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나는 그였고, 그는 나였다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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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처음 읽은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읽는 데에 거의 한 달이 걸렸지만 그 깊은 의미를 헤아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도 없으며 추상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그 이면의 상징들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았다. 그때의 데미안은 무언가 큰 진리를 암시하는 듯했지만, 중3인 나와는 매우 큰 거리감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겠다.


불혹이 넘어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다시 펼친 데미안은 달랐다. 싱클레어가 단순한 성장 스토리를 넘어서 ‘자아 찾기’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이제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에겐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또다른 데미안에 도전했다. 리프레시에서 나온 데미안 책은 그동안 보아왔던 것과 비주얼부터 다르다. 한 쪽의 지면을 여백 없이 꽉 채우는 삽화들은 처음 볼 땐 매우 어색했다. 게다가 그림 스타일이 내가 선호하는 쪽은 아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문장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이해해 나가야 하는 데미안과 같은 작품에서 이러한 삽화는 일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중간중간 삽입된 그림이 복잡한 상징들을 시각적으로 풀어주며, 싱클레어 내면의 갈등을 더 쉽게 이해하게 해 준다. 물론 독자 성향에 따른 호불호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번역도 중요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스타일로 번역했는지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다르다. 리프레시 데미안은 랭브릿지라는 번역 전문 그룹에서 번역을 한 것으로 기존에 내가 읽었던 버전의 데미안과 여러 부분에서 스타일이 다르다. 이 또한 개인에 따른 호불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현실과 같이 편안한 구어체는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이는 데미안이라는 작품의 원래 성격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친구와 대화하듯 가벼운 톤으로 번역을 했다면 그 역시 더 어색했을지 모른다.




데미안이란 작품이 시대를 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는 한 사람의 자아 탐색과 자기 수용에 대한 것으로, 모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공감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고, 이를 통해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작중 화자인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다. 데미안은 그를 내면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이자,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데미안을 통해 싱클레어는 자신 안의 어둠과 빛, 양극단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또한 베아트리체(에바 부인)는 싱클레어가 동경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그에게 사랑과 이상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주는 존재다. 아브락사스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포용하는 신으로, 싱클레어가 양면적 자아를 받아들이게 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이 인물들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싱클레어 내면의 다양한 면모와 성장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듯이 데미안은 반복해서 읽을수록 새롭게 알아가는 작품이다. 청춘의 고뇌와 자아의 발견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 메시지가 더욱 명확히 다가오는 것 같다. 즉, 삶의 경험과 함께 여러 번 읽어야 진짜 의미가 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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