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과거 - media, memory, history - 과거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기억되고 역사화되는가?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김경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1989년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끝났다고 말해지는 90년대 중반 이후의 역사 재현과 문화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1. 과거는 죽지 않는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이 책을 역사와 해후하는 다양한 형태를 탐색하고 역사를 표현하는 매체가 과거를 이해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2006년 그는 역사의 위기에 직면한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전 세계적 상황(역사교과서 문제, 오스트레일리아와 원주민간의 역사, 독일의 전쟁범죄와 미국의 베트남 학살 사건에 대한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다양한 미디어의 시대에 과거에 대한 지식을 다음세대에 전달할 책임에 관해 얘기한다.

 

그는 1996년 발족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과거의 이해를 수정하고자 할 뿐 아니라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공공의 의식 속에서 말살하고자 하는 말살의 역사학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이 만든 새로운 교과서는 역사적 사건을 선택하고 제시하는 과정에서 역사학의 근본 문제는 다루지 못하고 있으며 특정한 사건이나 문헌에 관한 사소한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올바른서술을 제시하는 실증주의에 빠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스즈키는 이들이 의사 포스트모던주의를 차용하여 과거에 대한 민족주의자의 관점을 보강하고자 하기 때문에 더욱 까다로운 문제임을 지적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1945년 이전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주의와 군사침략에 대한 책임의식으로부터 일본인을 해방시키려는 뚜렷한 의도를 갖고 있다. 이와 완전히 대립하고 있는 것이 탈식민주의적 서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재와 과거가 역사적으로 결부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스즈키는 교과서를 둘러싼 논의가 모두 교과서에만 집중되어 있지만, 역사 인식을 결정하는 것은 다양한 미디어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매스미디어의 서술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형태와 힘을 고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역사 연구는 해석으로서의 역사이기도 하고 과거 살았던 사람들과의 정서적 공감을 이끄는 동일화로서의 역사이기도 한데, 이는 역사적 지식을 창출하고 전달하는 미디어의 변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기념비, 사적, 박물관 전시 등) 스즈키는 동일화로서의 역사와 해석으로서의 역사에 현재 개인들의 삶이 연루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대중미디어를 통해 현재의 사람들이 과거를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그는 역사지식의 전달이 역사적 사건, 그 사건의 기록이나 표현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것을 읽은 사람들 간의 관계의 연쇄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라고 정의한다. ‘역사에 대한 진지함에는 지속적인 대화가 수반되고 이는 말살의 역사학과 싸우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스즈키는 대중미디어가 역사에 대한 진지함에 개입하는 형태를 두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대중미디어는 기억의 전달형태를 결정한다는 것, 둘째로 대중미디어에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나 이미지에 폭넓게 접근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2. 상상할 수 없는 과거: 역사소설의 지평

루카치는 역사소설은 과거의 한 시대에 대해 때와 장소의 구체적인 묘사를 제공해 총체적인 사회의 언어로 묘사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한 바 있다. 역사문서에는 역사가에 의한 과거의 해석이 서술의 전면에 나타나지만, 소설에서는 독자의 주의가 오로지 등장인물의 운명에 쏠려 이어 배후의 역사해석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하게 된다. 역사소설의 풍경에는 배제에 의한 존재와 부재가 빚어내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역사소설에 중국이 등장하는 것은 다수 있지만, 조선이 역사적 풍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드물다. 이는 일본 작가들이 식민-피식민의 관례라는 성가신 반향 없이 조선의 과거를 다루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즈키는 역사소설과 그것을 읽는 독자가 과거를 보는 시각 사이에 복잡하고 불안정한 관계가 있음을 얘기한다. 소설(novel)은 새로움(novelty)에 사로잡히는 세계에 출현했고, 새로운 풍경, 새로운 시점, 새로운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은 역사적 상상력의 지평을 바꾸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나 장소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잠재적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문화생산이 지닌 경제원리, 즉 인쇄자본주의, 출판사와 서적유통업자, 팔릴만한 주제와 형식이 소설의 생산을 지원한다는 제한을 잊을 수 없다. 이러한 제약조건은 과거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네트워크와도 관계된다. 사람들이 어떤 시대나 어떤 사건에 대한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가는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역사 지식이나 박물관에서 본 전시물, 부모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영향을 받으며,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역사생산 미디어의 영향도 받기 쉽다.

