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눈동자 3
김성종 지음 / 남도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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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옥과 흑인 미군 죠니의 관계가 인종주의적이고 섹슈얼리티하게 묘사됨.

일본군위안부제도라는 성폭력 피해자인 여옥의 트라우마에 대해 서술자는 잘 이해 못하는 듯. 성폭력 묘사는 관음증적.

 

여옥이 미군의 스파이가 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위안부 출신이라는 것. 위안부 피해자의 피해가 손쉽게 증오와 원한으로 대체됨. 트라우마의 자리가 없음.

 

스파이 교육의 시작은 영어교육. 식민지시기 영어를 한다는 것의 의미.

 

미군과 일본군을 비교하며 미군의 우수성, 체계성, 과학성 등을 상찬.

 

한 아기의 어머니이자 첩보원으로서 미군의 첩보원 활동을 시작하는 여옥. -->‘어머니임이 신뢰감을 갖게 하는 조건이 되는 듯.

 

하림의 첩보 작전 시작.

동료 오세환의 동생 명희-->하라다 대위를 유혹하고 정보를 뺏어 내는 데 이용.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전술로 사용함. 명희에게 하라다와의 동침을 권유.(이놈......)

 

일제 경찰, 헌병, 특무기관에서 고문을 수사의 기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나옴. 고문금지조약은 84년까지. 한국에서 식민지시기 이후부터 공권력에서 고문과 관련된 교육? 같은게 있었는지 궁금.

 

중간중간에 유대인 학살에 대한 언급과 폭력에 대한 생각.

 

하대치는 팔로군이 되어 항일유격전에 참가함. 모택동 덕후가 되었다고 서술됨. 중국 공산당에 대한 영웅화에 도취되었다고 묘사. 게릴라가 되는 하대치.

팔로군의 일본군에 대한 선전전 내용-고향에 대한 그리움 자극. “천황도 같은 인간입니다라는 문장이 실제로 사용되었을까? 라는 의문. 전쟁 말기 일본군의 탈영 자극.

중국의 토지개혁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 주로 공산권의 정책이나 사람들을 비인간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으로 묘사.

중국에서의 혁명을 하대치가 목격하고 학습함-->조국에 적용하기 위해?

 

일본 육사를 나온 나카이 중좌. 조선인. “술집 접대부에게 홀랑 빠져있다고 나오는데 술집 접대부-일본군위안부를 혼용해서 쓰고 있는 것일까?

 

무리하고 용맹스러운 하대치의 팔로군에서의 활약이 묘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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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눈동자 2
김성종 지음 / 남도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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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말기의 상황.

전쟁터의 폭력적이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 일본군이 강간을 일삼는 장면을 묘사할 때, “남성이 야만화될 때 제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강간이다”(16)라는 식으로 전시성폭력을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설명이 가해자들의 변명거리가 되기도 하는 듯.

-->전시성폭력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과 규정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함.

설명이 시작되는 순간, 전시성폭력이라는 전쟁범죄가 납득 가능한 어떤 것으로 둔갑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듦.

 

피해자들의 연대 모습과 약한자들의 공동체(?) 사이에서 출구없는 관계적? 폭력이 가중되는 상황의 묘사. 예를 들면, 강간당한 일본인 여성을 조선인 위안부가 돌보자, 다른 일본인 여성이 민족차별적인 말을 하며 괴롭힘.

 

동굴 속에서 미군을 피하기 위해 자결하는 일본인들. 그 사이에서 조선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여옥.

-->동굴에서의 자결 장면은 오키나와가 생각나게 함.

 

일본군에게 자수하라고 권하는 스피커는 일본인. 미군이 일본인들에게 뿌리기 위해 만들었던 삐라의 내용이 나옴. “일본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천황에게 더 이상 속지 맙시다!”(38) .

-->이 시기 미군의 삐라는 일본 군인들에게 새로운 일본의 주체로서 호명하는 삐라를 뿌렸다고 함. 한국전쟁때는 그렇지 않았음. 

 

여옥이 미군들과 만나는 장면. 북한 피해자 사진을 떠올리게 함.

 

사이판에서 미군에게 투항한 하림.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 하림과 여옥의 만남.

 

김기문. 공산주의자가 일본군을 탈영한 대치를 학습시킴. 노일영이라는 우익 암살을 시도하기 위해 윤홍철에게 접근. 윤홍철이 여옥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됨. 자신이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인 여성 살해 시험.

 

포로수용소의 여옥. 대치의 아기를 임신 상태. 흑인 병사가 잘해줌. 하림도 잘해줌. 미군들의 도움으로 아기를 낳음. 여옥이 위안소에서 모아온 돈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됨. 포로수용소 안에서도 일본인-조선인 차별.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되는 여옥. (피곤...) 

 

위안소에서 나와 포로수용소에 있는 기간에도 여옥은 하림이 좋아하는 대상이 되거나, 미군 병사 조니가 좋아하는 대상이 됨. 출산은 성스럽고 원시적으로 묘사되어 있음. 이런 모든 것들이 여성혐오적 서사를 이루는 듯. 아들을 출산한 여옥.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이미지를 가지면서 조선인 군인과 미군에게 대상화됨.

-->출산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음. 뭐지? 이거? 하는 느낌? 전쟁과 '어머니'는 무엇인가... 대치의 아들, 즉 조선인의 아들을 낳은 '어머니'로서 귀환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인가...

 

세균전을 준비하던 장소를 미군에게 알려주었던 하림. 통역으로 근무하게 됨. 미군은 조선에 대해 일본의 식민지라는 것밖에 모른다고 말함.

유대인 미군 아얄티와 조선인 하림이 동병상련을 느낌. 제노사이드. 하림은 조선독립군을 지원하는 미군OSS의 임무를 받음. 첩보전 교육을 받음.

-->'제노사이드'로서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각. 

 

최대치는 노일영을 암살함.

제남을 지나가는 홍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

남의사(藍衣社)에 대한 내용. (비밀조직. 백색테러, 숙청, 암살. 377월 중일전쟁이후 삼민주의 청년단으로 흡수통합되었다고 함.)

