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유토피아 - 모던 디자인은 무엇을 꿈꾸었나, DT books 01
카시와기 히로시 지음, 최범 옮김 / 홍디자인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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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자 후기에 보면, 이 책의 원제목은 <유토피아의 꿈:20세기의 미래상>이었는데 번역과정에서 독자들에게 이 책의 성격을 보다 잘 전달할 수 있게 하기위해 <디자인과 유토피아:모던 디자인은 무엇을 꿈꾸었나>로 바꿨다고 한다. 이 구절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품던 의문내지 불만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 역자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 책의 내용은 원제목에 더 잘 부합해 보인다. 이 책은 디자인 그 자체에 대한 논의는 별로 담고 있지않기 때문이다. 하긴 그랫으면 나같은 디자인 전공자가 선듯 구입하기 어려웠겠지만 말이다.

이책은 20세기초의 시점에서 봤던 미래 이미지와 그를 통해 드러나는 20세기초 모던 디자인의 모습에 대한-다분히 회고적인-에세이모음집이다. 프리츠 랑이 만든 사상 최초의 SF영화 <메트로폴리스>, <롯섬의 만능로봇> 등 근세기초에 쏫아저 나오기 시작한 SF소설, 20세기초 미국 시카고와 뉴욕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와 이를 통해 나타난 게데스 등 미국디자이너들이 그려낸 미래 이미지, 바우하우스에서의 그로피우스의 활약과 모던 디자인에 내재된 포디즘의 영향, 활력과 낙관에 넘치던 소비에트 초기의 진보적 디자인 활동 등이 이책의 소재들이다. 저자는 이 소재들을 마치 영화감독이나 사진사가 사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동일한 피사체를 반복적으로 찍어대듯이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번 거론한다. <메트로폴리스>나 만국박람회같은 소재는 정말 여러번 등장한다.

미래를 꿈꾸던 시점이 이미 과거가 되어서 그 미래마저 고색창연하게 느껴지는 이미지들을 돌아보는 재미,<메트로폴리스> 같은 낡은(?) SF영화를 보는것 같은 재미가 있다. 과거에 꿈꾸던 미래 이미지를 돌이켜봄으로써 얻는것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그 시대사람들의 상상력에 대한 상상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20세기초 모던 디자인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꿈꾸던 디자인에 대한 미래상을 접근할 수 있다는 거다.

역자후기에도 적혀있듯이 이책의 3부 ‘전자매체의 공간’은 앞의 1,2부의 주제와도 결이 안맞고, 전쟁 등 주제와 무관한 내용에 대해 주책맞게 뛰어든 감이 있다. 재밌는건 이 책이 번역된 시점이 원저가 출간된지 10년 가까이 차이가 나서 저자가 조망하는 전자매체에 대한 견해가 이미 시점이 지난 옛말이 되어버렸단 거다. 저자가 옛날이 되어버린 20세기초를 돌아보듯이 독자는 옛날이 되어버린 1993년도의 저자의 ‘세상보기’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아주 만족스럽진 않지만 모던 디자인을 돌아보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특히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유럽 모던 디자인에 미친 포디즘의 영향을 논한 대목은 매우 관심이 갔다. 앞으로도 더 많은 책들이 소개되고 쓰여져서 디자인계에 풍부한 지적자산이 쌓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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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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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논쟁의 한가운데 있는 에드워드 윌슨의 명저라는 소개를 들었기 때문에, 문장한귀절 한귀절에도 신경이 쓰였다.워낙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은 인간본성에 대한 과학적이고 진지한 성찰, 사실의 추구에 가득찬 노작이란 느낌이다. 비난받을 만한 주장은 거의 느껴보지 못했다. 다만 분야와 반분야를 논하는 첫부분에 있어서는 윌슨의 주장이 환원주의적이라는 느낌을 받긴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큰 흠결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읽어서 그렇지, 그냥 보통 책보듯이 읽으면 이 책과 윌슨이 그렇게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지도 느끼지 못했을거다. 그건 논점을 내가 잘 몰라서 이거나,이책이 대중과학서이니 만큼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논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않아서 일수도 있지만, 그 주된 이유는,이 책이 나온지 20년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그간 윌슨 류의 주장이 많은 증거들을 갖췄기 때문일거다.

