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 노자가 말하는 인재경영의 道
웨이완레이, 양셴쥐 지음, 조영숙 옮김 / 유아이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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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저자 웨이완레이 와 양센쥐 작가는 근현대 정치 사가 이고  경영학 교수이다. 합작 해서 중국의 고전을 재 해석 하면서 이를 시대 흐름에 맞게 적용 하며 경영에 합목적인 방식으로 접목 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 보이다.  이력을 좀더 보니 , 노자 뿐만 아니라 손자 , 공자 ,한비자 , 삼국지가 고루 나오니 이 역시 시리즈의 산무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은 기우 일까 .

 

아뭏든 노자를 기본으로 한 책 쓰기 이니 만큼 우리 독자들은 노자에 대하여 조금 알 필요가 있다.. 아래 위키디파아의 힘을 빌어 노자의 실체에 대한 구연 설명을 붙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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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에서 노자로 상정되는 인물이 3인이 있다고 하였다. (老子 韓非列傳). 첫째로 이이(李耳, 자는 담(聃=老聃)를 들었다. 그는 초나라 사람으로 공자(禮)를 배운 사람이며, 도덕의 말 5천여 언(言)을 저작한 사람인데 그의 최후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음에 든 사람은 역시 공자와 동시대의 노래자(老萊子)로서 저서는 15편 있었다 한다. 세 번째 든 것은 (周)의 태사담이라는 사람으로 공자의 사후 100년 이상 경과한 때에 진(秦)의 헌공과 회담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노자는 은군자(隱君子)'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노자라고 하는 이는 은자로서 그 사람됨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후세에 노자라고 하면 공자에게 예를 가르쳤다고 하는 이이(李耳)를 생각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이라고 하는 인물은 도가의 사상이 왕성하던 시기에 그 사상의 시조로서 공자보다도 위인(偉人)이었다고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전설일지도 모르겠다.[모호한 표현]펑유란(馮友蘭)은 노자가 전국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에 근거하여 노자가 실존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최소한 도덕경 죽간본(BC 300년경) 이전일 수밖에 없으며 한비자(BC 280~BC 233)가 도덕경을 인용하였으므로 한비자보다 앞선다. 또 도덕경에는 유가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데 이는 백서본(갑본은 전국시대 말기, 을본은 한나라 초기) 이후가 반유가적인 것이며 죽간본은 덜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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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는  약 기원전 600 여년 전의 사람으로 추정 되니 , 지금으로 부터 2000 년 전의 전설상의 인물이 되겠다.. 예수님보다 약 1000 살 정도 앞선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보면 되려나 ...  또한 노자의 말의 전함이라고 일컽는 도덕경의 개요는 다음 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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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말이라고 하여 오늘날 《노자》(老子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상·하 2권 81장이 남겨져 있다. 거기서 기술되고 있는 사상은 확실히 (道)의 본질, 현상계의 생활하는 우수한[모호한 표현] 철학인 것이다. 예컨대 도를 논하여 이렇게 말한다.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신의 소유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功)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만물의 장(長)이지만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10장). 이런 사고는 만물의 형성·변화는 원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예정된 목적조차 없다는 생각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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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그러한 무위 자연의 법칙을 현세의 경영학에 접목한 기업이 여럿 눈에 뛰는 것이 특이 하다 . 일본의 경영의 신 마스시타 고노스케가 일으킨 파나소닉이 그러하고 , 미국 GM , 등 노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물흐르듯 순리를 강조 하여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인문학에 혹은 철학에 견줘서 이야기 하는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나 독일의 당대의 천재적 철학가 니체에 이르르면 그의 사항은 유심론인지 아님 도에 대한 사고 방식은 오히려 유물론에 가까운 무신론에 연결 되는 것이기도 하며,  자연처럼 그러한 것은 인위적인 것으로 거슬을수 없음을 확고히 한다.

