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폴 벤느 지음, 이상길 외 옮김 / 새물결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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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Veyne, Comment on écrit l'histoire

역사 서술에서 주인공을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서술이 가능하다. , 총체적인 역사란 불가능하며, 모든 역사 서술은 제한된 관점에서 시도한 제한적 해석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역사적 설명은 하나의 사실을 그것의 원리에, 혹은 하나의 이론을 더욱 일반적인 이론과 관련시켜 설명하는 유형의 설명이 아니라 내가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줄게. 그러면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라는 유형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역사가의 입장에서 설명이란 줄거리의 전개를 보여주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가는 줄거리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인간의 줄거리이지, 예컨대 지리학적 드라마의 줄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동기수단동력 역시 인간적이다.

역사가에게 사건은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그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거나, 또는 사건의 잘못 알려진 형상이다.

역사가는 한데 어울려 효과를 생산해내는 원인들을 하나씩 가려내지 않는다. 그는 에피소드들이 잇따르며, 여러 요소와 행위자들이 그들 행위를 접합해내는 이야기를 펼친다. 이 에피소드들 가운데 하나를 별도로 고찰하면서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유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나름대로 편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줄거리를 원인이라는 이름의 토막들로 절단하며 즐기는 것은 담론의 수준에서만 가치 있으며 그런 일은 학교 숙제로나 적당하다.

모든 역사적 이야기는 흩어져 있는 원인들을 인위적으로 잘라내어 만든 줄거리이며, 무엇보다도 인과적이며 이해 가능한 이야기이다. 다만 그것이 자아내는 이해는 어느 정도 심화된 이해를 낳는다. ‘원인의 탐색이란 사실을 더욱 통찰력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며, 사건적인 측면들을 규명하는 것이며, 만화에서 심리소설로 이행하는 것이다.

比較史는 역사학의 특수한 변종도, 방법론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發見術이다. (동일점과 차이점을 통해 사건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우리는 비교사의 저작과 그렇지 않은 역사서 사이의 차이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前者의 경우 고려되는 지리학적 틀이 좀 더 크다는 정도다.

역사적 설명은 법칙 정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인과적이다. 그것은 인과적이므로 일반적인 것을 내포한다.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은 再發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어떤 조건 아래서 再發할 것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역사학은 사건이 어떻게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그것은 사과가 나무에서 어떻게떨어졌는가를 이야기한다. 이 사과는 잘 익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일어서 사과나무가 흔들렸다. 사과가 왜 떨어졌는지를 폭로하는 것은 과학이다. 사과가 어떻게 해서 떨어졌는지 아무리 상세하게 역사를 기술한들, 발견되어야 하는 숨겨진 법칙인 重力을 우리가 거기서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는 간접화법의 가치판단이며, 구체적인 다원성을 추구한다.

17세기 영국사의 전문가이기도 한 어떤 역사가(P. Laslett)는 제 동료들에 관해 이렇게 불평했다. 이들은 “17세기에 대해 아무런 유보도 없이 사회계급을 이야기했다. 부상 혹은 몰락하는 계급을 말하면서, 그들은 머릿속에완전히 성격이 다른 갈등을 떠올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 ‘민족이나 계급과 같은 개념은 조심스럽게 적용서술사용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추구해야만 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전쟁과 같은 개념은 내란을 비롯한 다른 유사 개념과 어느 지점에서 區分線을 그을 것인지를 고민하며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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