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빠는 쇤베르크의 음악을 들려주며 소음에 질서를 부여하면 그게 바로 음악이라고 했지만, 그렇게만은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신비로운 것이 음악에는 있는 것 같았다. 언어보다 먼저 존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주의 영원히 변치 않는 어떤존재 원리일까? 그래서 그렇게 즉각적으로 깊은 울림을 주는걸까?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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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근육 - 정진호 에세이
정진호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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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들었던 북토크로 얼굴을 알고 있었던 작가님의 에세이. 사실 정진호 작가와 고정순 작가가 주고 받은 편지 형식의 에세이라는 말에 읽고 싶었던 책이다. 고정순 작가님을 좋아해서.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정진호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이 분 그림책만 잘 만드시는지 알았더니 에세이도 흡인력있게 잘 쓰시는데?! 게다가 고작가님과 같은 글감으로, 그러나 서로 다르게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어쩜 같은 소재로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글은 정말 아무나 쓰는게 아니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게다가 그 박식함에 한번 더 반함. ㅎㅎ

첫장은 '달'편 '달과 폭죽'

달에 대해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간 이야기라 신선했다.

아무도 달 토끼를 찾지 못한 이유는 그 곳엔 신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일직 떠나 버린 탓이에요. 가장 오래 머무른 아폴로 17호도 달 시간으로는 새벽에 도착해 아침이 오기 전에 떠나버렸거든요. ...중략... 달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날 때까지 지구인은 기다리지 못했어요. ...중략... 여전히 우리가 달을 바라본다면 그건 바로, 거기에 아직 닿지 못한 이야기가 남았기 때문일 거예요. 전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달을 터뜨릴 뻔한 사람이 할 소린 아니지만요.

14~15

'사랑'편의 시 두편은 진짜 있는 시인줄 알고 찾아볼 뻔했다. ㅎㅎ 두번째 시를 보고선 그 논리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지구가 멸망할 수가 없군요! 남자분이지만 그림책 작가라서 그러신건지 원래 정진호 작가님이 그런분이신건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이 물어보면 나도 이렇게 답해줘야겠다. 지구가 멸망할 수 없는 이유!

'시작'편에서는 "전 이렇게 시작한 것을 중간에 멈추는 일에 큰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라는 문장과 이어지는 문장들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의욕과 열정이 앞서 이것저것 일을 시작하고는 그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짜증을 내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고, 내가 그럼 그렇지 하는 자조로 이어지는 나쁜 순환. '미완의 작업들이 주는 압박감'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알 것 같았다. 무턱대고 시작한 자신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원망하는 것도 비슷해서, 그럴 때마다 작가님이 도움과 위안을 받는다는 영화 '비기너스'를 나의 영화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나도 이 독서 후기를 어떻게 끝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정작가님처럼 큰 소리로 몇 번 따라 말해본다. 굵은 글씨로 "나도 몰라!" 그럼 어떻게든 끝이 나겠지. 하하하.


최고의 '자유'는 편하게 숨쉬는 자유? 하하하. 혹시 나의 비염의 원인도?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위로'편에서는 정작가님은 정말 선생님복이 많으신 분 같았다. 초등학교 선생님도 대학교때 교수님도 그랬다. 말그대로 '먼저 살아본 사람'이라는 뜻의 '선생님'이 주는 위로란 그 순간 마음을 어루만지느라 하는 말과는 그 깊이가 다를 것이다. "나보다 삶을 한참이나 먼저 살아 본 어른이 자신의 경험을 진심으로 보여 주었다는 게 더 중요했어요(67쪽)",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당신이 이미 후회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에게 무조건 '좋다'고 할 수밖에 없었나 봐요. 정말 끝까지 멋진 선생님이었어요.(69~70쪽)" 책 뒷편을 읽어보니 이 교수님께서 졸업작품으로 낸 그림책 더미를 출판사에 보내어서 첫 책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내 학생들에게 무조건 '좋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엄마, 선생님이 되고 싶다. 될 수 있겠지?

고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 습격당했던 에피소드도 정말 재미있었고, 고양이 '아노' 이야기에는 눈물이 났다. 나는 비록 고양이를 무서워 하지만 그 감정은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아노도 정작가님의 고양이여서 행복했을 것 같다.

'가을'편도 쌍엄지척!!

삶이라는 운전대에선 내비게이션처럼 친절한 목소리가 없다는 걸 알아요.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돌아라, 멈춰라, 오히려 그렇게 분명히 말할수록 저는 더 불안해하고 그것에 의존하게 될 거예요. 인생은 정해진 길을 정확하고 빠르게 따라가는 게 아니라 헤매고, 꼬이고, 돌아가던 그 길 자체였던 거예요. 그 길에 내비게이션은 없어도 가이드 정도는 있을지 몰라요. 옆에 앉아 주는 짝궁, 내가 무엇을 하든 함께 걸어 주는 그런 사람이요. 언젠가 새로운 고민과 두려움이 찾아올 때면 진짜 가이드에게 배운 이 사실을 떠올리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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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편, 나도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이름은 근로장학생, 책 옮기기부터 책 정리, 그당시에는 열람실 들어갈 때 가방을 맡기면 그걸 받아서 칸칸이 번호가 적인 칸에 넣어두고 가방을 받아 보관하고, 나오면 돌려주는 일도 있고 도서관에서 하는 간단한 잡무는 꽤 여러가지 종류의 일이었다. 그런 추억과 수장고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던 그 책냄새들도 새삼 떠오르며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꿈'편 꿈의 근육. 꿈에도 근육이 있다니?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한 마음으로 바삐 책장을 넘겨보았다.

