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시상을 글로 압축한 것이 시라면, 하이쿠는 시를 압축한 결정체다. 시가 보석이라면 하이쿠는 다이아몬드다"
하이쿠가 과거부터 발전해 온 역사는 꽤 길고 풍성하다. 하이쿠 이전에 와카, 렌가, 하이카이가 있었다는 것을 나도 이번에 새로이 알게 됐다.
사실 하이쿠를 처음 접한 건 20년이 넘는다. 짧지만 강렬함 속에 예술과 자연과 인간사가 녹아져있음에 첫만남에서부터 흠뻑 취하고 말았다.
하이쿠는 우리나라에서의 명성에 비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훨씬 인기가 많다고 한다. 세계적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바쇼와 또다른 대표 하이쿠 시인 이싸의 작품은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는 말은 이미 20년이 지난 얘기이다.
하이쿠가 17 글자라는 것은, 한자와 히라가나가 섞여있는 그 안에서 각 히라가나의 글자수를 합한 것이다. 요음이나 촉음이 붙은 것은 한 글자로 치는 것 같다.
모든 하이쿠 시를 이 17글자, 더 나아가 5 / 7 / 7 의 운율에 맞춰 만들어낸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따로 있다.

바쇼의 하이쿠를 보면, 이런 것이 있다.
꽃에 열리지
않아 탄식하네, 나의
노래 주머니

여기서 '나의'를 발음이 같은 말 凍風으로 풀이하면 아래와 같은 구가 된다.
꽃이 열리지
않아 탄식하네, 봄바람의
노래 주머니
또는 이런 것도 있다.
岩(いわ)跡蹈(つつじ)染(そ)むる涙(をみだ)やほととぎ朱(しゅ)

바위 철쭉을
물들인 눈물이여
호토토기슈(朱)
호토토기스(소쩍새)의 마지막 스(す)자 대신 발음이 비슷한 한자 朱(しゅ)를 넣어 소쩍새가 흘리는 피눈물의 붉은 색감을 글자료 표현하였다.
이처럼 하이쿠는 단지 글자수를 맞추고 자연과 인간사를 노래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어유희를 통해 예술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주 많다.
하이쿠를 일본어가 아닌 한글로만 접했을 때는 미처 몰랐던 형식과 구조적인 예술성이 눈이 들어온다.
바쇼는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으로 하이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이 책에는 그의 생애동안 지은 976 수의 하이쿠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실려 있다.



책에 소개된 하이쿠의 그 수만큼이나 책은 그래서 꽤나 두껍다. 시집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을 분량이 아니다.
사실 이 책은 시집으로 분류할 수가 없을 것 같고 하이쿠 또는 바쇼에 대한 연구서 내지는 거의 논문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해 보인다. 시를 사랑하고 하이쿠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쉽게 볼 책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쉽게 말해서 책이 너무 어렵다. 이 책에 쓰여진 내용을 이해할 만한 수준이라면 일본어와 일본 역사 그리고 일본 문화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사람일 것이다. 일본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감히 도전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지면에 쓰인 하이쿠 글자가 원래 컬러였던 것을 흑백으로 인쇄한 것 같다는 것이다. 각 글자마다 진하기가 다르다. 어떤 글자는 마치 인쇄가 덜된 것 같은 모습이기까지 하다.
물론 부수적인 이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이쿠가 가진 독특한 형식과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계절, 자연의 향기를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리고 부록에 하이쿠를 찾아볼 수 있는 찾아보기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각각 제공되는 점은 매우 실용적이고 고마운 배려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