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날고싶은잎싹이 > 인문카페 창비에서 신경림시인의 시와 인생을 만나다.
창비 블로그에서 새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드디어 인문카페 창비에 <신경림>시인이 오신다는 소식이였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알라딘을 알게 되고 책이라는 것을 단지 읽는 것에서 벗어나 책과 연관된 세계에
관심이 많아진 저에게..시는 어쩌면 가벼운 맘으로 펼칠 수 있는 두께가 얇은 책일지도 모른다는 상념을 가질 정도로
저는 어쩜 시에는 문외한입니다. 그래서 인문카페에 소식을 보고 몇번인가 시인이 초대될때 창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자 한 것이 낙엽이 날리우는 가을부터 낙엽이 다 날리고 스산한 바람이 바닥을 쓸고 가는 겨울 언저리에
그리고 하얀 눈으로 세상이 뒤덮이는 겨울의 절정을 지나 무거운 걸음을 뗀 것이 이번 시 낭송회 였습니다.
행사 신청을 응모하고선 신경림 시인의 <사진관집 이층> 시집을 알라딘에서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가벼운<?> 맘으로 시집의 첫장을 열었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시를 아주 쉽게 생각한 제가 한심스러웠고
책이라는 매체만을 사랑하는 제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읽었습니다. 마냥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시집을
덮었습니다. 선생님을 뵈면 분명 이 시집은 저에게 아주 의미있는 책이 될꺼라는 걸 알기에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시 낭송회 시간은 여유롭지만 아이 셋을 둔 엄마인 저는 늘 지각입니다.
수원에서 홍대까지는 제법의 시간이 소요되는데다 아이들의 저녁을 준비해두고 아이들을 단속해 두고 와야하는
저는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도 기왕 나선 길..늦더라도
선생님의 시 한구절밖에 못 들어도 좋다고 생각 하고 창비로 향했습니다.
신경림 시인을 뵈었습니다. 정말 연세를 가늠하기 힘든 젊음을 지니신 선생님은 처음 뵙는 저에게도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지니고 계십니다. 저는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없거든요.
선생님은 정말 조용조용한 이야기꾼이셨습니다. 시낭송회라서 딱딱할까?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까 궁금했는데 참으로 편안한 자리였고 다이나믹한 세상 속에서 접하기 힘든 정적과 침묵이 잘 어울리는
시를 읽는 시간,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였습니다.
처음 선생님께서 먼저 시를 하나 낭송해주셨습니다. 우크라이나 여행길에서 쓰셨다는 시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여행을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이라 하셨습니다. 그 전에는 시대가 외국으로의 여행을 쉬이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권이 나왔다고 하는 연락을 받은 후로 선생님께서는 20여년동안 평생 할
여행을 다 하셨다고 합니다.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들이 참 재미났습니다. 선생님은 저 연세에도 여행다니시고
세상공부에 여념이 없으신대..젊은 저는 아직 한번도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에 타 본적이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여행에서 놀라웠던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시인이 왔다고 하니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뵈러 왔었다는 문학에 대한 사랑이 큰 나라임을 알았다는 말씀이 그리고 얼마전에 다녀온 일본 여행 이야기도
조근 조근 재미나게 풀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선생님께선 혹부리 영감처럼 이야기 주머니를
안보이는 데 숨겨 놓으시고 계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경림 선생님께서 첫번째 시를 낭독해 주시고 두번째 시는 초대되신 분중에서 한분이 읽어주셨습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어머님이 서른해 동안 서울에 사시면서 오갔던 그 길에서 어머님은 만나는 사람이 이렇게 많고
듣고 보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더 멀리 갈일이 무엇이냐는 것일 텐데..라는 말이..왠지 가슴에 닿았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인지..고향이 아닌 타향에 살고 있어서인지 선생님이 들려주신 어머님의 이야기가
나또한 나의 아이들에게 기억되는 모습이 이랬으면 하는 생각도 겹쳐 든 모양입니다.
선생님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남다른 분이셨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훌륭한 시인을 키우셨을
꺼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님은 시집을 오실 때 혼수로 많은 책을 가지고 오셨다고 책읽는 것을
좋아하시고 한겨레 신문의 애독자셨다는데요..저도 한겨레 신문을 애정하는 1인입니다. 공통점을 발견하며
사소한 것임에도 동질감이 느껴지는..그래서 낯선 공간인 이 곳에도 그리고 낯선 이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 한자락이 생겨나는 것인가 하면서 생각의 꼬리를 물어봅니다.
