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깃털도둑>이라는 타이틀 자체는 그다지 관심을 끌만한 제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자연사 도둑’이라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다. 자연사라는 게 무엇이며, 더욱이 그것을 홈쳤다는 것은 과연 무슨 말인지 문구만 봐서는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소개글과 다른 사람들이 남긴 짧은 서평을 보았고 비로소 이 희대의 사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이 책은 실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이다. 따라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범죄의 실체를 추적하는 형사사건일지임과 동시에 멸종위기 동물과 '플라잉 타이 제작'이라는 취미를 소개하는 지식전달서이며 개인의 탐구가 가미된 에세이이다.



작가가 우연히 사건에 대해 알게 된 후로 진실을 파헤치고자 처절하게 노력하는 과정은 ‘그것이 알고 싶다’ 또는 ‘PD수첩’과도 닮았고, 이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플라잉 타이어’들의 세계와 그것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전혀 관심없던 주제에 대해 새로이 알려주는 지식 다큐멘터리를 닮았다.


이 한 권을 통해 우리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과 더불어 '자연선택의 의한 진화론' 연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라는 역사적 인물을 새로이 알게 되며, 19~20세기에 걸쳐 인간의 패션을 위해 동물들이 어떻게 희생당했고 특히 새의 깃털이 어떤 식으로 시장에서 거래되고 이용되어 왔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낚시를 위해 사용되는 '플라잉 타이'는 낚시를 하지 않으면 상세히 알기 어려운 것들이고 특히나 새의 깃털을 이용하여 이것을 만드는 행위가 낚시 행위와는 그다지 상관없이 독립적인 예술분야로 발전해 왔다는 사실 또한 마니아가 아니면 쉽게 알기 어렵다. 지금껏 이러한 정보는 나의 관심사항도 아니었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것들이었다.


작가인 '커크 월리스 존슨'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단지 이러한 정보성 지식 또는 멸종위험 동물들에 대한 주의환기 정도였다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이 책을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생물지리학자인 월리스가 평생을 통해 수집하고 정리한 다양한 수집품들이 영국의 트링자연사박물관에서 도난당했고, 이 사건의 범인인 '에드윈 리스트'는 결국 붙잡혔지만 그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지 않았음을 작가는 지적하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십 종의 박제된 새들은 과학이 발전해오는 동안 인류에게 커다란 지적 발견을 안겨 주었다.


"프리스 존스 박사와 애덤스는 세상이 이미 이러한 표본들에 지식이라는 빚을 졌다고 설명했다. 월리스와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밝혀낸 것도 그 덕분이었다. 20세기 후반, 과학자들은 박물관에 있는 오래된 알 표본들을 서로 비교해 DDT 살충제가 쓰인 이후부터 알껍데기가 얇아지고 알의 부화율도 줄었음을 밝혀냈다. 덕분에 이 살충제의 사용이 완전히 금지될 수 있었다. 좀더 최근에는 150년 된 바닷새이 표본에서 뽑아낸 깃털 샘플을 사용해서 바닷물의 수은양이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그것 때문에 다른 동물들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수은에 중독된 물고리를 먹는 인간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깃털을 '바다의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본문 중에서


그리고 지금 당장은 현재의 과학수준에서 더 이상의 연구가 어렵더라도 앞으로 더욱 발전된 과학 기술을 활용해 더욱 가치있는 발견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박물관이 이것들을 캐비닛 속에 단지 보관만 하고 있다고 해서 이러한 행위가 무의미하다고 아무도 얘기할 수 없다.



그러나 범인인 에드윈 리스트는 금전적인 이득과 자신의 명성을 위해 이 새들을 훔쳐 이베이를 통해 판매했으며 일부가 다시 박물관으로 회수되었다 하더라도 월리스가 평생 공들여 작성하여 붙여놓은 태그들을 제거함으로써 더 이상 새들을 연구에 활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이는 인류사에 크나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가 없다고 해서 그의 범죄가 가벼워질 수 없는 이유이다.



리스트는 범죄행위에 대해 도덕적으로는 지탄을 받았지만 과학적으로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진단 결과를 통해 법망을 피해갔으며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작가는 회수되지 않은 새들과 깃털을 되찾기 위해 수년간 노력했지만 폐쇄적인 ‘플라잉 타이 마니아 그룹’의 비협조와 배타적인 태도로 인해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책의 끝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픽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었다면 범죄자가 감옥에 가고 읽어버린 수집품들을 되찾는 것으로 행복한 결말을 맺었겠지만 이 사건은 불행하게도 엄연한 현실이므로 작가도 그 끝을 웃으면서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는 맺음말에서 그가 거쳐간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지만 꾹꾹 눌러 쓴 감사인사 속에서 나는 그들을 향한 작가의 원망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트링박물관 외에도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을, 또는 발생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자연사 도난 사건이 세계 각처에 충분히 더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은 작가는 물론이고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매우 큰 실망감을 안겨 준다. 단지 ‘그들만의’ 취미를 위한 예술적 욕망과 탐욕을 위해 가차없이 희생되고 있는 인류의 ‘자연사’는 그래서 여전히 위태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