 

3. 렌즈에 비친 그림자: 사진이라는 기억

스즈키는 2차대전 당시 독일 병사들의 전시범죄 사진과 난징대학살을 설명하는 당시의 사진에 대한 날조 논란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날조라는 개념은 카메라가 직접 리얼리티를 비춘다는 것에 대한 신뢰와 어떤 매개가 있다면 부정이 틀림없다는 부정의 가능성 내포하고 있다. 사진은 동일화로서의 역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이는 사진의 이미지가 감정의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특별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진의 진위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다루어야 할 문제는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사진을 보는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고려이다. 야마하타 요스케는 나가사키의 원폭 이후 나가사키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는 피폭 체험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보는 이의 마음속에 불러 일으키는 감정이 원폭투하의 역사적 원인과 해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밀고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사진가는 기록해야 한다는 중요성과 개인의 고통이라는 사적 여역을 침범한다는 위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취해야 할까? 이에 대해 스즈키는 렌즈 너머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 역사적 순간과 표현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하고 있다.

야마하타 요스케의 일생에 걸친 사진 작업을 살펴보면 원폭이라는 대참사를 마주친 충격과 동정을 전달했던 작업과 전후 천황가를 찍은 사진으로 일별할 수 있다. 그가 전후 천황 일가를 찍은 사진에는 군사지도자 히로히토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가정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스즈키는 야마하타가 찍은 적 없는 중국에서의 일본군의 잔학행위와 생생한 나가사키의 공포, 전후의 평화를 얘기하는 히로히토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다지 숙고하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형성하는 일은 사진가와 사건,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넘어 역사를 제시하기 위해 사진을 뽑고 꼬리표를 붙여 배열하는 편집자나 전시자의 역할, 전시를 보고 과거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구축하는 보는 이의 역할을 두루 포괄하는 일이다.

 

2차대전 직후에는 전쟁과 관련된 사진들이 정리되고 편집되는 시기이기도 했었다. 전쟁의 엄청남, 전후 재건의 고통과 살아남았다는 경험이 시각적으로 정리되어 회상하려는 욕망이 생겼던 것이다. 이는 대량소비와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공통기억을 산출했고 연대기식으로 편집되어 국민의 집단 가족 앨범을 출간하는 기반이 되었다. (: 마이니치 신문사의 쇼와 30년 기념 사진집, 아사히 신문사의 <전후 15년사 앨범> ) 이런 사진집들은 개인이나 가족의 기억을 나라의 기억과 연결시킴으로써 기억의 국민총동원과정에 공헌하여 가족의 이야기를 국민사회라는 큰 이야기 속에 자리잡게 한다.

이러한 기억의 동원은 기억 배제의 과정이기도 했다. “옛날의 우리에는 국가의 과거에 대한 바람직한 서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진들은 배제/추방 당하기 때문이다.

