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외로움의 기록 - 하루 종일 톡이 울려도 썸이 없을 때
김민호.정유선 지음 / 두더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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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책이다. 게다가 책이 정말 예쁘기도 하다. 소장용인 동시에 선물용이다.


자꾸만 페이스북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어린 시절 겪었던 정신적 진통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다.


얄팍하지 않고 함부로 수다스럽지 않은, 깊이 있는 철학적 관점으로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민을 다룬다. 그런데도 잘 읽힌다. 글을 정말 잘 썼다. 그림도 아주 예쁘다. 글과 그림이 어울리는 것도 다른 '그림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막 눈에 들어오면서 터질 듯한 갑갑함으로, 끓는 고민을 가진 청소년의 책이다.


또 한편으로는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를 그리거나 혹은 그릴 수 없는 20대와 30대의 책이다.


그리고 돌아봐도 내다봐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가진 어른들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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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
버나드 베일린 지음, 배영수 옮김 / 새물결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저자는 미국 혁명기에 발행된 수많은 소책자들을 통해 당대의 사람들이 경험한 지적 변화의 주요 흐름을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저자가 대단히 많은 양의 사료를 끈질긴 인내심을 갖고 분석하고 정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방대한 사료를 관통하는 커다란 흐름들을 밝혀낸 탁월한 저자의 안목이 책을 읽는 동안 필자에게 큰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책을 읽은 후에는, 미국 혁명을 단순히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독립 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과 역사적 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한 역자의 지적에 깊이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은 혁명기의 소책자의 성격에 대한 친절한 개괄을 서두로 하여,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을 설명하고, 그것이 어떻게 정치 이론으로 발전해 나가는지 개괄한다. 그리고 이른바 ‘음모론’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 다음에, 대의제, 헌법, 주권 등에 대한 당시의 논의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또한 그 결과로서 등장한 노예제의 ‘모순 영국이 미국을 노예화한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인들 스스로 흑인들을 노예화한 것.’에 대한 논쟁과, 국가가 특정 종파를 국교로 지정하는 것과 그와 관련한 세금에 대한 논쟁, 그리고 권위에 대한 복종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헌법 제정에 대한 논의 과정을 다루는데, 여기서 당시 미국의 헌법을 구상한 사람들이 국민의 권리의 명시 문제와 연방 정부가 각 방가 정부와 어떻게 주권을 나눠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두고 논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經濟史․社會史적인 설명을 중요시하지 않고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중요한 정치적 개념의 의미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필수적일 경우에만 당시의 사회적․경제적 상황을 거론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政治史․思想史를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經濟史․社會史를 누락시켰으며 세계사를 사상의 움직임으로서만 파악하는데 치중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저자가 당시의 사회상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정치적 개념들은 초창기 미국의 사회적 상황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전제가 책 전체에 걸쳐 깔려 있으므로 저자의 선택은 충분히 타당한 방법론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국이 식민지를 압박한 것이 稅入을 늘이기 위해서였고 식민지가 영국에 저항한 것도 부당한 것으로 보이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데올로기적 담론은 이 경제적 투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서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점은 숙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주민들은 시민적 자유에 대해 상당히 급진적인 관념을 갖고 있었다. 의원이 선거구민들에게 책임을 진다는 관념, 폭군에 대해서는 저항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관념, ‘대표가 없는 곳에는 세금도 없다’는 관념 등이 급진적으로 형성되었다. 대의원과 행정부의 본질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가 널리 전개되었고, 의회의 형태, 나아가서는 정부의 형태가 치열하게 논의되었다. 당대 미국의 급진적인 인민주권론은 프랑스 혁명의 가장 격렬한 순간에 형성된 것과 비교할 때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저자의 서술을 직접 따서 보기로 하겠다. 미국에서는 영국과 “정치적 경험이 달라서 대의제에 대한 기대가 달랐고,” 따라서 영국 의회에 있는 의원들은 미국인들을 대표하지 못하며 영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의원이 선거구민의 직접적인 구속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당대 논객들은 인민이 직접 또는 대표를 통해서 동의한 법률 외에는 어떤 법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입장이 “새로운 입장”이며, “본질적으로 공화주의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영국 군주정에 대한 전면적 도전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보았다. 많은 당대 미국인들은 인민의 동의만이 政體의 권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급진적인 정치적 자유주의가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과 더불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실로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미국인들의 예외주의다. 베일린의 이 저서가 한국인 독자인 우리에게 가장 크게 시사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인들은 일찍부터 자신들이 특별한 유래를 갖고 있고, 특별한 환경에서 살고 있고, 특별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자신들이 특수한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인류의 희망에 의지하며 또 그것을 실현하고 충족시킬 독특한 역사적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은 ‘또 하나의 영국’이며, 동시에 ‘영국보다 더 순수하고 더 자유로운 곳’이라는 관념이 있었는데, 이는 존 로크나 볼테르와 같은 계몽주의자들이 아메리카를 ‘양호한 자연 상태에 가까운 곳’ 또는 영국의 장점을 모두 모아 둔 곳으로 간주해 온 덕분에 더욱 강화되었다. 18세기 미국인들은 모국, 즉 영국의 정치 체제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호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상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영국이 부패하고 음모에 휘말려서 전제국가가 되면 미국이 ‘자유의 피난처’가 될 것이라 믿었다. 어느 나라나 자국 특유의 역사와 환경을 갖고 있다. 미국의 ‘예외주의’가 지금까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미국이 역사적으로 강자였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은 생각할만한 점을 많이 던져주고, 쉽사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진 책이다. 다만, 사상과 법이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실제 생활상은 그렇지 못할 수 있는 만큼, 이데올로기의 기원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한 시대를 파악하는 데 부족함이 있으므로 다른 연구와 같이 보는 것이 더욱 좋을 듯하다. 특히 당시의 정치적 담론이 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만약 그랬다면 그것이 어떤 관계였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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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폴 벤느 지음, 이상길 외 옮김 / 새물결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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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Veyne, Comment on écrit l'histoire

