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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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소제목이 달려있다. 한나 아렌트가 쓴 이책의 핵심 키워드는 아마 <악의 평범성> 일 것이다. 유대인 학살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예루살렘에서 열리자 한나 아렌트는 미국 교양잡지 <뉴요커> 기자로서 아이히만의 재판을 1961년에 기록하고 위해 보고서 형식으로 써낸 것이 바로 이책이다.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 등을 통해 간접 경험했었지만, 전범 재판에 대한 책은 이책이 처럼이었다. 유대인 학살 전범 재판은 전후 1946년에 독일의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많은 전범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종신형을 선고 받았던 상태였다. 하지만 히틀러의 유대인 이송 중간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은 우여곡절끝에 도망을 쳐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다가1960년 이스라엘에서 보낸 자들에게 납치되어 예루살렘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철학서를 읽는 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여성 철학자로 독일 하노버에서 출생한 독일계 유대인이었다. 그녀는 시온주의자들을 돕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출감된후 프랑스호 망명해 활동하다가 비시정권이 들어서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하여 미국으로 가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철학자 하이데거와 연인사이였다가 하이데거가 히틀러의 사상에 동조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그와 헤어지게 된다. 그후 샤를 야스퍼스의 도움으로 박사논문을 쓰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 재판에서 만난 아이히만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정신과의사들 조차도 자신들보다 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판단하기도 했었고, 아이히만은 전체주의 국가 체제 속에서 히틀러로 부터 내려진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는 공무원에 불과한 모습으로 비쳤다. 그래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주목했다. 악이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우리가 쉽게 접할수 있는 근원에서 나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대인의 민족적 관점에 날린 직격탄이었다.  자신이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사랑을 결여한채 유대인이 아닌것처럼 보편적 관점에서 아이히만 재판을 다루었다. 2000년에 이르기 까지 아렌트의 저술이 단 한권도 히브리어로 번역되어 이스라엘에서 출간된적이 없고 유대인들에게 아렌트는 적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20059월에 다산 기념철학 강좌에 초대되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가 보편주의적 입장을 보여주었다고 비판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무죄라고는 하지 않았다. 아이히만을 세가기 부분에서 유죄라고 말했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 세 번째의 무능성은 곧 판단의 무능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판단 능력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 무능함이 바로 유죄인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아히히만을 전쟁범죄와 인류에대한 범죄 및 유대민족에 대한 범죄등의 혐의로 예루 살렘의 법정에 세웠다. 아이히만 재판은 국제적 관심 속에 7개월간 열렸고, 결국 1962년 5월 31일 밤 아이히만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런데 아렌트가 관찰한 아이히만은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고 나치즘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든 신념에 찬 나치가 아닌것으로 보였다. 아이히만은 악마적 인간이 아니라 관료제적 타성과 인습적 관례를 따른 '명령수행자'로만 보였다. 그래서 아이히만을 두고 <악의 평범성>을 논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 아렌트의 아이히만에 대한 관찰결과가 사실이 아닌것으로 많이 밝혀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아이히만은 나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반유대주의자였고, 출세 지향적인 사람으로 상부에서 전달된 명령 수행뿐만아니라 자신의 출세에 기민한 자였다. 1950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던 아이히만은 옛친위대 동료이자 출판업자였던 빌람 사센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념을 드러냈다.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겠어요. 우리가 1천여명의 유대인을 모두 죽였다면 만족했을 것이고 우리가 적을 절멸했다고 말할수 있을 겁니다. 난 일반적인 명령 수행자가 아니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난 그저 얼갈이에 불과 한거죠. 난 함께 생각했으며 이상주의자였어"라고 고백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저술한 아렌트는 일급 연기자 역할을 했던 아이히만에게 속은 셈이 된다. 재판에서 변호사 세르바티우스 박사는 아이히만을 변호하기 위해 명령수행자로서 수동적인 역할로 몰아 가기 위해 아마 아이히만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을 가능성도 많다.

이런 연구결과 때문에 <악의 평범성>을 말한 아렌트의 주장이 무의미 한것은 아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주제는 전체주의와 독재 체제와의 순응과 억압의 동참 과정에 대한 의미있는 비판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인류 보편적 선과 악의 경계를 무화해 극도의 체제 순응성과 평범성 내지 진부성을 낳고 폭력 발현과 인종학살의 실천에 대한 동참과 무관심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은 우리가 2차세계대전을 통해 목격한 바와같다. 전에 읽은 적이 있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의 주인공인 수용소 감시원 한나의 경우처럼 더러 상부의 명령에 따르는 것 외에 '달리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지'정말 모르는 경우가 바로 악의 평범성에 속하는 경우가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슐링크의 한나와는 달리 매우 능동적인 행위를 한 영악한 출세지향자이자 반유대주의자 였음은 부정할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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