-->대치가 잔인하고 강인한 인물로 묘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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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과거 - media, memory, history - 과거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기억되고 역사화되는가?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김경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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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1989년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끝났다고 말해지는 90년대 중반 이후의 역사 재현과 문화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1. 과거는 죽지 않는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이 책을 역사와 해후하는 다양한 형태를 탐색하고 역사를 표현하는 매체가 과거를 이해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2006년 그는 역사의 위기에 직면한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전 세계적 상황(역사교과서 문제, 오스트레일리아와 원주민간의 역사, 독일의 전쟁범죄와 미국의 베트남 학살 사건에 대한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다양한 미디어의 시대에 과거에 대한 지식을 다음세대에 전달할 책임에 관해 얘기한다.

 

그는 1996년 발족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과거의 이해를 수정하고자 할 뿐 아니라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공공의 의식 속에서 말살하고자 하는 말살의 역사학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이 만든 새로운 교과서는 역사적 사건을 선택하고 제시하는 과정에서 역사학의 근본 문제는 다루지 못하고 있으며 특정한 사건이나 문헌에 관한 사소한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올바른서술을 제시하는 실증주의에 빠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스즈키는 이들이 의사 포스트모던주의를 차용하여 과거에 대한 민족주의자의 관점을 보강하고자 하기 때문에 더욱 까다로운 문제임을 지적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1945년 이전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주의와 군사침략에 대한 책임의식으로부터 일본인을 해방시키려는 뚜렷한 의도를 갖고 있다. 이와 완전히 대립하고 있는 것이 탈식민주의적 서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재와 과거가 역사적으로 결부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스즈키는 교과서를 둘러싼 논의가 모두 교과서에만 집중되어 있지만, 역사 인식을 결정하는 것은 다양한 미디어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매스미디어의 서술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형태와 힘을 고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역사 연구는 해석으로서의 역사이기도 하고 과거 살았던 사람들과의 정서적 공감을 이끄는 동일화로서의 역사이기도 한데, 이는 역사적 지식을 창출하고 전달하는 미디어의 변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기념비, 사적, 박물관 전시 등) 스즈키는 동일화로서의 역사와 해석으로서의 역사에 현재 개인들의 삶이 연루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대중미디어를 통해 현재의 사람들이 과거를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그는 역사지식의 전달이 역사적 사건, 그 사건의 기록이나 표현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것을 읽은 사람들 간의 관계의 연쇄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라고 정의한다. ‘역사에 대한 진지함에는 지속적인 대화가 수반되고 이는 말살의 역사학과 싸우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스즈키는 대중미디어가 역사에 대한 진지함에 개입하는 형태를 두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대중미디어는 기억의 전달형태를 결정한다는 것, 둘째로 대중미디어에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나 이미지에 폭넓게 접근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2. 상상할 수 없는 과거: 역사소설의 지평

루카치는 역사소설은 과거의 한 시대에 대해 때와 장소의 구체적인 묘사를 제공해 총체적인 사회의 언어로 묘사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한 바 있다. 역사문서에는 역사가에 의한 과거의 해석이 서술의 전면에 나타나지만, 소설에서는 독자의 주의가 오로지 등장인물의 운명에 쏠려 이어 배후의 역사해석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하게 된다. 역사소설의 풍경에는 배제에 의한 존재와 부재가 빚어내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역사소설에 중국이 등장하는 것은 다수 있지만, 조선이 역사적 풍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드물다. 이는 일본 작가들이 식민-피식민의 관례라는 성가신 반향 없이 조선의 과거를 다루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즈키는 역사소설과 그것을 읽는 독자가 과거를 보는 시각 사이에 복잡하고 불안정한 관계가 있음을 얘기한다. 소설(novel)은 새로움(novelty)에 사로잡히는 세계에 출현했고, 새로운 풍경, 새로운 시점, 새로운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은 역사적 상상력의 지평을 바꾸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나 장소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잠재적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문화생산이 지닌 경제원리, 즉 인쇄자본주의, 출판사와 서적유통업자, 팔릴만한 주제와 형식이 소설의 생산을 지원한다는 제한을 잊을 수 없다. 이러한 제약조건은 과거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네트워크와도 관계된다. 사람들이 어떤 시대나 어떤 사건에 대한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가는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역사 지식이나 박물관에서 본 전시물, 부모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영향을 받으며,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역사생산 미디어의 영향도 받기 쉽다.

 

3. 렌즈에 비친 그림자: 사진이라는 기억

스즈키는 2차대전 당시 독일 병사들의 전시범죄 사진과 난징대학살을 설명하는 당시의 사진에 대한 날조 논란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날조라는 개념은 카메라가 직접 리얼리티를 비춘다는 것에 대한 신뢰와 어떤 매개가 있다면 부정이 틀림없다는 부정의 가능성 내포하고 있다. 사진은 동일화로서의 역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이는 사진의 이미지가 감정의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특별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진의 진위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다루어야 할 문제는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사진을 보는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고려이다. 야마하타 요스케는 나가사키의 원폭 이후 나가사키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는 피폭 체험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보는 이의 마음속에 불러 일으키는 감정이 원폭투하의 역사적 원인과 해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밀고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사진가는 기록해야 한다는 중요성과 개인의 고통이라는 사적 여역을 침범한다는 위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취해야 할까? 이에 대해 스즈키는 렌즈 너머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 역사적 순간과 표현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하고 있다.

야마하타 요스케의 일생에 걸친 사진 작업을 살펴보면 원폭이라는 대참사를 마주친 충격과 동정을 전달했던 작업과 전후 천황가를 찍은 사진으로 일별할 수 있다. 그가 전후 천황 일가를 찍은 사진에는 군사지도자 히로히토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가정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스즈키는 야마하타가 찍은 적 없는 중국에서의 일본군의 잔학행위와 생생한 나가사키의 공포, 전후의 평화를 얘기하는 히로히토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다지 숙고하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형성하는 일은 사진가와 사건,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넘어 역사를 제시하기 위해 사진을 뽑고 꼬리표를 붙여 배열하는 편집자나 전시자의 역할, 전시를 보고 과거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구축하는 보는 이의 역할을 두루 포괄하는 일이다.

 

2차대전 직후에는 전쟁과 관련된 사진들이 정리되고 편집되는 시기이기도 했었다. 전쟁의 엄청남, 전후 재건의 고통과 살아남았다는 경험이 시각적으로 정리되어 회상하려는 욕망이 생겼던 것이다. 이는 대량소비와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공통기억을 산출했고 연대기식으로 편집되어 국민의 집단 가족 앨범을 출간하는 기반이 되었다. (: 마이니치 신문사의 쇼와 30년 기념 사진집, 아사히 신문사의 <전후 15년사 앨범> ) 이런 사진집들은 개인이나 가족의 기억을 나라의 기억과 연결시킴으로써 기억의 국민총동원과정에 공헌하여 가족의 이야기를 국민사회라는 큰 이야기 속에 자리잡게 한다.

