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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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작가와 주고 받은 편지를 모아 엮은 책.

차례를 보니

두 권이 주제어랄까 순서가 같았다.

20여년전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가 생각이 났다.

그때처럼 두권을 교차로 읽을까하다가

고정순작가님책부터 완독.


고작가님 산문집 특유의 그 느낌.

에세이인지 시인지였는데

이번엔 편지인지 시인지.

고정순 작가 특유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이 책에도 한가득이다.

첫 장이 '달'이었는데 정작가님 것을 살짝 읽어보니 하하하! 같은 달 이야기인데 이렇게 다른 느낌이 들다니! 고작가의 달 이야기는 봄밤의 알전구처럼 따스하고 친근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이라면 정작가님의 달은 폭죽 소리로 가득한 비행장이라니. 이 프로젝트가 이런 깨알재미도 선사하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새겼다.


'커피'에 대한 글에서는 "아버지에게 심하게 대들며 내가 언제 낳아달라고 했냐고 울부짖은 적이 있어요. 다른 심한 말도 했던 거 같은데, 이 말만 기억나요"라는 문장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엄마에게 했었다. 그것도 시근 멀쩡한 20대 때... 뭔가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였는데 이 더럽고 험한 세상에 누가 낳아달라고 했냐고, 언제 나한테 물어보고 낳았냐고 다시 뱃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내 머리통을 엄마 배에 갖다 붙이며 그야말로 울부짖었다. 그 때 엄마가 지었던 표정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가족' 편에 나오는 비둘기 두마리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정작가님은 맞췄을까? 나중에 정 작가님의 책을 다 읽었는데 비둘기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 서로 주고 받는 편지의 형식이지만 답장은 아닌.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쓴 에세이였던 것이다. 아 이 배신감이란. 비둘기 이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더욱 궁금해졌다.

그런데 '노동'편의 후추 이야기를 보면 주고 받은 편지 같기도 하다. 갑자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후추를 샀노라고 고백을 하고, 그에 대한 답으로 세월이 가도 줄어들지 않았던 후추 그라인더의 비밀을 알려주기도 하고. ^^



여행은 타인의 낯선 언어를 이해하려는 행위가 아닐까 멋대로 짐작해요. 이해를 위해 잠시 멈추거나 사색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행위가 없다면 여행은 불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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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장 부호 중 말줄임표를 싫어해요. 무책임해 보여서 싫고, 하기 어려운 말을 단순하게 생략하는 것 같아서 싫었어요. 그런데 오늘 이 편지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말줄임표들로 이뤄져 있어요. 편지 쓰는 내내 많이 망설였다는 증거라 딱 한번만 더 쓸게요.

고마워요, 거기 있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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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이 둥글다면 그 원 안에 들기 위해 가까스로 깨금발로 서 있던 나였는데, 이제 밖으로 밀려난다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낙화의 타이밍과 착지의 모양을 상상해요. 왜 체조 경기 점수 중 착지 점수가 중요한지 이제 알겠어요. 시작만큼이나 중요한, 어쩌면 시작보다 더 어려울지 모르는 마지막을 위해 날마다 나는 부지런히 저물어 가고 있어요. 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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