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設, 첫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김훈은 자기 소설 속 인물에 작가 본인을 많이 투영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우륵이나 이순신에 녹아있는 작가의 모습을 뒤지기 보다는
감질맛나지 않게 아주 대놓고 그의 세계관을 접할 수 있어 설렌다.

많은 소설가들이 자전적 에세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집을 내놓기는 하지만
소설 중에서도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좋아하는 나로써는
고심과 연구가 많이 그리고 깊이 들어간, 한 편의 스토리텔링이 좋아서
작가에 대한 경외는 남겨두기로 하고 그저 옛날 작품이라도 뒤지는 편이다.

그러나 뭐랄까. 소설가보다 기자로써 먼저 다져진 글실력 때문일까.
넘치는 감수성에 쩔쩔 맸던 기자로써 먼저 깊어진 생에 대한 애정 때문일까.
그가 바라보는 도다리 어부 김씨나 수몰예정지 강아지 등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그만의 소소해서 눈물겨운 우리네 삶이자 드라마이자 치열함 자체여서
소설이 떠서, 그 소설을 쓴 사람이 뜨고, 그 사람이 다시 상품이 되는
'마케팅', '브랜딩'의 일환에서 나온 틈새상품이 아니라서 참 좋다.

(200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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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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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멸치는 도대체 언제 나올까 줄곧 생각했다.
전작 <홍어>에서의 홍어가 그 느낌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그때처럼 '멸치'가 시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나, 비유로나 실체로나
소설의 줄기를 꽉 틀어쥐고 그 요란한 비린내 또는
번쩍이는 형용을 드러내보일 것이라 기대했다.

마침내 멸치떼는 그 대단원의 막에서 해방되어
나 대섭이의 성장점 끝자락에서 날카롭게 솟구쳤다.
그것은 외할머니의 환영처럼 음산하거나 두렵지 않고
기대감으로 만들어낸 거짓말처럼 지각되는 것도 아니어서
정말로 그 여름의 끝 유수지 강바닥에서는
거대한 멸치떼가 코끝에서 자갈거렸을 것이다.

<내 마음의 스프링캠프>에서 나왔던 대망의 고래떼보다
그것은 한치도 작거나 모자라지 않고
맷돼지보다 힘차게, 외삼촌보다 날렵하게
소년의 새 시대로 돌진해왔다.

민물에 멸치떼가 얼토당토 않는 것처럼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도 자명하거니와
아버지의 사격술이 형편없는 것도,
'도시락 여자'가 사라져주지 않을 것도,
외삼촌이 사라진 것도 모두가 명백하긴 하여도
나는 소년이 계속 두려움과 흥분, 불안과 허세 속에서
쥐불놀이를 해나가면 좋겠다.

김주영의 소년들은 너무 빨리 자란다. 눈물나게도.

(20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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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
채만식 원작, 박상률 엮음, 김세현 그림 / 진달래산천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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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년은 자람을 당한다.
소년은 스스로 자라지 않으면 안되던 시대였다.

현실 앞에 무등한 아비와 이상 앞에 달뜬 장남을 대신해,
죽음 앞에 무너진 어미와 생존과 다투는 동생을 걱정하며
소년 영호는 어쩔 수 없어서라도 자라야 했다.

해방은 전재민을 싣고 달리는 열차처럼 큰 소리 내며 달려왔지만
그 열차 안 소년이 앉을 자리는 호락호락 나지 않았고
그나마도 그의 아비는 결국 어리숙하게 놓치고 만다.
민주주의는 술시중값으로 쥐게 된 백원짜리 지폐처럼 확고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비열함 때문에라도 오지 않으니만 못했다.

그렇게 소년은 자랄 수 밖에 없어 자랐고
그 소년이 청년이 되었는지 어른이 되었는지는 소설에서 밝히지 않는다.
그저 그 거친 성장기 만에, 그 기특한 성장통만이
판화로 찍어낸 민중화처럼 힘차고 옹골지게 보여질 따름이다.

작가 채만식은 그 제목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해방을 열망해서 해방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갈구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닌, 그저 자라야해서, 자라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 시대 소년들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200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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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 양장본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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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어머니에게 열 명의 아들 딸이 있다 하더라도
그 중 넷째나 다섯째쯤 되는 딸애가 죽어라 말 안 듣고 애를 먹인다 하더라도
착한 아이 아홉만 데리고 몰래 야반도주를 해버리지 않는다.
그 넷째든 다섯째든 아이를 인신매매에 넘기지도 않고
독살시키는 일 따위도 결코 하지 않는다.

말 안 듣는 아이 수천수만명을 폭우에 쓸려가 죽게 하고
순종하는 아이 너 댓만 데리고 햇빛 따스한 곳으로 도망쳐 살게한
하느니의 파쇼를, 그래서, 나 자궁 가진 여성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자궁만이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지고 음식을 삼켜 에너지를 내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이를 쉽게 납득하고 동의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필시 사람의 아들이다.
사람의 아들 밖에 안되지만 질투심 많고 무자비한 신의 아들로
입양되고 싶은 마음은, 그래서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촛불집회 군중 중에서 땅바닥에서 버둥대며 떼쓰는 꼬마의 고집과 치기를
들추어 보였던 작가는, 오래전 인간에게 있어 '신'의 문제 들추어 보였더라.

필력보다도 그 용기가 아름답고 그 방대한 자료들이 면밀하고 거침없다.
소설가가 시대를 향해 무엇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보다도
얼마나 진중하고 신실한 태도로 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200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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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유 - Everyone Says
이미나 지음 / 갤리온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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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프지는 마라 우리 딸"을
이미나로 번역하면 <에브리원세즈 아이러브유>가 되고
공지영으로 번역하면 <즐거운 나의 집>쯤 되겠다.

이미나의 "차라리 비가 왔으면 좋겠다"를
까뮈로 번역하면 <이방인>에서 태양이 눈부셔 당긴 권총 쯤 될까?

시대별, 세대별, 감성별로 어떤 다양한 표현방식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읽은 책.

동서든 고금이든 세상에 일어나는 드라마는 같고
그 안에 살아가고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같기에 그렇고
다만 표현방법은 이렇게도 나올 수 있구나,
이런 방식에 열광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구나,
그리고 그 흐름, 트렌드 또한 사람살이 드라마 중 하나구나,
하고 책 줄거리는 놀랄 것이 없는데, 이런 생각들이 여운을 준다.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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