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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마당깊은 집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5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1940년대생 작가들의 작품 세계는 해방과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4.19와 산업화가 겹겹이 겹쳐져 있다. 그래서 그 시기를 통과하며 성장해 온 사람이 감각하고 있는 한국사회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김원일(1942년생)의 세대적 특징을 고려하면서 자전적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당 깊은 집』을 읽고 들었던 생각들.
무엇에 대한 트라우마일까? <마당 깊은 집>의 서술자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성인이 된 남성 화자이다. 이 화자는 억압된 기억을 서술하면서 전쟁 이후 생활에 대한 트라우마를 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애도 방식이 매를 든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애증으로 드러나게 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작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이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는 김원일, 김원우 형제 기사에 아직도 찾아볼 수가 있다.
이는 작품 속에서 전쟁의 트라우마가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전이되면서 정작 일상생활의 반공과 군경이라는 국가기관의 통제와 폭력은 후경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애도하면서 ‘강한’ 어머니에 대한 반감을 전경화하고 어머니를 타자화함으로써 ‘주체’로서의 자신을 성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하여 아직도 어머니에 대한 재현이 “욕질하고 매질하는 '광녀(狂女)'”로 이야기되고 있어서 조금 놀랍다.
이는 40년대생 남성 작가들의 젠더 감각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국전쟁 이후 세대 주체의 성립은 매를 든 어머니의 고통을 헤아리기보다 애증하며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부장제의 곤혹스러움은 남성 가부장이 없다하여도 가부장의 역할이 어머니로 대체되어 가부장제라는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닐까. 가부장이 된 어머니, 생계를 책임지는 강한 어머니를 부정하고 주체를 정립하는 방식이 이 소설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 다시 소설을 보면 서사화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들, 주체 정립을 위해 타자화 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자녀의 양육과 사회화를 위해 매를 드는 무서운 어머니와 김천댁이 마당 깊은 집으로 오게 된 이야기와 사라지게 된 이야기들, 성매매 여성이었던 문자 이모에 관한 이야기들.
자전적이고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삭제된 이 이야기들에 대해서 성인이 된 화자나 이 작품들을 읽은 연구자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상태로 성장한 문학가들이 여전히 무서운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저는 한국 문학의 여성혐오적 증상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없기 때문에 집안을 경제적으로 책임지고, 자녀의 양육과 교육까지 홀로 책임지고, 당시의 호주는 ‘아들’에게 모든 권리가 돌아가게 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매정한 어머니, 매타작을 하는 어머니로만 아들들로부터 기억되는 어머니는 뭔가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마지막 장면은 다음과 같다.
나는 마당깊은 집의 그 깊은 안마당을 화물 트럭에 싣고 온 새 흙으로 채우는 공사 현장을 목격했다. 내 대구 생활 첫 일년이 저렇게 묻히고 마는구나 하고 나는 슬픔 가득 찬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굶주림과 설움이 그렇게 묻혀 내 눈에 자취를 남기지 않게 된 게 달가웠으나, 곧 이층 양옥집이 초라한 내 생활의 발자취를 딛듯 그 땅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매질하는 어머니를 만들었고 전후의 가부장제와 반공주의, 전후 경제의 척박함을 구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그 집이 ‘새 흙’으로 덮혀버린 채 ‘굶주림과 설움’이라는 정동만을 남긴채 사라져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새 흙으로 덮힌 그 곳에 다시 우뚝 서는 것은 이층 양옥집으로 이제 가부장제의 ‘호주’가 된 길남의, 모습만 바꾼 또 다른 견고한 가부장제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