이러한 기억의 동원은 기억 배제의 과정이기도 했다. “옛날의 우리에는 국가의 과거에 대한 바람직한 서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진들은 배제/추방 당하기 때문이다.

이 챕터에서는 1955년에 에드워드 스타이건이라는 미국 사진작가가 기획한 인간 가족전이 전시 장소와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전시가 어떻게 다르게 편집되었는지에 대해 다룬다. 이 전시의 구성과 편집 과정에는 스타이건의 역사적 판단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원폭과 관련된 뉴욕 전시에는 나가사키의 어린 아이가 주먹밥을 쥔 사진을 제시하여 인류 공통 경험에 대한 인도주의적 메시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화된 메시지는 보는 이들에게 반전과 전쟁 폭력에 대한 책임을 제고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도쿄에서 인간 가족전이 전시되었을 때에는 뉴욕에서는 전시 되지 않았던 야마하타의 원폭으로 파괴된 도시의 이미지가 전시되었다. 천황도 이 전시를 보러 갔었는데, 그 때 이 사진이 천황의 눈에 띄지 않게 은폐되었다. <아사히 그래프>에서는 검열로 삭제되었던 사진이나 전시물을 게재하면서 천황폐하, 요시 전하, 보십시오라는 표제를 붙였다. 이 사건은 사진과 문자, 기타 텍스트가 어떻게 구성되는지의 과정의 문제가 바로 사진의 진지함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여주는 대상, 거기에 부재하는 것, 감추어진 것이 다같이 중요하다. 이미지는 전쟁의 고통과 무시무시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보는 이의 눈길을 책임에서 회피하도록 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4. 활동사진: 역사의 영화화, 기억의 공동체

영화도 사진처럼 동일화라는 강력한 감각을 낳지만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스틸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질적으로 다르다. 정지된 영상은 기억에 강하게 눌러붙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동영상은 감정이나 표정의 움직임을 소리와 결합함으로써 눈물이 흐르는 감동을 자아낸다.

영화는 소설처럼 과거를 재현하여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리얼리티와 재현은 은밀히 뒤섞여 있다. 사실적인 것과 재현된 것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의 시작부터 논의를 불러일으켜 왔다. 관객에게 영화는 역사적 리얼리티에 몰입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 리얼리티를 과거 사건에 대한 특정한 해석의 전달이기도 하다.

스즈키는 과거를 재현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죽은 자를 대신해 말하는사람들의 증언에 의지한 영화의 하나로 하라 가즈오의 <가자가자 신군>(1987)을 들고 있다. 영화는 역사를 증언하는 증인의 목소리, 얼굴표정, 표정의 변화, 몸의 움직임 등을 전달한다. 오쿠자키 겐조는 뉴기니아 전선에서 귀환한 일본군 병사인데 전우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좇는 과정이 영화에 담겨 있다. 전쟁중 대장이 부하를 살해하거나 동료병사와 민간인을 살해하고, 굷주리고 인육을 먹었던 일이 실제 당시 전우들의 증언으로 영상화된다. 영화는 관객에게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생각하도록 한다. 오쿠자키는 잔학행위에 책임이 있는 상관들을 찾아가지만 이들은 모두 노인이 되어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관객은 이러한 장면에서 천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천황은 오쿠자키의 상관들처럼 전쟁 중에 수행한 역할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추궁당한 적이 없다. 한편 책임자를 추적하면서 균형을 잃어가는 오쿠자키는 그 자체가 전재의 상처를 증거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동일화로서의 역사와 해석을 위해 영화가 다른 역사 표현 미디어와 어떻게 공존하고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데 스즈키는 스필버그의 <아미스타드>를 들어 살펴보고 있다. 아미스타드 사건은 공해(公海) 상에서 이루어진 노예매매의 합법성이라는 극히 협소한 논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이지만 영화에서는 인종 차이를 초월한 국민적 아이덴티티 웅변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판사들이 다수 아미스타드 사건의 판사들이었음이 삭제된다. 스즈키는 과거에 대한 지식 탐구를 위해 영화를 이용할 때 모든 영화는 픽션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도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추구하는 일이란 결국 사건과 필름에 기록하는 사람, 영상을 보고 해석하는 관객 사이의 관계임을 말하고 있다 .

 

5. 마음에 새겨진 이미지’: 만화가 보는 역사

만화는 영화가 시각화하기 어려운 대참사의 비극을 시각적으로 상상하여 각색하는 힘을 갖고 있다. 스즈키는 아우슈비츠의 이야기인 아트 슈피겔만의 <마우스>와 나카자와 게이지의 <맨발의 겐>을 함께 다루고 있다. <맨발의 겐>은 히로시마의 원폭투하를 다양한 각도에서 동시에 묘사하는 작품이다. 고난을 겪는 겐, 패전국 일본의 빈곤과 착취, 원폭증 환자의 증상과 그들을 향한 두려움과 편견의 시선,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조선인에 대한 중층적인 차별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거론된다.

<맨발의 겐><마우스>는 전쟁의 잔혹한 묘사 때문에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 음울하고 잔혹한 그림은 이전에 본 다른 이미지들을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끔찍하게 묘사된 전쟁의 장면을 호러나 모험 에로티시즘 만화의 장면을 연상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역사표현 매체로서의 만화의 중요성과 복잡성을 확실히 보여준다.

역사만화는 독자층이 넓은 반면, 노골적이고 극적인 묘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큰영향을 준다. 역사에 대한 해석을 구체화 하는데 만화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만화 속 그림의 발전 추이, 만화의 생산과 유통, 그림의 생산과 소유, 설명을 담은 화면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만화책의 정치경제학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만화는 프로파간다와 상업광고 예술이 만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만화는 대중적인 시장이나 대량생산 기법뿐 아니라 대중동원을 위한 이데올로기 기술로 추진력을 얻어 번성했다. 특히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만화의 황금기라 불릴 정도였다. 냉전시기에 만화는 정치적 문맥에서 동원되기도 했다.