이 챕터에서는 1955년에 에드워드 스타이건이라는 미국 사진작가가 기획한 인간 가족전이 전시 장소와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전시가 어떻게 다르게 편집되었는지에 대해 다룬다. 이 전시의 구성과 편집 과정에는 스타이건의 역사적 판단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원폭과 관련된 뉴욕 전시에는 나가사키의 어린 아이가 주먹밥을 쥔 사진을 제시하여 인류 공통 경험에 대한 인도주의적 메시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화된 메시지는 보는 이들에게 반전과 전쟁 폭력에 대한 책임을 제고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도쿄에서 인간 가족전이 전시되었을 때에는 뉴욕에서는 전시 되지 않았던 야마하타의 원폭으로 파괴된 도시의 이미지가 전시되었다. 천황도 이 전시를 보러 갔었는데, 그 때 이 사진이 천황의 눈에 띄지 않게 은폐되었다. <아사히 그래프>에서는 검열로 삭제되었던 사진이나 전시물을 게재하면서 천황폐하, 요시 전하, 보십시오라는 표제를 붙였다. 이 사건은 사진과 문자, 기타 텍스트가 어떻게 구성되는지의 과정의 문제가 바로 사진의 진지함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여주는 대상, 거기에 부재하는 것, 감추어진 것이 다같이 중요하다. 이미지는 전쟁의 고통과 무시무시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보는 이의 눈길을 책임에서 회피하도록 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4. 활동사진: 역사의 영화화, 기억의 공동체

영화도 사진처럼 동일화라는 강력한 감각을 낳지만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스틸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질적으로 다르다. 정지된 영상은 기억에 강하게 눌러붙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동영상은 감정이나 표정의 움직임을 소리와 결합함으로써 눈물이 흐르는 감동을 자아낸다.

영화는 소설처럼 과거를 재현하여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리얼리티와 재현은 은밀히 뒤섞여 있다. 사실적인 것과 재현된 것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의 시작부터 논의를 불러일으켜 왔다. 관객에게 영화는 역사적 리얼리티에 몰입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 리얼리티를 과거 사건에 대한 특정한 해석의 전달이기도 하다.

스즈키는 과거를 재현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죽은 자를 대신해 말하는사람들의 증언에 의지한 영화의 하나로 하라 가즈오의 <가자가자 신군>(1987)을 들고 있다. 영화는 역사를 증언하는 증인의 목소리, 얼굴표정, 표정의 변화, 몸의 움직임 등을 전달한다. 오쿠자키 겐조는 뉴기니아 전선에서 귀환한 일본군 병사인데 전우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좇는 과정이 영화에 담겨 있다. 전쟁중 대장이 부하를 살해하거나 동료병사와 민간인을 살해하고, 굷주리고 인육을 먹었던 일이 실제 당시 전우들의 증언으로 영상화된다. 영화는 관객에게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생각하도록 한다. 오쿠자키는 잔학행위에 책임이 있는 상관들을 찾아가지만 이들은 모두 노인이 되어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관객은 이러한 장면에서 천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천황은 오쿠자키의 상관들처럼 전쟁 중에 수행한 역할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추궁당한 적이 없다. 한편 책임자를 추적하면서 균형을 잃어가는 오쿠자키는 그 자체가 전재의 상처를 증거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동일화로서의 역사와 해석을 위해 영화가 다른 역사 표현 미디어와 어떻게 공존하고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데 스즈키는 스필버그의 <아미스타드>를 들어 살펴보고 있다. 아미스타드 사건은 공해(公海) 상에서 이루어진 노예매매의 합법성이라는 극히 협소한 논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이지만 영화에서는 인종 차이를 초월한 국민적 아이덴티티 웅변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판사들이 다수 아미스타드 사건의 판사들이었음이 삭제된다. 스즈키는 과거에 대한 지식 탐구를 위해 영화를 이용할 때 모든 영화는 픽션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도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추구하는 일이란 결국 사건과 필름에 기록하는 사람, 영상을 보고 해석하는 관객 사이의 관계임을 말하고 있다 .

 

5. 마음에 새겨진 이미지’: 만화가 보는 역사

만화는 영화가 시각화하기 어려운 대참사의 비극을 시각적으로 상상하여 각색하는 힘을 갖고 있다. 스즈키는 아우슈비츠의 이야기인 아트 슈피겔만의 <마우스>와 나카자와 게이지의 <맨발의 겐>을 함께 다루고 있다. <맨발의 겐>은 히로시마의 원폭투하를 다양한 각도에서 동시에 묘사하는 작품이다. 고난을 겪는 겐, 패전국 일본의 빈곤과 착취, 원폭증 환자의 증상과 그들을 향한 두려움과 편견의 시선,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조선인에 대한 중층적인 차별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거론된다.

