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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헝클어진 크레파스 때문에 화를 내는 샘이 자폐아라면,
우리는 모두 자폐어른, 자폐부모, 자폐지구인이다.

정돈된 크레파스보다 덜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 욕심만큼 덜 갖춰져 있고, 덜 채워져 있다고 해서
우리는 늘 화내고 초조해하고 고립을 자초한다.
사회적 인정, 생활비,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미용을 위한 건강 등에 대해
항상 걱정하며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런 자폐어른들에게도
고틀립 박사의 '전신마비 끝에도 살아남은 엄지손가락의 감각'처럼
책을 읽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다치지 않은 영혼'은 있는 모양이다.

망상처럼 헛된 잣대, 편견, 욕심, 편집된 기억들을 몰아내고
고요히 내 안의 나를 찾아 들어가 본다.
크레파스보다도 명분없는 것들이 얼마나 생생하게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충동질해댈지 모를 일이나,

자폐어른들이 헛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바로 그때를 위한 여행지침서가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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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벨로의 마녀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두빈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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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의 이전 작품을 읽은 적이 있었더라면 나는 좀 덜 긴장한 채 독서에 몰입했을 것이다.
거장의 책을 받아든 나는 그의 영혼적이고 우주적인 문장들의 은유가 무엇일까,
신경쓰는 바람에 도통 소설 속 공간 이동에 온전히 빠질 수도 있는 지경이었다.

중간을 넘기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구어체로 쓰여진 생활소설보다도 글에는 은유와 이면의 뜻이 없다.
코엘료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성대가 아닌 온몸으로 울음을 우는 것처럼
온전한 사랑을 말하기 위해 말 그대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코엘료가, 그러니까 아테나가 사랑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사랑일 뿐이다.
불순물, 추측, 해석, 조건 등이 가미되지 않은
땅에서 나고 물에서 길어낸 순수 그 자체의 사랑 말이다.
기술, 복합, 양적 팽창과 지식이 곧 선이자 미가 되는 남성성의 세상에서
자비, 사랑, 더불어삶, 평화 같은 화두들은 늘상 철딱서니없거나 멍청하게 순박하고,
심지어 지나치게 과격한 것이라고 지적받아왔다.

이런 시대를 보아 넘기기 힘든 절박함으로, 작가는 어렵게 어렵게 펜을 들었을 것이다.
세상이 꼭 그만큼 부드러워졌기를, 바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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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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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그림책.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건히 하게 했음을
잊어버리기 전에 먼저 말해두어야겠다.

희망은, 비밀정원처럼, 키다리아저씨처럼, 그 실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망상이기도 하고, 오산이기도, 해석물이기도, 은유물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이기도 하고
은희경 <새의 선물>에 나오는 '보여지는 나' 내면에 있는 자아이기도 하다.
인간의 공포, 고독, 자위, 평화의 열정이 만들어낸 환상이기도, 실재이기도 하다.

반반씩 가진 그 특징 때문에 현실의 남자(아버지)와 만난 그녀는
현실과 환상이 7 대 3 정도로 섞인 '동생'을 탄생시킬 수도 있었다.

언젠가 나도 나만이 발견하거나 창조해낸 열정의 '반반물'에 대해
글을 써보리라 마음 먹은 적이 있다.
땅에 기둥이 박혀 있으면서도 옥상의 만다라가 반짝, 하고
하늘과 교신할 수 있는 나만의 아르헨티나 빌딩을 재현하고 묘사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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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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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가.
그러니까 연차가 '쎈' 대작가에 '여류'라는 타이틀까지 단단히 붙은
박완서의 글은 일부러 안 읽있다가 일부러 찾게 된 첫 독서였다.

작년 <바리데기>를 읽고 난 후, 최근 <소설 사마천>을 읽은 후
얕은 캐릭터와 짧은 스펙트럼, 농밀치 못한 기승전결을 가진
청년작품들에 대한 내심 업수이 여김 같은 마음으로
한국사회가 여류대작가라 정형적 평을 기꺼이 몰아다주는
박완서를 읽어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작가 자신이 살면서 진즉에 겪었거나 들었던 내용이니까
이토록 생생하게 쓸 수 있었던 거겠지"
하고 트집을 잡고 싶을만큼 이야기의 소재와 캐릭터는
다양하고 입체적이고 리얼하고 공감대를 갖고 있다.

소설집이 아니라 극적인 글쓰기를 좋아하는 기자 손에 엮어진
기사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기 그지없다.
책 끄트머리, 해설자가 언급키도 한 '노년문학의 포용력',
그 성찰, 그 깊은 서사력에 경외할 따름이다.

다만 문장 짓는 기술상에 있어 가볍고 유유히 읽히는 것은 아니어서
한 두 페이지에 한 번쯤은 자세를 고쳐 앉은 뒤 구와 절 등을 분간하며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점은 있다.

특히 사람의 말 인용을 옮겨내는 데는 현학의 매무새로 다듬어져 있어
마치 중소기업 TV CF에 사장이 나와 읊는 대사처럼 부자연스럽달까.
이인칭 시점 안에서 생생히 살아있는 '그'나 '너'로 받아들이기에는
편안히 일체화가 되지 않아 곤혹스런 감은 분명히 있다.

그것이 소설 속 '그'나 '너'의 리얼한 성찰의 깊이를
나 스스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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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박스세트 (7disc) - SBS 드라마 스페셜
신우철 감독, 김정은 외 출연 / MMC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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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법한 이야기로만 드라마를 만든다면
시청률 30%까지 육박하는 황금시간대에
프로그램이 편성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실에 있을 법한 갑남을녀가 등장해서
현실에 있을 법한 한정된 갈등만 겪는다면
시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도 못할 것이고.

이 드라마. 그 갈등의 시작 자체가 비극이다.
잘 나가는 여의사와 조폭 중간보스가 만날 확률은?
그 둘이 순탄하게 대화를 나누고, 데이트를 하고
사랑에 빠질 확률은?
아마도 재벌2세 실장님과 소녀가장 백화점 여종업원이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할 확률 정도일테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보다 '덜 만화책 캔디스러운' 점이
다른 드라마와의 차이점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확률 낮은, 있을 법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법하게, 그럴 듯 하게 보여지는 점,
그래서 더욱 현실세계 속 비극처럼 다가오는 점이
이 드라마의, 대본과 연출, 연기가 보여주는
강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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