1950년대는 역사표현 미디어로서의 만화의 가능성이 새롭게 열린 시기였다. <최전방 전투><두 주먹 불끈 쥐고>는 역사를 모험적으로 표현한 미국 만화였다. 이 만화들은 하비 쿠르츠면이 편집하고 서스펜스와 호러 만화 출판으로 유명한 EC사가 발행했는데 대중오락 시장을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최전방 전투>의 출판과 <두 주먹 불끈 쥐고>의 창간은 한국전쟁과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54<최전방 전투>가 폐간하게 되었을 때 출판사는 “<최전방 전투> ......전사하다! 최전방은 죽었다. 한국에서 벌인 교전에서 해피엔드를 거둠으로써 불운하게도 살해당했다.”라고 했다. 두 잡지는 모두 한국 전쟁 이야기에 많은 공간을 할애했고, 로마제국이나 15세기의 아쟁쿠르 전투 등 전쟁사를 기반으로 한 만화들이었다. <최전방 전투>에는 죽은 도시라는 작품과 파편이라는 작품이 한국전쟁을 민간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원자폭탄!’이라는 작품도 나가사키의 원폭을 일본 시민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쿠르츠먼은 민족주의적 영웅주의 이야기로 전형화되어 가던 역사만화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의 시각적 가능성을 변용시킬 기술혁신을 이끌고 있었다. 영화의 기법을 만화로 빌려온 데즈카 오사무의 <신보물섬>(1947)<우주소년 아톰>등과 같은 만화는 20세기 후반의 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60년대와 70년대 데즈카 오사무의 역사만화는 장편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같은 형식이 복잡한 역사적 주제 탐구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다.

일본 만화는 인기가 높아 전후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에 깊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일본 만화가 역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별로 많지 않음을 스즈키는 지적하고 있다. 6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전쟁 영웅주의에 기초한 팬이 늘었는데 치바 데쓰야의 <전투기 독수리>는 전투기 세부를 꼼꼼히 묘사하고 영화적 수법으로 공중전을 재현해 인기가 있었다. 이 만화는 특공대 이야기를 묘사하면서 전쟁의 의미를 냉소적 어조로 표현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의 이념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교육적 논픽션 만화가 실패했지만 일본에서는 <만화판 일본사> 등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만화는 말과 이미지의 결합관계가 사진보다 훨씬 심오하고 이미지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좋다-싫다는 감정을 자극하기 쉽다. 또한 만화의 시각적 특질은 과거의 상상풍경을 보는 시점(어린이의 시점, 파일럿의 시점 등)이 중요한데, 이는 관객에게 집단적 우리를 규정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방향성을 가진 시선을 우리쪽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선택하는 것은 만화가이기도 하다.

문제적인 역사만화 작품으로는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고마니즘 선언>이 있다. 이 작품의 초기에는 1930년대 미국만화의 배트맨과 같이 약자 편에서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를 띠면서 옴 진리교단과 피차별 부락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 다룬다. 그러나 이후 자기가 응원하던 불쌍한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에 경도되었다고 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들에 대해 불쾌감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가가 한국에서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묘사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공격은 물론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전쟁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한다. 나아가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전쟁론2>에서 일본을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희생자로 표현한다. 이러한 역사 왜곡에 대해 스즈키는 학술적 논문이나 잡지에서 아무리 글로 써도 만화를 보는 독자층에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은 한정적이라고 한탄한다. 고바야시의 만화는 점점 더 르포르타주나 자료 스타일로 재현되어 독자에게 믿을 수 있는 정보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더욱 문제이다. 그는 전전의 전체주의 예술을 상기시키는 기법을 현대 대중문화의 비주얼 기법과 마케팅에 접합시켜 광법위한 독자에게 전달시킨다. 그리하여 그의 만화를 읽는 사람은 국민과의 정서적 동일화를 고양하고 국민을 작가의 이미지가 제시하는대로 개조해버린다. 고바야시 만화를 읽는 독자-일부 여성 포함-는 그의 작품을 통해 단순한 일본이 아닌 특정한 일본, 남자이고, 중년으로, 위기에 봉착한 자아의 어깨를 다시 한 번 쫙 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일본과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대량으로 판매되는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써버리는 소비주의를 넘어 적극적이고 비판적으로 관여해야할 것으로 다루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만화는 물론 역사적 표현을 산출하는 다른 작가도 시각적 상상력을 잘 활용하면 깊은 상처를 남긴 과거의 사건을 외설적이거나 저질이 아닌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고 나아가 완곡하면서도 기대하지도 못한 대항 이미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해야할 일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생각지도 못한 이미지 또는 공백, 어긋남, 침묵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를 고민하는 일이다.

 

6. 랜덤 액세스 메모리: 인터넷 미디어가 생산하는 역사

이 장에서는 과거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인터넷의 특이성과 가능성에 대해 고찰한다. 인터넷은 원폭 학살의 위협이 낳은 전형적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69년 미국국방성 고등연구계획국에서 초기 형태를 갖추고 핵공격 시에도 통신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네트워크로 구상되었다. 이후 컴퓨터 네트워크가 비군사적으로 쓰이면서 73년 국방성은 개방적인 인터넷 프로젝트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80년대에 새로운 컴퓨터 언어가 개발되어 문외한에게도 접속이 쉬워지고 90년대에는 일반적이 되었다.

스즈키는 인터넷의 특징이 무국적성이라고 하면서 디지털이 국경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지식을 열어젖힐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도 언어장벽과 빈부격차에 따른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를 직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면 다른 역사관을 제시하는 복수의 사이트가 존재한다. 따라서 인터넷을 이용할 때는 누가 쓴 것인가를 확인하고 어떤 입장에서 정보나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7. 우리 안의 과거: 미디어메모리히스토리

미디어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력을 부정하거나 개탄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문학연구나 영화연구처럼 각각의 미디어를 개별적으로 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고 공명하여 우리의 역사관을 성립시키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지식은 단지 표현일 뿐 아니라 감정과 행동을 형성하며, 세상에서 행동하는 체험에 의해 만들어진다. 역사에 대한 진지함은 우리 안의 과거, 우리 주위를 둘러싼 과거의 존재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많은 표현을 비교하고 미디어와 메시지의 관계를 이해하고 다양한 미디어를 창조적으로 사용하여 과거에 대해 알고자 하는 충동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 지닌 극히 핵심적인 측면이다.