<맨발의 겐><마우스>는 전쟁의 잔혹한 묘사 때문에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 음울하고 잔혹한 그림은 이전에 본 다른 이미지들을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끔찍하게 묘사된 전쟁의 장면을 호러나 모험 에로티시즘 만화의 장면을 연상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역사표현 매체로서의 만화의 중요성과 복잡성을 확실히 보여준다.

역사만화는 독자층이 넓은 반면, 노골적이고 극적인 묘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큰영향을 준다. 역사에 대한 해석을 구체화 하는데 만화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만화 속 그림의 발전 추이, 만화의 생산과 유통, 그림의 생산과 소유, 설명을 담은 화면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만화책의 정치경제학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만화는 프로파간다와 상업광고 예술이 만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만화는 대중적인 시장이나 대량생산 기법뿐 아니라 대중동원을 위한 이데올로기 기술로 추진력을 얻어 번성했다. 특히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만화의 황금기라 불릴 정도였다. 냉전시기에 만화는 정치적 문맥에서 동원되기도 했다.

1950년대는 역사표현 미디어로서의 만화의 가능성이 새롭게 열린 시기였다. <최전방 전투><두 주먹 불끈 쥐고>는 역사를 모험적으로 표현한 미국 만화였다. 이 만화들은 하비 쿠르츠면이 편집하고 서스펜스와 호러 만화 출판으로 유명한 EC사가 발행했는데 대중오락 시장을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최전방 전투>의 출판과 <두 주먹 불끈 쥐고>의 창간은 한국전쟁과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54<최전방 전투>가 폐간하게 되었을 때 출판사는 “<최전방 전투> ......전사하다! 최전방은 죽었다. 한국에서 벌인 교전에서 해피엔드를 거둠으로써 불운하게도 살해당했다.”라고 했다. 두 잡지는 모두 한국 전쟁 이야기에 많은 공간을 할애했고, 로마제국이나 15세기의 아쟁쿠르 전투 등 전쟁사를 기반으로 한 만화들이었다. <최전방 전투>에는 죽은 도시라는 작품과 파편이라는 작품이 한국전쟁을 민간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원자폭탄!’이라는 작품도 나가사키의 원폭을 일본 시민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쿠르츠먼은 민족주의적 영웅주의 이야기로 전형화되어 가던 역사만화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의 시각적 가능성을 변용시킬 기술혁신을 이끌고 있었다. 영화의 기법을 만화로 빌려온 데즈카 오사무의 <신보물섬>(1947)<우주소년 아톰>등과 같은 만화는 20세기 후반의 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60년대와 70년대 데즈카 오사무의 역사만화는 장편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같은 형식이 복잡한 역사적 주제 탐구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다.

일본 만화는 인기가 높아 전후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에 깊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일본 만화가 역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별로 많지 않음을 스즈키는 지적하고 있다. 6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전쟁 영웅주의에 기초한 팬이 늘었는데 치바 데쓰야의 <전투기 독수리>는 전투기 세부를 꼼꼼히 묘사하고 영화적 수법으로 공중전을 재현해 인기가 있었다. 이 만화는 특공대 이야기를 묘사하면서 전쟁의 의미를 냉소적 어조로 표현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의 이념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교육적 논픽션 만화가 실패했지만 일본에서는 <만화판 일본사> 등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만화는 말과 이미지의 결합관계가 사진보다 훨씬 심오하고 이미지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좋다-싫다는 감정을 자극하기 쉽다. 또한 만화의 시각적 특질은 과거의 상상풍경을 보는 시점(어린이의 시점, 파일럿의 시점 등)이 중요한데, 이는 관객에게 집단적 우리를 규정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방향성을 가진 시선을 우리쪽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선택하는 것은 만화가이기도 하다.