근육은 찢어지고 상처 난 부분이 아물면서 성장하는 것이래요. 꿈을 좇다 보면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실망과 좌절이 뒤따른단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문 자리는 우리의 꿈을 더 크고 단단하게 성장시킬 근육이 되어 주죠. 만약에 십년 전의 저를 만날 수 있다면 앞으로 겪게 될 실패들을 알려 주고 싶어요. 그리고 넌 포기하지 않을 거란 응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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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리로 돌아와 배낭을 찾자마자 허겁지겁 수첩을 꺼냈어요. 오베르 마을에서 느낀 것들을 글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거든요. ...중략... 전 수첩에다 무엇을 더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해바라기와 고흐의 무덤이 있는 곳. 이것으로 나의 여행에서 표현할 만한 모든 것이 다 있는 셈이었죠. 햇빛 한 줌 못 받은 꽃이지만, 고향에 돌아오는 내내 수첩 속 해바라기는 저를 따뜻하게 했어요.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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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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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작가와 주고 받은 편지를 모아 엮은 책.

차례를 보니

두 권이 주제어랄까 순서가 같았다.

20여년전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가 생각이 났다.

그때처럼 두권을 교차로 읽을까하다가

고정순작가님책부터 완독.


고작가님 산문집 특유의 그 느낌.

에세이인지 시인지였는데

이번엔 편지인지 시인지.

고정순 작가 특유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이 책에도 한가득이다.

첫 장이 '달'이었는데 정작가님 것을 살짝 읽어보니 하하하! 같은 달 이야기인데 이렇게 다른 느낌이 들다니! 고작가의 달 이야기는 봄밤의 알전구처럼 따스하고 친근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이라면 정작가님의 달은 폭죽 소리로 가득한 비행장이라니. 이 프로젝트가 이런 깨알재미도 선사하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새겼다.


'커피'에 대한 글에서는 "아버지에게 심하게 대들며 내가 언제 낳아달라고 했냐고 울부짖은 적이 있어요. 다른 심한 말도 했던 거 같은데, 이 말만 기억나요"라는 문장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엄마에게 했었다. 그것도 시근 멀쩡한 20대 때... 뭔가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였는데 이 더럽고 험한 세상에 누가 낳아달라고 했냐고, 언제 나한테 물어보고 낳았냐고 다시 뱃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내 머리통을 엄마 배에 갖다 붙이며 그야말로 울부짖었다. 그 때 엄마가 지었던 표정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가족' 편에 나오는 비둘기 두마리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정작가님은 맞췄을까? 나중에 정 작가님의 책을 다 읽었는데 비둘기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 서로 주고 받는 편지의 형식이지만 답장은 아닌.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쓴 에세이였던 것이다. 아 이 배신감이란. 비둘기 이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더욱 궁금해졌다.

그런데 '노동'편의 후추 이야기를 보면 주고 받은 편지 같기도 하다. 갑자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후추를 샀노라고 고백을 하고, 그에 대한 답으로 세월이 가도 줄어들지 않았던 후추 그라인더의 비밀을 알려주기도 하고. ^^



여행은 타인의 낯선 언어를 이해하려는 행위가 아닐까 멋대로 짐작해요. 이해를 위해 잠시 멈추거나 사색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행위가 없다면 여행은 불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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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장 부호 중 말줄임표를 싫어해요. 무책임해 보여서 싫고, 하기 어려운 말을 단순하게 생략하는 것 같아서 싫었어요. 그런데 오늘 이 편지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말줄임표들로 이뤄져 있어요. 편지 쓰는 내내 많이 망설였다는 증거라 딱 한번만 더 쓸게요.

고마워요, 거기 있어 줘서...

178




그림책 세상이 둥글다면 그 원 안에 들기 위해 가까스로 깨금발로 서 있던 나였는데, 이제 밖으로 밀려난다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낙화의 타이밍과 착지의 모양을 상상해요. 왜 체조 경기 점수 중 착지 점수가 중요한지 이제 알겠어요. 시작만큼이나 중요한, 어쩌면 시작보다 더 어려울지 모르는 마지막을 위해 날마다 나는 부지런히 저물어 가고 있어요. 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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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걸 ‘꿈의 근육‘이라 부르고 싶어요.
얼마 전 운동을 하다 근육이 어떻게 자라는지 배웠거든요. 근육은 찢어지고 상처 난 부분이 아물면서 성장하는 것이래요. 꿈을 좇다 보면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실망과 좌절이 뒤따른단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문 자리는 우리의 꿈을 더 크고 단단하게 성장시킬근육이 되어 주죠. 만약에 십 년 전의 저를 만날 수 있다면 앞으로 겪게 될 실패들을 알려 주고 싶어요. 그리고넌 포기하지 않을 거란 응원도요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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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달 토끼를 찾지 못한 이유는 그곳에 신비가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일찍 떠나 버린 탓이에요. 가장 오래 머무른 아폴로 17호도 달 시간으로는새벽에 도착해 아침이 오기 전에 떠나 버렸거든요. 지구인은 달에서 나흘을 머물렀지만, 달의 생명들에겐 새벽에 찾아와서 미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훌쩍 가버린 이상한 손님이었어요. 달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날 때까지지구인은 기다리지 못했어요. 


중략

오늘 밤엔 예쁜 손톱달이 걸렸어요. 오늘은 몇 명이나
그 달을 올려다보았을까요?
여전히 우리가 달을 바라본다면 그건 바로, 거기에 아직 닿지 못한 이야기가 남았기 때문일 거예요. 전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달을 터뜨릴 뻔한 사람이 할 소린 아니지만요.
- 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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