그리고 위트 있으신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 그런데 내 시는 안 읽으셨다>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마 아들앞에서 읽지 않으셨지 분명 다 읽으셨을꺼라는..짐작도 해봅니다.
정릉동은 가보지 못했지만 선생님이 사셨던 동네이니 궁금합니다. 작가나 시인의 이름으로 거리 이름을 지음
참 좋겠다는 말씀에 동의해보면서 세번째 낭독 시를 들었습니다.
정릉에서의 어머니 이야기 다음은 안양에서의 아버지와의 삶 이야기였습니다.
돌아가시기전에 몸이 불편하셨던 아버지.선생님과의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을 당시..
아마 그 당시는 어쩜 불편하기도 힘들기도 하셨을 텐데 지나고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쩜 그렇게 힘든 것도 슬픈 것도 아픈 것도 지나가면 잊어버리기에 세상은 이리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시집에서 내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시를 선생님께 낭독해주셨습니다.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시는 선생님이 홍은동에 사실 적을 회상하면 쓴 시인가 봅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 시절에는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고 사는 재미가 있었다고
하셨어요.
천상병 시인이야기도 해주셨고 예전 홍은동산일번지에 대한 이야기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홍은동에는 번지수가 없었는데 편지를 주고 받기 위해 이름 붙인 것이 산일번지 였다 합니다.
낙천적인 사고를 가지신 선생님은 내일 할 일을 절대 미리 하지 않고 꼭 내일 하셨다고 해요.
그 말이 좋았습니다. 저도 늘 닥쳐야 하는 탓에 늦을 때도 있고 미처 미완성일때도 있지만 저는 만족하고 마는데요.
사실 어떤 때는 좀 미리 해두어도 좋을텐데 타고난 것이지 몸에 베어버린 것인지..아쉬울 때도 나름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시를 거의 쓰지 않고 방황했던 시기가 있어노라고 세상을 잘 모르고 있다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선생님이 쓰고 싶었던 시의 방향성도 이야기해주셨고
서정성만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시절에 꼭 시에 이데올로기 사상이 들어가야 하고 민족을 이야기 하지 않는
시가 무슨 시냐는 평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시는 생명..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시가 아닌가 하셨습니다.
강한 민족주의를 가진 우리나라에 맞추어 그런 시를 써보고자 했으나 그것은 재미없는 일들이였고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보편적인 인간에 더욱 관점을 두고 시를 쓰고 계시다고 합니다.
보편..어쩜 변화와 격동에 시기에 부흥하는 것이 문학, 예술이기에 어쩜 그런 시대정신을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편의 가치를 담는다면 누구나 그것을 편안하게 만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렇게 낭송회는 마무리가 되어가고 독자들은 선생님께 시를 잘 쓰는 법과 가장 질투하는 시인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시를 잘 쓰는 법에 대한 대답으로는 잘 써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고
선생님께서도 시가 잘 써지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어려운 답이였습니다. 시를 잘 쓰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가장 질투한 시인에는 백석, 박목월, 서정주, 임학선생님들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렇게 조용하고 차분하고 따스함이 가득했던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사인을 해주시네요.
전 선생님이 힘드실까봐..사인은 받지 않고 왔습니다. 다른 분들의 사인이 많이 궁금했지만
제가 또 언제 선생님을 뵐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하튼 80세의 연세를 전혀 실감할 수 없는 선생님을
뵈면서 시인은 왠지 사색이 가득하고 어쩌면 조금은 시크할 꺼 같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게 해주신
정말 정감어린 선생님을 뵙고는 2시간 가량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행복했고 지하철에서 다시금
시집을 읽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시에 대해선 백지 상태인 저에게도 선생님은 위대하게 보였습니다.
인문카페 창비에서는 저녁시간에 있는 행사에 꼭 커피와 음료,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해주시는데요..
커피는 약간 엷어진 느낌이구요..저 머핀이 제가 먹어 본 머핀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머핀이였습니다.
언제나 창비와 문향에 다녀오면..맘이 설레입니다. 그곳은 현실세계와는 달리 왠지 분리되어져 있는
그곳에서의 시간들이 행복하기만 해서 그럴까요??여하튼 저는 그날 이후로 시 좀 아는 아줌마로 바뀌였습니다.
그렇게 시를 읽는 여유, 시를 이해하는 마음, 시를 즐길 줄 아는 독자로 거듭나고 싶다는 다짐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