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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멸치는 도대체 언제 나올까 줄곧 생각했다.
전작 <홍어>에서의 홍어가 그 느낌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그때처럼 '멸치'가 시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나, 비유로나 실체로나
소설의 줄기를 꽉 틀어쥐고 그 요란한 비린내 또는
번쩍이는 형용을 드러내보일 것이라 기대했다.
마침내 멸치떼는 그 대단원의 막에서 해방되어
나 대섭이의 성장점 끝자락에서 날카롭게 솟구쳤다.
그것은 외할머니의 환영처럼 음산하거나 두렵지 않고
기대감으로 만들어낸 거짓말처럼 지각되는 것도 아니어서
정말로 그 여름의 끝 유수지 강바닥에서는
거대한 멸치떼가 코끝에서 자갈거렸을 것이다.
<내 마음의 스프링캠프>에서 나왔던 대망의 고래떼보다
그것은 한치도 작거나 모자라지 않고
맷돼지보다 힘차게, 외삼촌보다 날렵하게
소년의 새 시대로 돌진해왔다.
민물에 멸치떼가 얼토당토 않는 것처럼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도 자명하거니와
아버지의 사격술이 형편없는 것도,
'도시락 여자'가 사라져주지 않을 것도,
외삼촌이 사라진 것도 모두가 명백하긴 하여도
나는 소년이 계속 두려움과 흥분, 불안과 허세 속에서
쥐불놀이를 해나가면 좋겠다.
김주영의 소년들은 너무 빨리 자란다. 눈물나게도.
(2008.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