역사 교육과 연구는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고등교육의 사유화 경향이 불러오는 중압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역사에 관한 지식이 널리 소통될 수 있는 방법으로서 다양한 미디어의 조합과 이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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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삐라로 묻어라 - 한국전쟁기 미국의 심리전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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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녁때였다.

내 주위를 애들이 맨발로 하얀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새된 소리를 마구 질러대면서 공중을 날고 있는 하얀 삼각형 모양을 잡으려고 벼룩처럼 날뛰고 있었다. 공중에 떠다니고 있는 하얀 것은 종이로 접은 비행기였는데, 아이들은 종이비행기가 땅에 흩날려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다 못해 남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뛰어올라 빼앗으려는 바람에 몇 번이나 땀내 나는 몸을 나에게 부딪쳤다.

그렇게 날뛰면서도 아이들의 눈은 하나같이 그 농기구 창고 이층을 향해 있었고, 아무렇게나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는 사람의 하얀 팔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흙먼지로 불투명해진 창 중 열려 있는 창 하나의 어두운 내부에서 하얀 팔은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그러나 공중에는 늘 두세 개의 비행기가 떠 있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잇달아서, 때로는 종이비행기 두 개를 한 번에 날려보내고 있었다.

종이비행기는 여름해가 진 직후 새의 잿빛 깃털처럼 부드럽게 부푼 공기를 떠다니며 천천히 크게 선회하면서 아이들이 뻗치고 있는 팔들 사이를 빠져나가 마른 땅 위에 떨어졌다.”


<벽화>의 첫 장면을 보면, 흩뿌려지는 종이와 비행기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한국전쟁 발발 후 미 육군 장관 프랭크 페이스는 적을 종이로 묻어라고 지시했다. 이것은 적을 삐라로 묻으라는 뜻이었다. 유엔군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 살포한 삐라는 25억장 이상으로 이는 한반도를 스무 번 뒤덮고 지구를 열 바퀴 돌고도 남는 양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삐라가 처음 등장한 것은 제1차대전 때였고 2차 대전 때에는 더 많은 양이 전선에 뿌려진다. 한국전쟁 때 뿌려진 삐라는 이러한 경험치 위에 만들어진 것이다. 총력전이라 일컬어지는 근대전은 인간을 동원하고 인간을 학살하는 전쟁이었다. 따라서 심리전은 이러한 인간의 전쟁에서 인간의 심리를 자극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일으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이 근대전의 특성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심리전은 전쟁 중일 때 뿐 아니라 전후에도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심리전은 전후 사회를 전시사회로 조직하고 재생산하는 기제였다.


이임하는 삐라들 속 한국전쟁이 한국을 자주통일 자주국가로 세우기 위한 유엔의 끊임없는 노력의 기록이다로 시작하여 친애하는 한국시민들이여유엔은 여러분의 협력으로 한국의 통일과 재건을 위하야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끝나고 있다고 정리한다. 문제는 이러한 서사는 모두 북한의 군인과 민간인, 중국군을 대상으로 생산된 삐라 속에 들어 있는 거이었는데, 어느새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교육내용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심리전 실험장이었고 이를 연구한 로빈은 한국전쟁 때 마련된 심리전이 1960년대 베트남 전쟁, 1990년대 걸프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북한의 선전은 사회주의 선전선동론을 기반으로 첫 대상은 자국민이었고 제국주의, 식민주의, 노예, 독립, 자유, 평등, 민주주의, 평등하게 사는 인민, 잔학행위, 자유, 민주적 개혁, 내전, 세계 평화와 안전, 민주적 진보적 운동, 사회주의따위를 선전 주제로 삼았다.


앞서 언급한 적을 종이로 묻어라는 지시처럼 미국의 심리전은 자국민이 아닌 전장의 을 대상으로 했고, 전후에도 변함이 없었고, 아군 선험적으로 선한 존재로 상정되었다. 민주주의, 자유, 자본주의, 개인, 평등을 설명하는 방법이 아닌 공산주의라는 적의 이미지와 호명을 생산했다. 냉전세대가 진리로 믿었던 이미지와 상징은 대개 심리전에서 비롯되었다. 삐라를 포한한 심리전은 인종, 계급, 성별로 사회를 위계화하는 익숙한 틀과 냉전에 걸맞은 반공주의와 결합했고, 증오와 두려움을 극대화한 이미지를 생산했다.

 

삐라에서 재현된 여성 이미지는 후방에서 남편이나 아들을 기다리는, 보호받는 여성이자, 외국 군대의 강간의 대상으로 재현되었다.


심리전의 이미지, 상징, 호명은 선-악 구도로 세계를 분할하고 어둠-, 결박-자유, 죽음-부활, 부패-재생 따위의 이분법을 활용했다. 구체적으로 유엔-공산세계라는 호명이 자주 불리게 되었다. 삐라에서는 유엔의 목적을 평화는 유엔의 한국에 대한 군사적 목적이다. 통일은 유엔의 한국에 대한 정치적 목적이다. 재건은 유엔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목적이다로 정리한다. 실제로 신생기구인 유엔은 한국전쟁으로 명실상부하게 세계기구로 발돋움하게 된다.


심리전 프로그램은 포로들의 교육 자료로도 활용되었다. 이러한 포로 교육 프로그램은 한국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환된다. 미군정기 공민교과서는 사회운영 원리인 자유, 인격, 민주정치, 정의, 노동, 사회와 관련된 항목을 가르쳤는데, 한국전쟁 이후에는 도의 교과서와 1960년대 도덕교과서에서 반공이 3분의 1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을 시키는 교사 지침서에는 적개심, 신고정신, 무장정신을 불러일으키도록 제시하였다. 또한 교과서 디자인도 삽화가 삐라의 대본과 같은 이미지를 닮아 있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한국사회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교육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정치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데, 이러한 학습 방법은 자국을 선험적인 완전한사회로 명시했던 한국전쟁때의 심리전을 닮아 있다고 이임하는 지적한다. 심리전은 송환 포로에게 사회 운영 원리를 가르치기보다 선험적인 국민의 도리와 의무만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임하는 한국전쟁 때 뿌려진 1억장 이상의 삐라의 생산과 살포가 과잉생산과 소비를 닮았다고 지적한다. 냉전은 과잉생산과 소비를 재생산하는 촉매였으며 미국과 소련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냉전을 만들고 소비하는 중심이었다. 이러한 냉전은 무한경쟁과 과잉생산, 과인소비의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잉태하고 있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1억장의 삐라로 뒤덮였던 한국이 신자유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여기에서 찾고 있다. 한국이 아직도 냉전의 틀 속에 갇혀 냉전과 결합된 신자유주의는 왜곡되고 극단적 형태를 산출하는데, 경쟁, , 과잉생산과 소비가 최고 가치이기 때문에, 예전에 정의라고 외쳤던 가치와 윤리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이임하는 말한다.