이 책에 실린 공격성, 성, 이타주의, 종교 등에 대한 설명은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눈먼 시계공>, 마글러스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랭험의 <악마같은 남성> 등의 책에서 한번은 읽어본듯한 내용들이었다. 윌슨의 연구에 뒤따른 연구들이었는지 윌슨의 주장이 그런 내용들을 포괄한 결과인진 잘 몰라도... 직접적으로 사회생물학이라는 레이블을 달고있진 않더라도, 또는 윌슨이 제창한 거창한 선언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윌슨이 개척한 이러한 접근방식에 동의하는 주장은 이제 흔히진거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책이 지금에야 발간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 번역되지않은 수많은 책들이 그렇듯이 이 책을 읽어보기까지 수많은 서적에서 참고문헌을 통해 명성을 들어왔다. 아직도 좋은 책들이 소수의 전문가 사회에서만 소통되고 있을걸 생각하면, 이렇게 늦게라도 출간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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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같은 남성
리처드 랭엄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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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이 워낙 자극적이어서 서점에서 책을 집었을때 언젠가 들어본것 같았다. 제목이 자극적인 책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대충 훑어보니 내가 아주 좋아할만한 책이라는 느낌이 왔고, 그 느낌은 정확했다.

사회생물학 논쟁이나 남녀 성역할에 대한 페미니즘 논쟁이나 그 근저에는 ‘자연vs.문화’라는 도식이 깔려 있는거 같다. 보통 ‘자연’쪽을 택하는 주장은 사회적 다위니즘,우생학,인종주의 등등 어두운 과거를 갖고있거나, 갖고있다고 공박돼어 온 반면, ‘문화’쪽을 택하는 주장은 진보주의적 입장에 서온 걸로 알고있다. 난 정치적 가치관에 있어선 항상 진보주의적 입장을 지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본성에 관한 문제들에 있어선 진화론의 논리로 설명되는 것을 매우 선호해 왔다. 궂이 말하자면 ‘자연’쪽의 주장에 수긍을 해왔다고 볼수 있다.

남녀 성역할에 대한 얘기를 친구들이랑 하다보면 난 ‘남자는 가능한한 다수의 여성에게 자신의 자식을 임신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왔고, 여자는 자신과 아이를 잘 양육해줄 남자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주장을 해왔고, 친구들(물론 여자들이다.)은 ‘그런 주장은 너의 남성주의적 편견이다’라는 식의 반론(내지 욕)을 해왔다. 이게 난 항상 헷갈렸는데, 내 주장(내 주장이라기 보다 우수한 과학자들의 주장을 종합한 거지만)이 과학적으로 틀리지는 않는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스스로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문제에 대해 꽤 고심을 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일관되게 인간의 폭력성, 특히 남성의 폭력성에 경계를 하고 있다. 남성폭력성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이 책의 첫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르완다에서의 인종학살에 대한 소름끼치는 묘사를 통해 절절히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그런 폭력이 문화나 문명에 의한 산물,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지고 고착된(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 잉여재산을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가부장제가 수립되었다라는 식의) 제도라는 식의 주장에 반론을 펼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폭력성은 보노보를 제외한 다른 유인원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뿌리깊은 습성이며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매우 날카로운 무기- 지능을 통해 강화되고 발전되어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사실 매우 비관적인 주장이다. 당장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과 지배가 자연스러운거고, 따라서 정당하다는 말인가?’ ‘인간은 폭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