역사 서술에서 주인공을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서술이 가능하다. , 총체적인 역사란 불가능하며, 모든 역사 서술은 제한된 관점에서 시도한 제한적 해석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역사적 설명은 하나의 사실을 그것의 원리에, 혹은 하나의 이론을 더욱 일반적인 이론과 관련시켜 설명하는 유형의 설명이 아니라 내가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줄게. 그러면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라는 유형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역사가의 입장에서 설명이란 줄거리의 전개를 보여주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가는 줄거리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인간의 줄거리이지, 예컨대 지리학적 드라마의 줄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동기수단동력 역시 인간적이다.

역사가에게 사건은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그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거나, 또는 사건의 잘못 알려진 형상이다.

역사가는 한데 어울려 효과를 생산해내는 원인들을 하나씩 가려내지 않는다. 그는 에피소드들이 잇따르며, 여러 요소와 행위자들이 그들 행위를 접합해내는 이야기를 펼친다. 이 에피소드들 가운데 하나를 별도로 고찰하면서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유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나름대로 편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줄거리를 원인이라는 이름의 토막들로 절단하며 즐기는 것은 담론의 수준에서만 가치 있으며 그런 일은 학교 숙제로나 적당하다.

모든 역사적 이야기는 흩어져 있는 원인들을 인위적으로 잘라내어 만든 줄거리이며, 무엇보다도 인과적이며 이해 가능한 이야기이다. 다만 그것이 자아내는 이해는 어느 정도 심화된 이해를 낳는다. ‘원인의 탐색이란 사실을 더욱 통찰력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며, 사건적인 측면들을 규명하는 것이며, 만화에서 심리소설로 이행하는 것이다.

比較史는 역사학의 특수한 변종도, 방법론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發見術이다. (동일점과 차이점을 통해 사건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우리는 비교사의 저작과 그렇지 않은 역사서 사이의 차이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前者의 경우 고려되는 지리학적 틀이 좀 더 크다는 정도다.

역사적 설명은 법칙 정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인과적이다. 그것은 인과적이므로 일반적인 것을 내포한다.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은 再發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어떤 조건 아래서 再發할 것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역사학은 사건이 어떻게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그것은 사과가 나무에서 어떻게떨어졌는가를 이야기한다. 이 사과는 잘 익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일어서 사과나무가 흔들렸다. 사과가 왜 떨어졌는지를 폭로하는 것은 과학이다. 사과가 어떻게 해서 떨어졌는지 아무리 상세하게 역사를 기술한들, 발견되어야 하는 숨겨진 법칙인 重力을 우리가 거기서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는 간접화법의 가치판단이며, 구체적인 다원성을 추구한다.

