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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타라
조정은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수필은 읽어본지가 10년은 넘은 것 같다. 학창시절 유명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피천득님의 『인연』이 내가 읽어 본 것에 전부가 아닐 런지...혹 더 있다하더라고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공지영 작가나 신경숙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여기던 것이 혹 수필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장르를 구별하진 않지만 유독 수필엔 손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그러길 원치 않았다. 무소유나 인연은 읽고 난 후 나보다 더 나은 생각을 배웠다. 난의 향기와 같은 그리고 일상에서 오는 편안함과 순박함...내가 힘들게 살아가는 삶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란 것을 깨우쳐 주는 책...그래서 글 읽기가 즐거웠었다. 그런데 내가 또 다른 수필을 읽어봤던가? 왜 수필이라고 하면 일상에 힘들고 지친 이의 모습만 떠오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소설이 아닌 현실 속의 누군가의 척박한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망설였다. 나의 삶도 그러할텐데 또 다른 이의 삶을 엿보고 싶은 맘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후 처음으로 수필을 손에 잡았다. 조정은님의 『그것을 타라』.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을 타라...무엇을 타라는지 알 수 없지만 삶의 무게에서 벗어서 훨훨 자유로이 날아갈 것 같은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삶에 치여 힘든 작가의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가볍게 아주 가볍게 책을 잡아들었다.
처음에는 역시 수필은 이렇구나 라고 실망을 했다.
작가의 힘든 삶의 여정을 내가 뒤따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머리로 하는 생각과 가슴에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판이했다.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아가는 이의 과거를 들춰보는 기분은 아니었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듯 냉정하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래서 신파로 흐르지 않았다. 부도를 당했을 때, 축하해...라고 말하는 남편을 대하며 어리둥절 실감하지 못했던 그녀가 새벽에 남편이 거실에서 피운 담배연기로 현실로 받아들이기까지 이야기며 그 사실을 친정어머니에게 들켰을 때 어머니의 과거를 듣고 스스로를 굳게 붙들어 맬 수 있었던 그녀는 삶을 한탄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녀의 삶도 남들 못지않게 굴곡이 많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일 정도로...하지만 그녀의 정신세계는 그렇지 않다. 외로운 부자를 상대해주고 가난한 걸인들에게 정을 베푼다. 아들의 학교문제에 직면해서 엄마로써 아들에게 요구하기 보단 아들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아들을 믿고 아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삶을 회상하고 그들의 삶이 그 자신 또한 닮아가고자 하는 삶임을 생각한다. 흙탕물 같은 삶이지만 어느새 흙들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만 남는 듯 작가의 삶은 더 맑고 투명해져 가는 것 같다.
느낌이 다르다. 수필 같지 않은 수필이다. 소설 같은 수필이다.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의 끝부분에서 알았다. 조정은 작가는 전통적인 수필의 작품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형식의 수필 쓰기를 보여주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고 한다. 말하기 수필에서 보여주기 수필을 쓴다고 한다. 이런 형식의 수필이라 소설처럼 편하게 받아들여 진 것 같다. 그래서 작가도 자신을 타인 대하듯 여기며 글을 쓴 것이 아닐까? 그래서 감정적이지 않는 글을 썼고 읽는 나도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세상 살아가는 여러 가지 모습과 그들을 대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좋다. 독특하지만 매력적인 수필에 빠져 앞으로 수필이란 장르를 유심히 지켜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