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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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집에서 제법 음식이란 걸 만들어보니
유기농법이니 산지직송이니 냉장유통이니 하는 것보다
결국은 기름하고 설탕이 맛내는 법인 것을 알겠다.
사람치고 달콤한 거 싫어하는 사람 없고
기름진 게 구미 안 당기는 법이 없기 때문이더라.

그런데 이 기름과 설탕은, 박사님 영양사님 도움이 없이라도
내 몸은 물론 내 가족 먹이기에 좋지 않다는 걸 또한 잘 안다.
저염간장이며 올리고당, Non-콜레스테롤 마요네즈를 찾아
가격저항선을 갱신해내면서까지 마트를 코너코너 돈다.

사람살이의 맛도 겉으로는 그럴 것이다.
번지르르한 기름맛, 달짝지근한 설탕맛이 감도는 사람, 감도는 인생.
일단은 굿이다. <하악하악>식 말씀마따나 '킹왕짱 굿'이다.
내키는 대로 지르고, 당장에 보기 좋게 고치고, 편리할 땐 비굴하면
우선 내 스트레스 안 받고, 당장 몇 푼 아끼고, 주목도 받게 된다.

그러나 몸 속에서 벌어지는 동맥경화, 심맥경화, 감성맥경화는 어쩔래.
인심, 더불어삶, 지속적 발전가능한 세상의 막힘과 딱딱해짐은 고사하고
나부터가 한살 한살 먹을수록 그런 기름과 설탕에
속은 부대끼고 거죽은 말라가고 뼈가 비어가고 심장이 푸석해지는 것은
어쩔 것이냔 말이다.

대부분의 인생지침서들이 건강하고 맛있는 살이에 대해서
유기농법 같은 얘기만 자꾸 꼬고 반복하고 어렵게 풀어놓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몸에 안 좋다는 걸 몰라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냐 시방?!"
라며 울컥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대략난감의 상황에 빠지곤 하는데
우리의 외수선생님은 그러시지 않았다.

그래. 음식맛 인생맛 좋게 하는데 기름맛, 설탕맛이 와따이긴 하다.
하지만 양파 하나 깎아 넣어봐라, 설탕만큼 들큰하고
두부 숨숨 썰어 넣어봐라, 말랑말랑 고소하다, 라고 말씀하신다.

당장에 기름과 설탕을 싹 내다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비기너 클래스이자 어드밴스드 클래스, 네이티브 클래스 교과서.

(200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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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씨 집안 자녀교육기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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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가 돌아왔다.
실은, 아Q는 언제나 살아왔을 것이다.
지금도 건너 마을이나 아랫집에는 아Q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하튼 루쉰과 다이호우잉으로 맛들린 중국문학에서
다시 한 번 만두와 국수를 먹는 아Q의 후예를 만나 반갑다.

그리고 또 반갑다.
<마씨집안교육이>의 마쥔이 우리 아버지들, 할아버지들과 참 똑같게도
우둔하고 무뚝뚝하고 책임감 있고 적당히 허풍쟁이에다 못난이라서.
<1934년의 도망>에서의 어깨 넓고 발 크고 천대받던 어머니가
참 우리네 할머니들과 똑같게도 억척스럽고 모성애 깊고 강인하여서.

외우기도 힘든 주인공들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마을 이름은 관두고 '무슨나무 고을', '무슨개울 동네'로 부르는 지명에서부터
그 생활터전이 보여주는 정경, 그 땅에 코박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궁핍한 이들끼리, 또는 덜 궁핍한 이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갈과 갈등,
그에 대한 처벌과 융합까지도 어쩌면 우리네와 다를 수가 없어 반갑고 반갑다.

이는 또한 <브로크백마운틴>이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 기갈과 갈등, 처벌과 융합과 다를 바가 없어
새삼 '인간'과 '삶'이라는 거대한 상위계층으로 결집되고 마는 것이다.