17세기 영국사의 전문가이기도 한 어떤 역사가(P. Laslett)는 제 동료들에 관해 이렇게 불평했다. 이들은 “17세기에 대해 아무런 유보도 없이 사회계급을 이야기했다. 부상 혹은 몰락하는 계급을 말하면서, 그들은 머릿속에완전히 성격이 다른 갈등을 떠올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 ‘민족이나 계급과 같은 개념은 조심스럽게 적용서술사용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추구해야만 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전쟁과 같은 개념은 내란을 비롯한 다른 유사 개념과 어느 지점에서 區分線을 그을 것인지를 고민하며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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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스승 -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
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 / 궁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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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교육학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아래 발췌문 정도는 대단히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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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제는 모든 지능이 평등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지능이 평등하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이 의견이 가능함을, 다시 말해 그 逆의 어떤 진리도 증명되지 않음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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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불평등을 신봉하는 사도들 절대다수가 생리학자들을 따르지 않을뿐더러 頭蓋 진찰을 비웃는다......그들의 우월성은 정신적이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을 후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정신주의자다. 그들은 非물질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을 믿는다. 그러나 非물질적인 것이 어떻게 더 많고 더 적을 수 있을까? 그것이 우월한 정신을 가졌다는 자들이 빠지는 모순이다. 그들은 非물질적인 영혼, 물질과 구분되는 정신을 바란다. 그들은 지능들이 다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질이다. 불평등을 고수하려면 (정신이) 두뇌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신적 원리의 단일성을 고수하려면, 동일한 지능이 다른 정황 속에서 다른 물질적 대상들에 적용된다고 말해야 한다. p.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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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학자는 정당하게 그러므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에게 다른 사실을 내놓지 않는다. “그는 더 똑똑하다”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그저 사실을 이야기하는 관념들을 요약했을 뿐이다. 당신은 그 사실에 하나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하나의 사실에 대한 이름이 그것의 원인은 아니다. 기껏해야 그것의 은유일 뿐이다. 당신은 처음엔 “그는 더 성공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을 이야기했다. 당신은 “그는 더 똑똑하다”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하나의 이름으로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두 번째 진술에는 첫 번째 진술에 있는 것 이상이 없다. “이 인간은 더 많은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이 다른 인간보다 더 성공한다. 이것은 정확히 다음을 뜻한다. 그는 더 성공하기 때문에 더 성공한다...... 이 젊은이는 훨씬 많은 재주들을 가졌다고들 한다. 나는 묻는다. 뭐가 더 많은 재주들인가? 사람들은 나에게 두 아이의 이야기를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한다. 더 많은 재주란 프랑스어로 내가 방금 들은 사실들 전체를 뜻한다고. 그러나 이 표현은 그 사실들을 조금도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pp. 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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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낮은’ 지능이 자연의 효과인지 사회의 효과인지 논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들은 그들의 욕구와 실존적 상황이 그들에게 요청하는 지능을 개발한다. 욕구가 멈추는 곳에서 지능은 쉰다. 더 강한 어떤 의지가 그의 소리를 들리게 만들고 계속하라고 말하지 않는 한 말이다...... 인간은 지능의 시중을 받는 의지이다. 어쩌면 지적 성과의 불평등을 설명하기에 충분할 수도 있는 주의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의지가 불평등하게 절박하기만 하면 된다. p.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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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방법이 바보 만들기의 가장 무시무시한 형태를 대표한다. 학생을 그의 고유한 앎으로 이끌 수 있다고 자처하는 소크라테스의 질문법은 사실 승마 교사의 방법이다. “승마 교사는 선회, 전진, 후진을 명령한다. 그는 자기가 지도하는 정신이 말을 타는 동안 느긋하게 쉬면서 품위 있게 명령한다. 우회하고 또 후회하여 (학생의) 정신은 자기가 출발할 때 예상하지도 못했던 목적지에 도착한다. 정신은 그 목적지에 닿은 것에 놀라 뒤를 돌아보고는 그의 길잡이를 알아차린다. 놀라움은 존경으로 바뀌고, 이 존경은 그 정신을 바보로 만든다. 학생은 느낀다. 혼자 버려져 있었다면 자신은 이 길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의 고유한 궤도 위에 있지 않는 한 아무도 진리와 관계 맺을 수 없다. p.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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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의 본성은 부분들의 본성과 같을 수 없다. 사람들이 사회에 합리성이라고 부여하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로부터 앗아간다. 그리고 사회는 개인들에게 (그 합리성이 있음을) 거부한다. 사회는 자기를 위해 (개인들에게서) 합리성을 앗아갈 수는 있지만, 개인들에게 결코 그것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성이나 이성의 동의어인 평등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성이나 평등을 실제 개인들에게 귀속시킬 것인지 아니면 개인들의 허구적 모임에 귀속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평등한 인간들을 가지고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불평등한 인간들을 가지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평등에 대한 약간의 애정을 가진 자라면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들은 실재하는 존재들이고, 사회는 허구이니 말이다. 평등은 실재하는 존재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지 허구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평등한 인간들이 되는 것을 배우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해방된다는 말이 뜻하는 바다...... 능력자들과 공화주의의 핵심 세력들이 몸을 마치고 있는 그 과제는 불평등한 인간들을 가지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 불평등을 무한정 축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입장을 택한 자에게는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한 가지 수단밖에 없다. 즉 사회를 통째로 애 취급하기, 다시 말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일반적으로 아이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중에 그것을 평생 교육, 다시 말해 설명하는 제도와 사회의 공외연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우월한 열등자들의 사회는 평등할 것이며, 또 그 사회는 그것이 설명을 들은 설명자들의 사회로 완전히 탈바꿈했을 때 그 불평등을 축소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pp. 25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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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와 유력자처럼 프롤레타리아들은 평등을 인정하는 조건에서만 그 단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평등은 주어지거나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되고 입증되는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들은 그들의 옹호자들과 그들의 상대자들의 지능의 평등을 인정하는 한에서만 평등을 입증할 수 있었다. 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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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 즉 자유의 발현은 다른 곳에 있다. 자유는 이 적대적인 입장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편이 다른 편을 번역하는 평등한 기술에 있다. pp. 25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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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출발점, 모든 정황 속에서 유지해야 할 하나의 가정이었다. 결코 진리는 평등을 위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평등은 오로지 그것의 입증 속에서만, 항상 도처에서 스스로를 입증하는 것을 대가로 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p.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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