 

2.

적을 삐라로 묻어라5개의 장으로 나누어 한국전쟁의 삐라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미국의 심리전 정책과 기구, 2장에서는 극동사령부와 8군사령부의 심리전 매체, 3장에서는 삐라 내용의 분석과 삐라 속 상징, 이미지, 기호에 대해서, 4장에서는 삐라의 상징, 이미지, 재생산 구조, 5장에서는 심리전의 상징, 이미지, 기호가 한국사회의 신념, 윤리, 규범, 가치로 전환되는 과정에 대해서 논한다.

 

1장의 첫 부분은 ‘1950625일 평온한 일요일 아침, 한국군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침략당했다는 한국전쟁 발발의 서사로에서 시작한다. 이임하는 이 서사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라는 의미가 미국이 전쟁이 시작될 때 심리전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다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차 대전 때 미국은 선전, 사상전이란 용어를 심리전으로 바꾸어 전장에서의 선전, 우방국 군대를 위한 이데올로기 교육, 국내에서 사기와 규율 진작과 같은 전시 문제들에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을 응용하는 것으로 확장시켰다. 나치의 선전이 대중동원을 위해 자국민을 향한 것이었다면, 미국의 사상전은 적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심리전은 표면적인 적대행위가 종식된 뒤에도 계속된다는 원칙을 따르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매카시즘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은 군사적 필요를 넘어 심리전의 정치 문화 이데올로기적 잠재성을 이해하고 전후 일본에 대한 점령 정책의 일환으로 심리전을 계획한다. 이것은 심리전이라는 것이 지배와 통치를 전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심리전의 목표는 빈곤과 종속, 고질적인 부패라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던 급진적인 사회운동의 열망을 좌절시키는 데 있었다. 한국전쟁 동안 미국은 정치가 아닌 개인의 행동에 초점을 두어 심리전의 표준적 교의를 만들어 제공했다.


1장에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의 선전기구였던 전략활동국(OSS)와 전쟁정보국(OWI)가 중앙정보단(CIG)로 바뀌고 19477월 중앙정보부(CIA)로 연속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전쟁 동안 모든 심리전은 극동사령부의 정책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총사령부 특별참모 부서인 심리전부(PWS, 1951년 승격)는 한국전쟁 심리전의 총책임 기구로 기획정책과 첩보과, 작전과, 특수제작과로 구성되었다.


심리전의 형식과 내용은 모두 극동사령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1950년 극동사령부 심리전과(PWB)는 심리전의 4가지 원칙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지침은 전쟁 초기 심리전의 목표가 미군의 전쟁 개입을 정당화 하는 데 있었음을 알려준다.

 

첫째, 언제나 미국의 의견으로 말하지 말고 유엔으로 말하라.

둘째, 내전이 아니라 침략에 따른 충돌로 다루어라.

셋째, 이데올로기적, 이론적 용어가 아닌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눈에 띄는 용어로 공산주의를 공격하라.

넷째, 단순한 표현과 구체적 주제에 집중하라. 곧 쉽게 표현하라.

 

1950103정책지침 10는 공식 발표가 있기까지 38선을 넘는 문제를 거론하지 말도록 하는 등 심리전의 정책을 살펴보면 미국의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을 알 수 있다.

 

2장에서는 삐라의 제작 과정과 삐라의 살포, 생산 기관에 따른 삐라의 분류와 삐라의 종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삐라는 극동사령부 심리전부와 8군사령부 심리전과, 국방부 정훈국에서 제작되었고, 모든 삐라는 극동사령부 심리전부의 승인을 받았다. 삐라의 문구와 디자인은 선전 대상의 구체적 행위를 불러 올 수 있게 하기 위해 6하원칙으로 구성되었다.


삐라의 살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요건은 첫째, 인구, 둘째, 도로, 철도 연결지역이나 운송 지역과 같은 중요한 지점, 셋째 군사지역이었다.


심리전의 대상은 북한군 점령 지역 안의 남한 민간인, 북한군과 중국군 그리고 북한 지역 민간인이었다. 극동사령부와 8군사령부의 월간 보고서에는 삐라와 이를 소개하는 메모가 함께 딸려 있었는데, 문서에 삐라의 목적, 언어, 번호, 배포대상, 해설, 삽화, 내용 등이 쓰여 있어 삐라의 목적과 내용, 표현방식, 배포 대상까지 알 수 있다. 삐라는 생산기관에 따라 전쟁 초기의 미 공보원과 국방부 정훈국의 삐라, 8군사령부에서 생산한 삐라로 나뉜다.


1950628일에 남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최초의 삐라가 뿌려지고, 북한군을 대상으로 하는 삐라는 195089일에 뿌려진다. 그리고 1953623일 중국과 북한군을 대상으로 뿌려진 삐라가 마지막 삐라가 된다.


낙하산 뉴스2차세계대전 때 일본인을 대상으로 뿌린 삐라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전쟁에서도 사용된다. 그러나 97쪽의 사진을 보면 2차대전 당시의 낙하산 뉴스보다 매우 소략한 소식지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혹독하게 비판당했다.


낙하산 뉴스를 대체할 매체로 <자유세계>가 만들어졌고, 주간 100만에서 200만장 살포되었다. 자유세계와 노예세계로 양분하여 자유세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발간의도를 밝히고 있는 <자유세계>는 유엔 관련 기사, 세계정세, 한국 관련 기사, 전쟁 소식을 주로 실었다. 한국 관련 기사는 정치적 기사보다 사회, 경제에 초점을 두고 의료, 교육, 고아, 피난민 관련 내용이 많았다.


