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근육 - 정진호 에세이
정진호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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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들었던 북토크로 얼굴을 알고 있었던 작가님의 에세이. 사실 정진호 작가와 고정순 작가가 주고 받은 편지 형식의 에세이라는 말에 읽고 싶었던 책이다. 고정순 작가님을 좋아해서.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정진호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이 분 그림책만 잘 만드시는지 알았더니 에세이도 흡인력있게 잘 쓰시는데?! 게다가 고작가님과 같은 글감으로, 그러나 서로 다르게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어쩜 같은 소재로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글은 정말 아무나 쓰는게 아니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게다가 그 박식함에 한번 더 반함. ㅎㅎ

첫장은 '달'편 '달과 폭죽'

달에 대해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간 이야기라 신선했다.

아무도 달 토끼를 찾지 못한 이유는 그 곳엔 신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일직 떠나 버린 탓이에요. 가장 오래 머무른 아폴로 17호도 달 시간으로는 새벽에 도착해 아침이 오기 전에 떠나버렸거든요. ...중략... 달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날 때까지 지구인은 기다리지 못했어요. ...중략... 여전히 우리가 달을 바라본다면 그건 바로, 거기에 아직 닿지 못한 이야기가 남았기 때문일 거예요. 전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달을 터뜨릴 뻔한 사람이 할 소린 아니지만요.

14~15

'사랑'편의 시 두편은 진짜 있는 시인줄 알고 찾아볼 뻔했다. ㅎㅎ 두번째 시를 보고선 그 논리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지구가 멸망할 수가 없군요! 남자분이지만 그림책 작가라서 그러신건지 원래 정진호 작가님이 그런분이신건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이 물어보면 나도 이렇게 답해줘야겠다. 지구가 멸망할 수 없는 이유!

'시작'편에서는 "전 이렇게 시작한 것을 중간에 멈추는 일에 큰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라는 문장과 이어지는 문장들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의욕과 열정이 앞서 이것저것 일을 시작하고는 그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짜증을 내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고, 내가 그럼 그렇지 하는 자조로 이어지는 나쁜 순환. '미완의 작업들이 주는 압박감'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알 것 같았다. 무턱대고 시작한 자신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원망하는 것도 비슷해서, 그럴 때마다 작가님이 도움과 위안을 받는다는 영화 '비기너스'를 나의 영화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나도 이 독서 후기를 어떻게 끝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정작가님처럼 큰 소리로 몇 번 따라 말해본다. 굵은 글씨로 "나도 몰라!" 그럼 어떻게든 끝이 나겠지. 하하하.


최고의 '자유'는 편하게 숨쉬는 자유? 하하하. 혹시 나의 비염의 원인도?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위로'편에서는 정작가님은 정말 선생님복이 많으신 분 같았다. 초등학교 선생님도 대학교때 교수님도 그랬다. 말그대로 '먼저 살아본 사람'이라는 뜻의 '선생님'이 주는 위로란 그 순간 마음을 어루만지느라 하는 말과는 그 깊이가 다를 것이다. "나보다 삶을 한참이나 먼저 살아 본 어른이 자신의 경험을 진심으로 보여 주었다는 게 더 중요했어요(67쪽)",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당신이 이미 후회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에게 무조건 '좋다'고 할 수밖에 없었나 봐요. 정말 끝까지 멋진 선생님이었어요.(69~70쪽)" 책 뒷편을 읽어보니 이 교수님께서 졸업작품으로 낸 그림책 더미를 출판사에 보내어서 첫 책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내 학생들에게 무조건 '좋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엄마, 선생님이 되고 싶다. 될 수 있겠지?

고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 습격당했던 에피소드도 정말 재미있었고, 고양이 '아노' 이야기에는 눈물이 났다. 나는 비록 고양이를 무서워 하지만 그 감정은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아노도 정작가님의 고양이여서 행복했을 것 같다.

'가을'편도 쌍엄지척!!

삶이라는 운전대에선 내비게이션처럼 친절한 목소리가 없다는 걸 알아요.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돌아라, 멈춰라, 오히려 그렇게 분명히 말할수록 저는 더 불안해하고 그것에 의존하게 될 거예요. 인생은 정해진 길을 정확하고 빠르게 따라가는 게 아니라 헤매고, 꼬이고, 돌아가던 그 길 자체였던 거예요. 그 길에 내비게이션은 없어도 가이드 정도는 있을지 몰라요. 옆에 앉아 주는 짝궁, 내가 무엇을 하든 함께 걸어 주는 그런 사람이요. 언젠가 새로운 고민과 두려움이 찾아올 때면 진짜 가이드에게 배운 이 사실을 떠올리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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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편, 나도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이름은 근로장학생, 책 옮기기부터 책 정리, 그당시에는 열람실 들어갈 때 가방을 맡기면 그걸 받아서 칸칸이 번호가 적인 칸에 넣어두고 가방을 받아 보관하고, 나오면 돌려주는 일도 있고 도서관에서 하는 간단한 잡무는 꽤 여러가지 종류의 일이었다. 그런 추억과 수장고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던 그 책냄새들도 새삼 떠오르며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꿈'편 꿈의 근육. 꿈에도 근육이 있다니?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한 마음으로 바삐 책장을 넘겨보았다.

근육은 찢어지고 상처 난 부분이 아물면서 성장하는 것이래요. 꿈을 좇다 보면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실망과 좌절이 뒤따른단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문 자리는 우리의 꿈을 더 크고 단단하게 성장시킬 근육이 되어 주죠. 만약에 십년 전의 저를 만날 수 있다면 앞으로 겪게 될 실패들을 알려 주고 싶어요. 그리고 넌 포기하지 않을 거란 응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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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리로 돌아와 배낭을 찾자마자 허겁지겁 수첩을 꺼냈어요. 오베르 마을에서 느낀 것들을 글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거든요. ...중략... 전 수첩에다 무엇을 더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해바라기와 고흐의 무덤이 있는 곳. 이것으로 나의 여행에서 표현할 만한 모든 것이 다 있는 셈이었죠. 햇빛 한 줌 못 받은 꽃이지만, 고향에 돌아오는 내내 수첩 속 해바라기는 저를 따뜻하게 했어요.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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