로운 신분 계층이 등장하는 등 사회 변동이 심화되고 있었던 시기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조선 봉건 사회를 굳건하게 지탱해 왔던 신분제의 붕괴를 초래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조선 봉건 사회의 해체를 가속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사상적으로는 일부 선구적 지식인들에 의해 조선 사회를 지배해 온 성리학의 비현실성이 극복되고 현실 문제에 눈을 돌린 실학이 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이들 실학파 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은 농민, 수공업자, 상인 등 서민층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풍요롭게 할 수 있었는가에 있었다. 박지원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중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문물을 배운 것이다.

또한, 무능한 양반계층을 비판한 <허생전>과 함께, 양반의 위선을 풍자한 <호질>을 추론해 보았을 때 열하일기는 당시의 사회제도와 양반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과 함께 이용후생적인 실학사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 결론을 머리속에 기억한 채 열하일기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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