(200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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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의 왕오천축국전 - 문명기행 1
혜초 지음, 정수일 역주 / 학고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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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반발짝이라도 앞서지 못해 안달복달난 사람들이
마치 백미터 달리기 경기 결과를 비디오로 판독해내듯 시비다툼이다.
이럴 때 굳이 1300년 전에 쓰여진, 그것도 많은 글자가 결락되어버려
본 기록문보다도 주석이 더 길고, 분분한 해석이 더 복잡한 이 책을
굳이 찾아 읽은 이유는 이를테면 원시성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너무 곱게 갈아진 콩물보다도 약간은 알갱이가 거칠거칠 씹히는 쪽이
더욱 고소하고 시즐감 있게 느껴지는 것과 비교하면 좀 무리긴 하다.
여하튼 시작은 그런 마음이었다. 잘 벼러진 박물관 청동검보다는
날렵함이나 수려함과는 거리가 먼 울퉁불퉁한 구석기 돌칼을 보는 쪽이
그 칼을 쥐었던 사람들과 그 시대상이 나에게 통째로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바랑 하나 둘러매고 한발 한발 짚신으로 세계를 밟아 디뎠던 혜초와
그 여행의 감상을 앞뒤가 잘려나간 227행의 사본 문구로 전해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가 여행한 나라들 모두 진정한 원시성에 만족스러웠다.

깨달음을 얻어가는 스님이라고는 하나 혜초 나이 당시 열여섯.
그때 나이 두 배는 되는 내가 집에 앉아 원시성 운운하고 있을 때
소년 혜초는 아비와 삼촌, 아들이 한 아내를 두는 나라 등을 떠돌며
사람의 생멸과 사람의 그리움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위대한 세계인'이기에 앞서 심신 건강한 한국인에 자부심을 가진다.

(200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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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 내 붓을 들어 한의 세월을 적는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4
혜경궁 홍씨 지음, 이선형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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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여지도 없이 한중록의 '한'자는 '한스러운 恨'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역시도 동시대의, 또는 후대 사람들이 지레짐작하는 고통일 뿐이고
그 추측마저 빗나감으로써 실은 대놓고 '한스럽다'고 표현하지도 못한
형용불가와
형용금지의 가슴 미어지는 고통은 짐작조차 어려울 것이다.

필부라 하더라도 죄인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지옥이겠는가.
하물며 절대권력이자 근친으로부터 참형을 당한 왕세자 아내로써의 여생이란
궁 안에서 숨쉬는 자체가 연좌제 처벌이며 무기징역과 다르지 않다.
더구나 남편을 처단했던 권력과 법의 기준은 더욱 공고하고 자명해져서
그녀의 아들은 삼촌인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되고 그 명분으로 왕이 된다.
아비 주검에 같이 난도질을 해서야만 왕이 될 수 있었던 아들의 비극이
그런 지아비와 친아들을 동시에 바라봐야 했던 어미의 비극에 비할까.

하지만 내게 이 비통한 시절 중 가장 비극적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굶어죽은 왕자나 아비잃은 아들도, 그 어미나 친자를 처단한 왕도 아닌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를 주목하고 싶다.

중력이나 만유인력도 무색할 절대왕권만이 불규칙적, 주관적으로 지배하는
철옹성 궁 안으로 어린 딸을 시집보내야하는 비극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린 사위가 살기를 내뿜으며 미쳐가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봐야했던 비극,
편집증적 왕이 친자이자 자신의 사위를 살해하는 정치에 동의했던 비극,
유일한 손자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혈연을 부정하고야 겨우 왕이 됐던 비극,
그리고 세태의 중심에서 정치가로, 반역자로 추대와 멸시를 모두 받았던 비극.
이 모든 것들이 죽음을 명받지 못한 자신의 딸 때문에 겪은 오욕이라 생각하니
딸로써, 아비를 둔 사람으로써 가슴이 막혀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

(200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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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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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면, 다이 호우잉 그녀는
역사의 진보를 향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이기도 하기에
투쟁가임에 틀림없다.
당시의 시대적 요구가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하더라도 단언컨데 대부분은
삶에 대한 강한 완력으로 버티고 서서 반발짝이라도 앞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짝씩 앞서 있는 사람들의 대열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무리 속에 어울려 최루탄에 꺽꺽대며 몇 번 전경에 쫓겨다닌 나로써는
중국 문화대혁명의 서슬이 어찌나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지
책말미 저자 후기가 나올 때까지도 마치 골방에 틀어막혀 몰래 금서를 읽는 듯한
긴장감을 느껴야했다.

그 투쟁의 한가운데서, 봉인된 휴머니즘 문학의 자물쇠를 깨부수면서도
그것은 거칠지 않고 무모하지 않고 입체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부드럽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가에 감탄했다.

휴머니즘의 가운데, 아니 그 어떤 이즘의 가운데라도 '사람'이 들어있음을
작가는 감탄, 또는 통탄하는 듯한 제목의 말투로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00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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