문제적인 역사만화 작품으로는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고마니즘 선언>이 있다. 이 작품의 초기에는 1930년대 미국만화의 배트맨과 같이 약자 편에서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를 띠면서 옴 진리교단과 피차별 부락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 다룬다. 그러나 이후 자기가 응원하던 불쌍한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에 경도되었다고 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들에 대해 불쾌감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가가 한국에서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묘사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공격은 물론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전쟁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한다. 나아가 <신 고마니즘 선언 스페셜 전쟁론2>에서 일본을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희생자로 표현한다. 이러한 역사 왜곡에 대해 스즈키는 학술적 논문이나 잡지에서 아무리 글로 써도 만화를 보는 독자층에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은 한정적이라고 한탄한다. 고바야시의 만화는 점점 더 르포르타주나 자료 스타일로 재현되어 독자에게 믿을 수 있는 정보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더욱 문제이다. 그는 전전의 전체주의 예술을 상기시키는 기법을 현대 대중문화의 비주얼 기법과 마케팅에 접합시켜 광법위한 독자에게 전달시킨다. 그리하여 그의 만화를 읽는 사람은 국민과의 정서적 동일화를 고양하고 국민을 작가의 이미지가 제시하는대로 개조해버린다. 고바야시 만화를 읽는 독자-일부 여성 포함-는 그의 작품을 통해 단순한 일본이 아닌 특정한 일본, 남자이고, 중년으로, 위기에 봉착한 자아의 어깨를 다시 한 번 쫙 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일본과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대량으로 판매되는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써버리는 소비주의를 넘어 적극적이고 비판적으로 관여해야할 것으로 다루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만화는 물론 역사적 표현을 산출하는 다른 작가도 시각적 상상력을 잘 활용하면 깊은 상처를 남긴 과거의 사건을 외설적이거나 저질이 아닌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고 나아가 완곡하면서도 기대하지도 못한 대항 이미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해야할 일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생각지도 못한 이미지 또는 공백, 어긋남, 침묵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를 고민하는 일이다.

 

6. 랜덤 액세스 메모리: 인터넷 미디어가 생산하는 역사

이 장에서는 과거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인터넷의 특이성과 가능성에 대해 고찰한다. 인터넷은 원폭 학살의 위협이 낳은 전형적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69년 미국국방성 고등연구계획국에서 초기 형태를 갖추고 핵공격 시에도 통신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네트워크로 구상되었다. 이후 컴퓨터 네트워크가 비군사적으로 쓰이면서 73년 국방성은 개방적인 인터넷 프로젝트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80년대에 새로운 컴퓨터 언어가 개발되어 문외한에게도 접속이 쉬워지고 90년대에는 일반적이 되었다.

스즈키는 인터넷의 특징이 무국적성이라고 하면서 디지털이 국경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지식을 열어젖힐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도 언어장벽과 빈부격차에 따른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를 직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면 다른 역사관을 제시하는 복수의 사이트가 존재한다. 따라서 인터넷을 이용할 때는 누가 쓴 것인가를 확인하고 어떤 입장에서 정보나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7. 우리 안의 과거: 미디어메모리히스토리

미디어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력을 부정하거나 개탄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문학연구나 영화연구처럼 각각의 미디어를 개별적으로 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고 공명하여 우리의 역사관을 성립시키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지식은 단지 표현일 뿐 아니라 감정과 행동을 형성하며, 세상에서 행동하는 체험에 의해 만들어진다. 역사에 대한 진지함은 우리 안의 과거, 우리 주위를 둘러싼 과거의 존재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많은 표현을 비교하고 미디어와 메시지의 관계를 이해하고 다양한 미디어를 창조적으로 사용하여 과거에 대해 알고자 하는 충동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 지닌 극히 핵심적인 측면이다.

역사 교육과 연구는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고등교육의 사유화 경향이 불러오는 중압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역사에 관한 지식이 널리 소통될 수 있는 방법으로서 다양한 미디어의 조합과 이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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