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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짧은 이야기 속에서 힘 있는 소리를 내는 책을 만났다. 유머 감각이 살아 있는 글 속에서 뼈있는 한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타워』는 그런 책이다. 재밌고 독특하지만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만은 아닌 살아있는 세상 이야기다.
배명훈 작가의 『타워』는 6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타워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독자적이면서도 연관이 있는 이야기 여섯 편...책 제목이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타워』는 높이 2,408m에 674층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건축물이다. 높이만 높은 것이 아니라 면적도 엄청나며 상주 거주인구가 자그마치 50만인 곳이다. 주변국의 수도와 인접하고 있지만 독자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며 그 건축물의 이름은 ‘빈스토크’ 이다. 타워 자체가 하나의 국가인 셈이다.
빈스토크가 특이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 거대하고 그 구성도 복잡하다. 3차원의 직육면체 공간을 필요에 따라 갖가지로 형태로 나눴기 때문에 같은 층 높이에 일반적으로 똑같은 구조의 공간이 존재할 것이라는 편견을 비웃어 주었다.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배경이 되면서 이야기의 주제가 되는 빈스토크라는 타워는 너무나 매력적인 도시였다. 타워가 국가이기에 건물 공간 하나하나가 모두 상품화 된 곳이다. 이곳에서 여섯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빈스토크의 권력 분포도를 알아보기 위해 35년산 술병에 전자 태그를 붙여 상류사회에 유통시키는 이야기다. 화폐가치가 있는 물건들의 이동 경로를 통해 빈스토그 내 3차원 권력지도를 그린다. 권력이라는 것이 내가 드러내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유통시킨 술들은 예상대로 권력의 핵심에 점점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입된 술이 더 이상 이동하지 않는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지역도 아닌데 말이다. 거기에서부터 연구에 혼란이 발생한다. 이 이야기는 권력의 힘과 씁쓸함을 둘 다 맛보게 한다. 불법만 아니라면 이 이야기를 모방해서 대한민국의 권력지도도 그려보고 싶어진다. 물론 2차원의 권력지도는 누구나 예상하는 그림을 그려줄 것이다. 혹 거기에도 반전이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이야기는 털면 먼지 나는 작가의 자연 예찬이다. 세 번째는 빈스토크 해군 용역 업체 직원의 비행기 추락 사고를 이야기한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다. 빈스토크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사고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를 모른 척 한다. 하지만 빈스토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 척 하지 않았다. 네 번째는 빈스토크에서 이동 수단으로 아주 중요한 엘리베이터가 소재다. 다섯 번째 광장의 아미타불은 빈스토크 내 정치․사회적 대립을 유머 있게 풀어간다. 편지 식 글 속에 사회를 뚫어보는 냉철함이 숨어 있다. 끝으로 <샤리아에 부합하는> 은 신의 의지에 반하는 바벨탑 빈스토크를 응징하는 이야기다. 빈스토크가 바벨탑일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권력, 사회․정치적 문제, 외국인 노동자, 전쟁, 연구등 한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 주권을 가진 타워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들은 오늘날 존재하는 국가들의 공통된 문제점들을 꼬집는 듯하다. 물론 우리나라가 그 타워 일 수도 있다. 작가는 냉정한 시선으로 각종 문제점들을 이야기한다. 감정이입으로 이야기를 동정적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다만 사실만을 서술한 것처럼...그래서 무거운 소재지만 재미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소재의 독특함에 소설에 빠져들어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이야기들이 단편으로 짧게 마무리된 것이 무척 아쉬웠다. 작가의 또 다른 세계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