유엔군 최고 작전 책임자였던 마크 클라크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가장 위대한 심리전의 승리는 1952년 초 한명의 전쟁 특파원이 술을 마시면서 제기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작전명이 물라(Moolah)이다. 이는 남한으로 전투 가능한 MIG기를 가져오는 조종사에게 5만 달러를 지급하고 처음으로 오는 조종사에게는 5만 달러를 추가 지급한다는 내용. 실제로 물라작전 때문에 귀순한 미그기 조종사는 없었다. 그러나 물라 작전 이후 미그기 조종사들은 전쟁을 통틀어 가장 적은 비행 횟수를 기록했다. 1953921일에 북한군 중위 노근석이 미그-15를 타고 투항해 10만 달러를 받았지만, 이는 물라 작전의 영향은 아니었다고 한다.


삐라의 대표적인 유형에는 1)안전보장 증명서 2)좋은 대우, 3)도망과 투항, 4)개인의 곤경과 선물이 있다. 안전보장 증명서는 투항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특정 전선에 뿌려져 지역명과 부대 위치를 구체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2차 대전에 일본군에 뿌린 삐라는 열심히 싸웠지만 패했고 앞으로는 일본을 재건할 임무가 있기에 투항하라고 권유하지만, 한국전쟁 때의 삐라는 미군과 유엔이 선한 자이자 정의이기 때문에 투항의 요구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안전보장 증명서 형식의 삐라에는 투항하는 방법은 있으나 투항해야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게 된다.


좋은 대우를 주제로 한 삐라는 포로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리는 삐라로 포로가 직접 고백형 편지를 쓰게 하여 현실감을 높이게 했다.


미국은 심리전의 수행에서 도망과 투항이라는 순차적 절차를 거친다고 보았다. 투항이 돌발적 행위가 아니라 삐라 살포(사기 저하)->공포스러운 폭격->삐라 살포(항복 권유)라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이를 위해 중국군을 상대로 도망경로를 세세하게 알려주는 삐라도 살포하였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게는 일본 사회 재건의 임무를 언급했지만, 한국전쟁 때에는 재건이 유엔사령부의 일이라 여겼기 때문에 북한군이나 빨치산을 재건의 임무로 설득하지 않았다.


미국의 행동주의 사회과학자들은 심리전에서 감성적 개인의 곤경이나 죽음에 호소할 것을 충고했다. 이에 겨울철의 동상, 죽음 새해 선물과 같은 삐라가 활용되었다.

 

3장에서는 적 호명과 이미지 만들기, 성별화된 적, 자유세계와 노예세계, 유엔의 활용, 이데올로기가 아닌 개인의 감정 활요 등의 삐라에서의 적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기호 만들기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미국의 심리전의 일차적 대상은 자국민이 아니라 군이나 민간인이었으므로 적을 어떻게 호명할 것인가, 적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적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심리전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 때에는 미국 행동주의 사회과학자들의 영향이 컸다. 미국 사회과학자들은 심리전 작전명을 이아고’, ‘데스데모나’, ‘나이팅게일등 문학작품에서 빌어다 쓰게 했는데 이것은 심리전의 기호와 상징, 언어 속에 담긴 거짓, 협박, 차별, 폭력 따위를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양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이임하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분석보다 중요한 일은 이런 호명과 재현이고 이의 구조적 재생산이었다고 지적한다. 심리전은 전쟁의 삐라로 시작되었지만 전후에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살아가는 생물이 되었던 것이다.


삐라를 포함한 심리전은 인종, 계급, 성별이라는 익숙한 틀과 냉전에 걸맞은 반공주의가 결합하면서 이루어졌고 그 결과 증오와 두려움을 극대화한 이미지와 호명이 나타난다. 이임하는 태평양 전쟁 시기부터 삐라에 그려진 적의 이미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2차대전 시기에 일본인의 투항을 이끌어 내기 위해 갱스터 군국주의자평화주의자 천황의 대립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는 전쟁의 모든 원인과 책임을 군국주의자에게 묻고 사병들의 정신적 지주인 천황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작전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삐라에 중국은 오랑캐 또는 러시아의 개로 이미지화 된다. 중국 지도자들을 중국 인민이 아닌 소련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존재로 묘사함으로서 중국 군인이 투항할 것을 유도하였다. 스탈린은 죽음의 사자로 이미지화 되었는데, 군국주의라는 말이 일본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극동사령부는 군국주의란 표현을 쓰지 않도록 하였다.


전쟁 전부터 김일성은 꼭두각시, 가짜의 이미지가 대표적이었다. 가짜 김일성을 선전하는 삐라에 대해 작전 연구소는 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김일성에 대한 반대를 가져와야 한다고 지적했고 김일성의 죄악사등을 내용으로 하여 삐라가 만들어 졌다.


한국전쟁 심리전에서는 적에 대한 비인간 이미지(, 문어, 곰 등)를 자주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승만 정권은 좌익세력의 폭력과 비인간성을 강조하면서 좌익세력을 짐승, 비인간, 악마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사회의 레드 콤플렉스와 뿔 달린 괴물과 같은 이미지들이 전쟁동안 그려졌다. 전쟁이 끝나면서 비인간 이미지가 더욱 강렬해졌고 뱀, 늑대, 돼지 따위로 구체화 되었다.

 

삐라를 보면 적이 성별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극동사령부와 8군 사령부에서 생산한 삐라에서 소련과 중국은 자주 she 또는 her로 불렸다. 오랫동안 식민지 개척국과 식민 상대국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젠더와 문화적 구조로 표상되어 왔다. 2차대전 시기에도 미군의 심리전은 일본을 철저히 여성화하였고 전쟁 뒤 미국과 일본 사이의 성적 관계는 정부 스스로 알선자가 되어 미군 병사를 위한 위안부를 모집한 일, ‘도쿄의 꽃 파는 처녀’, ‘긴자의 캉캉 처녀따위로 긴자를 노래한 유행가의 가사까지 갖가지 일상 풍경으로 드러났다.


한국전쟁 때 극동사령부는 소련과 중국을 여성으로 호명했다. 이임하는 여성, ‘그녀로의 호명은 이미 모든 권력구조에서 위계화된 여성성을 소련의 이미지와 결합시킴으로써 소련을 저열하다고 비난하는 동시에 여성성을 침해하는 행위였음을 지적한다.


