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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세트 - 전2권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7년 5월
평점 :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라니?
제목부터가 남다르다. 아니 이외수라는 작가부터가 이름이 평범치 않다.
뭐를 보복해 준다는 건가? 어쩌면 딱딱하지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제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실로 오랜만에 이외수를 만난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 입대를 앞두고 우연히 이외수의 <황금비늘>이라는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만난 선배가 그 책을 빌려 달라고 하여 별 생각없이 1권을 빌렸다. 선배를 만나서 책을 줘야하는데 며칠 간 만나지 못했고, 궁금해서 첫장을 넘겨 본 것을 시작으로 연달아 2권까지 다 보게 되었다. 특이했다. 이외수라는 작가의 특이한 사고방식을 처음 경험했다.
그리고 제대 후, <감성사전>을 보았다. 시기 상으로는 <황금비늘>보다 먼저 나온 책이지만 더 늦게 접했다. 역시나 이외수의 독특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상상력과 언어유희적 발상에 탐복해 마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였고, 잘은 몰라도 이외수는 국내 작가 중 가장 SNS를 활발히 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SNS를 통한 소통을 많이 했다. 그와 반대로 나는 그런 매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사이 이외수는 많은 작품을 써갔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외수를 좋아하기에 그는 나의 머리 아니면 가슴 어딘가 한 구석에 아직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를 통해 그와 재회했다. 사실 나는 그의 문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입에 짝짝 달라붙는 느낌은 아니다. 아니면 그냥 나와 잘 안 맞는 것일 수도. 하지만 화려한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지 않고 검소하고 서민적인 듯한 느낌이 좋다. 간결하고 담백하다. 특히 이 책에서는 최신 트렌드의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확실히 인터넷 시대의 최고 작가답다.
이 책은 줄곧 통쾌하다.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가 길고양이 머리에 대못을 박는 가해자를 보복하는 첫 보복 장면은 보복의 시작을 알림으로써 앞으로도 더 많은 보복으로 읽는이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압권은 역시 마지막 보복으로서 사대강을 死대강으로 만든 MS에게 통쾌한 한 방을 먹이는 장면이다.
보복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은 우리 사회의 실존인물들을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다. 일부는 이름이나 행동에서 실제 어떤 사람인지 유추할 수도 있었다.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보복하는 자와 당하는 자들의 이름 하나하나가 그렇게도 잘 어울릴 수 없다.
1인칭 시점인 이 책은, 주인공인 정동언이 식물들과의 교감을 통해 이 시대의 악을 응징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식물과 대화하는 상상을 하곤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식물의 염사 능력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고, 식물 간의 네트워크로 시공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상상은 정말 경이롭기까지 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또한 식물들이 진짜 서로 대화하고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어보기도 했다.
책에는 많은 식물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각 식물들에 대해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여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나오는 식물마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지만 독서의 몰입을 위해(라고 쓰고 귀차니즘이라고 읽는다) 최대한 자제했다.
또한 이외수 답게 최신 트렌드의 아재개그를 많이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것들로 거의 모든 개그가 작가의 창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책에 나온 아재개그들을 모두 발췌하여 따로 정리해 봐야 되겠다. 어디 가서 써먹어도 될 만한 것들이다.(그렇다면 나도 아재?)
독특한 소재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사랑이다. 이 시대와 이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과 불합리한 일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면서 그것들을 하나씩 응징해가는 정의의 구현은 결국 사랑을 향한 과정이다. 자기를 희생하여 사랑을 달성하는 식물들의 이타심이 사랑이다. 주인공은 식물들의 겸손함과 배려심, 희생정신을 보고 겪으면서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하나씩 배워간다.
현실은 책과 다르다. MS가 녹조강물에 뛰어들 일도 없고, 사대강을 지휘했던 고위공직자들과 언론인, 교수들이 녹조라떼를 원샷할 일도 현실에서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이외수의 상상력을 통해 그런 일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MS가 팬티만 입고 녹조강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기를 띄고 있다. 책에서만이라도 속이 시원해서 행복했다. 그리고 놀라운 상상력과 통쾌한 표현으로 우리에게 행복감을 선사한 작가 이외수에게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