 

그 ( 노자)가 춘추 시대 ( 기원전 770 ~ 403 년 ) 의 초나라의 철학자로 생각 한다면 , 진나라로 통일대국이 완성 되기 전의 춘추 전국 시대의 전반기로 봐야 하며 , 그 정재의 회호리의 한축에 있엇음을 감안 한다면 , 당대를 사는 ㅡ혹은 생존 할 수 있는 인간세상 지혜의 덕목은 과연 무엇일가 하는것이 나의 화두 이기도 하다.

 

당연히 , 군주와 왕권이 있고, 군사와 백성이 있어서 제 나라의 군민들을 먹여 살리거나 전쟁에서 이겨야만 살아 남는 뛰어난 계략과 지모가 있는 철학자와 정치가가 살아 남는 세상이니 만큼 저마다의 처세술은 남달랐지 안았을가 생각해 본다.

 

현재의 경영학 및 기업가의 존망도 사실 내부를 들여다 보면 , 춘추 전국시대의 이합 집산과 다를 게 없을 수도 있다, 배경만 첨단 IT 문화와 컴퓨터 , 펜과 , 두뇌로 싸움으 하는 것일 뿐 ,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낙오 하면 기업이 망하는 것은 2000 년전의 춘추 전국시대의 각 나라의 패망사와 닮아 있다... 

 

그 먼 역사의 공간을 뛰어 넘으면서도 후세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지혜로 감동받는 부분들이 바로 사람을 다루는 용인술에 있지 않을가 한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 것이도 , 배신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성공의 열정 또한 기업주 입장에선 사람들에게 얼마나의 동기 부여를 주는 가에 따른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다만 , 공자 , 손자 , 한비자 ,묵가 , 노자  장자 등의 자신들만의 정치 , 철학의 사상이 다른 관계로 제 각각 다른 전략을 채택 하였을뿐 , 근본적인 세상 정치와 민세 지탄을 바라보는 본질은 같지 않았을까 한다...그때 그때 판세에 따른 정세 결정을 누가 얼마나 적절히 하였는지가 후세 역사가들의 평가에 달렸을 뿐이지만 말이다.

 

사실, 100년을 버티는 노송은 나무의 쓰임새 모적  자체에 벗어난 경우에만 살아 남아서 혹은 간택 되지 않아서 300년 500년 동안 버틸 수 있는 저력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노송의 역설은 경영학 입장에서는 어떤 해석이 가능 할 것인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뒤집어 말하기는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구석은 있다라는 말과도 일맥 상통 하다면,  사람을 적재 적소에 배치 하여 최고의 효율을 올리게 하는 방법 그 것이 바로 노자의 철학 그본을 아우르는 현대 경영학적 전술이 아닐까 ..

 

과연 오늘날의 기업 들도 그러한가 반문해 본다... 대개의 기업들은 필요한 부분만을 취사 선택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언재가 빛을 볼 인재를 위해 10년 20년을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 이라고 판단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 그 시간 낭비되는 요소의 뒤집어 보기를 잘 하면 정답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의 달란트가 달라서 이를 인정해주고 알아봐 주는 집단에 충성을 하게되는 본능이 있다.. 조조의 지략에도 , 몽고메리 장군의 지략에도 , 알렉 산더 대왕의 돌격대에게도 몸 바쳐 충성을 다하는 전위병 들이 있었기에 가능 한 승리 들이다... 

 

그 옛날 , 거의 2600 년전의 미이라속에 있는 전설속의 노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사마천의 언을 빌려서 다시 보든 듣든 곱씹어서 생각 해 볼 수 있는 화두는 < 인간이란 어떠한 방식으로 행동 하고 사고 하는 존재 인가 > 라는 속성에 대해서만큼은 오늘날 아무리 진화론이 진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 그본 인간 양식 패럳음을 꿰 뚫어 보는 철인의 눈매를 피해 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연유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감동을 받았을 터이고 , 그 깐간한 독일의 철인 , 초 자아의 꿈을 위치는 니체 에게 까지도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높은 산 계곡 속으로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흘러 내리는 순리를 깨치는 순가  그 누군가는 히말라야에서 벌써 태평양 바닷가를 거니는 노자의 발자국을 볼수 있지  않았을까 .....< 책력거99 >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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