이임하는 삐라 속의 남성은 자유의지를 갖고 실재하는 사람이라면 여성은 자유의지조차 없는 그져 상징과 대표성으로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상징과 대표성에는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전쟁 뒤 재건 과정에서 권력 구조가 작동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2차대전의 일본 본토의 심리전 전략 중 하나는 남성들의 일을 여성들이 하는 것으로 하여 일본인에게 전통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조장하고자 했는데, 이는 한국전쟁 삐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농촌에 남성이 없어 여성들이 농사일을 하는 그림이나, 남성의 부재로 결혼하지 못하고 아들을 낳지 못해 대가 끓어지리라는 공포 조성, 남자들이 전쟁에 나갔기 때문에 여성들이 무기사용법을 배우는 그림 등을 그 내용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임하는 이런 삐라들이 여성들에게도 똑같은 두려움을 주었을까? 질문한다.


삐라에서 가장 많이 재현되는 주제 중 하나는 아들과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이라고 한다. 가족 간의 연대의 단절과 파괴는 중국군에게 반발을 일으키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고, 후방의 가족들이 공산당의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식량과 거처를 빼앗기고 있다는 위협을 그림으로 실감나게 묘사한다. 많은 삐라들이 가족 속의 남성의 빈자리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다 공산주의 때문임을 강조한다.


삐라에 재현된 성적 판타지는 크게 순결’(정조)연애로 나뉜다. 연애의 여성 이미지는 낭만적사랑을 암시하는 장면들과 순결의 이미지는 강간을 당하는 모습이다. 한국전쟁 심리전은 자국민이 아닌 적 민간인과 군인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스파이 이미지보다 후방 여성을 강간하는 외국 군대나 외국 군대와 놀아나는 후방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한국전쟁의 심리전에서 병사들에게 유엔은 자유를 공산당은 노예와 죽음을 인식시키는 데 삐라의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세계보다 더 자주 호명된 명칭은 유엔이었고 한국전쟁 때 미국 심리전에서의 세계는 유엔과 공산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비 자체가 틀렸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심리전에서 유엔은 정치나 사회체제를 의미했고 자유세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전쟁 초기 국방부 정훈국이 생산한 삐라에는 유엔보다 미국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했다.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가 연상되도록 미국을 미 제국주의자로 불렀기 때문에 이러한 선전에 대응해 극동사령부 심리전부는 미국이 아닌 유엔, 미군이 아닌 유엔군이란 용어를 강조하여 미국의 이익을 염두에 두었다. 미국은 유엔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우위에 서고, 전쟁이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에도 세계 여론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였다.


195011월 유엔의 참전 목적을 알리는 구호는 평화/통일/재건이었는데 이는 중국의 슬로건인 미국에 저항, 북한에 원조, 고향을 보호에 대항한 것이었다. 유엔은 신생 세계기구에 불과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기구로서 힘을 갖게 되었다.


미국은 평화를 이미지화 하는데 두 가지 단상을 이용했는데 하나는 현실에 없는 판타지의 이용, 다른 하나는 군사력에 의한 제압이었다. 행복했던 시절을 이미지화 하고 이를 파괴한 원인에 공산주의가 위치하고 다시 행복했던 시절을 회복시켜주는 쪽에 유엔이 위치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유엔의 군사력이 필요하고 이 군사력은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임을 선전한다. 이러한 방식은 냉전 시대에 평화를 제기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미국과 소련의 끝없는 군비 경쟁을 정당화하는 방식이었다. 평화는 공존이 아닌 상대방을 군사력으로 억누르는 힘이었던 것이다.


통일은 민족의 정통성을 담보하는 핏줄의 강조하여 한민족, 한핏줄, 한 할아버지라는 민족주의를 강조하였다. 투항을 권유할 때에도 같은 형제임을 호소하고 북한군은 동족이지만 중국군은 동족이 아니라 섬멸해야한다고 했다. 이러한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인종차별주의를 강화해갔는데, 비이성적인 한국인이기 때문에 무지하고 공산주의가 퍼져 있다는 등의 동양에 대한 선입견이 반영된 인종주의가 강화되기도 하였다.


미군은 제2차대전 때 일본군에게 재건의 임무를 강조하며 투항을 권했지만, 한국전쟁 때 미군은 북한군에게 같은 피만을 강조해 항복하라고 한다. 한국전쟁 삐라에서 재건은 한국인의 몫이 아니라 유엔의 임무였고 한국인은 구호대상으로 재현된다. 재현의 이미지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재현되는데 유엔의 구호 물자 나열과 약자의 보호와 구호의 이미지이다. 유엔이 한국인에게 구세주로 각인된 계기는 이러한 원조와 재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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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눈동자 1
김성종 지음 / 남도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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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성혐오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치만 큰 줄거리 자체는 납득이 되게 진행됨.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이고 서사적인 구조 자체가 여성혐오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하게 되었다. 이걸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언어로 풀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네. ㅠㅠ

 

여옥의 아버지 윤홍철은 독립운동가. 여옥은 주재소로 잡혀와서 정신대로 가게 됨. 소설 속에서는 위안부용 정신대원이라는 용어 사용됨.

포로를 포로로서 대우하지 않고 사살하는 일본군대.

북경대를 다녔던 학도병 최대치.

동경대 다녔던 학도병 장하림.

고등계 형사가 민간인의 집을 감시하고 성폭력을 행하거나 해서 민간인 억압하고 감시.

 

중간중간 전쟁 상황의 설명과 위안부 이동과 위안소 설치에 관한 배경설명이 들어가 있음.

 

일본인 군인 오오에와 조선인 군인 권동진의 관계를 성애화 하여 그리고 있음. 일본과 조선의 식민적 관계를 성애화함.

 

장하림의 연인 가즈꼬가 조선으로 와 조선에 동화되려고 하는 모습-->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함.

 

조선인 위안부 여옥과 조선인 일본군 대치의 사랑-->낭만화됨

 

광복군 윤홍철의 모습. 여옥이 위안부가 되었다는 데 대한 슬픔.

 

하림은 사이판 섬 군의로 배치. 위안부 검진 부분이 산부인과의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음.

세균전을 준비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하림과 연관시켜 서술.

 

가즈코는 고등계 형사를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음. 아기를 낳고 사형. 감옥 속의 성폭력 장면 삽입. 성폭력의 묘사가 기본적으로 조선인/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서술됨.

 

버마 전장에서 생존한 일본군인들의 식인 묘사.

 

---> 뭔가 세이초랑 비슷한 김성종이라는 말 납득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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