저자는 자연과 문화를 대립적으로 보고 둘중 하나를 선택하고자 했던 사고방식을 골턴의 오류라고 부르며, 모든 오해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 지적이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만족했고 깨달음을 얻었던 점이다. 나도 자연이냐 문화냐 라는 식으로 생각해 왔던 것같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이런거다.(이 책의 중심논의에서 좀 벗어났지만…) [과학적으로 사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이데올로기에 제한되지 말아야한다. 또한 동시에 규명된 과학적 사실은 곧바로 행위의 지침이나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될수 없다.] 과학과 가치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내겐 아주 고마운 책이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않고, 단지 동물의 행태에 흥미를 갖고있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책에 몰두해서 책장을 넘길수 있을 것이다. 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 그리고 주목할 만한 보노보에 대한 얘기가 정말 흥미롭게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라면 당연 흥미를 갖을 만한 내용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온지 5년이나 지난거 같은데 왜 아직 서평이 하나도 올라와 있지않은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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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 하룻밤의 지식여행 4
딜런 에반스 지음, 이충호 옮김, 오스카 저레이트 그림 / 김영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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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재미있고 짜임새있는 책이다. 만화로 엮여져 있어서 만만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논의는 매우 풍부하고 깊이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부제가 하룻밤의 지식여행이지만, 결코 짧은 시간안에 습득할수 없을 만큼 농밀하다.

이 책에서 한두 페이지에 걸쳐 다뤄지고 있는 논의들 거의 대부분이 사실 한편의 논문이나 책의 한 챕터에 해당할 만큼 밀도있는 것들이다. 가령, 데이비드 마의 시각이론이 한 페이지로 요약된 것이나, 엑설로드의 ‘반복된 죄수의 딜레머게임’이 3페이지 분량으로 요약되었듯이, 다른 대부분의 논의들이 핵심요약본으로 이 책에 실려있다. 게다가 그림이 지면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만을 통해서는 이 수많은 논의들을 그야 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훑고 지나갈 수 밖에 없을 것같다.

따라서 이 책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입문서, 흥미를 갖기위한, 로서는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그 이상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가 이 책의 결함은 아니다. 이만큼 짜임새있게 요약하고 압축하다보면 피할수 없는 문제 아닌가. 다만, 이 책에 짧게 소개된 논의들이 그 하나하나 얼마나 깊이있는 내용을 담고있는 가를 말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내 개인으로선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얻은 분산된 지식들이 진화심리학이라는 한개의 개념으로 엮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게 진화심리학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인지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이 진화심리학으로 묶인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되었다.

이 책의 미덕 또 한가지는 저자 에번스가 진화심리학에 대한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화심리학에 대한 찬반론의 쟁점을 개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점에서 진화심리학이 비판(또는 오해?)받는지, 그런 주장은 어떤 맹점이 있는지… 등등.

이 책에 실린 그림도 매우 마음에 든다.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학자들을 커리커춰로 그려낸 것은 매우 재미있었다. 아마, 기억하기에도 매우 효과적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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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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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깊은 이해가 느껴지는 책이다. 단지 한국어라는 개별언어가 아니라 언어일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겠지만, 일차적으로 고종석은 한국인이고 이 책을 읽을 독자들도 대부분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일 테므로 이 책의 관심, 그리고 저자의 관심은 일단 한국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는 '모국어를 사랑하는 것이 민족주의자의 한 징표라면 나는 민족주의의 인력권 바깥에 있지도 못하다.'라는 저자의 고백에서도 읽혀진다.

한국어, 또는 언어가 이 책의 드러나는 주제, 일차적인 주제라면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 책의 숨어있는 주제, 이차적인 주제인것 같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몇편의 산문들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유독 분량으로도 100페이지가 넘고 논리성에 있어서도 출중한 글인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글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나머지 글들에도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기저기 배어있다. 언어의 혼탁을 옹호하는 저자의 입장은 근본적으로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에 비해 다른 글들의 무게감이 많이 떨어지는게 사실이지만, 이건 역으로 <우리는모두 그리스인이다>가 매우 뛰어난 글이기 때문인것 같기도 하다. 그저 소문으로만 들었던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볼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복거일에 대한 고종석의 공개적인 찬사가 내게는 매우 놀랍게 느껴졌다는 것이데, 자신의 사상적 은사를 공표하고 그에 대한 찬사를 드러내는 것을 보거나 읽은 기억이 나로선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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